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6화 (16/434)

제16화

[세븐넘버]

학년에서 가장 성적이 높은 7명의 학생에게 붙는 명예의 칭호. 그런데 가온 아카데미의 세븐넘버는 더욱 의미가 각별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헌터국가였고, 가온은 그런 한국에서도 1위라 불렸기 때문이다.

“그런 엘리트들에게 이정도 혜택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

교장 진병철은 세븐넘버의 특권에 대해 설명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신유성이 보여준 믿기 힘든 활약 때문인지 진병철의 호감과 애정은 엄청났다. 그리고 진병철이 가장 신유성에게 고마운 점은 바로 [송출권]이었다.

‘오늘만 해도 도대체 몇 개의 방송국이 찾아왔는지…….’

F급 특성에 어울리지 않는 뛰어난 실력과 구음절맥의 압도적인 미모로 보석섬의 시험이 방송 된 이후, 신유성은 순식간에 화제를 몰았다.

[권왕의 제자! 3위 달성!]

[신유성! 크리스탈 골렘 격파!]

[F급 특성으로 이례적인 활약!]

다양한 뉴스가 실시간 검색어를 접수했고, 그 때문인지 방송국들은 신유성을 독점하기 위해 가온의 교장인 진병철을 찾았다.

“만약 궁금하거나, 불편한 게 있으면 뭐든 나한테 물어 보려무나!”

신유성의 덕에 오랜만에 찾은 갑의 위치. 그 때문인지 진병철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신유성에게 최대한 편의를 맞춰주었다.

“감사합니다.”

신유성이 순수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하자. 진병철은 눈웃음으로 답하며 종이를 내밀었다.

“헛헛! 감사하기는 얼른 종이부터 읽어 보렴!”

신유성은 진병철이 잘해주는 이유까진 몰랐지만 호의를 가졌다는 건 진병철의 태도에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파스락.

신유성이 진병철이 내민 종이를 들었다.

[1. 품위 유지비 지원]

[2. 세븐넘버 전용 기숙사]

[3. 평일 외출 허가 (교외활동)]

[4. 수업 자율 참여]

[5. 포탈 이용비 지원]

[6. 학원도시 전용 VIP 카드 지원]

[…….]

종이에는 빼곡하게 세븐넘버의 혜택들이 써져 있었다. 일단 세븐넘버는 품위유지비를 명목으로 직장인의 월급에 가까운 돈이 한 달마다 정부에서 지급해 주었고, 세븐넘버를 위한 7개의 기숙사방은 호텔에 버금가는 최신식 설비를 자랑했다.

그 외에도 교외 활동을 위한 외출 허가와 원하는 수업에만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학원 도시의 다양한 설비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카드 등 세븐넘버의 혜택은 끝이 없었다.

헌터강국인 대한민국에서나 가능한 파격적인 지원.

‘……엄청난걸.’

진심으로 감탄한 신유성이 눈을 빛내며 종이를 바라보자. 진병철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티는 안 나겠지만 몇몇 조항들은 내가 신경을 더 써보았단다. 헛헛!”

진병철은 신유성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혹시 세븐넘버도 됐으니 교외 활동에 참여해보는 건 어떻겠니?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교외 활동.

사회에서 헌터를 찾는 곳은 많지만 현역의 숫자는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에 기업들은 몇몇 업무를 실력 있는 학생들로 대체했다.

당연히 학생들은 의뢰를 성공하면 금액과 SP를 받았고, 학교는 명성과 소개비용을 챙겼다. 즉 교외 활동은 헌터 임무나 별 다를 바 없었다.

“의뢰만 있다면 언제든 참여할 생각이 있습니다.”

다행히 신유성은 이시우에게 설명은 들은 적이 있어 교외 활동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하! 의뢰야 넘치고 말고! 다만 이번 교외 활동은 좀 스케일이 크단다. 물론 보상도 크지!”

진병철은 씩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신청서를 꺼냈다.

