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4화 (14/434)

제14화

모니터를 보며 흥분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는 유한나.

“신유성 학생! 총알처럼 날아온 수정들을 모두 피했습니다!”

화면 속 신유성은 공중에서 주먹을 쥐었다. 승패가 걸린 절체절명의 순간. 신유성은 주먹에 권왕이 가르쳐 준 오의를 담았다.

일격필살.

마나를 응축시켜 내지른 주먹은 얼마나 빠른지 유한나의 눈으로는 따라가기조차 힘든 속도였다.

콰앙!

신유성의 주먹이 크리스탈 골렘의 머리에 꽂히며 굉음이 일었고.

쩌저적!

골렘은 머리와 함께 핵이 쪼개지며 힘을 잃고 쓰러져 내렸다.

쿠우우웅!

쏟아지는 골렘의 잔해를 보며 유한나는 물론이고 진병철도 숨을 참았다. 방송이 녹화중인데도 둘은 한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만큼 신유성의 활약은 충격적이었다.

꿀꺽.

유한나는 긴 정적의 끝에 침을 삼켰고, 힘이 빠진 목소리로 소리를 냈다.

“……헐.”

“유원학……. 역시 괴물의 제자는 괴물이군…….”

진병철도 방송조차 잊고 권왕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신유성은 4급 보스인 크리스탈 골렘을 박살냈다.

강철검도 벨 수 없는 단단한 수정을 주먹으로 단 일격에 쪼갠 것이다. 거기다 아카데미의 1학년이 4급 보스를 처치한 것도 대사건인데 신유성의 특성은 무려 F등급. 지금까지 이런 전례는 존재하지 않았다.

“……진짜 대박이다.”

그렇게 중얼거린 유한나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오늘의 영상이 방송을 탄다면 신유성의 인지도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애를 다른 방송국에 빼앗길 순 없어. 무조건 미리 선점해야해.’

유한나는 계산이 끝났는지 마이크를 끄고 진병철의 손을 붙잡았다.

“저기 교장 선생님!?”

“아이고 놀래라!”

놀란 진병철이 움찔거리며 고개를 빼자. 유한나는 열정 넘치는 눈을 한 채, 더욱 진병철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제가 국장님한테 제안 드릴 테니까! 가온 아카데미의 송출권은 저희 K채널이랑 독점으로 진행하시죠?”

“예? 아니 그게 무슨……. 갑자기 독점은 좀…….”

“아니면 신유성 학생만이라도!”

교장인 진병철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가온 아카데미라도 K채널은 자본을 무기로 휘두르는 방송국이었다

‘……이 여자가 뭘 잘못 먹었나? 그래도 뭐, 파트너로 K채널 정도면 나쁘지 않은 상대지.’

지금까지 가온은 K채널이 학생들의 방송 송출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엄청난 돈을 지원받고 있었다.

뛰어난 학생들을 원하는 여러 길드와 기업처럼 K채널도 거대한 후원자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유성이 없던 이전의 이야기…….’

계산이 끝난 진병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유한나가 이렇게까지 어필을 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신유성 때문이었다. 아직까지 무패를 자랑하는 신유성의 가치는 그야말로 긁지 않은 복권.

‘전력이 밝혀지지 않은 지금 상태에서 굳이 계약을 할 필요는 없지.’

중국. 마천루 아카데미의 류진.

영국. 시계탑 아카데미의 로렐라이.

그 외에도 미국이나 일본 등 아카데미 단계에서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진 학생들은 존재했고, 그런 학생들은 간판스타가 되어 아카데미의 이미지를 끌어 올려주었다.

‘우리 가온은 아델라였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델라는 이탈리아에서 온 유학생. 가온 아카데미의 대표로 간판스타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신유성은 진병철이 원하는 대표 학생의 조건을 모두 만족했다.

‘일단 한국인이고. 권왕의 제자라는 네임 밸류. 거기다 F등급에 걸맞지 않은 엄청난 실력!’

진병철은 씩 웃었다.

‘아무리 K채널이라도 아직 신유성을 독점으로 주는 건 아깝지!’

약삭빠른 속마음과 다르게 진병철은 사람 좋게 웃으며 거절을 했다.

“허허, 시험이 끝나면 교장으로서 당사자인 신유성 학생에게 의견을 묻고 싶군요. 물론 계약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뭐, 저흰 쭉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언제든 연락주세요”

유한나는 아쉬워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프로로서 한발 물러설 때였다. 물론 그렇다고 신유성을 다른 방송국에 빼앗길 생각은 절대 없었다.

