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0화 (20/434)

제20화

가온의 학년 랭킹 1위. 누구나 입을 모아 말하는 최강의 1학년. 아델라 오르텐시아.

그녀가 서 있는 곳은 학원 도시에서 멀지 않은 던전 중 하나였다.

[염화산 동굴]

동굴의 이름처럼 이곳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난이도가 3급에 달하는 불속성 괴수들. 하지만 지금 염화산 동굴에 남아있는 건 차가운 얼음뿐이었다.

“……클리어.”

아델라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같이 공략에 참여한 동료들은 뒤덮인 얼음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아델라…….”

동료 중 한명은 같은 S반 출신인 자로 자른 단발머리의 이채현.

“우린 진짜 한 것도 없는데. 의뢰비를 챙겨도 되는 거야?”

그리고 떨떠름하게 웃고 있는 남자는 마찬가지로 S반 출신인 민성혁이었다. 아델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델라는 특성인 얼음처럼 차갑고 무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에는 그런 아델라의 주목을 끈 사람이 있었다.

‘……결국 그 남자가 대회에 참여하게 됐어.’

[아카데미 던전 공략 대회]

협회의 주최로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모이는 대회. 그중에서도 가온에서 출전하는 학생들의 명단은 늘 화제였다.

예정대로라면 가온에서 출전하는 건 아델라와 김은아. 그런데도 교장인 진병철은 신유성을 택했다.

‘……신유성. 그 남자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신 걸까?’

아델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직접 확인해봐야겠어.’

그녀의 아름답고 긴 속눈썹이 내려앉자. 주위의 모든 얼음이 산산이 조각났다.

쩍! 쩌적! 콰장창!

마치 동상처럼 얼어붙어 있던 괴수들은 형체도 없이 가루가 되었고, 아델라는 얼어버린 염화산 동굴을 뒤로 하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

“우와…….”

“아델라를 보면 같은 S급도 차원이 다르다니까?”

민성혁과 이채현의 감탄 어린 표정을 한 채, 뒷정리를 할 동안 아델라는 밴드형 포켓에서 네모난 핫팩을 꺼냈다.

비비적.

군용 핫팩에 마나를 부여하며 손을 비비자. 핫팩은 금방 온기를 뿜어내며 뜨거워졌다.

핫팩으로 얌전하게 손을 녹이는 아델라. 비록 특성이 얼음을 다루는 힘이었지만. 아델라의 출신은 이탈리아에서도 특히 더위로 유명한 피렌체. 그 때문인지 아델라는 추위를 싫어했다.

비비적.

‘……따뜻하다.’

아델라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핫팩을 잡고 손을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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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가온 아카데미의 점심시간.

신유성은 호수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강유찬이 공개해 준 자료를 확인하고 있었다.

[4번 던전]

[이름:절망의 묘지]

[난이도: 최상]

[보상: 흑룡포(아티팩트)]

[괴수의 종류…….]

자료에 적힌 건, 간략한 정보였지만 권왕이 신유성에게 원하는 건 명확했다. 나중에 탑의 공략에 대비해 아티팩트를 모아두는 것.

‘……흑룡포.’

그중에서도 흑룡포는 권왕과의 인연이 깊은 아티팩트였다.

‘스승님께서 30층을 공략하시며 얻은 아티팩트.’

흑룡포를 탑의 보상으로 얻어낸 건 권왕이었고, 흑룡포에 담긴 힘은 무투파인 권왕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이제 현역을 벗어난 스승님에겐 필요가 없지만.’

권왕의 제자로서 기술을 습득한 신유성에게 흑룡포는 더할 나위 없는 아티팩트였다.

‘……대신 공략에 필요한 인원은 최소 3명.’

파티장을 빼면 적어도 2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했다. 신유성은 벤치 옆의 잔디를 바라봤다. 스미레와 이시우는 돗자리에 앉아 때 아닌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와! 이걸 네가 만들었다고?”

“벼, 별거 아니에요! 그냥…….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것들이니까.”

스미레는 이제 세븐 넘버가 되어 학비와 관련된 걱정은 없지만. 이전까지는 과할 정도로 호화로운 가온의 급식 때문에 급식비가 부담이 되어 도시락을 챙기고 다녔다.