[의뢰:아카데미 던전 공략 대회]

[개최자:강유찬]

[보상:아티팩트]

신청서를 읽던 신유성은 강유찬이라는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들어 진병철을 바라봤다. 강유찬은 신유성이 그만큼 권왕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던 이름이었다.

“……설마 이분은?”

“허허, 그래! 헌터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지!”

한국 헌터협회의 협회장. 강유찬.

그는 권왕 유원학과 함께 한국을 최강의 헌터 국가로 급부상시킨 전설적인 헌터였다.

그런데 이번에 열리는 대회는 그런 협회장이 직접 주관하는 이벤트. 진병철은 진지한 얼굴로 신유성을 바라봤다.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학생은 아카데미에서 단 2명! 난 너와 아델라가 나갔으면 하는구나!”

실제로 진병철은 학년랭킹이 2위인 김은아보다 화제성이 높은 신유성이 대회에 나가길 바랐다.

거기다 대회의 보상은 무려 헌터들의 보물이라는 아티팩트. 국가대항전의 대표가 되기 위해서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신유성에게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다.

“좋습니다. 출전하겠습니다.”

신유성의 흔쾌한 대답에 진병철은 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헛헛헛! 그래그래! 아직까지 일정은 한참 남았으니 모쪼록 준비를 단단히 해두렴!”

진병철은 신유성에게 끝까지 친절을 유지했다. 실력이 보장되는 학생에게 진병철은 한없이 애정을 쏟아부어주었다.

‘유원학에게 유성이가 이벤트에 참여한다고 전해야겠군. 협회랑 인연도 있으니 제대로 밀어주겠지?’

덕분에 신유성은 그런 진병철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제대로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     *      *

모처럼의 주말, 신유성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 곳은 푹신한 침대의 위였다.

‘……역시 이 촉감은 익숙해지지가 않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 신유성의 침소는 무신산의 자연 그 자체였다.

스승인 권왕은 7살인 신유성에게 경계심을 기른다며 야밤의 나무 위에서 쪽잠을 재웠고, 동굴 안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생존하는 법을 가르쳤다.

신유성은 뼈를 얼리는 겨울의 추위에도 차가운 강물로 몸을 씻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쏴아아아!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은 기분 좋게 뜨거웠고, 입욕제가 담긴 욕실은 향기로웠다.

‘이게 세븐 넘버의 기숙사…….’

샤워를 마친 신유성은 하얀색 타월로 기다란 머리를 말리며 기숙사의 냉장고의 앞에 다가갔다.

[원하시는 물품을 고르세요.]

스크린이 달린 특이한 냉장고.

신유성은 하루 만에 기숙사의 시스템이 익숙해진 듯 자연스럽게 주문을 마쳤다.

[주문 완료!]

[유제품: 바나나 우유 x1]

지이잉!

주문과 동시에 냉장고의 안에서 기계가 가동되는 소리가 들렸다.

덜컥.

곧 이어 신유성이 냉장고를 열자. 비어있던 내부에는 주문했던 바나나 우유가 보관되고 있었다.

신유성은 콕- 하고 빨대를 꽂아 바나나 우유를 맛보며 생각했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편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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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시스템은 아공간 물질 전송장치니, 디멘션 게이트니 어려운 명칭이었지만 대부분 ‘포탈’이라는 명칭으로 축약해 불렀다.

이것이 바로 탑에서 얻은 미지의 기술.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나 게이트와 달리 탑은 인류에게 아무런 악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미지의 기술이나 아티팩트 등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기술이 헌터들이 탑을 공략해야하는 이유라는 거지?’

사실 무신산에서 틀어박혀 있었던 신유성에게나 특별한 기술이지, [탑]에서 미지의 기술들을 발견해낸 인류에겐 이제 익숙한 기술이었다.

물론 고층에 도달하는 헌터는 극히 일부였다.

‘물론 스승님께선 60층을 돌파하셨지만.’

덕분에 권왕 유원학은 인류에게 많은 선물을 선사했다. 최강의 헌터가 되기 위해선 그 정도 업적은 가지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건 아직은 이른 이야기.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신유성은 휴대폰으로 시계를 확인하며 기숙사를 나섰다.

