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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12/434)

제12화

보석섬과 크루즈 사이의 해안가.

유한나는 부두에 설치한 부스에 앉아 신유성을 모니터링 했다.

“아! 신유성 학생! 괴수들을 독식하며 점수를 쓸어가고 있습니다!”

유한나는 원래 생방이 아닌, 녹화 방송 중에는 텐션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유한나는 달랐다.

“아니 방금 저 기술은 뭐죠? 실드를 사용한 특성인가요?

지금까지 수많은 학생 스타들을 발군해온 그녀였지만. 맨손으로 불길을 갈라내는 건 처음이었다.

워낙 특이한 신유성의 능력에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자. 급하게 교장인 진병철이 해설처럼 끼어들었다.

“저건 마나 방출입니다. 물론 학생들이 사용하는 정석적인 방법은 아니고! 권왕이 직접 만들어 낸 변형 버전이죠. 핫핫!”

“그냥 마나를 방출하는 걸로 실드를 만들어낸 건가요?”

유한나가 놀라서 묻자 진병철은 헛헛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전투의 순간 고압의 마나를 손끝으로 끌어내는 건! 아주 절정의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근데 신유성 학생은 그걸 해냈단 말씀이시군요?”

유한나가 기대에 찬 얼굴로 눈을 빛내자. 진병철은 괜히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신이 생색을 냈다.

“그거야! 권왕의 제자이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가온 아카데미의 학생답다고 할 수 있지요! 하하핫!”

“오오! 과연!”

자연스럽게 부스로 끼어든 진병철은 자연스럽게 게스트 자리를 차지하고 진행까지 맡아버렸다.

“문제는 이번 시험으로 신유성 학생이 세븐 넘버가 될 수 있느냐? 그것이 관전 포인트인데. 교장인 저는 아직 힘들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니 신유성 학생이 이렇게 강한데 왜 힘들다고 생각하시죠?”

유한나가 자연스럽게 운을 띄우자. 진병철은 또 가온 아카데미의 홍보를 시작했다.

“그야 가온 아카데미의 상급반은 하급반과 실력이 천지차이기 때문이죠! 거기다 요즘이 어떤 시대입니까? 바로 협조의 시대! 개인의 실력만큼 팀플레이를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2인조 시험에서 세븐넘버가 되려면 혼자 잘하는 걸론 의미가 없습니다!”

청산유수 같은 진병철의 말에 진행자인 유한나도 그만 홀리고 말았다.

‘아니 무슨 교장이 말을 저렇게 잘해……. 가끔 방송도 출연한다더니.’

하지만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중얼거렸다.

“……그럼 같이 파트너가 된 학생의 점수가 얼마나 낮기에.”

마침 그녀의 질문과 함께 모니터에는 스미레의 점수가 떠올랐다.

[하나지마 스미레 - 점수 0]

“Oh my god! 스, 스미레 양의 점수가 0점입니다? 뭐죠? 버그인가요? 결산 오류?”

충격적이게도 스미레의 점수는 무려 0점. 이대로 시험이 끝이난다면 아무리 신유성의 점수가 높아도 세븐넘버는 힘들었다.

진병철의 말처럼 하급반과 상급반의 실력은 그야 말로 천지차이. 세븐넘버인 아델라 같은 괴물들을 상대로 0점인 스미레를 끼고 비슷한 점수를 얻을 순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럼!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유한나는 모니터의 화면을 신유성에서 스미레로 바꿔버렸다.

*     *      *

평화로운 보석섬의 풀숲.

스미레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벙클을 바라보며 울상이 된 얼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흐, 으우으……. 난, 바보야……. 기껏 신유성 씨가 머리카락도 챙겨주셨는데…….”

사건은 간단했다. 스미레는 신유성의 머리카락을 감싸놓았던 티슈를 꺼냈다. 그 다음 머리카락을 꺼내지도 못하고 바닥에 놓쳤다.

하지만 옆을 지나가던 카벙클은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캬벙!”

스미레의 티슈를 입에 물고 가로채버린 것이다.

“아앗!”

얼굴이 창백해진 스미레는 카벙클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아아! 그거 내건데…….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건 아니지만…….”

웃긴 건 카벙클도 스미레가 약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지 도망조차 가지 않았다. 오히려 카벙클은 사나운 표정으로 당당하게 스미레를 노려보고 있었다.

“으르르르…….”

카벙클이 티슈를 입에 문 채, 으르렁 소리를 내자. 스미레는 움찔하고 조심스럽게 거리를 벌리더니. 토끼풀을 꺾어 카벙클에게 내밀었다.

“그러지 말고……. 이 토끼풀이랑 그 티슈를 바꾸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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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레는 보석섬의 최약체인 카벙클에게도 기가 죽은 얼굴로 부탁을 했고. 카벙클은 승자답게 여유를 즐기며 토끼풀을 오물거렸다.

“착, 착하다! 착해! 나 티슈만…… 티슈만 가져갈게?”

눈치를 보던 스미레가 기회를 틈타 티슈로 손을 뻗자. 토끼풀을 씹던 카벙클은 온몸의 털을 곤두세웠다.

“캬오! 카벙!”

