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평화로운 보석섬의 풀숲.
F반의 여학생인 레니아는 무릎까지 꿇어 카벙클과 시선의 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귀, 귀여워!”
토끼와 고양이를 닮은 귀여운 외모에 초롱초롱한 눈망울. 카벙클은 사랑스러움의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캬움!”
거기다 열심히 토끼풀을 야금거리는 오밀조밀한 입. 호주에서 온 유학생인 레니아는 카벙클에게 푹 빠져 있었다.
“이런 애완동물……. 한번쯤 꼭 키워보고 싶었는데……. 후우, 가온이 기숙사만 아니었어도…….”
레니아가 카벙클을 쓰다듬자. 카벙클은 털을 곤두세우며 거세게 반항의 표시를 했다.
“캬우움!”
“아~ 미안! 안 건드릴게 헤헤! 화났구나?”
레니아는 카벙클의 그런 행동마저 귀여운지 헤실헤실 웃었다. 다만 카벙클과의 해피타임에도 문제는 있었다. 그건 지금 레니아가 시험을 치루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 맞다! 시험! 근데 저 귀여운 카벙클을 어떻게 때려…….”
그렇게 레니아가 고민에 빠진 순간.
탓!
신체강화를 사용한 신유성이 섬광처럼 나타나 카벙클의 미간에 딱밤을 때렸다.
따악!
“키햐악!”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카벙클이 뒤로 뻗자. 레니아는 기겁을 했다.
“헉!”
레니아가 어이없는 얼굴로 바라보자. 신유성은 슬쩍 레니아를 흘기더니 카벙클의 이마에서 보석을 떼어냈다.
그리곤 보석을 [포켓]이라고 부르는 손목 밴드에 가져다댔다.
사아악!
밴드에서 나온 빛과 함께 사라지는 보석. 신유성은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렸다.
“1급도 하나 챙겼군.”
탓!
카벙클의 보석과 함께 뒤도 보지 않고 사라지는 신유성. 레니아는 신유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읊조렸다.
“역시 대련장의 악마…….”
신유성은 목표를 위해선 귀여운 카벙클에게도 손속을 두지 않았다.
* * *
호화로운 크루즈.
바캉스라도 즐기는 듯 김은아는 썬베드에 누워 있었다. 크루즈와 교복. 파라솔과 선글라스라는 기묘한 조합. 김은아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진짜 신기하네.”
상급반 학생들은 다음 시험을 대기하는 동안 시험장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K채널의 드론 카메라는 그만큼 숫자가 많았지만, 하급반에서 김은아가 주목하는 사람은 오직 하나였다.
[Camera1-신유성]
권왕의 제자 신유성.
처음에는 이름값 때문에 가진 단순한 흥미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도대체 신체강화를 어떻게 저렇게 오래 사용하지?’
김은아가 신유성의 전투를 보며 가장 의문스러웠던 건 신체강화였다. 일반적인 헌터에게 신체강화는 주력 기술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마나를 통해 신체 능력을 일시적으로 높이는 대신 지속시간 동안 소모되는 마나가 엄청났다.
‘……근데 그걸 밥 먹듯이 사용하잖아?’
하지만 김은아의 생각은 의심에서 그쳤다. 신유성의 신체강화에게 담긴 묘리는 권왕이 수십 년을 걸쳐 완성시킨 수련의 정수였다.
물론 원리는 간단했다.
권왕 유원학이 신유성에게 했던 가르침은 겨우 한마디에 불과했다.
[오로지 원하는 신체부위에 마나를 집중해라! 그것도 짧게!]
하지만 가르침은 짧았지만 간단하진 않았다. 신체의 일부에만 강화를 사용하며 전투를 진행하는 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S급 헌터들도 실패했던 기술을 신유성은 F급 특성 덕분에 해냈다.
F급 특성. [집중력 강화].
신유성은 자신이 가진 특성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집중력 강화]는 권왕의 가르침을 겨우 12년의 수련으로 완성시켰다.
물론 김은아는 검지를 잘근거리며 단순하게 생각했다.
‘……마나 통이 엄청 큰가?’
김은아는 하얀 손등으로 턱을 괴고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곤 신유성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평가했다.
‘신체능력 초S급. 마나 통도 S급. 근데 특성은 F급……. 어떻게 이런 놈이 있지?’
김은아에게 이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겪은 전투는 대부분이 특성에 의존한 싸움이었다.
그 때문인지 실력과 관계없이 특성의 상성이 극명했다.
‘……거기다 쟤는 상성도 종 잡을 수가 없네. 내가 아델라에게 진 것도 그놈의 상성 때문인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김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역시 재밌네.”
김은아는 신유성을 완전히 박살내고 싶었다. 비록 얼음을 사용하는 아델라에겐 패배했지만. 신유성처럼 맨몸으로 덤비는 상대는 자신이 유리해보였다.
‘……아델라한테 시비를 걸기도 딱 좋아 보이고.’
김은아는 장난 끼 넘치는 미소와 함께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곤 가온에서 만든 어플을 켰다.
‘……보상이 없으면 대련장에 안 나오겠지? 이번 시험이 끝나면 쟤도 100SP는 받을 테니까.’
한참 생각을 한 김은아는 어플에 무언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대련 신청: 신유성]
[조건: 패자는 승자에게 150SP 지급. 모자란 SP는 -로 차감.]
