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9화 (29/434)

제29화

가온 아카데미의 긴급회의.

거대한 U자형 테이블에 모인 교직원들을 보며 교장인 진병철은 호탕하게 웃었다.

“허허! 협회의 공략 대회는 모두들 잘 봤겠지요?”

비록 1위의 기록은 중국팀인 마천루 아카데미가 가져갔지만. 대회의 2위와 4위는 아델라와 신유성으로 모두 가온 아카데미의 학생이었다.

“1학년 학생들이 멋진 활약으로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고 있어요.”

기분이 좋아 보이는 진병철의 모습에 린샤오는 보석섬 사건을 만회하기 위해 재빨리 아부를 떨었다.

“이게 다 교장 선생님의 훌륭하신 지도 덕분 아니겠습니까!”

“아니 뭐, 우리 유성이랑 아델라 학생이 잘한 거지.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허허!”

신유성과 아델라의 이야기로 화기애애하고 순조롭게 흘러가는 분위기. 진병철은 뒤늦게 회의를 모집한 진짜 문제를 꺼냈다.

“생각도 못했던 문제인데……. 크흠, 아델라 학생이 만년빙정을 흡수했어요.”

덕분에 아델라는 강해졌다.

만년빙정으로 본연의 특성인 냉기의 힘을 더욱 성장시키고, 어쩌면 새로운 스킬을 얻었을지도 몰랐다. 다만 반 대항전 및 시험에서 아티팩트의 사용은 금지. 그런데 이미 흡수한 만년빙정의 힘을 시험 때만 아델라에게서 배제하는 건 불가능했다.

“규칙을 위반했군요.”

안경을 쓴 여교수.

소해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교사 생활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원리원칙을 중요시했다.

린샤오는 소해정의 말에 허- 하고 코웃음을 쳤다.

“이게 왜 규칙을 어긴 겁니까. 규칙에는 아티팩트를 소지하지 말라는 항목만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아델라는 아티팩트의 힘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만년빙정은 이미 몸 안에 흡수됐으니까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소해정은 린샤오의 말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다른 교수들도 모두 생각에 빠진 듯 쉽게 확답을 내리지 못하자. 진병철이 입을 열었다.

“일단 둘 다 진정하세요. 시험의 규칙에 허점이 많았던 건 사실이니까. 이번에는 예외를 둡시다.”

지금까지 학생 때 아티팩트급 영약을 흡수한 케이스는 가온 아카데미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병철은 새로운 방법을 떠올렸다.

“다만. 아델라 학생만 아티팩트를 허용하면 밸런스가 맞지 않겠죠.”

진병철의 말에 소해정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습니다. 아델라 학생이 속한 S반은 이미 1학년에서 가장 강력한 반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S반에 속한 아델라 학생만 아티팩트의 힘을 사용하는 건 불합리하죠.”

소해정이 발음 하나 실수하지 않고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자. 진병철은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래서 말인데……. 이번 시험은 아티팩트를 허용하는 걸로 정했습니다.”

진병철이 충격 발언을 끝내자. 린샤오는 점수를 따는 것도 잊은 채, 자신도 모르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아티팩트를 허용?”

결국 듣고 있던 교수들도 한 마디씩 말을 내뱉었다.

“그랬다간 반의 밸런스가….”

“교장 선생님. 아티팩트가 없는 학생들은…….”

“거기다 반 대항전이면…… 안 그래도 인원 통제가 힘들 텐데…….”

그래도 진병철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지금의 계획을 말한 건 아니었다.

“어허, 일단 다들 들어는 보세요. 반 대항전에서 S반은 A반과 붙지 않습니까? 그런데 A반에는 누가 있습니까?”

A반에는 학년 랭킹의 2위이자.

신성그룹 회장의 손녀인 김은아가 있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은아 학생도 아티팩트가 있다고…….”

“한두 개가 아닐걸요? 대회에서 얻은 게 아니라 돈을 주고 샀으니까요.”

교수들의 말처럼 김은아는 회장에게 선물 받은 수많은 아티팩트가 있었다. 그 중 하나를 골라서 시험에 끼고 나와도 상관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반은…….”

소해정의 질문에 진병철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어허, 규칙을 반마다 예외를 둘 수 있겠습니까? 다른 반도 거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이대로 진행합시다.”

그때 한 교수가 진병철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 생각해보면 F반은… 이제 아티팩트가 2개 아닙니까?”

진병철이 신유성과 스미레가 아티팩트를 얻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진병철은 완벽한 신유성의 편이었다.

‘눈치도 빠르긴. 그래도 이게 다 우리 유성이를 위해서니까.’

대항전 최하위 반은 교외활동이 금지라는 수칙이 있었다.

‘괜히 유성이가 교칙으로 선발전에 못 나가게 되면 큰일이잖아?’

진병철은 교수의 지적에도 아무렇지 않게 허허 웃으며 답했다.

“뭐 아티팩트가 2개인 건, F반이 교외 활동에서 멋진 활약을 보여준 덕분이고……. 아티팩트를 허용한 이상 개수로 지적을 할 순 없는 거 아니겠소?”

교장인 진병철이 그렇게 말을 하자. 교수는 더 이상 F반을 문제 삼을 수 없었다.

“자자. 그럼 회의는 이만 정리합시다.”

교장인 진병철이 신유성의 뒷배를 자처한 것이다.

*     *      *

방과 후의 교실.

혼자 남은 스미레는 불사자의 반지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유성 씨가 준 반지.”

아티팩트인 불사자의 반지.

