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여러 가지 모니터들이 켜진 부두 위의 방송 부스. 유한나는 모니터 속 스미레의 모습에 다급한 목소리로 진행을 이어나갔다.
“스미레 학생이 소환한 해골의 대 활약으로! 점수 랭킹이 한 자릿수까지! 올라갔습니다!”
흥분한 유한나는 테이블을 쾅- 하고치며 말을 덧 붙였다.
“쌔로운 룩키! 아, 흠흠! 새로운 루키의 등장입니다!”
그렇게 유한나가 음 이탈까지 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옆에 있던 진병철은 턱이 빠진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 아니…… 스미레가 저렇게 강한 학생이 아닐 텐데?”
교장인 진병철은 스미레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스미레의 실력은 압도적인 꼴등이었다.
‘기껏해야, 해골도 심부름이나 하는 정도였는데……. 보석섬을 완전히 학살하고 있잖아?’
거기다 진병철이 예전에 대련장에서 보았던 해골과 지금 스미레의 해골은 차원이 달랐다.
‘도대체 뭐지? 아까 전에 보니 해골이 권왕의 격투술을 사용하던데. 설마 이것도 신유성 덕분인가?’
진병철이 머리를 굴리는 동안 유한나는 감탄하는 어투로 말을 했다.
“와! 가온 아카데미의 학생은 F반도 저렇게 강한가요? 신유성 학생은 물론이고 스미레 학생까지 정말 대단한 실력입니다!”
“하하! 그, 그럼요!”
진병철이 떨떠름하게 대답을 하자. 유한나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정말 이 정도면 다른 아카데미의 세븐넘버와 비슷한, 아니! 그 이상의 수준인데요?”
진병철은 K채널의 메인 진행자인 유한나가 직접 치켜세워주자. 절로 어깨가 으쓱거렸다.
“가온에서는 별게 아니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하하!”
진병철은 신유성의 덕분에 가온의 홍보가 톡톡히 되자. 절로 고마운 마음이 샘솟았다.
‘이거 시험이 끝나면 뭐라도 좀 챙겨줘야겠어……. 유원학 그놈이 말년까지 나를 괴롭히더니! 이제야 이런 복덩이를 안겨주는군! 크핫!’
반면 유한나는 모니터 속 신유성을 보며 씩- 하고 웃었다.
‘후훗, F급 특성에! S급 특성 보유자도 울고 갈 실력! 거기다 빛이 나는 완벽한 외모까지? 역시 내 눈은 확실해. 얘는 스타의 재목이야!’
유한나가 생각하는 동안 모니터 속 신유성은 전투를 이어가며 계속 점수를 벌었다.
계곡에서는 빨간 보석이 박힌 루비 피쉬를 사냥하고. 숲 속에서는 쥬얼 스네이크를 사냥하고. 이제 산길에서는 문스톤 베어를 쓰러트렸다.
그야말로 연전연승.
신유성이 지나가는 모든 길에는 괴수의 씨가 말라버렸다. 마치 괴수들의 모든 생태를 알고 있는 듯, 숨어있는 괴수까지 족족 잡아내는 신유성의 모습. 지켜보던 유한나는 이제 활약을 넘어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근데 뭐 저래? 무슨 특수 훈련이라도 받은 군부대의 헌터야?’
심지어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크루즈 위에서 따로 모니터링을 하던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저 마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저기 수정 동굴 쪽 아냐?”
“설마 일부러 가는 건가?”
“보스도 점수가 있어?”
지금 신유성의 위치는 금지구역이라 불리는 장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일어난 소란.
“어, 어어…… 저기는 보석섬의 수정동굴…… 아닌가요?”
보고 있던 유한나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진병철도 놀란 나머지 크게 호통을 쳤다.
“저, 저곳을! 학생이 왜가? 서, 설마! 린샤오 교관! 수정동굴에 대해 설명을 안 해 준 것인가!?”
진병철의 호통 소리에 멀리서 지켜보던 린샤오는 다급하게 달려왔다.
“아, 아닙니다! 이전 교관님이 수정동굴에 대해선 학생들에게 설명이 끝났다고…….”
“아니! 내가! 신유성! 학생은! 며칠 전에! 입학을 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진병철은 화를 꾹꾹 억누른 나머지 음절 하나하나를 스타카토로 끊어서 외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한 명이다 보니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린샤오는 고개를 숙였지만 진병철의 분노는 더욱 쩌렁해졌다.
“그래도 깜박할 게 따로 있지!”
이렇게 소란이 일어난 이유는 수정 동굴에 잠들어 있는 4급 보스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유한나는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흥미로워했다.
