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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30/434)

제30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신유성은 우거진 숲에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내일 벌어질 반대항전을 위한 수련은 아니었다.

신유성이 찾고 있는 해답은 무신산을 하산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오랜 숙원이었다.

‘아직도 투신류의 3장에서 나아가질 못하다니.’

투신류의 3장인 파천의 장을 배운지 4년이 흘렀지만. 신유성은 아직도 투신류의 4장을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권왕이 투신류의 3장을 만들어낸 건 현역 시절. 아직 신유성이 학생인 걸 감안하면 잠재력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신유성은 정체된 지금의 순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나아가고 싶어.’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은 늘 신유성의 원동력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약하다’라는 이유로 버려진 신유성에게 무신산의 삶은 매 순간이 증명이었으니까.

자신을 버린 신오가문.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준 권왕.

그리고 신유성 자신을 위해서라도 아직은 정체될 수 없었다.

사악.

신유성이 왼팔과 오른팔에 마나를 둘렀다. 그 다음 눈을 감고 집중을 하자. 몸의 감각이 깨어나며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갔다.

바스락.

작은 동물이 나뭇잎을 밟는 소리.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

손에 두른 마나의 파장이 생생히 신유성에게 느껴졌다.

그러나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자세를 바꾸자. 손에 모아둔 마나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또 실패군.’

깊게 숨을 내뱉은 신유성이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용무야?”

신유성이 바라본 곳은 아무 것도 없는 허공. 그러나 신유성이 계속 한 곳을 응시하고 있자. 한 남자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알아채다니.”

나무 주변에서 색이 일렁이더니 사람의 형태로 변했다. 가온에서 유일하게 투명화 특성을 가진 학생.

신유성을 바라보는 남자는 엘리트로 불리는 S반의 학생이자. 학년 랭킹 4위인 민성혁이었다.

민성혁은 신기하다는 듯 신유성을 바라보더니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몸 안에 레이더 장치라도 있는 거 아니야? 이 정도 거리에서 들킨 건 네가 처음이야!”

그러나 신유성은 민성혁의 손을 잡지도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말없이 민성혁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넘어가려던 민성혁은 신유성의 기세에 눌린 듯, 멋쩍게 웃었다.

“미, 미안. 그냥 휴일에도 연습을 하기에 신기해서. 솔직히 말하면 실력을 시험 해보고 싶기도 했고. 너무 무례했나? 근데…….”

민성혁은 사람 좋게 웃다. 갑자기 눈빛이 바뀌었다.

“다른 용무가 있긴 해. 너에게 전해주고 싶은 게 있거든.”

눈을 가늘게 뜬 민성혁이 포켓을 건드렸다. 그러자 포켓에 뿜어진 빔이 홀로그램으로 글자를 띄웠다.

[동아리 가입 신청서]

[동아리 명-헌터부]

[부장-2학년 S반 신하윤]

“……신하윤.”

신하윤이라는 이름에 굳은 신유성의 표정. 민성혁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었다.

“역시 너도 아는 이름이지? 하긴 놀라는 게 당연해. 우리 부장님은 그 유명한 신오가문 출신이니까.”

신하윤은 2학년의 랭킹 1위이자.

차기 학생회장으로 가장 유력한 인물. 민성혁은 신유성이 동아리에 가입할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자랑스럽지 않아? 그런 분이 널 직접 영입하려고 하시는 거야. 이런 기회는 없다고. 거기다 우리가 맡는 교외 활동은 거의 길드급이거든.”

민성혁은 속사포처럼 동아리와 신하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물론 신유성도 신하윤의 제안이 신기하긴 했다. 신하윤은 헌터명가인 신오가문에서도 최고의 재능을 타고난 천재.

신유성이 고아원에 보내진 5살 때, 신하윤은 6살의 나이로 신오가문의 차기 후계자로 선택됐다.

둘의 운명을 갈라놓은 건 다름 아닌 특성이었다. 신하윤은 S급 특성을 타고 났고, 신유성은 F급 특성을 타고났다. 그 차이가 지금의 결과를 만든 것이다.

“그래?”

신유성이 민성혁을 바라봤다. 신하윤의 이름에 잠시 흔들렸지만 신유성의 눈은 다시 고요해져 있었다.

“만약 거절한다면?”

신유성의 대답에 민성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그럴 이유가 없잖아? 신오가문이라니까? 신하윤 선배는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최고의 헌터를 노리는 분이라고.”

민성혁은 신유성의 대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차기 회장이라 불리는 신하윤에게 잘 보이면 엄청난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덕분에 헌터부 동아리는 어떤 학생이나 흠모했지만, 문이 좁기로 유명했다.

즉 헌터부는 한국 최고라 불리는 가온에서도 선택받은 자만이 모이는 곳. 그런 헌터부의 가입을 거절한다? 민성혁의 상식으론 이해가 불가능 한 일이었다.

“그런 분 옆에 있어야 뭐라도 얻어먹지. 안 그래?”

민성혁은 사람 좋게 웃었지만 신유성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민성혁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신하윤의 밑에 들어가는 게 앞으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홀로그램의 오른 쪽에 놓여진 [거절] 버튼을 눌렀다.

핑!

신유성의 거절과 함께 홀로그램이 사라지자. 민성혁은 실눈을 크게 뜨며 놀라 소리쳤다.