‘……흐음. 나중에 따로 만나서 어필 좀 해야겠네. 돈으로 설득하면 금방 넘어오지 않겠어?’

유한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재촉하자. 유한나가 신은 높은 하이힐 굽 소리가 부두 위에 울려 퍼졌다.

*     *      *

“아니 저게 뭐야아앗!!”

김은아의 목청은 시끌벅적한 크루즈에서도 압도적이었다.

“도대체 뭐냐고! 어떻게 4급 보스를 한방에…….”

김은아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도 바닥에 떨어뜨린 채 허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김은아가 신유성에게 대련신청을 한 이유는 그저 심심풀이 이벤트 정도였다.

그런데 흘러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무, 물론 나 같은 천재에게 골렘 정도야 간단하지만……. 그래도 실력은 미리 파악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꿀꺽.

마른 침을 삼킨 김은아는 긴장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그럼 일단 취소할까?’

하지만 김은아의 바램과 달리 번쩍이는 화면 속에 적힌 건 아래와 같은 메시지였다.

[대련 신청완료]

“아이 썅! 벌써 신청 됐잖아!? 꼭 이럴 때만 처리가 빠르지?”

김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엄지를 잘근거렸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을 땐 속사포처럼 말을 중얼거렸다.

“쓰읍…… 지금 취소하면 내가 쫄았다고 생각하겠지?”

한참을 중얼거린 김은아는 자신의 머리를 헝클이며 짜증을 냈다.

“아 그냥 확! 붙어!?”

하지만 주변의 학생들은 그런 김은아의 사정도 모른 채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신유성 쟤 저러다가 이번 시험으로 세븐넘버 되는 거 아냐?”

“스미레 점수랑 합치면 진짜 가능하겠는데?”

“쟤들이 하급반이라니……. 야 난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듯 신유성의 활약에 감탄하는 학생들. 김은아는 괜히 학생들에게 역정을 냈다.

“야! 시끄러워! 왜 굳이 내 옆에서 떠들고 난리야?”

김은아의 우렁찬 역정에 주변의 시선들이 모이자. 김은아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학생 무리를 노려봤다.

“……뭐, 구경났어?”

찌릿! 찌릿!

김은아의 성질에 고압의 전기가 위협을 하듯 주변으로 뻗쳤다.

“아, 아니!”

“미안! 다른데 가서 이야기 할게!”

공포의 대상인 김은아가 성질을 부려 학생들을 쫓아내자. 같은 A반의 남학생이 친근하게 웃으며 김은아에게 다가왔다.

“여기 있었구나?”

학년 랭킹 7위인 박수현.

그는 물을 다루는 특성과 실전 능력까지 겸비한 천재로 세븐 넘버까지 올라 간 학생이었다. 그러나 박수현은 학교의 성적보다 다른 곳에 관심이 많았다.

‘……김은아랑 친해지기만 하면 써먹을 곳이 많지.’

재벌인 박수현의 관심사는 언제나가문의 기업을 물려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박수현은 입학 이후로 김은아와 친분을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어필을 했다. 김은아는 신성그룹 회장이 애지중지하는 손녀였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오늘따라 왜 그렇게 화가 났어?”

그러나 자상한 박수현의 목소리에도 김은아의 반응은 냉담했다.

“알 거 없잖아?”

인상을 찡그리며 귀찮다는 표정의 김은아. 박수현은 여전히 친절한 척 웃고 있었지만 눈 밑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박수현은 속마음으로 욕을 지껄이며 김은아의 무례를 참아냈다. 김은아는 늘 안하무인이었지만 아쉬운 박수현이 버티는 게 당연했다.

‘……우리 기업도 신성그룹에 비교하면 중소기업에 불과하니까.’

박수현은 좀 더 김은아와 친해지기 위해 끈질기게 말을 걸었다.

“뭐야 하급반 모니터링? 에이, 너랑 나 같은 엘리트가 저런 떨거지들에게까지 관심을 줄 필욘 없잖아?”

박수현은 김은아에게 아부를 하기위해 신유성과 하급반을 깎아내리고, 동질감을 주기 위해 일부러 ‘너와 나’를 끼워 넣었다.

하지만 김은아의 반응은 의외였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떨거지라고?”

김은아는 방금 전 크리스탈 골렘을 일격에 부순 신유성의 활약을 떠올렸다. 그리고 김은아는 박수현을 깔보듯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그래? 난 네가 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쟤 권왕의 제자잖아.”

