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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18/434)

제18화

준비를 마친 ‘전 세븐넘버’ 박수현은 후문 쪽의 대기실에서 느긋하게 대련장으로 걸어 나왔다.

물로 가득 찬 대련장. 물리 공격을 막아줄 밴드형 간이실드.

‘훗, F급을 상대로 너무 열심히 준비했나?’

자신감에 찬 박수현이 미소를 지으며 관중석을 훑었다. 일단 처음보이는 건 박수현이 종종 쓰레기라고 불렀던 F반과 D반. 그리고 학년 랭킹 2위인 김은아를 포함한 A반의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건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도대체 어딜 보고 있는 거야?’

관중석의 학생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거나, 바보 같은 얼굴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도도하기로 유명한 김은아도 마찬가지였다.

박수현이 모두의 시선이 모인 대련장의 입구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당당하게 팔짱을 낀 근육질의 헌터. 권왕 유원학.

도인처럼 백발을 늘어뜨리고 웃고 있는 헌터 협회장 강유찬.

신유성과 자신을 내려다보는 두 정점들의 모습에 박수현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이, 이런 미친…….”

대한민국의 최고라 불리는 헌터들이 대체 왜 애들 싸움에 불과한 아카데미의 대련을 보러왔단 말인가.

박수현은 당혹감을 애써 숨기며 부표 위에 올라갔다.

둥실.

이곳은 작은 움직임에도 중심을 잃기 쉬운 물위.

‘저놈에겐 불리하지만…… 나한테는 가장 유리한 장소야.’

박수현은 신유성을 노려보며 이를 으득- 물었다.

‘……그러니까 무조건! 무조건! 이겨야 한다!’

박수현이 생각한 것보다 대련의 스케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방송국에서 권왕과 협회장의 취재를 온 이상, 대련의 결과가 방송을 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신유성에게 패배한다면 박수현에겐 이런 망신이 없었다.

“오랜만에 찾아오신 것 같은데, 반갑지 않아? 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항복을 외치게 해줄 테니까.”

박수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픽- 하고 웃었다. 하지만 신유성에게 도발은 통하지 않았다.

펄럭.

대답 대신 신유성이 외투를 벗어 던지자. 밑에 있던 스미레는 어, 어어- 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지만 자연스럽게 외투를 받아냈다.

박수현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신유성에게 비웃음을 날렸다.

서로를 노려보는 두 남자의 팽팽한 긴장감. 신유성과 박수현의 준비가 끝나자.

기다리고 있던 린샤오 교관은 진행을 시작했다.

“둘 다 주, 준비는 됐, 됐겠지?”

아무래도 권왕과 협회장의 앞이라 그런지 린샤오 교관은 긴장한 얼굴로 말까지 더듬었다.

“네 준비됐습니다.”

신유성이 예의 바르게 대답을 하자. 박수현은 끝까지 신유성을 도발하는 걸 잊지 않았다.

“F급을 상대로 준비는 무슨…….”

린샤오는 뻣뻣하게 고개를 들더니 평소보다 각 잡힌 자세로 긴 대사를 순식간에 읊어냈다.

“조, 좋아! 그럼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마! 우리 아카데미엔 치료용 나노머신이 대기하고 있으니 모두 대련에 진심으로 임해주길 바란다!”

- 곧 대련을 시작합니다.

스피커에서 들리는 안내음성에 신유성이 자세를 낮춰 중심을 잡았다.

“크하하! 유성아!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보자꾸나!”

권왕이 팔불출처럼 큰 목소리로 외치자. 신유성이 아닌 린샤오가 괜히 몸을 움찔거렸다. 박수현은 손목의 밴드를 만지작거렸다.

- 준비!

고무줄을 당기듯 몸을 움츠리는 신유성, 그리고 양손을 들며 특성을 준비하는 박수현.

-시작!

스피커에서 울리는 안내음성과 함께 둘은 행동을 시작했다.

“잘 봐라! F급! 이게 바로 A급 특성의 힘이다!”

