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한국 최고의 아카데미.
가온의 학년 랭킹 1위. 누구나 입을 모아 말하는 최강의 1학년.
아델라 오르텐시아가 이미지 룸으로 입장했다. 쉬는 시간이지만 아델라는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배경. 랜덤.”
뼈까지 얼릴 듯 차가운 목소리.
아델라의 표정은 마치 로봇처럼 무감했다.
[배경은 들판으로 지정됐습니다.]
홀로그램이 배경을 만들어내자. 시원한 산들바람이 그녀의 은발을 아름답게 흔들었다.
“4급으로. 3마리.”
[대련 몬스터. 4급 난이도, 켄타우로스 3마리 설정.]
지직!
홀로그램이 만들어낸 건, 인간의 머리에 말의 신체를 한 괴수였다. 켄타우로스는 가녀린 아델라와 대조되게 장신의 키와 근육질의 몸을 자랑했다.
“크르응!”
“인간! 박살을 내주지!”
홀로그램이지만 켄타우로스의 위압감은 대단했다.
이미지 룸은 전투의 오감을 모두 구현한 공간. 켄타우로스가 돌진을 하자 바닥이 울렸다.
쿵쿵쿵!
아델라는 무감한 눈으로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쩍! 쩌저적!
그러자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아델라가 얼려버린 얼음의 세계에선 오직 그녀만이 자유로웠다.
쾅! 쾅! 쨍그랑!
얼어붙은 켄타우로스들은 세공된 조각상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약해.”
아델라가 말했다.
최강의 국가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최고라 칭하는 아카데미로 왔는데도.
“너무 약해…….”
그녀의 상대들은 너무 약했다. 그래서 아델라는 계속 공허했다. 신유성이 권왕의 밑에서 신체를 단련했다면. 아델라는 오직 특성만을 갈고 닦은 헌터였다.
그리고 그녀의 특성은 S등급.
아델라는 가온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최강의 헌터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가 없는 것도 당연했다.
[최고 점수를 갱신하셨습니다.]
아델라는 자신을 축하하는 기계음이 절대 반갑지 않았다.
[이미지 룸 - 1학년 기록]
[1등 - 아델라 오르텐시아]
[4급 괴수 3마리 총합 15000점]
무감하게 홀로그램 창을 끄려던 아델라는 흥미로운 이름을 발견했다.
[9등 - 신유성]
[3급 괴수 5마리 총합 10000점]
“……권왕의 제자?”
아델라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이긴 유일한 헌터. 권왕 유원학을 잊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신유성의 이름은 아델라의 입안을 맴돌았다.
“……신, 유성.”
F등급 특성을 가지고 F반에 입학했지만. 신유성은 수업을 들어 간지 하루만에 9위를 달성했다. 이건 단순히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델라는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신유성의 행보에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가 정말 권왕의 실력을 이어 받았다면…….’
그 증거로 아델라는 홀로그램에 적힌 신유성의 이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 *
포션학을 위한 채집 시간.
F반은 가온 아카데미의 부지 안에 있는 숲으로 실습을 나왔다.
“……도대체 뭐가 잡초고 뭐가 약초야?”
“다 비슷하게 생겼어.”
“으으, 꽃은…… 색깔이 똑같은 게 너무 많아.”
대부분의 학생들은 채집을 어려워했지만. 신유성은 붉은 꽃을 가리키며 이시우와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건 하이네스라는 꽃이야.”
“우와. 또 찾았네? 이것도 독성이 있어?”
이시우가 흥미로워하며 묻자.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평소에는 없어. 하지만…….”
신유성은 아까 채집했던 식물의 줄기에 하이네스의 꽃잎을 짓이겼다. 그러자 둘은 점점 끈끈해지며 보라색의 진액으로 변했다.
“이렇게 하지드의 줄기와 합치면 치명적인 식중독을 일으켜. 거의 하루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지.”
“와! 넌 도대체 이런 지식은 어디서 습득한 거야?”
이시우가 놀라서 묻자.
기억을 더듬던 신유성은 또 권왕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유성아, 헌터는 말이지! 잡학다식한 놈이 대성한다! 이렇게 쓸모 없어 보이는 약초 하나만 잘 알아도! 위급할 때 목숨을 살린다니까?]
당시 7살이었던 신유성은 권왕이 말한 약초를 채집하느라. 산의 이곳저곳을 동분서주했다. 대신 그때의 수련 덕분에 신유성은 약초와 독초에 관해선 졸업반 이상의 지식을 갖출 수 있었다.
“스승님한테 배웠어.”
“스, 스승님이라면! 권왕 유원학님!? 진짜 최고다!”
이시우가 눈을 빛내며 좋아하자.
지켜보던 학생들은 친해 보이는 둘을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소문보단 착한 거 같은데?”
“야, 대련장의 악마 몰라? D반에 주하진은 신유성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대! 얼마나 팼으면 그러겠냐?”
“죽도록 패긴 했지…….”
같은 반의 학생들은 모두 의문을 가졌다. 왜 이시우는 괜찮을까? 왜 이시우랑은 잘 지낼까? 신유성과 이시우를 번갈아보던 한 학생은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귀여운 사람은 괜찮은 거 아닐까? 왜 귀여운 거에 약한 사람도 많잖아.”
