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무, 무서워!’
움찔 움찔 몸을 떨며 스미레가 앞을 향해 걷자. 데스나이트와 다양한 무기를 든 해골병사들이 스미레를 뒤 따랐다.
저벅저벅저벅저벅.
마치 지옥의 군세를 연상시키는 공포스러운 광경. 물론 그들 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는 건 신유성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해골이었다.
“딱! 따닥!”
쩌엉!
신유성의 해골은 만약 반항하는 언데드가 있으면 방어구를 일격에 부수고, 스미레에게 잡아왔다.
“수, 수고하셨어요!”
스미레는 신유성의 해골에게도 깍듯하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병력은 점점 불어났고, 스미레는 진정한 네크로맨서로 거듭나고 있었다.
절망의 묘지 전체를 뒤덮는 언데드의 군세.
“딱! 따닥!”
해골들은 턱뼈를 부딪치며 소리를 냈고, 텅 빈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해골마의 등에 탄 데스나이트는 선두에서 무기를 번쩍 들었다.
“……주, 인님이 피를 원하신다! 망, 자를 찾, 아라!”
스미레는 뒤에서 외치는 데스나이트의 함성에 몸을 움찔거리며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히끅! 아, 아뇨! 피, 피를 원하지는…….”
데스나이트는 스미레의 말을 듣고 다시 무기를 번쩍 들며 소리 쳤다.
“……주, 인님의 마음이 바뀌셨다! 파괴해라! 적의 뼛조각조차 남기지 말고! 혼돈을 초, 래 하고! 보, 이, 는 모, 든, 것을 파괴해라!”
데스나이트의 연설이 끝나자 해골들은 자신들의 뼈를 부딪치며 지옥의 합창을 시작했다.
딱딱딱딱딱!
해골들의 열광적인 환호.
“따, 따다닥!”
“따닥! 딱딱!”
언데드가 벌이는 지옥의 연회에 스미레는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그,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그렇게 스미레가 절망의 묘지의 주인이 되어 가고 있을 때, 땅이 갈라졌다.
극, 그그그! 극!
갈라진 땅에서는 초록색 안개와 검은색 구름이 뿜어져 나왔고, 정체불명의 손이 균열을 잡으며 기어 올라왔다. 앙상하고 창백한 몸과 낡아 보이는 붉은색 로브.
“……내가 ……깨어났다.”
그의 존재는 불사자라 불리는 언데드 마법사. 리치였다. 그는 시체나 다름없는 얼굴을 한 채, 스미레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겁도 없군. 필멸자가 망자들을 이끌고 나 발라크의 영역을 침범하다니…….”
말을 끝낸 리치가 손을 뻗었다.
어두운 기운이 그의 손아귀에서 흘러넘쳤다. 어두운 기운은 땅의 균열에 흘러들어가 불길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절망을 맞이해라!”
드드득!
갈라진 땅에서 해골들이 몰려나오고 망자들이 울부짖었다. 리치가 소환한 망자들은 스미레가 절망의 묘지를 돌며 모아온 언데드의 숫자에 버금갔다.
스미레가 가진 [망자의 부름] 스킬이 언데드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힘이라면.
리치의 기술은 ‘소환’.
소모하는 마나와 효과의 수준을 생각하면 리치가 보여준 기술이 훨씬 어렵고 상격에 해당했다.
그 증거로 리치는 지금의 스미레라면 절대 소환할 수 없는 거대한 해골 골렘을 소환하고 있었다.
“……기어 나와라! 스컬 골렘!”
그그그극! 구구구궁!
균열에서 스컬 골렘이 기어 나오자 근처에 있던 언데드들은 피아식별을 막론하고 모두 흩어졌다.
리치는 4급 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하는 보스였다. 평소의 스미레라면 절대 공략할 수 없는 상대.
쿠웅!
스컬 골렘은 거대한 손으로 바닥을 내리치더니. 스미레가 있는 방향을 향해 쩌억- 입을 벌리고 소리쳤다.
“크궈어어어어!!”
골렘이 뿜어내는 음파에 스미레의 보랏빛 머리카락이 뒤로 흩날렸다.
“으, 으으……. 으우으…….”
골렘에게 한 대라도 맞으면 치명상.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스미레가 손을 떨었다.
그런 순간에도 스미레는 골렘에게 손을 뻗었다.
‘신유성 씨를…… 도와야 해.’
