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9화 (19/434)

제19화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신유성은 폭풍 같았던 하루를 정리하며 도보를 말없이 걷고 있었다.

그런 신유성의 곁을 지키는 스미레와 이시우. 셋은 F반이라는 공통점으로 맺어져 있었다. 이시우는 대련장에서 겪었던 여운이 아직도 벅찬 듯 목소리를 키웠다.

“살아있는 전설을 두 분이나! 그것도 내 눈으로 직접 보다니!”

신이 난 이시우가 흥분해서 수다를 떨자. 스미레는 신유성의 발걸음에 맞추어 좀 더 빠르게 걸었다.

“A반의 학생을 이기시다니. 여, 역시 신유성 씨는 ……대단하세요.”

슬쩍.

스미레는 그렇게 말을 하며 보물이라도 바라보는 듯 신유성의 머리카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아주 가끔 신유성이 머리카락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스미레는 머리카락을 주워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듯 소중하게 포켓에 보관했다.

“진짜 유성이만 있으면 우리 F반도 모른다니까? 혹시 알아. 드디어 반 대항전 꼴찌를 벗어날지!”

가온 아카데미가 설립된 이후, 학년이 바뀌어도 F반들은 언제나 최하위 등수를 유지했다.

물론 이따금 F반에서도 특출난 실력의 학생도 나왔지만 반의 격차를 극복하는 건 무리였다.

각 반의 학생은 30명.

학생 1명의 실력이 높다고 뒤집을 수 있는 격차가 아니었다.

경쟁이 심한 건 실력이 뛰어난 S반과 A반의 이야기. 상위권반은 전략에 따라 학생이라곤 믿기 힘든 수준 높은 경기도 곧잘 나왔다.

반면 하위권 반에게 반 대항전 시험은 패배의 역사. 이시우는 눈을 빛내며 신유성을 바라봤다.

“난 유성이를 믿어!”

그러자 옆에 있던 스미레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저도…… 저도 신유성 씨를 믿어요!”

“고마워.”

담담하게 대답한 신유성은 반 대항전에 대해 생각했다. 전 ‘세븐넘버’인 박수현과 대련을 마친 후, 신유성은 학생들의 실력에 대해 어느 정도 구분을 끝냈다.

‘……가장 큰 문제는 반의 숫자가 30명이라는 점. 혼자서 모두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당장 A반만 해도 학년 랭킹 2위인 김은아가 당당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실력 좋은 A반의 학생들에게 호위까지 받는다면?

신유성은 수업 중에 본 F반의 학생들을 떠올렸다. 다들 특성에 대한 숙련도가 너무 낮았다.

같은 F급 특성이라도 어떻게 수련을 하고, 숙련도를 쌓았느냐에 따라 그 효율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모두를 바꾸는 건 불가능해.’

신유성이 반 대항전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곁을 지켜줄 단 몇 명…….’

생각을 마친 신유성이 이시우와 스미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 상대는 D반이지?”

“어? 그렇지?”

이시우가 대답을 구하듯 슬쩍 스미레를 보자. 스미레는 입을 여는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유성은 그런 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D반을, 아니. 하급반 전체를 이기게 해줄게.”

신유성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신유성은 전 세븐넘버이자, A반 출신인 박수현의 실력을 확인했다. 거기다 지금 신유성의 학년 랭킹은 3위. 아카데미의 세븐넘버에 속한 정점 중 하나였다.

“저, 정말요!?”

“오오! 좋아! 좋아!”

스미레와 이시우가 눈을 빛내자. 신유성은 미소를 유지하며 말을 덧 붙였다.

“대신 그러기 위해선 너희들도 지금보다 강해져야해.”

신유성은 권왕에게 배운 지옥훈련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시우와 스미레 둘 정도를 가르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자신 있지?”

상냥하게 묻는 신유성의 모습에 이시우와 스미레는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     *      *

학원도시의 헌터 협회 지부.

협회장인 강유찬이 가온 아카데미를 방문할 겸 자신의 지부를 들리자. 메이린은 하던 작업도 멈춘 채 급하게 뛰어나왔다.

“협회장님? 여긴 어쩐 일로.”

“껄껄껄, 학원도시로 내려오는 김에 그냥 들렀다네. 내가 아주 좋은 구경을 했는데……. 수다를 떨 사람이 없지 뭔가?”

강유찬의 웃음에 눈치가 빠른 메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권왕의 제자가 아주 마음에 드셨나봅니다.”

“지금까지 많은 헌터들을 봐왔지만 그렇게 특이한 전투는……. 헌터 인생 처음이야. 특히…… 특성을 대하는 방식 말일세!”

신유성이 가진 F급 특성 [집중력 강화]. 협회장인 강유찬은 신유성이 특성을 사용하는 방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특성의 등급 어디까지나 협회가 분류한 기준에 따라 정해진다. 마나를 냉기로 변환할 수 있는 아델라처럼 S급이 주어질 수도 있었고, 강력한 전기로 변환할 수 있지만 기분에 따라 컨트롤이 힘든 김은아의 경우처럼 A급이 주어질 수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특성의 우위를 정하는 건, 협회가 만든 기준. 그리고 특성을 검사하는 디바이스였다.

협회의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은 이상 F급 특성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랐다.

