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하나지마 스미레.
F반에서도 최하위의 성적을 기록해 학년 랭킹 꼴등을 기록한 학생이었다. 얼굴을 가린 앞머리와 창백한 피부. 칙칙해 보이는 그녀의 분위기는 역으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 아아 잠깐만…… 죄, 죄송해요……. 잠시…….”
스미레는 연신 사과를 하며 학생들을 피해 게시판을 향해 다가갔다.
“오오, 나 세븐넘버랑 파티야!”
“부럽다! A반이면 김은아? 역시 A반은 다르네!”
“아니 왜 억울하게 시험을 파트너제로 치루는 거야?”
“왜왜? 누가 걸렸는데 그래?”
학생들의 반응들은 제 각각이었다.
같은 반이라도 실력과 파트너간의 상성은 천차만별이었다. 가온 아카데미에서는 팀플레이를 기르기 위해 몇몇 시험은 파트너 제를 기용했지만. 그 때문에 파트너를 발표하는 날이 되면 이렇게 학생들 간의 희비가 엇갈렸다.
‘내 파트너는…….’
스미레는 조심스럽게 검지로 짚어가며 파트너를 확인했다. 학생들에게 이리저리 밀려가며 확인하는 게 쉽진 않았다.
‘……파트너는 같은 반의 학생. 실력은 최대한 균등하게.’
이것이 가온에서 대외적으로 알려진 파트너가 정해지는 법이었다. 문제는 그래도 파트너가 정해지기까진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스미레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학생들 때문에 찰싹 벽에 붙었지만. 꾹 참고 파트너를 확인했다.
[랭킹 209위 - 하나지마 스미레]
“208, 209……. 아! 찾았다…….”
스미레는 기뻐하며 밑에 적힌 파트너의 이름을 읽으려 했다.
“아, 혼자서 시간을 얼마나 끄는 거야! 저리 비켜!”
그때 한 여학생이 신경질적이게 스미레를 밀쳤다.
“아, 으우으……. 죄, 죄송해요!”
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스미레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그녀는 누구보다 학년랭킹을 올리고 싶었다.
‘내 파트너는…….’
스미레에게 시험은 곧 사활이 걸린 문제. 벽을 짚고 일어선 스미레가 학생들에게 떠밀리며 파트너의 이름을 확인했다.
[파트너 - 신유성]
결과는 대박이었다.
* * *
가온 아카데미의 숲속.
수련을 하고 있는 신유성에게 이시우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유성아! 유성아! 헉헉!”
얼마나 달려왔는지 숨까지 찬 모습. 이시우는 급하게 숨을 몰아쉬고선 신유성에게 물었다.
“유성아! 너 파트너 확인했어?”
“아니.”
“네 파트너 스미레야! 하나지마 스미레!”
그 말에 명상 중이던 신유성이 눈을 떴다. 그리곤 천천히 일어나 이시우를 내려다봤다.
“……스미레?”
신유성은 스미레가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F반에서도 스미레의 행보는 안 좋은 의미로 독보적이었다. 이시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신유성에게 말을 했다.
“아니 걔는 네크로맨서 특성인데도 해골이 하나야! 거기다 이미지 룸에선 1급 괴수한테도 지고! 학년 랭킹도 꼴등! 우리 학교에선 최약체야!”
이시우는 나름 신유성을 걱정해서 한 말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신유성은 담담했다.
“상관없어.”
“상관없다니! 시험에서 얼마나 파트너가 중요한데?”
이시우가 쏘아붙이자. 신유성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스미레라는 애. 이렇게 앞머리를 내렸어?”
“오! 기억났구나! 맞아! 맞아! 보기만 해도 어두운 기운이….”
이시우의 말에 신유성은 고개를 저으며 뒤쪽을 가리켰다.
“……음, 기억이 난 건 아니고. 네 뒤에 서 있어.”
꿀꺽.
이시우는 침을 삼키며 뒤를 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엔 울상의 스미레가 신유성과 이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흑, 으우으……. 죄송해요! 해골도 하나 밖에 소환 못하고……. 헌터인데 1급 괴수도 못 쓰러트리고……. 으으으……. 제가 파트너라서 죄송해요!”
스미레가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사과를 하자. 이시우는 뻘뻘 땀을 흘리며 도망쳤다.
“미안!”
덕분에 신유성은 괜히 스미레를 떠맡게 되었다.
“으으우…… 괜히 저 같은 게……. 궈, 권왕님의 제자랑 파트너가 되어서……. 괜히 발목만…….”
스미레의 자존감이 땅굴을 파고 한없이 기어들어가자. 신유성은 어쩔 수 없이 스미레를 진정시켰다.
“……어, 일단 진정해. 스미레.”
“으우…….”
둘은 나무 밑 둥에 앉았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진정을 찾은 스미레는 아까보다 차분한 어투로 자신의 이야기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저도 처음에는 제가 이렇게 약할지 몰랐어요. 일본의 아카데미에선 그래도 평균이었거든요.”
“……어어, 그랬구나.”
신유성의 표정은 스미레의 이야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스미레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모양이었다.
“전 실력도 낮고. 가온의 학생들은 일본보다 너무 강해서…….”
스미레는 가끔 쥐가 나오는 기숙사도. 학생들의 무시도 전부 버틸만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원금.
가온은 명문답게 여러 기업의 지원을 받아. 학생들의 성적만큼 지원금을 지급했다. 재벌 출신의 학생들에겐 푼돈이었지만. 스미레처럼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에겐 아주 큰돈이었다.