스미레는 던전의 공략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원래 최악의 성적이었던 스미레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유성이 들어간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신유성은 가온 아카데미에서 스미레를 처음으로 믿어준 사람이었다.
스미레는 신유성의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신유성의 짐이 아니라 도움이 되고 싶었다.
스컬 골렘을 노려보며 열의로 불타는 스미레의 눈.
‘할 수 있어! 신유성 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스미레의 바람은 신유성을 위해서였고.
‘……버림받고 싶지 않아.’
어쩌면 자신을 위해서였다.
그와 동시에 스미레가 뻗었던 손에서 보라색 빛이 쏟아져 나왔다.
사아아악!
온 세상을 덮을 듯 하늘에서 일렁거리는 보랏빛의 장막. 저건 스미레가 지금까지 사용해 본 스킬이 아니었다.
‘이, 이건…….’
-새로운 스킬 [망자의 장막]을 얻었습니다.
당황한 스미레의 눈앞에 손목에 찬 포켓은 홀로그램을 띄웠다. 하늘하늘 느릿하게 내려온 보랏빛 장막은 스컬 골렘을 포함한 모든 언데드를 감쌌다.
즈으윽!
땅에 내려온 장막이 사라지자. 스컬 골렘과 언데드들은 소환자인 리치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크궈어어어!”
“딱, 따닥!”
리치는 언데드를 소환하는 힘을 가졌지만 스미레는 그 언데드를 빼앗을 수 있었다. 언데드를 소환해야 하는 리치와 달리 스미레가 소모하는 마나의 량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상성.
절망의 묘지에 한해서라면 스미레는 S급 특성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신유성의 믿음이 통한 것이다.
“이럴, 수가…….”
비록 보스인 리치까지 수하로 만들진 못했지만. 스미레의 상황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스미레는 리치에게 삿대질을 하며 용기를 냈다.
“……고, 공격!”
주인인 스미레의 명령에 언데드들은 격하게 반응했다.
“크궈어어어!”
“딱, 따다닥!”
“주인, 님의 뜻, 대로!”
스컬 골렘. 스켈레톤. 데스나이트.
수많은 언데드가 리치를 덮쳤다. 스미레는 입술을 꾹 깨물며 간절하게 빌었다.
‘……제발.’
데스나이트의 검에 리치의 로브가 찢어지고, 스컬 골렘의 주먹에 리치의 마나 실드가 부서졌다.
콰앙!
거기다 신유성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해골은 특유의 격투술로 리치를 압박했다.
쐐애액!
언데드 궁사들은 뒤에서 불화살로 전투를 지원했다. 만약 여기가 아카데미라면 상상도 못했을 스미레의 대활약.
‘이제 남은 마나는 기껏해야 3분의 1……. 그래도 할 수 있어!’
스미레도 희망에 찬 얼굴로 전투를 바라봤다. 마나는 계속 줄어들었지만 스미레의 리치 공략은 거의 성공이었다.
하지만 스미레는 운이 나빴다.
‘어? 저, 반지는…….’
뒤늦게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리치는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칭찬하지. 필멸자가 사령술로 날, 여기, 까지 몰아붙이다니…….”
리치의 앙상한 손가락에서 끼워진 반지가 빛을 발했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던전에서 아티팩트를 장착하고 나타나는 보스들이 있었다.
“그것도…… 여기, 서 끝이다.”
이번에 소환된 리치가 그랬다.
좌아악!
리치의 반지가 수백 개의 실타래를 사방으로 뿜어냈다. 검은색 실타래는 정확하게 언데드들에게 꽂혔고 리치는 그 힘을 빨아들였다.
스컬골렘.
데스나이트.
스켈레톤.
신유성의 해골.
리치는 묘지에 존재하는 언데드를 하나도 남김없이 흡수했다.
“……고맙군. 좋은 먹이가 됐다.”
앙상했던 리치의 몸은 근육질로 변해 있었고, 몸 안에는 넘치는 마나로 힘이 충만했다.
“필멸자여. 이것이 아티팩트의 힘이다.”
리치의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묘지에는 리치와 스미레 단 둘만 남았다. 그러나 이 싸움은 정당하지 않았다.
“으우으…….”
스미레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또, 내가 망쳤어…….”
뚝뚝.
구슬 같은 눈물이 스미레의 뺨에 계속 흘러내렸다. 분명 최선을 다했다. 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또 망쳐버렸다.
“흐윽……. 끅.”