“꺄하악! 미안! 안 가져갈게!”

결국 강경한 카벙클에 밀려 손을 빼버리는 스미레. 헌터를 꿈꾸는 학도가 카벙클에게 패배하는 건 가온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과연 스미레는 학년 랭킹 꼴등에 걸 맞는 한심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역시 어쩔 수 없나…….”

한숨을 내쉰 스미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았다. 그리곤 땅에 떨어트렸다.

그그극!

동시에 흙속에선 그로테스크한 해골이 기어 나왔지만. 해골은 스미레와 똑같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해, 해골아! 카벙클에게 머리카락을 뺏어와!”

스미레가 해골을 보며 명령을 내리자. 해골은 방금 전의 스미레처럼 천천히 카벙클에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소환된 해골은 머리카락의 주인이 가진 신체능력은 물론이고 성격까지 닮는 모양이었다.

“……딱? 딱?”

다시 해골이 뼈로 된 손을 조심스럽게 내밀자. 카벙클은 또 으르렁거리며 털을 곤두세웠다.

“캬오!”

그와 동시에 자지러지게 놀라는 해골과 스미레.

“딱딱!”

“히, 히익!”

결국 울상이 된 스미레는 어떻게든 해보라며 계속 해골을 밀었다.

“해, 해골아……. 넌 소환수잖아! 저 티슈 좀 뺏어봐!”

그러자 붙어 있던 해골의 팔이 뚝하고 기괴하게 떨어졌다.

턱!

“딱! 딱!?”

“카, 카벙!”

결국 카벙클은 그로테스크한 장면에 놀라 도망가고 말았다. 과정이 어떻게 됐든 결국 스미레가 신유성의 머리카락을 되찾은 것이다.

스미레는 후다닥- 달려가 소중하게 티슈를 집어 올린 후, 신유성의 머리카락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으, 신유성 씨의 머리카락! 흐으으, 정말 다행이야…….”

스미레는 보물이라도 되는 듯, 신유성의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이것만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어!”

스미레는 헤실헤실 웃더니 보물이라도 되듯 소중하게 티슈에 담긴 머리카락 하나를 집어 들어. 땅에 톡- 하고 떨어트렸다.

극! 그그극!

이번에도 흙에서는 해골이 기어 나왔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와 자세는 이전과 전혀 달랐다.

신이 난 스미레는 신유성의 해골을 바라보며 모처럼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해골아! 괴수를 잡아서 보석을 모아줘!”

그때까지 스미레는 알지 못했다.

신유성의 신체 능력은 물론이고, 성격까지 닮아버린 해골에게 적당이란 말은 없다는 것을.

*     *      *

콰작!

신유성의 해골은 땅을 기어 다니는 젬 스네이크를 발길질 한 번에 끝장을 내버렸다.

“역시 신유성 씨의 머리카락이야! 해골아! 너 정말 강해졌구나!”

스미레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콩콩 뛰었다. 하지만 그건 사냥의 시작에 불과했다.

콩!

해골은 풀숲에선 한방에 귀여운 카벙클을 기절 시켜 머리에서 보석을 뜯어냈고.

“뿌우우우!”

콰앙! 콰직! 뜨드득!

길을 걷다 발견한 진주 코끼리도 1분도 되지 않아 쓰러트려버렸다. 그리고는 무참히 진주로 된 뿔을 꺾어버리는 해골.

“어, 어어어…….”

스미레는 자신이 만든 해골이었지만 감당이 되지 않는 성능에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 이, 이제 보석은 충분한 것 같은데…….”

하지만 신유성의 해골은 만족을 모르는 해골. 보석을 캐기 위해 지옥에서 찾아온 악마에 가까웠다.

심지어 욕심은 얼마나 많은지 D반 학생들의 사냥감을 뺏어버리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딱딱, 딱!”

해골은 젬 스네이크 두 마리를 처치하고, 베이비 샐러맨더 한 마리를 처치한 뒤 보석을 전부 꺼내들고 도망 가버렸다.

“뭐야, 스미레의 해골이 저렇게 강했어?”

“저 자세 신유성이란 비슷한데?”

“해골이 신유성한테 무술을 배운 건가? 하루 만에?”

총 4명.

협력을 통해 몰이사냥을 하던 두 파티의 학생들이 충격에 빠져 웅성거렸다. 스미레는 그들을 보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잡으시던 괴수의 보석을 해골이 가지고 가버려서…….”

그 말에 대답을 한 건 다름 아닌 신유성에게 두드려 맞았던 D반의 학생. 주하진이었다.

“아, 해, 해골이 가져갔으면 어쩔 수 없지……. 뭐 다들 그렇게 돕고 사는 거 아니겠어?”

평소의 다혈질 성격은 사라진 채, 왜인지 평화주의자로 돌변한 주하진. 아무래도 해골의 자세를 보며 신유성에게 새겨졌던 공포가 되살아난 모양이었다.

물론 덕분에 스미레는 별 다른 시비 없이 안전하게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아앗, 해골아! 나도 같이 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스미레는 자신의 해골에게도 휘둘리고 있었다. 그래도 해골이 벌어다주는 점수의 속도는 신유성 못지않았다.

꼴등의 역전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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