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3화 (23/434)

제23화

포탈을 통과하자 순식간에 사방이 바뀌었다. 신유성은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처에 몬스터는 없군.’

검은색 안개는 시야를 제한했고, 하늘에 뜬 붉은색 달은 던전의 일부로 보였다. 거기다 묘지가 빼곡하게 늘어선 음산한 풍경에 스미레는 자신도 모르게 신유성의 옷을 붙잡고 있었다.

“으우으…… 보, 보스는 어디에 있을까요?”

삑!

그때 스미레의 물음에 반응하듯 손목의 포켓이 홀로그램을 뿜어냈다.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이름-절망의 묘지]

[상세-언데드 형 몬스터의 출몰지로 죽음의 기사와 불사자. 두 세력의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포켓은 물건을 보관하는 건 물론이고, 협회에 기록된 던전이라면 지금처럼 정보를 홀로그램으로 표시해주었다.

“죽음의 기사와 불사자…….”

스미레는 보스들의 아명을 중얼거리자. 신유성이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나 대회의 룰은 보스의 공략이야. 1마리만 잡으면 복귀해도 괜찮아.”

던전에 존재하는 보스가 많을수록 대회의 기록에는 불리해지니 당연한 규칙이었다. 협회가 준비한 던전은 종류에 따라 보스의 숫자가 달랐지만 의외로 밸런스가 좋았다.

보스가 많으면 던전에서 마주칠 확률이 높고, 적으면 돌발 상황이 적고 공략이 안정적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신유성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1마리로는 부족해.’

학생이 4급 보스를 만날 수 있는 건 대회에서나 가능한 드문 경험이었다. 보스를 처치하다보면 낮은 확률로 아티팩트가 나오고, 특성의 숙련도가 높아져 스킬을 얻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신유성에게 보스는 강해지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

‘……2마리 전부를 잡는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협회에게 아티팩트인 흑룡포를 받으려면 클리어 기록이 선착순 4등 안에 들어야 했다. 즉 신유성은 남들의 2배 몫을 하고, 순위까지 달성할 생각이었다.

“스미레. 준비해.”

신유성이 어두운 숲속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스미레가 긴장한 얼굴로 자세를 취하자.

다닥. 다그닥.

투박한 말발굽의 소리가 숲속에서 들려왔다. 묘지는 붉은 달빛이 비추었지만 맞은편의 숲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의 소리가 가까워지고, 눈의 자리에 푸른 불빛을 일렁거리며 해골마가 나타났다.

“저, 저건…….”

스미레가 검지로 해골마를, 아니 정확히는 해골마의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갑주를 입은 기사가 타고 있었다.

“데스나이트!”

스미레가 놀란 얼굴로 외치자. 해골마가 한 차례 머리를 흔들더니 스미레에게 질주했다.

“죽, 어라.”

데스나이트의 기괴한 목소리.

해골로 된 머리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그닥! 다그닥!

해골마는 돌로 된 바닥을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신유성은 기회를 노리며 데스나이트의 정면에 섰다.

“죽어, 라!”

추진력을 담아 휘두르는 데스나이트의 검.

부웅!

해골마의 돌진력이 담긴 검의 위력은 하나의 스킬 같았다.

‘느려.’

신유성은 옆으로 몸을 틀어 검을 피했다. 해골마는 엄청난 속력을 내고 있었지만 집중력을 끌어 올린 신유성에겐 느렸다.

‘저기다.’

신유성은 갑주의 틈으로 손을 넣어 뼈를 붙잡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해골마의 돌진력을 생각하면 무모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권왕에게 단련된 신유성은 그걸 성공시켰다.

콰앙!

바닥에 내팽겨 쳐진 데스나이트와 주인을 잃은 해골마. 신유성은 데스나이트의 뼈를 박살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스미레.”

“네!”

스미레가 곁에 있는 이상 언데드 몬스터는 소중한 병력이었다.

사아악!

[망자의 부름]

스미레의 손에서 보라색 빛이 퍼져 나오자. 데스나이트는 부름에 답하듯 움직임을 멈췄다.

지금 스미레가 마나로 구현하고 있는 망자의 목소리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높은 위치의 언데드가 분명했다.

“이제 당신을 섬기, 겠습니다.”

데스나이트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해골마도 자세를 낮춰 넙죽 고개를 숙였다. 그걸 지켜보는 멍한 표정의 스미레.

“시, 신유성씨! 성공했어요!”

스미레는 뒤늦게 소리를 치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데스나이트에게 스킬을 성공 시켰다는 건, 비록 특성은 F급이지만 숙련도가 높고 체내의 마나가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신유성은 기뻐하는 스미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스미레. 듀라한의 위치를 물어봐.”

“네, 네네! 저기, 데스나이트님. 듀라한의 위치를 좀…….”

듀라한.

데스나이트들 중 가장 뛰어난 검술을 가진 머리 없는 기사로 망자의 묘지에 존재하는 보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데스나이트의 수장은 듀라한이 아니라 스미레였다.

“……듀라한은 곧 안개의 숲에 나타날 겁니다.”

데스나이트가 듀라한의 위치를 말하자. 신유성은 스미레에게 미리 짜둔 작전을 진행 시켰다.

“스미레. 작전대로 해줘.”

“네!”

고개를 끄덕인 스미레는 포켓에서 소중하게 보관해둔 신유성의 머리카락 한 올을 꺼냈다.

스미레와 신유성.

둘의 던전 공략은 순조로웠다.