“꼭 학년 랭킹을 올려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전 특성도 F급이고 정말 약해서…….”
특성의 이야기에 신유성이 흥미를 가졌다.
“음, 네 특성은 뭔데?”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조금은 스미레의 케어가 필요했다.
“아, 제 능력이요? 아, 정, 정말 별거 아닌데……. 그냥 머리카락이나 손톱 같은 걸로……. 해골을…….”
스미레가 말을 더듬으며 설명을 하자. 신유성은 짧게 일축했다.
“설명보단 한번 보고 싶은데.”
스미레는 한참 동안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자신의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 땅에 뿌렸다.
득, 드드득!
그러자 땅에서 그로테스크하게 생긴 해골이 기어 나왔다. 그런데 해골의 자세가 뭔가 이상했다.
뼈 주제에 부끄러워하는 자세가 주인인 스미레와 똑같았다.
“해, 해골, 저기! 나무에……. 아니, 나무를…… 공격해!”
“……딱, 딱딱!”
스미레의 명령에 해골은 나무를 향해 달려가더니 주먹을 뻗었다.
딱! 우르르!
그리곤 나무에 부딪히자마자. 우르르 무너졌다.
“정말…….”
신유성이 말을 잃자.
시무룩해진 스미레는 또 다시 나무의 밑 둥에 앉아.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실은……. 제가 만든 해골이 머리카락의 주인은 닮나 봐요……. 저, 소환술을 빼면 몸치에 전투를 정말 못해서…….”
스미레가 또 자존감을 파먹으며 중얼거리자. 신유성은 마침 땅에 떨어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내밀었다.
“내 머리카락으로 만들어 볼래?”
“어, 그, 그래도 괜찮으세요? 다른 분들은 전부 기분…… 나쁘다고 하셔서……. 아무래도 머리카락이 해골로 변하니까 기분이…….”
스미레의 말이 길어지자. 신유성은 또 말을 일축했다.
“해봐.”
고개를 끄덕인 스미레가 신유성의 머리카락을 땅에 뿌렸다. 그러자 또 아까처럼 해골이 땅에서 기어 나왔다. 하지만 뼈의 생김새는 아까 전의 해골과 완벽하게 달랐다.
“딱, 딱!”
해골은 자신감 넘치게 턱뼈를 부딪치며 신유성의 전투 자세를 똑같이 취했다.
“어, 어라?”
무언가를 변화를 느낀 스미레는 반신반의 하며 해골에게 명령을 했다.
“……나, 나무를 공격해!”
쿵!
해골은 박력 넘치게 땅을 박찼다.
스미레의 해골은 머리카락의 주인이 가진 신체 능력을 3할 정도 구현했다. 그런데 최약체인 스미레의 머리카락을 사용했으니. 해골도 약한 건 당연했다.
그리고 지금.
해골은 신유성의 머리카락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쾅! 우지끈!
해골이 뼈로 된 주먹으로 나무를 때리자. 나무는 큰 소리를 내며 한 쪽 방향으로 기울었다.
콰아앙!
쓰러진 나무는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이 모든 걸 멍하니 쳐다보던 스미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うそ!(거짓말!)”
얼마나 당황했는지 스미레는 모국어인 일본어를 뱉었다. 그리곤 신유성과 해골을 번갈아서 바라봤다.
“괜찮은데?”
정작 머리카락의 주인인 신유성의 반응은 담백했다. 스미레는 해골을 보며 생각했다.
‘이, 이 분과 함께라면…….’
만약 신유성과 함께라면 스미레가 학년랭킹을 올리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때 마침 스미레는 시험에서 신유성의 파트너였다.
‘할 수 있어!’
자신의 힘에 흥분한 스미레는 평소와 달리 눈을 빛내며 꽈악- 신유성의 두 손을 잡았다.
“저, 저기! 죄송하지만 머리카락 10가닥만 괜찮으실 까요!?”
신유성은 첫 시험부터 괴짜에게 걸려버렸다.
* * *
한편. 본관 건물의 3층에서 스미레를 지켜보던 A반의 학생은 놀란 얼굴로 반을 향해 뛰어갔다.
“야! 다들! 속보! 속보!”
하지만 운이 안 좋았다.
A반에는 교외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김은아가 의자 대신 책상 위에 앉은 채, 건들거리고 있었다.
“……아 시끄럽게. 뭔데 오전부터 호들갑이야?”
김은아는 오늘도 여전히 신경질적이었다. 강자들이 널린 A반에서도 그녀의 히스테리는 악명이 높았다. 대처가 불가능한 전기 특성. 거기다 학년 랭킹은 무려 2위. A반의 학생들은 세븐넘버인 김은아의 비위를 맞추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 그게 아니고 신유성이…….”
“……신유성? 누군데 그게?”
김은아는 교외 활동으로 3일간 자리를 비운 탓에 신유성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였다. 결국 김은아가 인상을 찡그리자. 옆에 있던 학생이 재빠르게 신유성에 대해 설명했다.
“아 그, F반에 들어온 입학생인데. 권왕의 제자…….”
“허?”
김은아는 코웃음을 치며 살랑살랑 다리를 흔들었다. 권왕의 제자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도 신기한 일인데. 특성까지 F라니.
폴짝.
책상에서 내려온 김은아는 자신의 손위에 전기를 피워냈다.
직! 지지직!
“마침. 내일이 시험이지?”
그리고 짓는 장난스러운 미소.
아무래도 김은아는 신유성에게 제대로 흥미를 품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