박수현이 달려드는 신유성에게 오른손을 휘두르자 갑자기 수영장의 물이 신유성을 덮쳤다.

화아악! 콰앙!

물론 집중력을 극대화 한 신유성의 눈에 물보라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느렸다.

탓!

결국 애꿎은 부표만 물보라에 덮쳐지며 가라앉았다. 하지만 시간을 번 박수현은 특성의 축복 중 하나인 ‘스킬’을 사용했다.

[해신의 파도]

수영장의 물이 요동치며 박수현의 뒤에 거대한 파도를 형성했다. A급 특성 보유자인 박수현의 힘은 물을 다룰 수 있었고, 물로 가득 찬 이 오션돔 대련장은 박수현을 위한 무대나 다름없었다.

“어때 절망적이지? 이게 A급 특성이다! 가라앉아라!”

박수현의 손동작과 함께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신유성이 밟은 노란색 부표는 한없이 초라했다.

‘물 관련 특성인가.’

그런데도 신유성의 눈에는 한 점의 공포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쥔 채, 무언가를 노리듯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더.’

신유성이 주어진 상황에 집중하자 갑자기 시간이 느려졌다. 물론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실제로는 극대화된 집중력으로 신유성의 사고가 빨라진 것이다.

‘조금 더.’

자신을 향해 덮치는 느릿한 파도를 보며 신유성은 계속 기다렸다.

완벽한 순간을 위해 계속해서 오른 손에 마나를 응축시켰다.

다른 사람에겐 찰나의 시간.

그러나 신유성은 긴 기다림 속에서 파도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지금!’

창룡승천파(蒼龍昇天波)

신체의 단련으로 특성에 버금가는 힘을 내기 위해 권왕이 고안한 비기. 신유성은 그런 오의를 익히는데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그건 신유성의 타고난 신체와 재능은 물론이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F급 특성의 힘 덕분이었다.

철썩! 콰앙!

거대한 파도와 신유성의 마나가 부딪혔다. 광범위하게 퍼진 창룡승천파의 힘은 몰아치던 파도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크윽!”

박수현은 물을 조종해 부표를 뒤로 움직였지만, 그래도 파도의 여파에 휩쓸리고 말았다.

“……F급 따위가 내, 내 파도를 받아쳤다고?”

박수현이 놀란 얼굴로 중얼거리자.

신유성은 주먹에서 소리르 냈다.

뜨드득!

뼈가 서로 부딪히는 소름끼치는 소리. 박수현이 긴장한 듯 침을 삼키며 신유성을 쳐다봤다.

최약의 특성 F급.

그런데도 신유성은 자신에게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게 가능할 리가…….”

당황하는 박수현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감각이 날카로워진 신유성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탓! 파악!

물 튀기는 소리와 동시에 박수현의 눈앞에 나타난 신유성.

“어, 어느 틈에!”

당황한 박수현은 특성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신유성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투신류 1장 낙월각(落月脚)

반월을 그리며 박수현의 얼굴로 날아든 신유성의 발차기.

부웅!

대련장의 모두가 신유성의 승리를 장담한 그 순간.

쩌어억!

강화 유리에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신유성의 발이 허공에서 막혔다.

지이잉!

박수현이 손목의 밴드로 실드 배리어를 작동시킨 것이다.

“하하하! 너, 너도 이, 이건! 이건 몰랐지!?”

탓!

박수현은 그 틈을 이용해 다시 거리를 벌렸다. 평소의 지적인 모습과 다르게 당황한 박수현의 얼굴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이걸로 진짜 끝이다!”

[수룡의 춤]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박수현은 몸 안의 마나를 모두 사용해 스킬을 발동했다. 평범했던 수영장의 물은 박수현의 마나에 반응해 용의 형상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스킬이 완성되자.

촤아아아!

수룡이 신유성을 보며 포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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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때? 항복해라! F급치고는 잘 싸웠지만…… 내 몸에는 실드 배리어가…….”

대련을 지켜보던 린샤오는 박수현에게 호통을 쳤다.

“박수현! 신성한 대련장에 헌터용품을 반입하다니!”