16593768236655.jpg 

“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 아무리 권왕의 제자라도 그 녀석은 F급 특성을 가진…….”

박수현이 중지로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하는 도중에 김은아는 자기 마음대로 말을 끊어버렸다.

“그럼 한번 붙어볼래?”

김은아의 갑작스러운 제안.

박수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김은아는 성큼성큼 다가와 휴대폰을 내밀었다.

[대련 신청완료]

[신청자:1학년 A반 김은아]

[대상자:1학년 F반 신유성]

[조건: 패자는 승자에게 150SP 지급. 모자란 SP는 -로 차감.]

“원래 내가 붙으려고 신청 했거든? 근데 너한테도 지는 상대면 내가 싸워볼 필요가 없잖아?”

김은아의 속 보이는 도발에 박수현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날 시험용 쥐로 삼아보시겠다?’

박수현은 김은아가 자신의 대련을 떠넘기려고 하자. 어색한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했다.

“하하, 아니 나도 체면이 있지. 그래도 세븐넘버인 내가 어떻게 F반 따위랑…….”

“그래?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학년 랭킹 2위인 내가 친히~ 행차해야지 어쩌겠어? 아~ 귀찮아 죽겠다!”

말에 억양까지 넣으며 잔뜩 눈치를 준 김은아는 박수현에게 벌레를 쫓듯 손을 내저었다.

“뭐해? 가봐.”

김은아에게 점수를 깎인 게 분명한 상황. 결국 박수현은 한숨을 내쉬더니 김은아에게 말을 번복했다.

“아, 아니야. 생각해보니까 그냥 내가 붙을게.”

“풉, 갑자기?”

김은아가 비아냥거리듯 묻자. 박수현은 웃으며 대답을 했다.

“하하, 역시 2위인 네가 F급 쓰레기들이랑 붙는 건 좀 아니지.”

박수현과 김은아에겐 태어난 순간 정해진 격차가 있었다. 박수현은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자존심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정작 김은아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

“그래? 좋아~ 좋아~ 이왕 붙는 거 이기고 와라?”

*     *      *

투명한 푸른빛으로 눈이 부신 수정동굴. 교관 린샤오는 무너진 골렘의 잔해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떨었다.

“네, 네가 부순 거냐? 4급 보스를?”

보스.

던전의 주인으로 일반적인 괴수와 달리 [특성]을 가진 존재. 보통 1학년생들에겐 보스가 아닌 4급 괴수도 충분히 강한 존재였다.

그런데 신유성은 그런 4급 보스를 혼자 부숴버린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신유성의 특성이 F급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아무렇지 않게 머리카락을 고쳐 묶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는 밴드형 포켓에서 골렘의 핵을 꺼내 린샤오에게 내밀었다.

“크리스탈 골렘의 핵입니다. 이것도 점수에 반영이 되겠죠?”

1학년이 보석섬에서 4급 보스를 잡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당연히 채점 항목에는 기준이 존재했다.

1급 괴수의 전리품은 1점.

2급 괴수의 전리품은 3점.

3급 괴수의 전리품은 10점.

그리고 4급의 전리품은 30점.

그런데 신유성이 잡은 건 보통 4급 괴수가 아니었다.

‘……F반의 학생이 4급 보스를!’

린샤오는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상대는 무려 보스.

보스의 채점 점수는 난이도를 감안해 기존 괴수의 3배였다. 즉 신유성이 가진 골렘의 핵은 90점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 그래……. 당연히 점수에 반영이 된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보석섬에는 4급 보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급반에서는 물론이고, 곧 치러질 상급반의 시험에서도 신유성보다 높은 점수를 얻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린샤오는 신유성을 바라보며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빠졌다.

‘이번 시험은…… F반 학생이 1등을 차지하겠군.’

신유성은 F급 특성을 가진 탓에 최초의 타이틀을 모두 석권하고 있었다. 마천루 아카데미에서 온갖 천재들을 지켜본 린샤오에게도 신유성은 특별했다. 신유성은 그저 강한 게 아니라 특성이 전부라고 믿던 헌터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존재였다.

‘역시 권왕의 제자인가…….’

린샤오가 심각한 표정으로 신유성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지이잉!

[린샤오 교관 빨리 돌아오세요. 나랑 이야기 좀 합시다. -진병철-]

아니나 다를까 린샤오를 반긴 건 교장 진병철의 메시지. 린샤오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