“그렇죠! 수정동굴에는 보석섬의 주인이 살고 있으니까요. 하급반에겐 제한 지역으로 만든 이유가 다~ 있죠! 안 그래요?”
그 정체는 바로 크리스탈 골렘.
보석섬의 주인으로 온몸이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몬스터. 거대한 몸체에 얼마나 방어력이 높은 지 어지간한 학생들은 골렘에게 흠집조차 낼 수 없었다.
린샤오는 눈 앞에 닥친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팔을 휘휘 저었다.
“에이 교장 선생님 설마 진짜 골렘을 건드리겠습니까? 동굴로 들어가지만 않으면 골렘도 깨어나지 않습니다!”
“크흠! 물론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진병철이 못 마땅한 얼굴로 린샤오를 쳐다보고 있을 때, 유한나는 모니터를 보며 또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어! 진짜 들어가는데요?”
“뭐야!?”
진병철이 녹화도 잊고 호통을 치자. 옆에 있던 린샤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설마……. 골렘을 잡으려는 건가? 아니면 골렘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린샤오가 중얼거리자. 교장인 진병철은 눈을 부라리며 잡아먹을 듯 소리쳤다.
“지금! 멀뚱히 서서 뭐해요! 당장 안 뛰어가고!”
“가, 가겠습니다!”
린샤오는 창백해진 얼굴로 수정동굴을 향해 달려 나갔다. 만약 그의 실수로 신유성이 다치거나, 시험에서 이탈하게 된다면 린샤오는 책임을 질 방법이 없었다.
반면 유한나는 흥미진진한 상황에 기대를 품으며 입술을 훑었다.
‘시청률이 보이는구나! 돈이 보여!’
그렇게 유한나는 입맛을 다시더니 스태프에게 주의를 줬다.
“드론 카메라 동굴 쪽으로 몇 대 더 보내요. 나 유한나가 장담하는 데 분명 레전드 찍을 수 있어요.”
만약 정말 신유성이 크리스탈 골렘을 처치하기라도 한다면. K채널의 입장에선 대박중의 대박이었다.
* * *
동굴 전체가 뿜어내는 영롱한 푸른색 빛. 눈을 떼기 힘든 다양한 색의 수정들. 그리고 동굴 내부에 흐르는 물줄기를 보며 신유성은 홀린 듯 동굴의 내부로 이끌리고 있었다.
“……여긴?”
보석섬의 수정동굴은 스승이 말해주었던 던전의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유성아! 진짜 무서운 던전이 어떤 곳인 줄 아느냐?]
10살.
아직 어렸던 신유성이 고개를 저어버리자. 권왕 유원학은 씩- 하고 소름끼치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갑자기 조용한 곳이다! 아무리 몬스터나 괴수들이 득실거리는 던전도 진짜 센 놈들이 있는 곳은 쥐 죽은 듯 조용하거든!]
수정동굴은 스승의 말처럼 조용하고 고요했다.
뚝. 뚝.
어찌나 조용한지 종유석에 맺혀있던 물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신유성에겐 선명했다.
신유성은 흐르는 물길을 따라 수정동굴을 계속 걸었다.
‘이제 점수는 충분해.’
신유성이 가진 점수는 압도적이었다. 거기에 스미레가 얻은 보석을 합치면 하급반에서는 1등이었다.
아까 수정동굴에 들어오기 전 점수를 봤으니 분명 확실한 사실.
‘……하지만.’
신유성에게 중요한 건 시험의 점수가 아니었다.
윙- 윙윙-
뒤 늦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따라오는 드론 카메라. 지금 신유성의 모든 행동은 K채널의 방송을 통해 전파될 예정이었다. 이번 시험은 신유성의 제대로 된 데뷔전. 여기서 시청자들을 매료시켜 인지도를 쌓지 못하면 국가대항전에 참전하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면 이 정도로는 만족 할 수 없어.’
신유성은 그런 인간이었다.
권왕이 세상에는 강한 헌터들이 널렸다며 겁을 주었을 때도, 어린 나이에 2급 괴수에게 당해 온몸이 걸레짝처럼 됐을 때도, 늘 신유성의 목표는 하나였다.
‘……최강의 헌터.’
한국은 물론 세계에는 강한 헌터들이 널려 있었다. 권왕이 했던 말들이 모두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런 헌터들 사이에서 정점이 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면 이 정도로 만족할 순 없었다.
완벽한 증명을 위해선 최후의 한방이 필요했다. 신유성은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알겠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유성은 자신을 동굴로 인도한 감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신유성은 더 강한 상대와 싸우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다. 더 높은 곳에 닿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내가 찾고 있던 건…….’
