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저벅저벅.
신유성이 동굴 밖을 나오자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골렘의 핵을 반짝반짝 비추었다. 그와 동시에 신유성에게 묻어있던 골렘의 마나가 선선한 바람에 흩어졌다.
눈앞에 펼쳐진 고요한 숲.
그 적막을 깨는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보석섬 전체에 울려 퍼졌다.
위이잉!
시선을 잡아 끈 사이렌은 곧 여교사의 목소리로 변해 학생들에게 안내를 시작했다.
[보석섬에서 치러진 제1차 보석 쟁탈전이 끝났습니다. 시험에 참여한 1학년들을 전원 크루즈 앞으로 모여 주십시오.]
신유성이 안내에 따라 크루즈로 걸음을 옮기려하자. 뒤 늦게 동굴에서 걸어 나온 린샤오가 신유성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더니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유성아! 혹, 혹시 다친 곳이 있지는 않니? 만약 다쳤다면 나 린샤오가 기꺼이 등을 내주마!”
린샤오는 미리 동굴에 대한 고지를 못해준 잘못 때문인지 미안한 얼굴로 신유성에게 쩔쩔매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다친 곳은 없어요.”
“하, 하하! 그, 그렇지? 역시 권왕의 제자……. 아니! 역시 유성이 너라고 해야겠구나!”
그 증거로 린샤오는 호탕한 척 웃지만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만약 신유성이 골렘에게 다치기라도 했다면 교관 직이 위험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린샤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신유성은 린샤오의 행동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교관님. 조급해 보이시네요. 호흡도 엄청 빠르시고.”
“응? 나? 아니 그냥 혹시 제자인 네가 다쳤을까봐……. 걱정에 그만 하하하!”
“걱정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강한 상대는 아니었지만요.”
신유성이 의미 모를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지나치자. 린샤오는 왜인지 찝찝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 *
보석섬. 크루즈의 앞.
보석섬 시험의 성적을 발표하기 위해 하급반 학생들은 해변에 모두 모였다. 아름다운 푸른색 바다가 한 눈에 보이고 시원하게 부는 바람은 휴양지를 떠오르게 했지만 학생들은 긴장한 표정 역력했다.
“정말 이례적인 결과군요.”
쓰윽.
던전학을 가르치는 여교수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말하자. 스미레는 긴장한 얼굴로 신유성의 교복을 꽉 붙잡고 중얼거렸다.
“……이, 이번에는 괜찮아. 신유성 씨의 머리카락도 받았고…… 해골도 엄청 강했으니까. 비록 흐윽…… 해골은 잃어 버렸지만…….”
아무래도 스미레는 자신도 모르게 신유성의 옷을 붙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거기다 지진이라도 난 듯 스미레의 손이 벌벌 떨리자. 신유성의 셔츠에서 단추 하나가 떨어졌다.
똑.
‘……이러다 옷 다 찢어지겠네.’
결국 신유성은 스미레의 손을 교복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괜찮아 넌 최선을 다했으니까.”
“저, 정말요? 그렇지만…….”
스미레가 무언가 또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내려할 때, 마침 부두에 세워둔 거대한 모니터에 학생들의 순위가 표시됐다.
[1위-신유성(F반)]
[2위-스미레(F반)]
[3위-…….]
1등을 한 신유성은 점수를 카운트 해 이미 어느 정도 결과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미레는 정작 순위를 꼴찌에서부터 카운트하고 있었다.
120위. 68위. 13위. 아무리 순위를 올라가도 자신의 이름이 보이지 않자. 스미레는 이상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아? 아!”
방황하던 스미레의 시선이 결국 모니터의 정상인 2위에 도달했다. 상상도 못한 충격적인 결과.
“……아아? 아하앗!?”
스미레는 얼마나 기뻤는지 자신도 모르게 신유성의 손을 꽉- 붙잡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2위! 제가 2위에요! 신유성 씨!”
신유성이 떨떠름하게 미소를 짓자. 뒤늦게 손을 확인한 스미레는 빨개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무, 물론! 제 실력이 아니라! 전부 신유성 씨의 머리카락…….”
당황한 스미레가 말을 더듬고 있을 때, 언제 찾아왔는지 이시우가 빼꼼 고개를 들이밀며 신유성에게 말을 걸었다.
“유성아! 1등 했더라! 역시 넌 대단해!”
하지만 신유성은 말없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웃었다. 권왕이 수련 중에 늘 강조했던 이야기와는 다르게 아카데미의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하는 건 신유성에게 너무 쉬웠다.
하급반에서는 그 격차가 얼마나 극심한지 파트너인 스미레를 제외하면 1위인 신유성과 3위의 학생들은 비교조차 힘들 만큼 점수 차이가 났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끝나고 보니 시험의 난이도는 신유성에게 시시할 정도로 낮았다.
‘……스승님과 했던 수련에 비교하면 너무 쉽잖아?’
신유성은 이미 한계를 초월한 수련으로 특성과 관계없이 최상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신유성에게 비견되려면 적어도 세븐넘버 급의 실력은 가지고 있어야 했다.
‘스승님께서 말한 헌터는 아무래도 세븐넘버의 학생들이겠지?’
권왕은 신유성을 가르칠 때, 항상 신유성의 수준보다 높은 강자와 싸우게 만들었다. 그 때문인지 신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강자와의 싸움을 갈망하고 있었다.
‘빨리 싸워보고 싶어.’
이시우는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다가오더니 생각에 빠진 신유성에게 친근하게 달라붙었다.