*     *      *

천혜의 요새처럼 바다 위의 인공섬을 부지로 삼은 가온 아카데미.

어찌 보면 폐쇄적으로 보이지만 아카데미의 주말은 이야기가 달랐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스쿨버스를 타고 바다 아래에 지어진 터널을 통과하면 헌터 아카데미의 명물인 [학원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평범한 번화가에 학원 도시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간단했다.

‘주변에 건설된 아카데미만 10개가 넘으니까.’

그 덕분인지 학원 도시에는 다양한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주말을 즐겼고, 개중에는 신유성을 알아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어!? 쟤 신유성 아니야?”

“헉, 가온 아카데미의 그?”

“맞네! 신유성! 저 얼굴을 어떻게 잊어?”

신유성은 주하진의 대련과 보석섬 시험의 방송으로 생각보다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수군수군.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커져 갈 즈음 익숙한 얼굴이 멀리서 소극적인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아, 저, 저기…….”

하나지마 스미레.

무려 209위에서 한 번의 시험으로 세븐넘버인 6위까지 격상한 대역전극의 주인공.

신유성은 긴장한 스미레가 우물쭈물 계속 말을 꺼내길 망설이자. 오히려 선수를 쳐버렸다.

“일단 신청부터 하러갈까?”

“아! 네, 네넵!”

*     *      *

단 10분.

신유성과 스미레는 학원도시에 세워진 헌터협회의 지부에서 학생증을 내밀고 교외활동을 허가 받았다.

스미레는 이전까지 성적이 낮아 교외활동을 하지 못했고, 신유성은 처음으로 성적을 받았기 때문에 같이 헌터협회에 들른 것이다.

협회에서 나온 스미레는 감격한 듯 자신의 학생증을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정말… 내가 허가를 받다니.”

교외 활동으로 일본의 본가에 돈을 벌어다 보내주는 건 스미레가 늘 꿈꿔온 순간이었다.

“으, 으우으…… 209등이라 늘 거절당했는데. 이번에는 가볍게 통과라니…….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잘 됐네. 노력한 보람이 있지?”

신유성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하고 거리를 걷자, 스미레는 신유성에게 다급히 따라 붙으며 양손을 좌우로 저었다.

“노, 노력이라니요! 제가 무슨! 전 별로 한 것도 없어요오……. 결국 제 손으로는 카벙클 한 마리도 똑바로 잡지도 못했고, 만약 신유성 씨가 주신 머리카락이 없었으면…….”

스미레는 도보를 걸으며 신유성의 활약에 대해 한참을 읊었다. 그리곤 평소와 달리 눈을 빛내며 의욕 넘치는 목소리로 다짐까지 내세웠다.

“그래도 저! 반 대항전에서는 신유성 씨의 짐이 되지 않도록…… 몇 배는 열심히 할게요!”

반 대항전은 가온 아카데미에서 가장 불공평한 시험들 중 하나였다. 매년 한 번씩은 꼭 치러지지만 하급반이 상급반을 이기는 경우는 전례가 없었다.

F급 특성을 가진 학생들이 모인 F반이 A급 특성을 가진 A반을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성에 비해 실력이 특출 난 학생이 있어도 팀플레이가 중요한 반 대항전에서 나머지 학생의 평균이 낮으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미레는 신유성이 있다면 어떤 반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혹시…… 반 대항전에서 위험에 처하시게 되면 제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꼭…….”

스미레가 과한 충성심을 담아 계속 의욕을 불태우자. 신유성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열심히 해보자.”

“헤헤, 네! 제가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아, 신유성 씨한테 제 도움 따윈… 필요 없겠죠? 신유성 씨는 엄청 강하시니까….”

말을 끝낸 스미레는 신유성을 바라보려다 부끄러운 듯, 다시 고개를 푹 내렸다. 비록 아직 실력은 미숙하지만 신유성을 은인으로 생각하는 스미레의 충성심은 가히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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