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8화 (28/434)

제28화

쉬는 시간의 A반.

반장인 김은아의 명령으로 ‘시끄럽게 하기’는 금지였지만. 누군가 겁도 없이 교실의 문을 열며 시끄럽게 소리쳤다.

“얘들아 나 왔어!”

드르륵 쾅!

책상에 앉아있던 김은아는 놀란 나머지 휴대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아니 누가.”

화가 난 김은아가 인상을 찡그리며 시선을 돌리자. 문제의 학생은 신난 목소리로 김은아에게 달려들었다.

“은아다아아!”

벚꽃이 떠오르는 핑크머리.

작은 키의 소녀가 몸을 던지듯 김은아에게 안겨들었다.

“어떻게 우리 은아는 나 없는 동안 잘 지냈어? 하긴! 잘 지냈을 리가 없지! 내가 없는데!”

쾌활한 성격의 주인공은 에이미. 미국에서 온 유학생이자 잘 나가는 방송인이었다. 그 탓에 교외활동을 다니며 학교를 나오는 날이 드물었지만. A반에선 김은아에게 친근히 굴 수 있는 유일한 학생이었다.

“야! 안 떨어져?”

김은아는 에이미가 자신의 배에 얼굴을 비비자. 강제로 에이미를 떼어냈다.

“헤헤, 은아야~ 우리 친구 맞지?”

그 와중에도 에이미는 좋다며 헤실 웃었다. 물론 에이미가 김은아에게 원하는 건 따로 있었다.

“너 학년랭킹도 2등이니까. 선발전 나가잖아? 그렇지? 으응~?”

스트리머인 에이미가 김은아에게 원하는 건 선발전의 송출권이었다. 온갖 애교를 떨며 몸을 비비적거리는 에이미. 그러나 김은아는 찝찝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 아닌데?”

“헤헤, 에이 또 그런다아! 장난치지 말고오~”

에이미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김은아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눈웃음을 지었다.

“나 아니라고.”

김은아가 또 정색을 하자.

에이미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으에에엑!?”

에이미가 과장된 리액션을 하자. 김은아는 자신의 귀를 긁적이며 말을 덧붙였다.

“미안한데 난 못 뽑혔어.”

“그, 그게 뭔 소리야! 너 아델라한테는 한 번도 못 이겨도! 그래도! 제법 강한 거 아니었어?”

“야, 죽을래? 조만간 내가 이길 거 거든?”

김은아는 눈을 가늘게 떴지만. 충격을 받은 에이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에이미는 김은아를 믿고 방송국에 장담하며 약속을 잡아둔 상태였다. 거기다 시청자들에게도 가온 아카데미의 송출권은 자신의 것이라며 장담을 했다.

그런데 믿었던 김은아가 선발전에 뽑히지 않다니. 에이미는 자리에 주저앉아서 중얼거렸다.

“내 인생 망했어…….”

“아니, 야! 뭘 그런 걸 가지고 풀이 죽어?”

왜인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김은아는 에이미에게 약했다. 에이미의 어깨가 추욱- 처지자 김은아는 괜히 신경이 쓰였다.

“……그럼 당사자한테 가서 부탁해보던가.”

“누구? 설마 ……아델라?”

에이미는 꿀꺽 침을 삼키며 아델라를 떠올렸다

“아, 아델라한테…… 방송을 제안하라고? 아, 안 돼! 분명…… 날 얼려버릴 거야!”

아델라와의 대련에서 2초 만에 박살이 난 이후, 에이미는 아델라만 보면 벌벌 떨었다.

“그 다음 빙수가 먹고 싶을 때마다. 날 갈아 마실 걸……. 시럽은 딸기시럽…….”

에이미가 겁에 질려서 중얼거리자. 김은아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아니 아델라 말고. 신유성.”

“신유성? 그게, 누구였지.”

에이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은아는 단답으로 답했다.

“전학생.”

“아, 그~ 소문의! 허, 그럼 전학 오자마자 너 대신 선발전에 나가는 거야? 헉, 진짜 쩐다…….”

에이미는 방송 스케줄이 바쁜 탓에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몰랐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그럼 검색하면 나오겠네? 어디 한번 볼까?”

에이미가 검색을 하자. K채널의 방송들이 주르륵 쏟아졌다. 영상을 클릭한 에이미는 곧 넋이 나간 얼굴로 눈을 빛냈다.

“으, 우와아…….”

방송을 하는 에이미에게 신유성의 존재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진짜…….”

에이미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물론 에이미를 한 눈에 사로잡은 건 신유성의 실력이 아니라. 다른 요소였다.

