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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21/434)

제21화

[사령의 숲]

이곳은 학원 도시에서 관리하는 십 수가지의 던전 중 하나로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가장 공략을 꺼려하는 던전이었다.

“스미레. 왜 학생들이 사령의 숲을 싫어하는 지 알아?”

신유성이 미소를 지으며 묻자. 스미레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신유성은 담담하게 말했다.

“여긴 언데드 타입의 몬스터가 나오거든.”

“어, 언데드!”

스미레는 잔뜩 움츠린 모습으로 사령의 숲을 둘러보더니 신유성의 옷깃을 잡은 팔을 벌벌 떨었다.

신유성은 그런 스미레를 보며 생각했다.

‘……사령술사도 언데드에게 겁을 먹는 구나.’

학생들이 언데드 몬스터를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현역이 아닌 학생들은 대부분 탑의 마법이 깃들지 않은 하급 무기를 사용했다.

그 때문에 물리력을 상쇄하는 언데드 몬스터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건 힘들었다.

같은 난이도의 괴수라도 힘이 배로 들어가고, 김은아나 아델라처럼 특정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몬스터를 처리하는데 너무 시간이 들어갔다.

격투 타입인 신유성에겐 상극의 몬스터. 하지만 신유성은 스미레에게서 [절망의 묘지] 던전을 공략할 희망을 발견했다.

헌터 협회가 주최한 대회에서 아티팩트인 흑룡포를 얻으려면 스미레의 실력을 확인하는 건 필수적이었다.

“우으으……. 저, 그래도 이렇게 본격적인 던전은 처, 처음이라. 혹시 스, 스킬을 실패할 수도…….”

기분 나쁜 습한 냄새와 밟을 때마다 푹푹- 땅이 파이는 축축한 땅.

겁을 먹은 스미레는 신유성에게 바짝 붙어 숲속을 걸었다.

‘……설마 또 찢는 건 아니겠지’

신유성이 그런 스미레를 의심을 하고 있을 때, 숲 속의 어딘가에서 푸른색 빛이 일렁였다.

다그닥. 푹. 푸욱. 다그닥.

돌과 흙을 번갈아 밟는 무언가의 걸음 소리.

“어, 어어?”

스미레는 검지로 숲속을 가리키며 평소보다 배로 눈이 커져 있었다.

“마, 말! 해골말이에요!”

정확한 이름은 해골마.

말이 저주를 받아 스켈레톤으로 부활한 몬스터. 아까 전에 본 푸른색 불빛은 해골마의 눈에서 일렁거리고 있었다.

온몸이 뼈로 된 해골마가 스미레를 보며 고개를 털자.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드드-

뼈와 뼈의 부딪힘.

해골마는 3급에 해당하는 몬스터로 신유성의 머리카락이 없다면 스미레의 실력으로는 절대 공략할 수 없는 상대였다.

‘데스나이트는 타고 있지 않군. 다행이야.’

만약 해골마가 데스나이트, 혹은 4급 보스인 듀라한을 태우고 있다면 신유성은 스미레와 수련을 멈추고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단 1마리의 해골마.

“스미레. 저 해골마를 네가 길들여 보는 거야.”

탓!

땅을 박찬 신유성은 해골마의 몸통에 그대로 돌진했다.

쾅!

단순한 몸통 박치기였지만 신유성의 힘에 해골마의 거대한 몸체는 휘청거렸고, 신유성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콰앙!

몸을 숙인 신유성이 해골마의 앞다리를 한 번에 걷어 차버리자. 해골마는 흙바닥에 쓰러 진 채, 몸을 버둥거렸다.

신유성은 그런 해골마의 목뼈를 잡고 간단하게 짓 눌러 제압했다.

“자 이제 네 차례야.”

신유성은 해골마가 버둥거릴 때마다 목뼈를 잡은 팔에 힘을 주었다. 스미레는 그런 해골마의 모습에 평소와 다르게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내, 내가 빨리 편하게 해줘야해.’