박수현은 린샤오를 보며 중지로 안경이 있던 콧등을 위로 쓸어 올렸다. 아무래도 안경을 추켜올리는 게 버릇인 모양이었다.

“……교수님. 뭐가 문제죠? 교칙을 확인해보세요. 대련장에 헌터 용품을 반입하는 건 위반조항에 없습니다.”

박수현은 오히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죠. ……제 말이 틀립니까?”

“그, 그건!”

말문이 막힌 린샤오가 인상을 찡그리자. 신유성은 차분한 목소리로 박수현에게 말했다.

“상관없어.”

“……뭐라고?”

움찔.

박수현은 자신의 주위를 빙글거리는 수룡을 쓰다듬으며 반대쪽 손목을 신유성에게 보여주었다.

실드 배리어.

충전만 시켜두면 어지간한 충격은 막아주는 헌터용품. 박수현은 신유성이 실드 배리어를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설명을 시작했다.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이 밴드는 실드 배리……”

“상관없다고.”

신유성은 그런 박수현의 말을 끊어버리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세를 취했다.

‘……이, 이 자식은 어떻게 동요하지 않는 거지?’

뒷걸음을 치던 박수현은 결심한 듯 양손을 일으켰다.

‘그래도 내가 유리한 건…… 변함이 없다!’

촤아아아!

수룡이 다시 포효를 하며 신유성에게 달려들었다. 마나를 엔진으로 소용돌이치는 수룡의 몸체는 나무도 부드럽게 잘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수룡이 신유성의 코앞에 닿았을 때, 신유성은 빛을 만난 그림자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월영보법(月影步法)

권왕이 가르쳐 준 오의 중 하나.

박수현은 뒤 늦게 위기를 눈치 챘지만 이미 신유성은 거리를 좁힌 후였다. 박수현은 저승사자라도 만난 듯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나, 나에겐 실드 배리…….”

신유성은 대답대신 손바닥을 박수현에게 뻗었다.

투신류 폭룡암쇄장(暴龍巖碎掌)

콰과과광! 짜작!

거대한 마나의 폭풍이 휘몰아치자. 박수현이 자랑하던 실드 배리어는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깨져버렸다.

콰앙!

박수현은 여전히 흉포한 마나의 여파에 피투성이가 된 채, 대련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얼이 나간 린샤오는 한 박자 느리게 심판의 역할을 수행했다.

“스, 승리자! 신유성! 대련을 종료한다!”

대련장에 쏟아지는 F반 학생들의 함성.

“이겼다! 유성이가 이겼다!”

이시우는 신유성의 이름을 외치며 반 학생과 하이파이브를 쳤고, 대화 한번 해보지 않은 학생들도 신유성의 이름을 연호했다.

F급 특성으로 A급 특성 보유자를 이긴 신유성의 활약은 F반 학생들에게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A반 학생을 혼자 이겼어!”

“F급 특성도 할 수 있다!”

반 대항전의 상대인 D반은 신유성을 보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역시 주하진이 발렸다더니…….”

“저건 미쳤어. 이길 수가 없다고.”

“전력 분석하러 오자며? 썅, 괜히 의욕만 떨어졌네!”

한 순간에 아수라장이 된 대련장.

권왕은 신유성의 대련에 만족한 듯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 이놈이 하늘같은 스승님을 이렇게 기다리게 만들다니!”

“스승님!”

신유성은 스승과의 재회에 순수하게 기뻐했다. 협회장인 강유찬은 그런 신유성과 유원학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를 지었다.

“유원학. 네 부탁은 유성이를 봐서 들어 주는 걸로 하지.”

신유성은 협회장인 강유찬의 눈에 자신의 활약을 톡톡히 새겼다. 헌터들에게는 천운과도 같은 기회.

“흠.”

김은아는 자리에 일어나서 들 것에 실려 가고 있는 박수현을 무감하게 바라보더니. 하얀 손등으로 머리카락을 넘겼다.

“재밌네.”

김은아의 짧은 감상.

그 말을 끝으로 김은아가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기자. A반의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김은아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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