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류진은 마천루 아카데미의 정점을 달성하기 위해, 지금까지 많은 라이벌들을 자신의 앞에 무릎 꿇렸다.
S급에 해당하는 가속 특성.
검신이라는 최강의 스승 밑에서 갈고 닦은 검술.
거기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오직 수련에만 매달리며 스스로를 갈고닦았다. 그 증거가 바로 이번 대회의 1등이라는 기록이었다.
‘……웃기지도 않는군.’
그런데도 류진은 승리에 취해있지 않았다. 오히려 신유성을 바라보며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건…….’
기록은 압도적인 우위에 있지만 둘의 공략은 난이도가 달랐다. 두 명이서 웨어울프를 처리한 중국 팀과 달리 한국 팀은 각각 리치와 듀라한을 처리했다. 거기다 마지막 전투에서 보여준 신유성의 활약은 독주에 가까웠다.
‘내 승리가 아니야.’
신유성은 어렵지만 더 강해지는 길을 택했고, 결국 증명해냈다. 중국의 뉴스에는 자신의 이름이 도배되겠지만 류진은 이런 찝찝한 승리가 반갑지 않았다.
‘……나도 최고가 되려면. 아직은 멀었군.’
마침 중국의 헌터 협회가 류진에게 원하는 목표도 류진과 같았다.
중국이 만들어 내려는 건 스승인 검신보다 강한 완전무결의 헌터.
아직은 그들의 지원이 있어야만 류진은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었다.
‘……다음은 없다.’
류진이 신유성을 뒤로 한 채, 돌아섰다. 옆에서 눈치를 보던 한설아는 그제야 다급하게 류진을 불렀다.
“야, 저기……. 아까 고맙다.”
한설아는 류진이 웨어울프에게 자신을 구해준 일에 감사하고 있었다. 류진이 고개를 돌려 한설아를 내려다봤다. 한설아의 팔에는 응급처치로 보이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류진의 시선이 머물자. 한설아는 어색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아, 이거? 그냥 중국에서 치료하게. 우리 일정도 빡빡하니까…….”
류진은 한설아의 팔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방해되겠군.”
“아, 미안…….”
풀이 죽은 한설아가 시선을 피하자. 류진은 그런 한설아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 * *
모든 공략이 끝난 시각.
협회에선 준비한 모든 행사를 마치고 공략한 던전에 따라 아티팩트의 수여식이 이루어졌다.
[1등 - 류진 (달빛의 성지)]
[보상 아티팩트 - (은월검)]
스크린에 이름과 자세한 내용이 떠오르자. 류진이 단상에 올랐다.
협회장인 강유찬은 류진을 내려다보며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자네를 보니 내 동료인 검신이 생각나는군.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재능이야!”
“영광입니다.”
류진이 가벼운 목례를 하고 강유찬에게 은월검을 받아들었다. 달빛을 머금은 듯 새하얀 칼날은 어딘가 신비함을 풍겼다.
[2등 - 아델라(아스텔라 얼음성)]
[보상 아티팩트 - (만년빙정)]
다음 차례인 아델라가 단상에 올랐다. 아델라는 말없이 만년빙정이 담긴 보석함을 받아들었다.
만년빙정은 냉기가 함축된 신비의 아티팩트. 아델라가 영약으로서 흡수하면 기존의 얼음 특성을 보다 강화할 수 있었다.
아델라가 내려오고 일본팀이 단상에 올랐다. 곧이어 신유성의 차례가 다가오자. 강유찬은 크게 기뻐했다.
“이번에 대회 최초로 더블 공략을 성공했다지?”
“네.”
“껄껄! 기록을 세워야할 대회에서조차 강함이 탐나던가?”
신유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유찬은 껄껄 웃었다.
“암 헌터라면 응당 그래야지! 학생들이 보스를 만날 기회가 어디 흔하겠나? 껄껄!”
강유찬은 아카데미의 만남 이후, 신유성을 자신의 제자처럼 아끼고 있었다.
“스승을 이어 제자가 흑룡포를 이어받게 됐으니. 유원학의 감회가 남다르겠군!”
흑룡포는 검은색의 천에 금으로 자수가 놓인 아름다운 도복이었다.
이번 대회의 관리자인 메이린은 강유찬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협회장님. 드랍된 아티팩트의 처우는…….”
“음, 이번에 대회를 벌인 던전은 협회의 소유지만……. 학생들이 보스를 잡아 얻은 아티팩트를 협회가 가져갈 순 없는 일이지. 그건 우리 유성이에게 주게.”
“네. 알겠습니다.”
강유찬의 말에 메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강유찬이 있는 이상 협회는 신유성의 편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모쪼록 한국의 위상을 빛내주게. 조만간 국가대항전과 관련해서 연락을 줄 테니 말이야. 껄껄!”
강유찬이 자리를 떠나자.
신유성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많은 학생들과 관계자들의 인파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스미레가 보였다.
신유성은 시험에서 스미레의 파트너였지만 저렇게 밝게 웃는 얼굴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유성 씨! 여기요!”
신유성은 웃으며 스미레에게 다가갔다.
* * *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길.
인터넷은 대회와 관련된 화제로 떠들썩했다.
[신유성VS아델라! 대한민국의 국가 대항전 대표는?]
[F등급 특성으로 더블 공략 성공!]
[학생이 대회 도중 아티팩트까지 얻어. 협회에서도 첫 사례…….]
스미레는 구식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저희가 대회에서 입상을 하다니.”
스미레는 지금의 현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랭킹이 1학년 중 최악이었던 스미레가 지금은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믿기지 않는 현실.
스미레는 휴대폰에서 신유성을 향해 시선을 흘겼다.