깍! 까득!

해골마의 뼈가 이리저리 부딪히며 살벌한 소리를 내자. 스미레는 해골마에게 다급하게 다가왔다.

“카드득!”

해골마는 이빨을 갈아대며 스미레를 위협했지만 스미레는 겁을 내지 않았다.

“……괴롭지?”

스미레는 해골마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가까운 거리라 해골마가 공격을 하면 부상의 위험이 있었지만. 해골마는 스미레는 물지 않았다.

“……미안. 다치게 하려는 건 아니었어.”

스미레는 상냥하게 해골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국에 오고나선 언데드 몬스터에겐 처음 사용해보지만 스미레는 익숙한 듯 손에서 보라색 빛을 뿜어냈다.

특성과 스킬.

둘은 헌터가 타고 나는 힘이었다.

배우지 않아도 사용법을 알 수 있었다.

사아악!

스미레가 보랏빛을 뿜어내는 손으로 해골마를 쓰다듬자. 어느새 해골마는 스미레에게 교감하듯, 텅 빈 눈에 푸른빛을 일렁이며 스미레를 바라봤다.

“괜찮아. 차, 착하지?”

그런 해골마를 보며 배시시 웃는 스미레. 신유성은 온순해진 해골마의 행동에 목뼈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해골마는 몸을 일으키더니 곧이어 스미레에게 복종을 하듯 머리를 숙였다.

“지, 진짜? 타, 타보라고?”

스미레는 스킬 덕분인지 해골마와 소통을 했다. 고민에 빠졌던 스미레가 조심스럽게 등에 올라타자. 해골마는 스미레의 명령을 기다리듯 서 있었다.

스미레를 완벽하게 주인으로 인정한 것이다. 신유성은 그런 스미레와 해골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신유성의 생각처럼 스미레는 [절망의 묘지]를 손쉽게 공략시켜줄 히든카드가 분명했다.

스미레는 해골마에 탄 채, 생각에 빠진 신유성을 힐끔힐끔 흘기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어기…… 시, 신유성 씨도 타실래요?”

*     *      *

헌터 협회의 가장 위 층.

강유찬은 사무실의 유리를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이제 대회도 내일이구만. 껄껄.”

협회장인 강유찬에게 학생들은 새싹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던전을 공략하고, 탑을 오르고, 빌런들을 막아내며 다음 세대를 책임져야 하는 건 지금 성장하고 있는 학생들이라는 걸.

“내가 일이 바빠. 직접 참관할 수 없게 된 게 아쉽게 됐군. 이번 1학년들은…… 쟁쟁한 학생들이 많던데 말이야.”

미소를 지은 강유찬은 표정을 바꾸어 눈을 가늘게 떴다.

“최대한 사고는 없도록 하게. 특히 외국에서 온 학생들은 더.”

던전 공략 대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위험성이었다.

헌터에게 죽음은 익숙한 것.

참가자 중에 사상자가 나온다고 협회의 책임은 없었지만. 대회에 참가하는 건, 각 국가에서 엘리트 중의 엘리트인 학생들이었다. 그런 VIP중에 사상자가 나온다면 최악의 경우 외교 문제로 번질 위험성도 있었다.

“책임지고 관리하겠습니다.”

메이린은 서류가방에 손을 얹으며 대답을 했고. 같이 진행을 맡은 현역 헌터 주힘찬은 강유찬을 보며 열의를 불태웠다.

“학생들이 곧 헌터계의 미래 아니겠습니까! 협회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대회를 진행 하겠습니다!”

강유찬은 그런 둘을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     *      *

일본 최고라 불리는 쵸텐 아카데미는 간토 지방의 도치기 현. 그곳의 드넓은 평야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부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권왕 유원학.

한국의 헌터 협회장 강유찬.

탑 공략을 선도하며 앞서 나가는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일본은 헌터를 양성에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증거로 쵸텐 아카데미의 시설은 일류였다.