자신을 증명할 강한 상대였다.
그그그극!
그런 신유성의 부름에 답하듯 커다란 동굴이 진동으로 몸을 떨었다. 천장에서 환하게 발산하는 푸른빛은 뭔가 심상치 않았다.
구구궁!
진동과 함께 천장에선 크고 작은 수정들이 떨어져 내렸다.
쿵! 콰콰쾅! 쿵! 쿠웅!
수정이 발산하는 마나에 반응해 물길에서 연기가 일렁였다. 아무렇게나 떨어진 수정들은 자리를 찾으며 어느새 형태를 갖췄다.
신유성의 시선이 몸집을 불려가는 수정을 따라 올라갔다.
길이는 수십 미터 혹은 그 이상.
동굴의 주인은 입으로 보이는 균열에서 우렁찬 포효를 토해냈다.
“그거어어억!!”
화려한 등장의 주인공은 보석섬의 진짜 주인 크리스탈 골렘이었다.
신유성은 거대한 골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내 주먹이 통할까?’
다이아처럼 단단한 수정으로 이루어 진 크리스탈 골렘의 몸.
꽈악!
신유성이 주먹을 쥐었다. 아무리 권왕의 제자인 신유성이라도 4급 보스를 직접 상대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신유성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최강의 헌터를 노리는 자신이 골렘을 상대로 머뭇거리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유성아 네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건, 패배가 아니다!]
문득 떠오른 권왕의 말처럼 늘 성공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강해진다.
[헌터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하는 건 포기다!]
탓!
신유성이 땅을 박차며 정면으로 돌진했다. 크리스탈 골렘은 거대한 주먹을 신유성에게 날렸다.
쾅! 극! 그그극!
주먹과 주먹이 부딪힌 상태로 이루어진 힘겨루기. 신유성은 몸을 비틀어 골렘의 주먹을 흘려냈다.
콰앙!
그와 동시에 바닥에서 튀기는 수정 파편. 신유성은 골렘의 울퉁불퉁한 팔을 발판 삼아 머리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갔다.
탓! 다다닥!
“크궈어어억!!”
흉악한 포효와 함께 골렘도 신유성의 돌진에 맞춰 몸을 움직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탓!
도약을 한 신유성은 이미 골렘의 머리 앞에 있었다.
‘박살낸다!’
신유성이 자세를 잡으려는 순간 땅에 가루처럼 흩어졌던 수정들이 신유성의 몸을 향해 쏘아졌다.
마치 탄환과 같은 속도.
‘저건…….’
신유성은 특성의 힘인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마나가 몸에 돌며 집중력을 통해 극대화 된 감각. 신유성은 세상이 느려졌다는 착각에 빠졌다.
‘보인다.’
탄환처럼 빨랐던 수정은 지금의 신유성에게 너무 느렸다.
쐐애애액!
날카로운 수정들은 신유성이 고개를 꺾자. 종이 한 장 차이로 빗겨나갔다. 공중에서 취한 완벽한 자세.
이제 신유성의 차례였다.
“이거나…….”
신유성이 오른팔을 뒤로 뺐다. 발을 디딜 곳이 없어 힘을 주는 건 쉽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권왕의 제자가 되고 숫자도 셀 수 없이 주먹을 질렀다. 어떤 불리한 조건도 신유성을 막을 순 없었다.
“먹어라!”
집중력이 극대화되며 신유성은 주먹이 공기의 압력을 가르는 게 느껴졌다. 신체로 퍼진 마나는 온몸의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투신류 3장 파천권격(破天拳擊)
콰앙!
신유성의 주먹이 크리스탈 골렘의 머리에 적중했다.
필요한 건 일격이었다. 신유성은 더 이상의 공격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다이아처럼 단단했던 수정에 균열이 생겼다. 머리에 있는 핵이 쪼개진 것이다.
쩌저적!
결국 크리스탈 골렘은 원동력을 잃었고 마치 모래성이 무너지듯 수정들이 쏟아져 내렸다.
쾅! 콰과광! 우르르르!
신유성은 수정들 속에서 쪼개진 골렘의 핵을 꺼냈다.
뚝!
핵의 힘이 사라지자 수정들이 마나로 산화하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사아악!
보석섬의 주인이자, 4급 보스를 상대로 거둔 완벽한 승리. F급 특성 보유자인 신유성이 해냈다고는 믿기 힘든 결과였다.
그런 신유성의 주변에서는 드론이 윙윙- 소리를 내며 그 모든 장면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