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1학년-D반]
나노머신의 치료로 주하진의 겉은 멀쩡했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았다.
‘……그 실력 정말 권왕의 제자가 맞았어.’
주하진은 신유성의 움직임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신유성이 자신과 같은 학생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S등급도 아니고 F등급 특성으로 그런 실력을 발휘하다니…….’
그렇게 주하진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 D반의 학생들은 스크린을 보며 환호했다.
[반대항전 대진표]
[D반 VS F반]
[승리 팀에게는 30SP 지급]
“오케이! 좋았어! F반이다!”
“30SP를 어디다 쓰지? 외출권?”
“승리는 껌이겠네! 오케이! 시험만 잘 보면 되겠다!”
학생들은 반대항전의 상대로 최약체라 불리는 F반을 만나게 되어 기쁜 모양이었다. 실제로 F등급 스킬을 가진 F반은 누구나 인정하는 최약체 반이 맞았다.
하지만 신유성에게 호되게 당한 주하진은 땀을 흘렸다.
‘F반? 우리 상대가 F반이라고?’
주하진은 신유성에게 두드려 맞았던 공포를 잊지 않았다. 설령 머리가 잊더라도 몸은 분명히 기억했다. 그 증거로 주하진은 다리를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거, 거기는 그 자식이 있잖아!’
마침 주하진의 생각이라도 읽은 듯 누군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야 근데 F반에는 입학생이 들어왔잖아. 괜찮을까?”
“권왕의 제자? 에이! 아무리 강해도 그래봤자! 혼자인데! 얼마나 버티겠어?”
옆에 있던 여학생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후후 하고 웃었다.
“그건 그렇지~ F반의 떨거지들을 데리고 지가 별 수 있겠어?”
신유성의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주하진에게 모였다. 아까 말했던 여학생은 직접 와서 묻기까지 했다.
“하진아~ 넌 어떻게 생각해?”
“나, 나? 당연히 D반이 이기지! 말이라고 하냐?”
주하진은 자존심 때문에 큰소리를 쳤지만. 속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아, 아무리 그 자식이라도…… 물량은 못 버티겠지? 아니, 그 실력이면 전부 박살낼지도 모르지 않나?’
물론 자존심이 강한 주하진은 여전히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아, 생각해보니까 억울하네! 방심만 안 했어도! 무승부까진 가능했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하진의 머릿속에는 계속 신유성이 맴돌았다.
‘지금 그 자식은 뭘 하고 있지?’
기숙사 배정? 시험 준비?
뭐가 됐든 신유성이 반대항전에 나오지 말길 바라며 주하진은 진심으로 기도했다.
* * *
가온 아카데미의 부지.
신유성의 안내를 맡은 남자의 이름은 이시우였다. 키는 한 뼘이나 작지만 이시우는 기세 좋게 신유성을 끌고 다녔다.
“여긴 트레이닝 룸! 우리 가온 아카데미는 시설도 좋아서. 어지간한 훈련은 여기서 다 할 수 있어!”
“고마워. 사용법은?”
“시설에 관한 건 기숙사에 들어가면 매뉴얼이 있을 거야.”
이시우가 자신을 바라보며 부담스럽게 눈을 빛내자. 신유성은 떨떠름하게 웃었다. 그러자 이시우는 한걸음 더 다가오며 질문을 던졌다.
“더 궁금한 건 없어?”
“트레이닝 룸은 이제 됐어.”
“그래? 그럼!”
이시우는 갈색머리를 흩날리며 다시 신유성을 이끌었다.
그 다음 순서대로 늘어진 7개의 건물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 아카데미는 반마다 건물이 달라. 저기~ 끝이 S반이고 우리 앞에 있는 게 F반.”
신유성이 한참을 말도 없이 건물을 바라보자. 이시우는 은근슬쩍 신유성의 옆으로 다가와 F반의 건물을 가리켰다.