스미레는 그 때문인지 아니면 일본에서 동생들을 돌보던 경험덕분인지 요리 실력이 뛰어났다.

슬쩍.

스미레는 한동안 곁눈질로 눈치를 보더니. 능숙한 젓가락질로 닭튀김 하나를 집어왔다.

“저, 저기…… 신유성 씨도 하나 맛보시지 않을래요? 카라아게(空揚げ)라고 보기보다 맛이…….”

“아니 괜찮아.”

하지만 신유성은 스미레의 호의를 칼같이 잘라 내버렸다. 평소보다 더 처진 듯 보이는 스미레의 어깨. 신유성은 자료에서 봤던 절망의 던전을 떠올리며 스미레에게 물었다.

“스미레. 혹시 네 특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어? 스킬들도 전부.”

신유성이 질문을 하자. 스미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네? 네! 저, 되게…… 별거 아닌 능력이지만……. 신유성 씨가 궁금하시다면…….”

스미레가 보유한 특성의 이름은 거창하게도 [망자의 관리자].

당연히 등급은 F였다. 그런데 등급이 낮은 이유는 아무래도 범용성의 문제로 보였다.

그 때문인지 스미레가 스킬들도 제약이 심했다.

[해골소환]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 신체의 일부를 사용하여 해골과 계약해 소환하는 스킬.

[패밀리어]

작은 동물들을 사역마를 소환해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스킬.

[망자의 부름]

그리고 마지막은 자신의 마나로 언데드 종족 몬스터들을 조종할 수 있는 망자의 부름 스킬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효과가 뛰어나지만 학생이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할 일은 거의 없었기에, 아카데미에서는 아직 사용해 본적도 없는 계륵 스킬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정보에 적혀 있던 던전 속 몬스터들을 떠올리며 스미레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역시 특성은 등급이 전부가 아니야.’

특성은 결국 사용하기 나름.

“계속 잘 부탁할게. 스미레.”

신유성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자. 스미레는 붉어진 얼굴로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1학년-D반]

D반의 학생들은 반 대항전을 대비 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발언권이 강한 학생은 당연히 상위권의 성적을 가진 학생이었고, 주하진은 그 3인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 이거 봐, 신유성 그놈한테 A반도 대련에서 졌잖아. 내가 지는 것도 당연하지.”

주하진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나서자. 옆에 있던 D반의 여학생은 짜증이 난 듯 안경을 추켜올리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칭찬이라도 해줘?”

그녀의 이름은 소하원. D반에서 가장 학년 랭킹이 높은 20위이자. D반의 반장이었다.

주하진은 소하원의 말에 쾅! 하고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썅, 말 참 뭣 같이…….”

“그만. 진정하자. 하진아.”

그러자 옆에 있던 강민수가 실눈으로 싱글싱글 웃으며 주하진을 말렸다. 강민수는 말투와 다르게 꽈악- 힘을 주고 주하진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주하진은 소하원을 노려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D반의 학생.

특히 교외활동이 가능한 성적의 학생들은 모두 예민한 상태였다.

반장인 소하원은 D반 학생들을 둘러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반 대항전에서 꼴등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

실력 향상을 위한 방과후 수업.

승부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주말 간 외출 금지. 실력 지상주의인 가온에는 다양한 명목으로 다양한 페널티가 있었지만. 그중에도 가장 치명적인 페널티는 따로 있었다.

1달간 교외활동 금지.

“나랑 강민수는 당장 다음 주에도 맡아둔 의뢰가 있어. 만약 D반이 F반에게 져서 꼴등을 하면…….”

말을 잇던 소하원이 한숨을 쉬자. 강민수가 입을 열었다.

“취소해야겠지. 의뢰비를 물어주는 건 물론이고. 음, 우리가 헌터협회에게 올려둔 신용도도…… 하하, 많이 깎일 테고.”

“……지금 웃음이 나와?”

소하원이 까칠하게 나와도 강민수는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진정해. 하원아. 왜 F반이 지금까지 반 대항전에서 꼴등이었는지 잊었어?”

그 말에 앞으로 나온 건, 진민아와 성익현이었다.