“너, 무슨!?”

“고맙지만 가입은 거절할게.”

신유성은 이미 마음속으로 생각을 끝낸 상태였다. 적당한 성장을 위해서라면 신하윤의 밑에 들어가는 것도 좋은 선택지였다. 하지만 최고가 되려면 그게 아니었다. 헌터부의 부장인 신하윤의 밑으로 들어간다면 자신만의 파티를 만들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신하윤에게 이용당하고 휘둘릴 게 분명했다. 민성혁은 그런 신유성의 선택에 인상을 찡그렸다.

“너 지금…… 신하윤 선배의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거야?”

신하윤은 학생들 중 손꼽히는 권력자. 그러나 신유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신하윤의 배경에 신오가문이 있다면, 신유성의 뒤에는 권왕이 있었다.

“그래.”

신하윤의 목표가 최강인 것처럼, 신유성의 목표도 최강. 그러니 그에 걸맞은 무게를 견뎌야 했다.

하지만 민성혁은 신유성의 대답에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선배는 무조건 네가 제안을 승낙할거라 했는데.”

“뭐?”

“선배는 너랑 아주 친밀한 관계라고 말씀하셨거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신유성과 신하윤은 가족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2년 전의 이야기.

“친밀한 관계…….”

신유성은 그만 웃고 말았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신하윤은 신오가문의 적법한 후계자였다.

쓸모가 없다면 버리고, 필요하다면 버린 상대마저 찾아오는 극한의 실력주의. 신유성은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민성혁에게 말했다.

“누나에게 전해줘. 이젠 얼굴조차 기억이 안 난다고.”

이제 자신은 신오가문의 신유성이 아니었다.

*     *      *

가온 최고의 동아리. 헌터부.

신하윤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느릿하게 읽고 있었다. 그녀가 헌터부를 맡게 된 이후, 동아리에 불과한 헌터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의뢰지역- 산호 동굴]

[의뢰종류- 부산물 채취]

[의뢰금- 22,000,000원]

일단 헌터부에는 교외활동을 빙자한 헌터 의뢰가 끊이질 않았다. 당연히 그건 모두 신하윤이 가진 신오가문의 인맥과 그녀의 타고난 수완 덕분이었다.

한국 최고인 가온의 인재를 원하는 기업들은 차고 넘쳤다. 학생에 불과한 신하윤이 길드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산호 동굴에는 2학년 이상의 멤버로 보내주세요.”

산호 동굴은 4급이 나오는 던전이었다. 정보에 빠듯한 신하윤의 명령이 떨어지자. 옆에 있던 학생은 깍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부장. 신성그룹 의뢰지? 학년 랭킹 10위 안팎으로 보낼게.”

같은 학년이지만 부원들은 모두 신하윤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마치 계급이 나뉜 모습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임의로 통과 시키도록 하죠.”

신하윤은 빠르게 서류에 도장을 찍어 내려갔다. 신하윤이 허락하면 바로 헌터부에 있는 학생들이 교외 활동을 시작한다. 교직원의 허가는 필요하지 않았다.

헌터부가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비용, 거기다 아카데미의 이미지도 좋아지고 있으니 학교 입장에선 오히려 대환영이었다.

2학년 중 랭킹 1위.

헌터명가인 신오가문의 배경.

그리고 헌터부의 부장 자리를 통해, 이미 내년 학생회장 직은 신하윤으로 확정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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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들이 신하윤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신하윤이 포켓에 메시지를 보며 웃었다.

[동아리 가입 신청서]

[이름-신유성]

[답변-거절]

신유성은 자신의 가입 제안을 거절했다. 신하윤이 헌터부를 맡게 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신하윤은 신유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12년 전의 일 때문이겠지?’

12년 전 신오가문은 신유성을 버렸다. 처음엔 부모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건 소수의 실력자. 신오가문은 그 정점 중 하나였다.

그런 헌터명가에 F급 특성의 헌터는 필요 없었다.

‘그래서 버렸다.’

자신도 공감할 당연한 이치.

그러나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다. 역시 자신의 핏줄인건지, 신유성은 F급 특성으로 엄청난 활약을 했다. 이미 선발전 후보로 뽑혔고, 국가 대항전에 나갈 가능성도 있었다.

이제 신유성은 신오가문에 들어올 자격이 있었다. 신하윤이 보낸 동아리 제안에는 그녀의 화해와 인정이 담긴 것이다.

‘가주님도 허락하셨으니까.’

그러나 신유성은 신오가문에 돌아올 생각이 없어보였다. 신하윤은 생각에 빠졌다. 그냥 놓아주기엔 신유성이 보여준 활약과 성장은 너무 매혹적인 과실이었다.

결정적으로 그 ‘권왕’의 정식 후계자라니 신하윤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어쩔까나.’

톡톡톡-

신하윤의 검지가 리드미컬하게 책상을 두드렸다. 이건 그녀가 생각에 빠졌을 때 취하는 버릇이었다.

그리고 계산이 끝났을 때 신하윤의 검지가 멈췄다.

‘……뭐, 일단은 지켜볼까. 얼마나 성장할지도 궁금하고.’

신하윤은 여유로웠다.

적어도 가온 아카데미가 무대인 이상, 그녀는 지배자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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