“실은 네가 와서 다들 엄청 기대하고 있어. 이번 시험이 끝나면 곧 이어서 바로 반 대항전을 해야 하거든…….”
“반 대항전이라면…….”
“말 그대로 반끼리 승부를 하는 거야. 그거 때문에 F반의 분위기가 거의 초상집이야.”
이시우의 말에 신유성은 더 묻지 않았다. F반의 학생들은 전부 F급 랭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신유성처럼 규격외의 학생이 없는 이상 어떤 반도 이기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F반에 들어온 신유성은 학생들에게 희망이었다.
“뭐, 너무 부담가질 필요는 없어. 반 대항전을 이기는 건 다들…… 포기한 상태니까.”
그렇게 말한 이시우가 씁쓸한 표정을 짓자. 신유성은 위로 대신 짤막한 대답을 뱉었다.
“걱정하지 마. 최선을 다할게.”
F반에 들어온 신유성은 자그마치 권왕의 제자. 그런 신유성이 진심을 다하면 어떤 실력을 보일지는 미지수였다.
이시우는 은근히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표현하는 대신 신유성을 바라보며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그래~ 잘해보자!”
말을 끝낸 이시우가 손을 내밀자.
신유성은 한참 동안 그 손을 쳐다봤다.
“좋아.”
꽉.
신유성이 이시우와 악수를 했다.
고아원을 벗어난 5살부터 이어진 12년의 수련. 신유성이 지금까지 가진 관계는 권왕과의 사제지간이 전부였다. 그런 신유성에게 이시우는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악수를 끝낸 신유성은 이시우와 기숙사를 향해 걸으며 생각에 빠졌다.
‘……반 대항전인가.’
반 대항전은 학년랭킹과 크게 관계가 없었다. 최강을 목표로 하는 신유성에겐 그다지 중요한 이벤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한 달 전 권왕과 나눴던 대화를 기억해냈다.
[유성아!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무조건 튀어라!]
[도망치란 말씀인가요?]
[아니 돋보이라고 이놈아! 남들 관심을 팍팍 끌란 말이다!]
[이유가 있나요?]
[당연히 있지! 생각이 있으면 머리를 좀 해봐라!]
신유성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권왕 유원학은 이마를 짚으며 설명을 덧 붙였다.
[아카데미에 같은 교복을 입은 놈들만 좌르륵 있을 텐데! 얌전을 떨고 있으면 현역들이 관심을 주겠느냐? 얼굴이라도 비춰야! 뭘 하나라도 더 얻어먹지!]
[인지도가 중요하단 말씀이시죠?]
[그래! 학생 때부터 돈도 잘 벌고 영약도 잘 줍고 아티팩트도 잘 얻으려면~ 인지도가 최고다!]
권왕의 말처럼 인지도만 잘 쌓으면 학생들도 억 단위의 돈을 만지게 해줬다. 이벤트 전에 참여해서 아티팩트나 영약을 얻는 것도 가능했다.
회상을 마친 신유성은 이번에는 계산에 빠졌다.
스승인 권왕이 입이 닳도록 말했던 최강의 헌터. 비록 늘 겁을 주긴 했지만 신유성의 목표도 스승과 같이 최강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세계에서 최강으로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국가 대항전의 대표로는 뽑혀야해.’
그러기 위해선 단순히 강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국가 대항전의 대표는 당연히 국민들의 투표로 정해진다. 표를 받으려면 인지도는 필수였다.
‘스승님은 헌터들도 인지도가 중요한 시대라고 하셨어.’
세상은 엔터테이먼트의 시대.
반 대항전 같은 소소한 이벤트도 섣부르게 내줄 순 없었다. 계산을 마친 신유성은 자신의 기숙사 문을 열었다.
끼이익!
낡은 나무 가구와 몇 년 전 물건인지도 모를 가전제품. 최하위권 기숙사의 시설은 상상을 초월했다.