협회장인 강유찬은 신유성의 전투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집중력 강화……. 얼핏 들으면 보잘 것 없는 특성을 백분, 아니 천분 활용하더군. 평범한 헌터라면 불가능한 마나 컨트롤을 성공시키고.”

백발의 노인인 강유찬은 헌터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아이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전투에선 온몸의 감각을 살리더군! ……생각해보게 S급들도 통과하지 못한 유원학의 수련을 그 아이가 어떻게 통과 했겠는가?”

강유찬의 질문에 메이린은 신유성이 가진 특성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집중력…….”

“그래. 특성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걸세. 덕분에 유원학의 수련을 버틸 수 있었고, 특성을 초월할 수 있었겠지.”

유원학의 말처럼.

신유성은 특성을 사용할 때 따로 의식의 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유원학의 수련에서 생존하기위해, 신유성의 특성은 매순간 집중력의 한계를 초월했다. 어느새 숨을 쉬듯 당연해져 있었다.

강유찬은 처음 본 대련에서 신유성의 모든 것을 파악한 것이다.

“아마 디바이스로 표시는 안 되겠지만. F급 특성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겠지…….”

메이린은 강유찬의 설명에 흥미로워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성의 초월은 어디까지나 던전과 탑을 클리어 한……. 현역들의 이야기로 생각했습니다.”

“뭐, 보통은 그렇지. 학생들이 위기의 경험을 하는 건 드문 일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강유찬은 평소보다 진지해진 목소리로 메이린에게 말했다.

“학원도시의 관리자인 자네가 관심 있게 좀 지켜봐주게. 특이사항이 있으면 내게 보고도 해주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개최하는 던전 공략 대회 말이야…….”

강유찬이 마나를 담아 시선을 흘기자. 메이린은 움찔 몸을 떨었다. 절정의 고수가 마나로 보여주는 무언의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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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찬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은월검을 보상으로 넣은 던전이 중국 팀에게 상당히 유리하더군. 허허, 아마 우연이겠지?”

“죄, 죄송합니다! 그, 그건…….”

메이린은 마천루 아카데미의 교장에게 모종의 거래를 제안 받았다. 그들이 원한 것은 ‘약간의 편의’ 대신 메이린은 학원도시의 관리자로서 어마어마한 뒷돈을 챙길 수 있었다.

“나도 이해하네. 훌륭한 학생들이라면 더 기회를 주고 싶겠지. 사실 나도 유원학에게 정보를 좀 주고 왔거든!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허허!”

강유찬이 평소처럼 뒷짐을 지고 허허- 웃자. 메이린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강유찬은 그런 메이린을 내려다보며 아까보다 서늘해진 목소리로 당부했다.

“근데 말일세. 협회의 대회니 적어도 협회장인 난 그 사정을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명심하겠습니다.”

“껄껄, 그냥 늙은이의 꼬장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

뒷짐을 지고 협회를 나갔다.

“후우…….”

메이린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숨을 내쉬었다.

“이제 1학년생이 협회장님의 마음에 들다니…….”

권왕의 제자라는 호기심에 신유성을 찾았지만. 강유찬을 사로잡은 건 순전히 신유성의 뛰어난 실력.

메이린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녀의 각선미를 따라 주륵 흘러내리는 차이나 드레스.

“……신유성이라.”

메이린은 학원도시의 특별 관리 대상에 신유성의 이름을 추가했다.

*     *      *

가온 아카데미의 낯선 천장.

박수현은 무거운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박수현은 손바닥을 머리에 대더니 두통을 참고 기억을 정리했다.

확실한 건, 대련에서 신유성에게 패배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은 양호실의 침대 위가 분명했다.

‘여긴 양호실…….’

적어도 박수현이 입학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세븐 넘버 급 실력을 가진 박수현이 양호실까지 실려 올 정도로 참패를 당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박수현은 참패했다.

‘내가…… F급에게 졌다고?’

믿기 힘든 사실.

물을 조종할 수 있는 박수현의 능력은 물이 가득 찬 수영장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거기다 박수현은 헌터 용품인 실드 배리어까지 반입해 사용했다.

그런데도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패배한 것이다.

“윽…….”

박수현이 어깨를 움켜 잡았다.

나노머신으로 치료를 마쳤지만 아직 통증이 남아 있었다. 신유성에게 패배하며 박수현은 많은 일을 망쳐버렸다. 신유성에게 승리만 했다면 신성그룹의 외동딸인 김은아에게 눈도장을 찍고, ‘전 세븐넘버’의 위신도 찾을 수 있었다.

‘……근데 모두 망쳐버렸어.’

으득-

박수현이 분노에 이를 갈았다.

이대로 당하기만 하는 건, 박수현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정정당당하지 않더라도, 더럽다 욕을 듣더라도 모든 방법을 사용해서 복수를 하는 게 박수현의 방법이었다.

‘F반…….’

인상을 찡그린 박수현은 머리를 굴렸다. 자신의 재력과 신분을 이용해 신유성에게 어떻게든 한 방 먹여줄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그 건방진 자식의 콧대를…….’

침대에서 일어난 박수현은 무언가 떠오른 듯 씩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마침 반 대항전이 있었지…….’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박수현은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코를 푸는 것. 그건 박수현의 전문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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