“유성아~ 생각이 깊어 보이네? 설마 1등의 여운을 되새기는 중?”
시험을 치루고 왔지만 이시우의 수다스러움은 여전했다. 이시우는 아무런 지친 기색도 없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음, 하긴! 네 성적 정도면 세븐넘버는 확정이나 마찬가지니까. 감동이 되겠지!”
“저, 저기…….”
괜히 차례를 빼앗긴 스미레는 멀찍이 서서 신유성에게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저어, 여, 여기? 신유성 씨?”
신유성은 부끄러운지 꼼지락거리는 스미레의 손을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건 뭐야?”
“아! 이건 신유성 씨의 남은 머리카락이에요! 시험이 끝났으니까. 돌려드리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
스미레는 티슈에 포장된 머리카락을 신유성에게 건네주자. 신유성은 떨떠름한 얼굴로 티슈를 잡아 머리카락을 털어냈다.
“아, 그건…… 그냥 버려.”
바닥을 향해 모아놓은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떨어지자. 스미레는 눈을 크게 뜨며 절규했다.
“으, 으아! 안 돼엣! 저 귀한 걸!”
놀란 스미레는 주저앉아 손으로 바닥을 더듬거리더니 결국 머리카락을 찾아냈다. 그리곤 양손으로 소중하게 머리카락을 쥔 채, 신유성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저, 그럼 이, 머리카락…… 제가 가져도 될까요?”
상황을 모르는 이시우는 그런 스미레의 모습에 몸서리를 쳤다.
“으으…….”
반면 익숙해진 신유성은 포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신유성이 가온 아카데미에서 치룬 첫 시험은 그렇게 성공리에 막이 내렸다.
* * *
새로운 학년 랭킹이 공개되는 날.
시끌벅적한 학생들의 인파를 뚫고 나서야 박수현은 게시판을 확인 할 수 있었다.
[9위 박수현(A반)]
“뭐, 뭐야?”
랭킹에 큰 욕심이 없는 박수현이었지만 세븐넘버라는 사실은 아주 중요했다.
“내가 9위라고?”
저번 시험만 해도 박수현의 성적은 7위로 세븐넘버에 해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븐넘버에서 한참이나 밀려난 9위. 박수현은 의아한 얼굴로 게시판을 살펴보았다.
‘도대체 누가…….’
[1위 아델라(S반)]
[2위 김은아(A반)]
원래 강했던 아델라와 김은아의 랭킹은 이전 성적 때문인지 여전히 1위와 2위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아래에 있었다.
[3위 신유성(F반)]
[…….]
[6위 스미레(F반)]
F반에 불과한 신유성과 스미레가 세븐넘버가 된 것이다.
“아니 어떻게 F반 따위가!”
심지어 3위에 적힌 이름은 박수현에게 어딘가 익숙했다.
‘……신유성?’
박수현은 시험 이후 F반인 신유성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냥 대련 날짜가 오면 가볍게 몸이나 풀고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F반이 세븐넘버라고?’
심지어 9위인 자신보다 한참이나 순위가 높은 3위. 박수현의 귓가에는 갑자기 김은아의 목소리가 재생됐다.
[그래? 난 네가 질수도 있을 것 같은데?]
김은아의 말은 거짓이나 도발이 아니었다. 세븐넘버를 찍은 게 진짜 신유성의 실력이라면 대련에서 패배할 가능성도 생각은 해두어야 했다.
‘망할……. 설마 F급 특성에게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위신을 최고로 생각하는 박수현에게 그것보다 끔찍한 일은 없었다. 머리가 아파진 박수현이 입술을 질끈 물고 있을 때, 옆에서 이시우의 얄미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진짜! 세븐 넘버네! 그것도 3위야! 근데 박수현 쟤는 기껏해야 9위면서 너한테 대련은 왜 걸었대?”
이시우는 랭킹이 박수현에게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낮았지만. 신유성을 들먹이며 박수현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아니 저 새끼가…….’
결국 참다못한 박수현은 신유성과 이시우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날 찾은 거 같은데 방금 뭐라고 했지?”
박수현의 화가 난 얼굴에 이시우는 뻘뻘 땀을 흘리며 도망쳤다.
“미안!”
박수현은 도망가는 이시우를 한참이나 노려보더니. 곧이어 시선을 돌려 신유성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는 스미레 때문에 뜯어진 신유성의 셔츠 단추를 보더니 안경을 추켜올리며 쯧- 하고 혀를 찼다.
“권왕의 제자라는 놈의 행색이 아주 불량해 보이는 군.”
신유성은 스승인 권왕 유원학을 누구보다 존경했다. 그런데 괜한 곳에 스승의 이름을 들먹이는 박수현에게 신유성의 표정도 굳어버렸다.
하지만 화가 난 박수현은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다 F반 주제에 세븐넘버라니. 허! 그것도 권왕의 입김인가?”
“입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차가운 신유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박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뒷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자식 무슨 분위기가…….’
신유성의 기세에 눌린 박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신유성은 싸늘한 시선으로 박수현을 내려다보았다.
둘의 기 싸움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마침 지나가던 김은아가 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야 그렇게 복도에서 죽일 듯 노려볼 필요 있어? 마침 대련도 붙는다며~ 거기서 결판 지으면 되잖아?”
씨익 웃은 김은아가 능글맞은 말투로 둘을 말리자. 박수현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피했다.
“그래. 대련 기대하지.”
신유성은 박수현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처음 대련을 수락 받은 이유는 SP와 상급반과의 전투 경험 정도였지만. 이제 그런 건 신유성에게 중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