스미레는 늘 중요한 순간 일을 망쳐버렸다.
어린 시절 3주간 연습했던 유치원의 장기자랑 때도 그랬고.
특성 보유자라며 기뻐하는 아버지에게 F급 특성을 보여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으며.
일본에서 도망치듯 한국으로 온 그 사건 때도 모두 같았다.
하지만 이번만은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신유성의 믿음만큼은 보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최선의 노력과 간절한 마음이 언제나 결과로 증명되진 않았다.
“……끝이다.”
리치가 스미레를 향해 왼팔을 번쩍 들었다.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는 촉수처럼 꿈틀거리더니 창의 형태로 변했다.
쐐액!
스미레는 남은 마나를 모두 실드에 투자해 전방으로 펼쳤다. 눈물로 시야가 흐릿했지만 리치의 공격에 실드는 종잇장처럼 뚫릴게 분명했다.
질끈.
스미레가 눈을 감았다.
시간이 멈춘 듯 이어지는 정적.
리치의 공격이 막혔다.
‘……아?’
스미레가 막은 게 아니었다.
‘설마…….’
스미레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앞에 보이는 건 이제는 익숙한 등이었다.
“……아티팩트를 든 보스를 여기까지 몰아붙이다니.”
신유성은 시선을 앞에 둔 채, 담담하게 스미레를 칭찬했다.
“……역시 너를 공략에 참여시키길 잘했어.”
어쩌면 건조하게까지 들리는 칭찬.
스미레는 대답 없이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분명 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스미레가 틀렸다.
즈즈즈즉!
“내 공격을…….”
리치는 검은색 기운을 뿜어내며 신유성을 노려보았다. 리치는 아티팩트를 통해 언데드를 흡수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최상의 신체. 그런데도 눈앞의 인간은 그걸 한손으로 막아냈다.
“네놈은 대체…….”
탓!
신유성이 리치에게 돌진했다.
쿵!
그리곤 바로 앞에서 땅을 박차며 오른손으로 주먹을 질렀다.
투신류 3장 파천권격(破天拳擊)
주먹의 주위에서 흉악하게 소용돌이치는 신유성의 마나.
콰과과광!
리치도 검은색 기운을 오른손에 담아 휘둘렀다.
즈아아악!
힘과 힘. 마나와 마나.
둘의 주먹이 격돌했고 충격은 파장을 일으켰다.
* * *
충격파에 터져버린 드론 카메라.
팟!
협회에 송출되던 신유성의 모니터가 꺼지자. 그걸 지켜보던 관계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안 그래도 공략이 어려운 리치가 아티팩트까지 들고 나왔다고?”
“저, 정말…… 더블 공략을 성공시키는 건가?”
“성공한다면 이건 협회 최초의 사건이야…….”
협회에 모인 길드의 스카우터. 방송인과 기자들. 그리고 현역 헌터까지 협회에 모인 모두가 신유성의 귀추에 주목했다.
중국 팀인 한설아는 심각한 얼굴로 류진에게 말했다.
“……정말 성공하는 건가?”
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록이 중요한 대회에서 더블 공략이라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충격을 받은 건 3위를 달성한 일본팀도 마찬가지였다.
“……한 팀은 혼자서 기록이 2위에. 나머지 한 팀은…… 더블 공략이라고?”
충격을 받은 세이지가 중얼거리자. 사쿠라가 세이지를 위로했다.
“아직 결과는 몰라 세이지. 포탈을 통과해서 4위로 도착을 해야. 기록으로 인정되잖아?”
지이잉!
그때 포탈이 빛을 뿜으며 작동했다. 생각에 빠져 있던 아델라는 급하게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설마…….’
신유성을 향한 아델라의 기대감은 더욱 커져 있었다. 신유성은 기록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더블 공략을 시도했다. 심지어 상대는 아티팩트를 든 보스. 자신도 모르게 아델라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그 남자?’
아델라의 시선이 포탈에 닿았다.
아델라가 포탈에 적힌 던전의 이름을 읽을 새도 없이 옆에서 누군가 중얼거렸다.
“……진짜. 해냈다.”
그 말을 기점으로 협회에는 혼란이 덮쳤다.
“더블 공략을…… 대회에서!”
“이건 특종이야! 빨리 찍어!”
“헌터 협회에 촬영을 온 유한나 리포터입니다!”
권왕의 제자라는 타이틀 대신.
신유성의 이름이 새롭게 역사를 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