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가온 아카데미의 교장실.
교장인 진병철은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하는 차를 꺼내오며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아니, 하, 하하…… 그, 그게 무슨 말인가? 같이 참여할 학생을 그, 스, 스미레 학생으로 하겠다고?”
“네.”
신유성이 당당하게 대답하자. 교장은 울상을 지었다.
“아니, 정말 내가 아는 그 스미레 학생 말인가?”
“스미레는 세븐넘버입니다. 자격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스미레가 세븐넘버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신유성의 대활약 덕분이이라는 건, 아카데미의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신유성의 파트너가 되기 전까지 스미레의 학년 랭킹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진병철은 신유성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설득을 했다.
“아니 그래도…… 스미레 학생은 F급, 특성이지 않은가? 차라리 S반의 다른 학생들을…….”
하지만 신유성은 단호했다.
“교장 선생님. 저도 F급 특성입니다. 그리고 헌터에겐 특성이 전부가 아닙니다.”
“아휴, 그럼! 그렇고말고! 근데 말 일세……. 아무래도 아카데미를 대표해서 나가는 대회니…….”
진병철은 속이 탔다. 이러다 신유성의 심기를 거슬러, 신유성이 전학이라도 선언해버린다면 가온 아카데미에게 그건 엄청난 손해였다.
그렇다고 협회의 대회에 스미레를 내보내 아카데미의 이미지를 망치는 건 용납할 수가 없는 상황.
신유성은 식어 가는 찻잔을 바라보더니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약이라 불리는 F급 특성. 그런데도 스승님께서는 제 재능을 믿어 주시고 기회를 주셨습니다.”
고아원에 들렀던 권왕은 신유성의 체질을 알아챘다. F급 특성이지만 원석과 같은 재능. 만약 권왕이 가능성을 믿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신유성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저 가문에게 버림받은 아이로, 평생을 그렇게 머물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스미레도 마찬가지.
언데드 몬스터가 넘치는 [절망의 묘지]에서 스미레의 잠재력은 무궁무진 했다. 그러나 진병철은 스미레를 믿어주지 않았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신유성은 진병철의 제안에 승낙할 수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차분한 목소리와 올곧은 눈으로 진병철을 설득했다.
“그러니 스미레에게도 기회는 주어져야 합니다.”
스승인 권왕이 신유성을 믿어준 것처럼. 이번에는 신유성이 스미레의 가능성을 믿어줄 차례였다.
“크흠…….”
침음을 흘린 진병철은 대답 대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호화로운 세븐넘버의 기숙사.
신유성과 사령의 숲에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스미레는 또 다시 기숙사의 시설에 감탄했다.
“와아…….”
쏴아아아!
‘뜨거운 물!’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온수.
향기로운 입욕제가 담긴 욕실.
거기다 욕실의 맞은편에는 대형 TV까지 달려 있었다.
‘……욕실에도 TV가 있어!’
만지작. 만지작.
스미레는 감격한 눈으로 리모콘을 만져댔다. 일본에서 살고 있을 땐 화면도 작은 TV를 매일 양보해야 했다. 성격이 유약한 스미레가 리모콘을 잡을 수 있는 날은 적었다. 그러나 지금 기숙사에 놓인 모든 시설은 스미레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픽!
욕실에 몸을 담근 스미레가 리모콘으로 TV를 켜자. TV에선 각종 뉴스가 흘러 나왔다.
그 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스미레에게 인터뷰를 했던 유한나 리포터였다.
[학원도시 지부는 내일 개최될 던전 대회를 준비 하기위해, 10명의 현역 헌터를 안전 요원으로 배치했습니다!]
TV속 유한나는 학원 도시의 관리자인 메이린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다시 물었다.
[이렇게 까지 인력을 동원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관리자인 메이린은 담담하게 대답을 했다.
[협회에겐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니까요. 당연한 처우입니다.]
스미레는 TV속 메이린의 말에 감동을 받았지만 실상은 복잡했다.
외국에서 한국의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국가를 대표하는 엘리트.
협회는 혹시라도 사고가 터져 골머리를 썩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건 전국으로 송출되는 방송.
메이린은 듣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카메라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헌터협회는 대회의 보상으로 한국의 위상에 걸 맞는 최상의 아티팩트들을 준비했습니다. 기대를 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픽!
아티팩트.
탑을 공략했을 때 극히 일부의 확률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보물.
‘나, 나는 그런 대단한 물건이 걸린 대회에 참가하는 거야?’
스미레는 꿀꺽 침을 삼키며 욕실을 걸어 나왔다. 몸을 말려주는 히터의 바람은 따뜻했고, 몸을 감싼 수면 가운은 고급 재질이라 촉감이 기분 좋았다.
스미레는 지금의 상황이 모두 꿈만 같았다.
일본에서 유학 온 이후.
스미레의 성적은 늘 최하위를 달렸다. 그런데 지금의 스미레는 세븐 넘버였다. 스미레는 그게 모두 신유성의 덕이라고 생각했다.
‘나한테 머리카락도 주셨고…….’
신유성은 민폐가 되지 않을까 떨고 있는 스미레를 안심시켜주었다.
[괜찮아 넌 최선을 다했으니까.]
물론 결과는 하급반 중 1등.
신유성은 엄청난 활약으로 보석섬의 점수를 싹쓸이 했고. 4급 보스인 골렘까지 처치했으니 당연했다.
스미레에게 호의는 드문 경험이었고, 신유성은 이번 대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스미레의 특성은 공략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스미레를 이렇게까지 신뢰해준 상대는 신유성이 처음이었다.
“……보답하고 싶어.”
천장을 보던 스미레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꾸욱.