*     *      *

헌터협회의 학원도시 지부 관리자인 메이린은 절망의 묘지 공략을 드론 카메라로 유심히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메이린은 바쁜 몸이었지만 강유찬과 권왕이 주시한 학생이니 그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두 명 뿐인 파티를 나누었다고?”

신유성은 어딘가를 향해 달렸고, 스미레는 머리카락으로 소환한 해골. 그리고 데스나이트를 통해 병력을 늘이고 있었다. 보스를 공략하려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단독 행동을 하는 것이다.

혼자 공략 신청을 한 아델라라면 이해라도 할 수 있지만, 메이린은 신유성과 스미레가 왜 단독행동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아! 설마?”

메이린은 옆에서 중국 팀을 모니터링 하고 있던 주힘찬을 불렀다.

“저기 혹시, 절망의 묘지에 보스 숫자. 알고 있어요?”

주힘찬은 메이린의 질문에 힘차게 대답을 했다.

“당연히 알죠! 절망의 묘지는 둘! 아스텔라 얼음성은 하나! 그리고…….”

“그만. 됐어요. 둘이라 그거죠?”

메이린은 주힘찬의 말을 끊더니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어떤 학생도 성공한 적 없는 시도.

‘역시 저 방향은…….’

메이린은 신유성의 생각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가능할까? 이번에 참석한 팀들은…….’

메이린은 심각한 표정으로 다른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바로 중국팀의 상황이 담긴 모니터였다.

*     *      *

[달빛의 성지]

대낮에도 하얀색 달빛이 푸른 초원위에서 내리쬐는 아름다운 던전.

한국인이지만 중국 팀의 일원인 한설아는 창을 던지며 씩 웃었다.

“이걸로 98마리.”

파악!

달빛을 반사하며 털을 뽐내던 월광늑대의 몸에 창이 꽂혔다. 초원은 늑대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지이잉!

한설아의 손에서 마나가 모이더니 활과 화살의 형태로 변했다. 한설아의 특성인 [무기구현]의 힘이었다.

쐐액! 퍽!

“99마리.”

한설아는 이번에도 월광늑대의 몸을 정확하게 화살로 꿰뚫었다. 마지막 1마리는 류진의 차례였다.

서걱!

눈으로 좇기도 힘든 완벽한 일합.

월광늑대의 몸이 류진의 앞에서 반으로 잘려나갔다. 한설아는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걸로 100마리. 드디어 성지의 수호자가…….”

달빛의 성지를 환하게 비추던 달이 무언가에 가려졌다. 마치 태양이 사라지는 일식처럼 던전을 비추던 달이 사라진 것이다. 한설아는 긴장감도 없이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계속 떠들었다.

“어두워지기만 하고, 보스는 안 나오는데? 포켓의 정보가 틀…….”

슈욱!

한설아의 귓가에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바람을 찢는 소리였다.

“뭐!?”

한설아는 놀라 몸을 뒤로 뺐지만 이미 늦었다.

피슈욱!

날카로운 짐승의 손톱이 한설아의 팔을 걸레짝처럼 찢어 놓았다.

“아악! 크윽…….”

한설아는 그제야 뒤로 물러나 짐승과 거리를 벌렸다.

“크릉, 크르릉…….”

앞에서 들리는 거센 숨소리.

천천히 다시 성지에 달빛이 비추어지자. 짐승의 정체가 드러났다.

웨어울프.

인간과 늑대가 합쳐진 모습의 몬스터. 한설아는 피가 흐르는 팔을 부여잡고 이를 갈았다.

“윽, 내, 내 팔…….”

무기를 다루는 팔에 부상을 입은 이상, 한설아는 전력에서 제외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류진은 그런 한설아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비켜.”

류진의 얼어붙은 목소리에 한설아는 몸을 움찔거렸다. 류진은 설령 동료라도 자신의 방해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한설아가 꾹-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서자. 류진은 검을 들고 웨어울프를 마주했다.

인간의 자유로운 동작과 짐승의 신체능력을 가진 괴물.

“그르르…… 크엉!”

침을 질질 흘리던 웨어울프가 달려들자. 류진의 몸이 일순 사라졌다.

촤악!

팔.

촤악!

등.

촤아악!

다리.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

웨어울프의 몸이 류진의 검에 난도질됐다. S급 특성 중에서도 최상이라 불리는 [가속]의 힘. 거기다 류진은 검신의 검술을 물려받은 괴물이었다.

류진은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여주며 웨어울프를 베어나갔다.

성지에서 달빛을 내리쬐면 웨어울프의 털은 강철보다 단단해졌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류진의 속도가 웨어울프의 몇 배는 앞서있었다.

‘역시 괴물…….’

한설아가 류진을 보며 생각했다.

한설아는 이 세상 전역의 아카데미를 뒤져도 류진의 상대는 없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크릉, 그르릉…….”

팔이 잘린 웨어울프가 피를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류진은 감정 없는 눈으로 웨어울프를 바라보았다.

츠츠츳!

류진이 마나가 담긴 검을 휘둘렀다. 웨어울프의 머리가 성지에 떨어졌고, 달빛이 부서졌다.

스렁.

칼집에 검을 넣은 류진은 포탈을 향해 걸었다.

저벅저벅. 탁.

류진이 한설아의 옆에서 멈춰 섰다. 류진은 한설아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말했다.

“복귀한다.”

한설아는 자신의 실수가 스스로 분했는지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천루의 검신. 류진.

중국 팀의 기록은 1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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