“……잘생겼다!!”

에이미는 보석을 발견한 듯 행복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신유성의 외모는 방송에 중요한 스타성을 넘칠 만큼 충족하고 있었다.

에이미는 핑크빛 미래를 상상하며 실실 미소를 지었다.

‘만약 이런 사람이랑 파트너가 된다면!? 거기다 내가 선발전까지 송출한다면? 헤, 흐흐…….’

방송국의 스포트라이트. 무수한 박수 세례와 방송 중에 끝없이 터질 시청자들의 후원금 폭탄!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

에이미는 흡족하게 웃으며 김은아를 향해 눈을 빛냈다.

“나, 나나 정했어!”

김은아는 시큰둥하게 자신의 휴대폰을 보고 있었지만 에이미는 개의치 않고 소리쳤다.

“이분이 내 파트너야!”

존댓말까지 붙이는 걸 보면 에이미는 신유성이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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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가온 아카데미의 식당.

뷔페로 이루어진 가온 아카데미의 식당은 호텔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호화로웠다.

“역시 이것도 맛있네.”

하지만 아무리 음식이 맛있어도 앉은 자리에서 접시 네 개를 해치우는 건 신유성이 유일했다.

“유성아 진짜 잘 먹는다. 난…… 두 접시면 배도 부르고 질리던데.”

이시우가 감탄을 하며 중얼거리자. 신유성은 접시 위의 음식들을 보며 무신산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신유성에겐 식사란 존재하지 않았다. 매 순간이 곧 수련이고 생존이었다.

신유성은 수련 장소에서 강이 근처에 있다면 생선을. 숲이 있다면 과일을 따 먹었다. 신유성이 먹은 건 음식이 아니라 자연이었다.

그 마저도 없으면 굶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유성에겐 이 모든 것이 그냥 당연했다.

“어.”

신유성이 실수로 젓가락으로 집었던 닭튀김을 놓치자. 스미레는 엄청난 순발력으로 닭튀김을 공중에서 잡아냈다.

“오~ 나이스 캐치.”

이시우가 스미레의 젓가락질을 보며 박수를 치자.

“아, 저, 신유성 씨…….”

스미레는 신유성에게 눈을 흘기며 젓가락을 쭉 내밀어 닭튀김을 집어주었다.

“……여, 여기!”

“고마워. 스미레.”

신유성이 닭튀김을 가져가자.

스미레는 서로의 젓가락이 닿은 부분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3초.

무슨 상상을 한 건지 스미레의 얼굴이 갑자기 새빨갛게 붉어졌다.

“갑자기 밥 안 먹고 뭐하냐?”

이시우의 질문에 스미레는 죄라도 지은 듯 화들짝 놀랐다

“……힉!? 아, 아니에요!”

다시 스미레가 느릿하게 젓가락질을 시작하자. 이시우는 그런 스미레를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음침하긴.”

그때 스미레와 대조되는 밝고 명랑한 목소리가 신유성을 불렀다.

“찾았다!”

에이미 로즈.

방송만 틀면 동시 시청자가 1만 명부터 시작하는 가온 아카데미 최고의 유명인. 에이미는 신유성의 얼굴을 보며 혼잣말로 감탄했다.

“우와! 실물은 더 잘생겼네!”

에이미가 들뜬 얼굴로 신유성을 바라보자. 식당에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모였다.

“에이미다!”

“오늘 학교 오는 날이었어?”

“근데 F반 애들이랑 말하네.”

등장만으로 주변이 웅성거릴 정도의 인기. 에이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신유성에게 물었다.

“저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식당 말고 조용한 곳 좀 갈 수 있을까요?”

에이미가 눈을 빛내자.

신유성은 비어있는 자신의 접시를 슬쩍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갑작스럽게 신유성과 에이미가 식당을 나가자. 이시우는 감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역시 유성이야.”

“네?”

그 감탄사에 스미레가 의아해하자. 이시우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눈치 못 챘어? 에이미가 조용한 곳에서 유성이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겠어.”

“그, 그건…….”

스미레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자. 이시우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역시 난 눈치가 빨라. 척하면 척이지.”

반면 스미레는 울상이 된 얼굴로 접시를 바라보았다.

*     *      *

호수가 보이는 아카데미의 공원.

에이미는 손목의 포켓에서 하얀색 책상을 꺼내들었다. 저런 거대한 물건이 시계만한 포켓에 들어간다는 게 신유성은 신기했다.

에이미는 지금의 상황이 익숙한지 능숙하게 책상에 앉았다.

“자자! 그럼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좋아.”

신유성은 에이미가 초면이지만 이미 교장에게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은 상태였다.