특히 넓은 부지를 아지트 삼아 다양하게 분포된 동아리들은 쵸텐 아카데미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동아리가 많은 쵸텐에서도 가장 유명한 동아리를 묻는다면 학생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헌터부.

모든 학생들이 헌터로 이루어진 쵸텐에서 헌터부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특이한 동아리.

헌터부의 학생들은 그만큼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다. 그 증거로 헌터부의 학생들은 일본 내에서 가장 강한 3인의 1학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최고 중의 최고인 헌터부에서 부장을 맡고 있는 학생이 쿠로키 세이지였다.

“드디어 내일 한국으로 떠난다.”

세이지가 낮은 어조의 일본어로 말했다. 지금까지 세이지는 여러 공략 대회에서 수상을 했지만 지금처럼 열의를 불태운 적이 없었다.

세이지를 이렇게 자극한 건, 다름 아닌 공략 대회가 열리는 장소였다.

‘……한국.’

몬스터가 쏟아진 아웃 브레이크 이후, 한국에는 무수한 던전과 게이트가 열렸다. 인구수와 땅 덩어리의 크기에 비하면 절망적인 숫자.

많은 국가들이 한국의 멸망을 예고했다. 그러나 한국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일단 첫째, 운이 좋았던 것인지 한국은 인구수에 비해 S급 특성을 각성한 헌터들의 숫자가 아주 많았다.

둘 째, 빠르게 던전의 공략을 난이도로 나누어 체계화 시켰고, 업적에 따라 헌터의 등급을 분류하고 관리해 부상자를 최소화 시켰다.

셋 째, 국가는 발 벗고 헌터들의 지원에 나섰고, 기업은 선수팀을 운영하듯 강한 헌터들을 후원했다.

넷 째, 수많은 던전, 체계화 된 시스템, 국가와 기업의 후원. 모든 조건이 맞물린 덕에 최강의 세대라 불린 헌터들이 탄생했다.

여러 가지 조건들의 선순환.

결국 한국은 동양의 국가들 중 가장 빠르게 탑의 절반에 도달했다.

‘……국가 대항전을 대비해서라도. 실력을 구경 해봐야겠군.’

세이지는 감았던 눈을 떴다.

긴 속눈썹이 열리며 새하얀 빛이 쏟아지자. 초원의 살벌한 풍경이 드러났다.

“카하으르르!!”

“끼요오옥!”

“치히이익!”

붉은색 털의 호랑이.

부리가 강철로 된 거대한 괴조.

독액을 가진 5미터 길이의 뱀.

세이지는 두 명의 팀원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시작해.”

궁사인 사쿠라는 세이지의 지시에 활을 들었다. 초원에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고, 그녀의 벚꽃 색 머리를 뒤로 흩날렸다.

쐐애액! 퍽!

빛이 점멸하듯 쾌속으로 사쿠라의 화살이 뱀의 머리를 꿰뚫었다. 사쿠라가 가진 특성의 힘이었다.

“크르러어엉!”

전방에서 적호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자. 검사인 키리시마 잇신은 칼집에 손을 얹고 있었다.

결국 달려온 적호가 코앞에서 아가리를 벌리자. 잇신은 칼을 뽑았다.

차악!

완벽한 자세의 발도.

쩌저적!

반월처럼 휘두른 잇신의 발도에 적호의 몸통이 반으로 갈라졌다. 머리가 나쁜 괴조도 상황의 불리함은 깨달았는지 헌터부의 학생들을 보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키요오옥!”

결국 괴성을 지르며 도망가는 강철 괴조. 리더인 세이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몸에서 3개의 그림자가 솟구쳤다.

세이지와 똑같은 크기의 그림자들은 각기 다르게 움직이며 검을 휘두르고, 표창을 던졌다.

괴조를 추적하고 사냥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3초.

세이지는 쓰러진 괴수들을 뒤로 한 채, 부원들에게 소리쳤다.

“우린 오늘 한국으로 간다!”

세이지의 깊은 눈동자에는 뜨거운 열의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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