옆에 있던 이시우는 민망한지 괜히 웃었다.
“……우, 우리 학교가 차별이 좀 심하지?”
그렇지만 신유성은 여유로운 웃음으로 답했다.
“괜찮은데?”
사실 12년을 지옥 같은 수련을 하며 버틴 신유성에겐 이 정도의 시설도 충분했다. 그리고 주하진의 실력을 보니 학년 랭킹을 올리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진 않았다.
‘그동안은 이정도 시설로 충분해.’
* * *
신유성이 입학을 한 다음날.
1학년 F반의 학생들은 모두 트레이닝 룸으로 모여 있었다.
“오늘 대련하는 날 아니었어?”
“뭐래, 오늘 이미지 룸 하는 날이잖아. 멍청아.”
따로 지시가 없어 학생들이 웅성거리자. 황금색의 치파오를 입은 남자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반갑다. 다들 처음이지? 난 린샤오다.”
교관 대신 처음 보는 남자가 들어오자. 학생들은 당황했다. 오늘이 첫 교육인 신유성은 웅성거림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때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저, 오늘 명오 선생님 수업 아닌가요?”
린샤오는 그 질문에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이제 아니다. 그분은 중국으로 스카우트를 받아 아카데미를 떠나셨거든.”
린샤오의 대답에 학생들이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다. 그러자 린샤오는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만! 원래 세상이 그렇다. 돈이 전부지. 다만 아이러니한 점은 난 중국의 마천루에서 한국의 가온 아카데미로 스카우트를 받았고. 그분은 반대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떠났다는 점이겠지.”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린샤오는 중국인이었다. 물론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한국이 헌터 강국이 되면서 제1외국어로 한글을 뽑는 나라는 많았다.
린샤오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그의 짙은 눈썹이 더욱 강조됐다.
“하나같이 덜 떨어져 보이는 얼굴이군. 너희에게선 아직 젖비린내가 풀풀 풍긴다. 헌터로 보이는 사람이 하나도…….”
그때 말을 하던 린샤오의 시선이 신유성에게 고정됐다.
“자네는 이름이 뭐지?”
“신유성입니다.”
“괜찮은 몸을 가지고 있군.”
린샤오는 슬그머니 신유성에게 다가와 몸의 이곳저곳을 만지더니 진심으로 감탄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마음에 드는 군!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어!”
린샤오는 신유성이 권왕의 제자라는 사실은 몰랐지만. 그럼에도 단련된 몸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신유성이라고 했나? 자네가 먼저 하지! 이미지 룸의 난이도는 어디까지 깨봤나?”
린샤오의 질문에 옆에 있던 이시우는 신유성을 보호하기 위해 번쩍 손을 들었다.
“유성이는 어제 입학을 해서 이미지 룸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린샤오는 이시우의 이야기에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말이 사실인가?”
“네 사실입니다.”
신유성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린샤오는 건들건들 뒷짐을 지고 걸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자신이 어느 정도 레벨인지는 알 것 아닌가? 가령 2급 괴수 두 마리 정도는 잡을 수 있다거나?”
신유성은 잠깐 생각에 빠지더니. 손가락 3개를 폈다. 린샤오는 피식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다른 반도 아닌 F반의 학생이 3급 괴수를 잡겠다는 이야기인가?”
“네 3급 괴수라면 5마리 정도까진 거뜬합니다.”
신유성의 대답에 린샤오는 다시 미간을 좁혔다.
“허세가 심하군. F반이 3급 괴수를 5마리나 잡겠다고?”
F반은 F급 특성을 가진 학생들이 모이는 반. 린샤오는 그런 F반의 학생이 그렇게 높은 난이도를 클리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
그러자 신유성은 여유로운 얼굴로 장발의 머리를 묶었다. 그리곤 이미지 룸의 입구에서 린샤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직접 증명하겠습니다.”
신유성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타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