[우리 유성이 인기가 좋다보니! 방송국에서도 접촉해올 수 있네. 학생들 중에서도 몇몇 있고 말이야. 그 이름이…….]

교장 진병철이 말했던 학생들의 이름 중에는 에이미도 있었다. 에이미가 방송으로 쌓아 두었던 팬과 인기를 활용하면 신유성은 단숨에 인지도를 올릴 수 있었다.

헌터에게 인지도를 높이는 일은 중요했다. 이번 선발전의 투표는 물론 추후의 교외활동에도 긍정적인 일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능력 있는 학생들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었다.

선발전은 물론이고 대항전에 참여할 인원을 모집하느라. 고생중인 신유성에게 에이미가 직접 찾아왔다는 건 제법 좋은 기회였다.

“방송을 하고 있고 꽤 유명하다고 했지?”

신유성의 쪽에서 먼저 말을 하자. 에이미는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역시!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선발전에 나가신다고 들었는데. 국가 대표로 선발되려면 역시 인기잖아요?”

에이미의 말처럼 대항전의 대표는 성적은 물론 시민들의 투표도 영향을 끼쳤다. 즉 실력은 물론 대중들에게 익숙하고 인기가 많을수록 대표로 뽑히기 유리했다.

“그런데 아직 아델라를 인기로 이기시는 건 힘드실걸요?”

에이미는 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이더니 능글맞게 웃었다. 12년 동안 무신산에서 지낸 신유성과 달리 아델라는 방송출연은 물론이고, 각종 교외활동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인기에선 아직 신유성이 밀리는 게 사실이었다.

“그건 그렇지.”

담담한 신유성의 대답에 에이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에이미는 헤실헤실 웃으며 잘 보이기 위해 손을 비볐다.

“헤헤, 제 서포트가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죠!”

사회생활을 빨리해서 그런지 에이미는 아부에 능숙했다.

“선발전의 송출권만 저한테 허락해주시면! 이 방송 천재 에이미가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완벽한 어필과 함께 에이미가 눈을 빛내자. 신유성은 턱을 괴고 무관심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

시큰둥한 신유성의 반응에 당황하는 에이미. 신유성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건은 그게 전부야?”

그제야 에이미는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아아~ 그 이야기셨구나! 내 정신도 참! 후원금도 당연히 5대5로 떼어드릴게요!”

에이미는 흔쾌히 파격적인 조건을 내밀었지만 신유성은 여전히 못 마땅한 표정이었다.

‘이, 이게…… 아닌데?’

점점 당황한 에이미가 식은땀을 흘리자. 신유성은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천천히 이야기했다.

“만약 내가 국가 대항전에 우승하면 파티가 필요한 건 알지?”

“그, 그렇죠? 대표는 하나지만 국가대항전은 팀 단위의 경기가 많으니까요.”

에이미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지금 파티를 꾸릴 인원이 한참이나 부족해.”

신유성의 말을 듣던 에이미는 조건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서, 설마.”

“맞아. 내 파티로 들어와 줘. 아 물론 참전은 내가 선발전에서 우승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신유성은 에이미나 다른 학생들이 자신을 찾아올 걸 대비해, 미리 파티 포섭의 계획을 짜두었다.

물론 유명인에다 A반중에서도 실력자인 에이미를 자신의 파티원으로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신유성에겐 송출권이라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파티 활동은 좀…….”

에이미가 삐질삐질 땀을 흘렸다.

그건 신유성이 내민 송출권이 유효하게 먹혔다는 증거였다. 신유성은 에이미를 당겨서 구슬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밀어냈다.

“그래? 난 지금 파티원이 필요해. 정 힘들면 다른 아카데미에서 찾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으, 으어어…… 안 돼요! 흐엉! 제발 다시 생각을!”

신유성의 능숙한 줄다리기에 어느새 에이미의 표정은 울상으로 변해있었다. 에이미는 선발전의 송출권은 간절히 원하는 상태였다.

첫 번째는 자신의 방송을 봐주는 시청자들과의 약속이었고.

두 번째는 더욱 유명한 방송인이 되겠다는 욕심이었다.

선발전을 방송하는 건 에이미에겐 포기할 수 없는 기회. 신유성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당길 차례인가.’

신유성은 포켓으로 시계를 확인하더니, 안절부절 하는 에이미를 보며 물었다.

“곧 수업시간이네. 어때 생각은 정했어?”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정해진 상황. 결국 에이미는 신유성에게 넙죽 고개를 숙였다.

“파티장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신유성의 밀고 당기기에 완벽히 패배한 에이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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