학생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스미레는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메모! 신유성은 귀여운 남자에게 약하다!]
귀여운 것이 귀여운 남자로 변했지만 스미레는 눈치 채지 못했다. 물론 당사자인 신유성은 대련장의 악마라는 별명에 이어 이상한 소문이 퍼지는 것도 모른 채, 이시우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스승님은 전투 이외에도 내게 다양한 걸 가르쳐주셨거든.”
“권왕님에게 직접 이것저것을 배우다니…….”
이시우는 자신의 일처럼 들떠하더니. 싱글싱글 웃으며 신유성에게 물었다.
“아, 맞다. 유성아! 시험 준비는 끝냈어?”
“……시험?”
신유성은 교장인 진병철의 말을 떠올렸다. 분명 학년랭킹에 관하여 언질을 주긴 했다.
‘그러고 보니 랭킹이 높으면 좋은 기숙사로 옮겨준다고 했지.’
물론 신유성에게 기숙사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비바람을 맞으며 동굴에서 자던 나날들에 비하면. 지금의 기숙사는 호텔에 가까웠다.
‘문제가 있다면. 기숙사가 아닌 외적인건데…….’
랭킹이 낮은 학생은 아카데미가 주는 페널티가 많았다. 교외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에 참여가 제한되고, 지금의 성적은 졸업 이후의 헌터 활동에도 중요했다.
‘스승님처럼 최강의 헌터를 노린다면. 아카데미의 성적은 기본이니까.’
실제로 권왕은 아카데미 시절. 국가 대항전의 대표로 출전한 적이 있었다. 상대는 다양했지만 결국 우승을 차지해,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그가 헌터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것도 그런 위업 덕분이었다.
이시우는 고민에 빠진 신유성을 보더니 장난스럽게 웃었다.
“에이! 너무 걱정하지 마! 대진 운도 중요하지만 네 실력이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받을 거야!”
“다른 학생들은 모두 시험 내용을 알고 있어?”
“음……. 정해진 건 없지만 대강은 비슷해. 지금까지 파트너는 시험이 시작하기 전날 알려주고. 종목도 늘 비슷했거든.”
신유성은 파트너라는 말에 난색을 표했다. 권왕은 헌터들의 강함을 누누이 강조했지만 적어도 F반에 학생들은 강함과 거리가 멀어보였다.
“파트너라…….”
시험의 파트너는 보통 반에서 가장 실력이 높은 학생. 그리고 가장 실력이 낮은 학생을 매치했다. F반에서 신유성은 독보적인 실력의 존재. 그러니 성적 최하위의 파티원이 신유성에겐 어울렸다.
가온 아카데미의 최하위는 랭킹이 없는 신유성을 제외한 209명 중 209등을 차지한 하나지마 스미레였다. 마침 당사자인 스미레는 신유성을 힐끔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파, 파트너…….”
* * *
오후 8시. 잠들기에는 이른 시각.
신유성은 기숙사에 들어와 낡은 의자에 앉았다.
삐그덕.
유리 너머에는 가온 아카데미의 부지가 보였고. 하염없이 내리는 비가 온 세상을 적셨다.
“……비.”
신유성은 5살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날도 이렇게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하지만 신유성을 차갑게 만든 건, 몸을 적시는 비가 아니었다.
[어차피 F등급 특성으로는 신오일가에서 버틸 수 없을 거다.]
신유성은 지금도 그 차가운 눈을 기억했다. 하찮은 것을 보듯 뼛속까지 얼어버릴 눈빛. 그건 절대 자식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신유성의 아버지였던 사람은 그 말을 끝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그리고 어머니였던 사람은 고아원의 원장에게 거금이 담긴 돈 가방을 쥐어주며 일축했다.
[차라리 헌터를 포기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신오일가는 헌터가 아닌 비 능력자는 참아도, F등급이라는 불명예는 참지 않았다. 특성을 검사 받을 수 있는 나이 5살. 신유성은 그렇게 버려졌다.
하지만 권왕은 달랐다.
유원학은 신유성을 본 첫날 이렇게 말했다.
[꼬마! 정말 엄청난 재능을 타고 났구나!]
F급 특성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신유성에게 호탕하게 웃으며 덧 붙였다.
[어때 내 제자가 되어 최강의 헌터가 되어보지 않으련?]
그날은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신유성의 발에는 굵은 빗물이 뚜욱- 뚝 떨어졌다. 5살의 나이. 아이러니하게도 신유성은 재능 때문에 버림받고, 재능 덕분에 선택 받았다.
“……신오일가.”
회상에 빠져있던 신유성이 입을 열었다. 그리곤 천천히 유리로 된 베란다의 문을 열었다.
쏴아아아!
비는 억수 같았다.
물론 5살의 신유성과 지금의 신유성은 다른 인물이었다. 이젠 신오일가의 일원도 아니었고. 고아원에 버림받은 5살도 아니었다.
“난…….”
신유성은 권왕의 유일한 제자였고.
최강의 자리를 노리는 어엿한 헌터였다. 자신을 버렸던 신오일가. 자신을 택해준 권왕. 그리고 등급으로 헌터를 박해한 세상의 모두에게 신유성은 자신의 존재를 통해 증명하고 싶었다.
“최강이 된다.”
가온 아카데미는 신유성에게 목표로 향하기 위한 계단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