둘 다 보석섬에서 샐러맨더에게 둘러 쌓여 위험에 처했을 때, 신유성에게 도움을 받았던 학생이었다.

진민아는 반장인 소하원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한 반에 학생은 30명. 우린 그 숫자를 이용해야해. 그러니까 나한테 작전권을 줘.”

“맞아. 나도 남은 작전권은 민아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반 대항전에서 작전권을 가질 수 있는 건 총 3명. D반에서 소하원과 강민수는 고정이었고, 남은 자리는 하나였다.

“잘할 수 있어?”

반장인 소하원이 묻자. 진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익현이가 도와 줄 거야.”

하지만 모두가 찬성하는 분위기에 주하진은 혼자 표정이 나빴다.

“야…… 반장. 그게 무슨 소리야?”

끼익.

주하진은 다시 책상을 밀고 일어서더니. 소하원을 보며 이를 갈았다.

“성적으로 따지면 마지막 자리는 당연히 나잖아!”

소하원은 그런 주하진을 비웃었다.

“풉. 누가 그래? 선택을 하는 건 반장인 나야.”

“너…….”

주하진이 부들부들 주먹을 떨었지만. 소하원은 시선조차 주지 않고 진민아를 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검지로 배배 꼬았다.

“축하해. 진민아. 작전권은 너한테 줄 테니. 네가 말한 숫자를 이용하는 작전? 뭐, 기대해볼게.”

“고마워! 반장!”

신이 난 진민아가 성익현과 짝- 소리를 내며 하이파이브를 하자. 주하진은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갔다.

주하진의 돌발행동에 D반의 학생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자. 소하원은 안경을 벗으며 반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냥 놔둬. 저러다 말겠지.”

*     *      *

트레이닝 룸에서 3시간 가까운 훈련을 마치고 주하진은 기숙사로 돌아왔다.

“나를 두고 학년 랭킹도 훨씬 낮은 진민아한테 작전권을 줘?”

주하진은 분이 가시질 않는 듯, 화가 난 얼굴로 중얼거렸다. 주하진은 작전권이 탐나진 않았지만 자신을 내버려두고 진민아를 택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하원. 내가 언젠가 콧대를 아주 박살내줄…….”

씩씩거리며 계단을 오르려던 주하진의 우편함에 꽂힌 하얀색 편지 봉투를 확인했다.

[B동 102호]

편지는 자신에게 온 게 분명했다.

“쯧, 올드하게 누가 편지를…….”

주하진은 투덜거리며 편지 봉투를 뜯었다.

“서, 설마 이건…….”

편지에는 [강해지고 싶으면 먹어~]라는 심플한 한마디와 알약 하나가 들었다.

주하진은 알약을 보고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

봉투와 담겨 있던 알약은 현역들이 사용하는 능력 각성제였다.

‘누가 이걸?’

주하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의문을 가졌다. 아카데미의 입구는 경비가 삼엄했지만 기숙사는 철저하게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공간이었다.

그때 주하진이 접혀 있던 편지를 펴자. 마치 예상이라고 했다는 듯이 편지의 밑에는 추가적인 글귀가 적혀 있었다.

[신유성을 이기고 싶지 않아?]

꾸깃!

주하진은 편지를 구겨버리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어떤 새끼가…….”

능력 각성제는 협회의 허가가 없으면 학생이 구하기 힘든 헌터 용품 중 하나였다. 주하진은 자신에게 각성제를 보낸 범인이 선뜻 짐작이 가지 않았다.

짧다면 짧은 3초의 시간.

주하진은 머릿속으로 고민을 시작했다. 능력 각성제는 학생들이 구하기 힘든 헌터용품.

‘……생각해보면 교칙 위반은 아니잖아?’

물론 그렇다고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헌터들이 각성제를 꺼리는 이유는 [폭주]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준비되지 않은 능력을 발휘하면 헌터들은 그 힘에 잡아먹힐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주하진에겐 그 힘이 절박했다.

꿀꺽.

침을 삼킨 주하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알약을 포켓에 집어넣었다.

‘혹시 모르니까……. 일단 챙겨만 두자.’

주하진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단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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