“물론…… 전부 신유성 씨 덕분이지만요.”
스미레는 리치와의 전투를 생각했다. 작전대로 언데드를 불려 승기를 잡았지만 리치의 아티팩트에 스미레의 공략은 실패로 기울었다.
“신유성 씨가 와주시지 않았다면 전 결국 리치한테…….”
하지만 스미레의 걱정은 사실이 아니었다. 스미레의 활약으로 리치가 가진 아티팩트 효과를 일찍 끌어내준 덕분에 신유성은 공략 시간을 단축 할 수 있었다.
만약 공략이 늦어, 4등이 아니라 5등으로 던전을 클리어 했다면 더블 공략을 성공해도 어떤 아티팩트조차 가져갈 수 없었다.
“아니 스미레. 넌 엄청나게 공략을 단축시켰어. ……그러니까 이번 대회에선 네 활약이 커.”
“……저, 정말요?”
신유성의 담담한 분석에 스미레는 위로를 받았는지 한결 표정이 밝아졌다. 신유성은 포켓에서 무언가를 꺼내 스미레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건 스미레 네가 가지도록 해.”
“어, 네? 히이익! 이, 이건!”
엄청난 리액션과 함께 스미레가 뒤로 물러났다. 신유성의 손에 쥐어져 있는 건 리치가 끼고 있던 해골반지였다.
“그, 그렇지만 이건 아티팩트…….”
스미레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려고 하자. 신유성은 포켓의 버튼을 눌렀다.
“잘 봐 스미레.”
지잉!
그러자 밴드에서 뿜어진 홀로그램이 허공에 떠올랐다.
반지의 옵션은 사령술사인 스미레에겐 어울렸지만. 격투술을 사용하는 신유성에겐 전혀 필요하지 않은 아티팩트였다.
“나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야.”
거기다 신유성은 이미 흑룡포를 얻은 상태. 같이 공략에 참여한 이상, 스미레도 아티팩트의 분배를 받는 건 당연했다.
“자. 스미레.”
신유성이 스미레의 손바닥 위에 반지를 놓아주자. 스미레는 신유성을 올려다봤다. 자신을 바라보는 자상한 눈빛과 미소. 스미레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멍한 얼굴로 반지를 바라봤다.
“신유성씨가 준 반지…….”
결국 반지를 받아든 스미레는 작게 중얼거렸다.
“한번 끼워봐.”
그 모습에 신유성이 묻자. 화들짝 놀란 스미레는 얼굴은 물론 귀까지 빨개진 채로 다급하게 말했다.
“나, 나중에…… 저, 저저! 죄, 죄송해요!”
다다다다.
스미레는 신유성을 앞질러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아카데미에 돌아갔다.
* * *
아카데미의 서쪽 트레이닝 룸에 준비된 집중의 방. 방음처리가 된 고요한 방에서 아델라가 보석함을 열었다.
사아악!
구슬처럼 생긴 만년빙정에선 하얀색의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얼핏 보긴 평범한 얼음처럼 보이지만. 만년빙정은 뼛속까지 얼릴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아델라는 만년빙정을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봤다.
‘……이게 만년빙정.’
보통 만년빙정은 검이나 장신구에 냉기 속성을 부여할 때 사용을 하는 아티팩트였다.
하지만 아델라처럼 빙(氷)속성 특성이나 스킬을 가진 헌터에겐 만년빙정의 다른 사용법이 있었다.
‘차가워.’
아델라가 손가락으로 만년빙정을 집었다. 냉기를 다루는 아델라에게도 만년빙정의 한기는 너무나 차가웠다.
‘이런 걸 입에 넣는다면…….’
아델라는 만년빙정의 엄청난 냉기를 맨 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일반이라면 몸 안의 모든 것이 꽁꽁 얼어버릴 무모한 도전이었다.
아델라는 무표정하게 만년빙정을 바라봤다. 원래 이런 아티팩트의 도움은 아델라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온 아카데미의 완전무결한 최강. 이탈리아의 유학생이지만 헌터 강국이라 불리는 한국의 모든 1학년 중 가장 강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신유성은 무패의 아델라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대회에서 더블 공략을 도전했고, 결국 성공시킨 것이다.
[이 남자라면…….]
대회에서 신유성의 공략을 보며 아델라는 기대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말해주었던 가슴 뛰는 전투가 떠올랐다. 한 번도 가져 본적 없는 호승심으로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분명.]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차갑고 무미건조했던 아델라의 아카데미 생활에 신유성의 등장은 전환점이었다.
그러니 아델라는 최고의 전투를 위해 최고의 컨디션을 준비해야했다.
텁.
아델라가 입에 만년빙정을 넣었다.
얼음처럼 딱딱했던 만년빙정은 아델라의 혀에 닿자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만년빙정이 품고 있던 끔찍할 정도로 차가운 냉기.
아델라는 가슴이 서늘했다.
몸속의 피가 차갑게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흡.”
아델라가 인상을 찡그리며 숨을 참았다. 아티팩트의 효과를 흡수해 특성과 스킬을 강화시키려면 지금의 냉기를 몸에 퍼트려야 했다.
아델라가 눈을 감았다.
만년빙정의 냉기는 몸을 들쑤시며, 상상도 못할 고통을 주었지만 아델라는 작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집중했다.
사아악!
그렇게 1시간의 시간이 지났다.
명상에 빠져있던 아델라는 잠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눈을 떴다. 아델라의 주변은 하얀 서리가 내려 앉아 있었다. 아델라는 겨울로 물든 풍경 속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추워.”
아델라는 자신의 팔을 감싸고 몸을 떨었다. 겨울의 여왕은 보기보다 추위를 심하게 타는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