입술을 다문 스미레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비록 F급이지만 언데드를 다룰 수 있는 [망자의 부름] 스킬만 잘 사용한다면 바람대로 신유성을 도울 수 있었다.
‘꼭, 꼭! 해내야 해.’
침대에 누워 신유성을 위해 다짐을 하던 스미레는 아주 천천히 잠에 빠져 들었다.
* * *
공략 대회의 당일.
선별되고 선별된 30개의 파티가 도착하자. 헌터 협회의 진행 요원들은 일사분란하게 학생들의 안내를 시작했다.
“참가 인원들은 모두 진행 요원의 안내를 따라주세요!”
“외국에서 온 파티는 이쪽으로 와서 절차를 마치셔야 합니다!”
각 도시에서 유명한 아카데미는 물론 다른 국가의 아카데미들까지 모두 합쳐지자. 100명에 가까운 인원이 협회에 모였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파티와 인원 속에서도 참가원이 혼자인 파티는 하나였다.
가온의 1위.
아델라 오르텐시아.
아델라는 가온이 가진 두 개의 시드권 중 하나를 차지했지만. 다른 학생과 파티를 이루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아델라는 참가한 인원 중 유독 눈에 띄었고, 유한나의 레이더망에 걸리고 말았다.
‘오? 쟤는?’
인터뷰 대상을 물색하던 유한나는 눈을 빛내며 아델라에게 다가갔다.
“가온의 학년 랭킹 1위! 아델라 학생! 맞지? K채널에서 왔는데 인터뷰 좀 해줄 수 있을까?”
유한나의 질문에 아델라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무표정한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봤다.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유한나는 아델라 같은 타입이 질색이었지만 그래도 인터뷰를 위해 참고 질문을 던졌다.
“유일하게 대회에 혼자 참여한 것 같은데. 이유라도 있어? 혹시 보상인 아티팩트를 독식하기 위해? 그것도 아니면…….”
아델라는 무수하게 쏟아지는 유한나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혼자로도 충분하니까요.”
대부분의 아카데미가 전력을 다하며 두려워하는 던전 공략 대회. 그러나 아델라에게 준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아스텔라 얼음성.’
아델라는 포탈을 바라봤다. 아직 작동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뼛속마저 얼려버린다는 얼음마녀가 보스인 던전이었다.
보스의 추정 등급은 4급에서 5급.
가온의 학년 랭킹 1위인 아델라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혼자 공략을 도전하진 못할 장소였다.
유한나는 생각에 빠진 아델라를 보며 웃었다.
“혼자서 충분하다라. 역시 1위네? 그럼 너에게도 라이벌로 꼽히는 학생이 있을까?”
아델라는 유한나의 질문을 곱씹었다. 지금까지 무패 행진을 이어온 아델라에게 라이벌이란 단어는 너무 생소했다.
그렇지만 계속 신경 쓰이는 인물은 있었다. 아델라의 할아버지를 이긴 권왕의 제자. 비록 F급 특성이지만 세븐넘버가 되고 박수현을 이긴 남자.
“……신유성.”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아델라의 대답에 유한나는 씩- 미소를 지었다.
* * *
개최지가 한국인데도 최고의 다크호스로 꼽히는 중국의 대표.
류진(刘俊)
그의 등장에 약속이라도 한 듯 참가자들의 시선이 모였다. 류진은 그 유명한 검신의 제자였고, 중국 본토는 물론 세계에서 주목하는 헌터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류진은 참가자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빠진 채,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설아는 그런 류진을 보며 유창한 한국어로 빈정거렸다.
“와, 여기까지 와서 동생 걱정?”
류진은 한설아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류진에게 한설아는 그저 시끄러운 여자. 그 정도의 평가였다.
한설아는 류진의 반응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마이페이스로 말을 이어갔다.
“하~ 내가 너였으면 인기 좀 누렸겠다. 하는 김에 방송도 좀 타고.”
역시나 류진은 무반응.
한설아는 류진을 보며 아쉬움에 혀를 찼다. 얼굴이 헌터들의 전투력에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 시민들의 인지도는 높여줬다. 인지도가 높은 헌터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쯧, 얼굴은 다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건데. 아깝다. 아까워. 어…… 근데 쟤네는?”
한참을 떠들던 한설아는 흥미가 돋은 듯 어딘가를 바라봤다.
“시, 신유성 씨! 이제 10분 남았어요! 아, 지금은 9분…….”
“긴장할 필요 없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긴장감에 벌벌 떨고 있는 스미레와 담담한 표정의 신유성이었다. 한설아는 둘을 보며 류진에게 말을 걸었다.
“오, 권왕의 제자. 걔 아냐? 이름이……. 아 몰라 기억 안 나네.”
류진은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신유성이 F급 특성을 가졌으면서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권왕의 제자로 택해진 게 류진은 신기했다.
류진은 신유성이 대기하고 있는 포탈의 이름을 확인했다.
[절망의 묘지]
물리력에 강한 언데드 몬스터들이 나오기 때문에 무투가에게는 상극인 던전. 한설아는 신유성을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던전 잘못 고른 거 아냐? 왜 하필 격투가가 언데드를 잡아?”
던전 공략의 보상인 아티팩트를 가져갈 수 있는 건, 가장 클리어가 빠른 4개의 파티. 그런데도 신유성은 자신에게 가장 불리한 던전을 고른 것이다.
지이잉!
시간이 되어 포탈이 작동하자. 신유성과 스미레는 푸른빛으로 일렁거리는 포탈을 통과하여 사라졌다.
스르렁.
검을 뽑아 든 류진은 한설아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전력을 다해라.”
류진이 원하는 결과는 오직 1등.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팀원은 류진에게 방해물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