“훗! 이 정도면 거절은 생각도 못하겠지?”
SP(School Point).
가온 아카데미에서 SP는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화폐나 마찬가지였다. 평일에도 사용 가능한 외출권 같은 편의 서비스부터 시험에 영향이 가는 중대한 부분까지 SP는 항상 아카데미에서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뒤늦게 입학한 신유성은 SP를 하나도 모으지 못한 상태였다.
“뭐 반대로 겁먹고 내빼면 어쩔 수 없지만.”
김은아를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모니터를 꺼버렸다.
* * *
보석섬 중앙의 늪지대.
D반의 진민아와 성익혁은 등을 맞대고 괴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아니 늪지대에 베이비 샐러맨더가 이렇게 많다고? 아카데미에서 들은 거랑 완전 다르잖아!”
성익현이 짜증내며 소리치자. 듣고 있던 진민아도 마찬가지로 짜증내며 소리를 쳤다.
“아이 씨! 또 양호실에 누워서 나노머신으로 치료 받고 싶어? 집중 안 해!?”
“아 왜 화를 내고 그래! 인간적으로 6마리는 너무 많이 남았잖아!”
그렇게 D반의 학생들이 티격태격 주고받고 있을 때 베이비 샐러맨더들은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캬아아오!”
“캬오!”
화르륵!
그 중 한 마리가 불까지 뿜자. 진민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검을 다루는 진민아의 허벅지는 공격당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즉 이전과 같은 움직임은 불가능했다.
“아, 진짜 어떻게 하지?”
9마리 중 3마리를 처치했지만 둘은 거기까지가 한계인 것이다. 성익현은 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끝이야. 눈뜨면 양호실의 캡슐 안이겠지?”
그렇게 두 학생이 좌절한 순간.
쿵!
신유성이 등장했다.
“여긴 6마리나 남아있네.”
진민아와 성익현에게 6마리의 베이비 샐러맨더는 위협적인 괴수였지만. 신유성에겐 그저 점수들에 불과했다. 그 증거로 신유성은 둘을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전부 내가 잡아도 괜찮지?”
신유성의 물음에 둘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 어어! 우리야 고맙지!”
“마음껏 잡아!”
탈락의 위기였던 진민아와 성익현에게 신유성의 등장은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진민아는 기쁜 얼굴로 성익현에게 속삭였다.
“주하진을 박살 낼 정도면 강하긴 하겠지?”
“한 3마리? 정도 잡으면 쟤도 힘들 테니까. 남은 건 우리가 도와서 처리하자.”
“오~ 그거 빌미로 보석도 몇 개 챙기고?”
기분이 좋아진 진민아가 쿡쿡 웃고 있을 때, 신유성은 쾌속으로 베이비 샐러맨더에게 돌진했다.
탓.
그리곤 코앞의 거리에서.
천천히 손바닥을 베이비 샐러맨더에게 뻗었다. 귀여운 이름과 달리 2급 괴수에 걸맞게 길이만 2미터에 가까운 도마뱀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의 손이 닿자.
거대한 충격파가 베이비 샐러맨더의 몸을 휩쓸어버렸다.
투신류 폭룡암쇄장(暴龍巖碎掌)
쿠와아아앙!
2급 괴수를 상대로는 너무 거창한 파괴력. 베이비 샐러맨더는 머리에 박힌 보석만 남긴 채,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헐.”
“……아니 미친.”
진민아와 성익현은 신유성의 충격적인 전투에 말을 잃고 말았다. 지금까지 2급 괴수를 주먹질로 가루를 만드는 학생은 어디서도 본적이 없었다.
“대체 정체가 뭐야!”
정신을 차린 진민아가 놀라서 소리를 치자. 옆에 있던 베이비 샐러맨더가 그녀에게 불을 뿜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그 공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진민아의 앞에서 마나를 두른 손을 불길에 뻗자. 불길은 신유성을 피해 양옆으로 비켜나갔다.
“저게 특성인가? 설마 염력? 소문으로는 분명 특성이 F급이라고 그랬는데…….”
하지만 성익현의 예측처럼 신유성은 염력을 사용한 게 아니었다. 그저 단순하게 손바닥으로 마나를 뿜었을 뿐이다. 물론 순식간에 보호막이 될 정도의 마나를 사출시키려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했지만. 12년의 수련과 [집중력 강화] 특성을 가진 신유성에겐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구음절맥의 체질과 마나연공을 거듭한 신유성 마나는 넘치고 넘쳤다.
그래서 이런 비상식적으로 무식한 전투도 신유성은 가능했다. 아니, 오직 신유성만이 가능했다.
신유성은 권왕이 만든 괴물이었다.
콰아앙!
마지막 발차기로 모든 괴수들을 가루로 만들어버린 신유성은 순식간에 자리를 떠났다. 진민아는 그런 신유성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뒤늦게 입을 열었다.
“쟤 우리가 잡은 것도 가져간 거 맞지?”
성익현은 얕은 늪지대를 손으로 짚으며 확인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보석 9개가 다 사라졌어.”
“우리 것까지 알뜰하게도 긁어갔네. 뭐지, 목숨 값인가.”
이제 와서 알아채도 신유성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