불사자의 반지는 공략에 참여한 스미레의 몫이었지만 파티장인 신유성의 선물이기도 했다. 스미레는 반지를 보자 리치에게 자신을 구해준 신유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티팩트를 든 보스를 여기까지 몰아붙이다니.]

스미레는 공략을 망치지 않았고, 믿어준 사람을 실망시키지도 않았다. 그것에 그녀는 크게 안도했다.

[……역시 너를 공략에 참여시키길 잘했어.]

신유성의 말을 떠올리던 스미레는 못 참겠다는 듯 입술을 비죽거리며 웃었다.

“……으, 흐힛.”

이시우가 봤으면 분명 기분 나쁘다고 했을 웃음이었다. 스미레의 망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미레는 약지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행복한 망상에 취해 있었다.

‘반지…….’

일본에서도 반지를 선물한다는 건 프로포즈나 다름이 없었다.

‘신유성 씨가 내게…….’

교실의 문이 열렸지만 알아채지 못한 스미레의 얼굴은 번져가는 망상으로 점점 붉어졌다.

‘안 그래도 바쁜……. 어?’

반면 교실에 두고 온 물건을 가지러 온 레니아는 스미레의 뒷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사람이 있었네?’

근데 스미레의 상태가 영 심상치 않았다.

“흣, 흐흐, 흐흐흣…….”

창문으로 번지는 노을을 배경 삼아 마치 마녀처럼 기분 나쁘게 웃는 스미레. 거기다 스미레의 마나에 반응한 반지는 검은색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16593768780966.jpg

‘저게 뭐야 무서워!’

울상이 된 레니아는 물건도 챙기지 못하고 뒷걸음을 쳐서 교실을 빠져나왔다.

‘다, 다음에 챙겨야겠다!’

의도치 않게 레니아에게 겁을 준 스미레였다.

*     *      *

세븐넘버의 고급 기숙사.

기숙사에 돌아온 신유성은 포켓에 든 흑룡포의 정보를 홀로그램으로 확인했다.

 16593768780972.jpg

‘물건을 포켓에서 꺼내지 않아도 볼 수 있구나.’

헌터들이 손목에 찬 포켓은 여러 가지 기능이 담겨져 있어 유용했다.

특히 ‘탑의 기록’이라는 책이 던전에서 발견된 이후, 거의 모든 아티팩트의 정보가 포켓에 기록되었다.

덕분에 신유성은 깔끔하게 정리된 흑룡포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흑룡회천, 흑룡비격.’

두 스킬은 격투가에게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흑룡회천은 방어막을 통해 원거리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고, 흑룡비격은 장거리에서도 마나를 사출해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었다.

‘두 가지 모두 내게 꼭 필요한 스킬들이야.’

아티팩트는 갑작스럽게 규칙이 변한 반대항전은 물론이고, 국가대표를 뽑는 선발전에서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미 엄청난 실력을 가진 신유성이 아티팩트의 힘으로 날개를 단 격이었다. 하지만 선발전의 우승은 곧 한국 아카데미 전체를 대표한다는 뜻.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아티팩트의 힘에 자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

지이잉.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에이미의 문자. 신유성은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Amy♥:이번 반대항전 규칙이  깔끔하게~ 정리된 파일입니닷!]

에이미가 보낸 문자에는 첨부파일이 달려 있었다.

‘역시 일처리가 빠른 걸.’

평소에는 마냥 웃고 있어서 몰랐지만 에이미는 보기보다 일처리를 잘했다. 신유성이 있는 F반과 D반의 시험 항목을 듣자마자. 선배에게 규칙이 정리된 파일을 받아 신유성에게 보내준 것이다.

[Amy♥: 선발전을 위해 반대항전을 부숩시다! 빠샤! (๑•̀ㅁ•́๑)/ ]

발랄한 에이미의 메시지에 신유성도 살짝 웃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신유성은 파일을 확인했다.

[시험 종목: 헌터VS빌런]

[헌터 목표: 빌런 제압]

[빌런 목표: 주어진 계획 성공]

헌터VS빌런.

이번 반대항전 시험의 종목 이름이었다. 시험에 관한 중요 내용은 파일의 밑에 세밀하게 적혀 있었다.

대부분 시험 년도와 빌런들에게 주어졌던 계획의 내용이었다.

‘……이런 식이군. 내가 있는 F반은 헌터 역할이었지.’

파일에 적혀 있는 계획 내용은 빌런들이 실제로 저지르는 범죄와 비슷했다.

‘아티팩트 탈취나, 공용 시설 테러, 유명인사의 납치까지……. 다양하기도 하군.’

뛰어난 특성의 힘을 가졌지만 범죄에 가담해 빌런이 된 헌터는 많았다. 범죄를 저질러 한번 빌런으로 지목된 자들은 수배령이 내려 만국 공통의 적이 되었다.

이번 반 대항전 시험은 그런 빌런들을 제압하거나, 빌런의 입장이 되어 범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훈련이었다.

물론 에이미가 파일을 보내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특별 채점 항목.’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단체전인 반대항전에도 뛰어난 활약을 한 학생에게는 개인 점수가 있었다.

[납치된 시민 구출-3점]

[훔쳐 간 아티팩트 탈취-3점]

[빌런 팀의 리더 제압-3점]

[…….]

신유성은 주우욱- 이어진 시험의 항목들을 모두 눈에 새겼다.

선발전을 위해 D반만 이기면 충분했지만. 신유성에게 적당히 라는 단어는 없었다.

D반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신유성의 목표는 F반을 이끌고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