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한국의 헌터협회 지부.
일명 스카이 타운에는 헌터들 중 최정상이라 불리는 고수들이 회의를 위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 중 안경을 쓴 남자는 거대한 스크린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게 이번 년도에 배포할 아티팩트들의 목록입니다.”
[영약:만년빙정]
[무기:은월검]
[의상:흑룡포]
[…….]
그러자 검은색 안대로 눈을 가린 남자가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건방진 자세로 건들거렸다.
“아~ 이번이 중국 차례라고 했나? 확실히 돈이 좋긴 하네. 아티팩트들 목록이 번쩍번쩍한데?”
옆에 있던 미녀는 기분이 좋은 듯 고혹적이게 웃었다. 옆이 트인 차이나 드레스로 비친 다리와 육감적인 몸매는 모델을 방불케 했지만. 그녀는 최상위권 헌터였다.
“만년빙정. 은월검. 흑룡포. 후훗, 모두 신비급에 해당하는 아티팩트입니다. 이번에는 힘 좀 썼죠.”
신비 등급은 국가에서도 주목하는 귀한 아티팩트였다. 옆구리에 검집을 찬 남자는 목록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과연 누가 차지하게 될지 궁금하군…….”
안대를 쓴 남자는 피식 웃었다.
“이번에도 S급 A급 특성들이 쓸어먹겠지. 난 솔직히 우리 아델라를 응원하지만 말이야. 걘 천재 중의 천재라니까?”
아델라 오르텐시아.
명문 중의 명문인 가온 아카데미의 학년 랭킹 1위. 아직 1학년인데도 독보적인 실력을 가진 학생. 기업은 물론이고 고위급 헌터들 중에서도 아델라를 탐내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 혼자 해낼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권왕. 전설이라 불린 그의 제자가 가온 아카데미로 왔는걸요?”
아무래도 미녀는 K채널이 방영한 신유성의 영상을 본 모양이었다. 옆에 있던 안대를 쓴 남자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원학 그놈이 별난 놈이긴 하지. 말도 안 되게 센 것도 그렇고. F급 특성을 제자로 삼은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괴짜야.”
검을 찬 헌터는 권왕이 굳이 F급 특성 보유자를 제자로 택한 게 의문인 모양이었다.
“이름이 신유성이라고 했나? 권왕이라면 엄청난 재능의 학생들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을 텐데. 왜 그 아이로 정했지?”
“그야 당사자만 알겠죠.”
미녀가 은은하게 웃자.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백발의 노인이 입을 열었다.
“껄껄……. 다들 아직 익지도 않은 과실에 너무 관심을 두지 마시게.”
백발의 노인은 한국 협회의 회장인 강유찬이었다. 지금처럼 자본주의가 점철된 헌터계가 아닌, 다사다난했던 헌터계에서 최강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었다.
거기다 협회장 강유찬은 권왕 유원학과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사이. 그래서 은둔했던 권왕이 제자를 발표했을 때는 내심 기뻐했다.
“우리 원학이라면 분명 괴물을 만들었을 게 분명하네. 적어도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는…….”
협회장인 강유찬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실눈 사이로 비치는 눈동자에는 힘이 가득했다.
“기다려 보세나.”
헌터협회는 신비급 아티팩트를 걸고 세밀하게 판을 짜고 있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학생들을 양성한다.] 정도였지만. 내부의 이유는 달랐다.
[아카데미 국가 대항전]
위 이벤트는 각 국가의 자존심을 건 대표 선발전으로 이 대회를 통해 국가 간의 순위를 매기고, 최고를 가려내기 위함이 진짜 목표였다.
그로 인해 창출될 국가와 기업의 이미지 상승. 부가적인 수입은 무궁무진했다.
헌터의 힘은 곧 국력.
각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보여주며, 국가의 미래를 자랑하는 이벤트가 지금 준비 중인 [아카데미 국가 대항전] 이었다.
협회장인 강유찬은 한국의 대표 멤버로 어떤 학생들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보 중에는 신유성도 있었다.
아직은 미약한 관심이지만 한국의 최고가 시선을 준 것이다.
* * *
가온 아카데미의 교장. 진병철.
그는 한잔이 몇 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녹차를 따르며 신유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에는 꿀이 뚝뚝 떨어졌고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아이고! 역시는 역시구만! 권왕! 유원학님의 제자답게 아주 완벽한 실력이었네!”
진병철은 녹차를 권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난 처음부터 자네를 믿고 있었네! 권왕의 제자에게 D반 학생 정도는 아주 간단하지!”
완벽한 실력 지상주의. 가온 아카데미의 교장이 실력자를 홀대할 이유는 없었다. 특히 요즘은 라이벌 아카데미의 기세도 만만치 않아서 더욱 그랬다.
“일단 입학을 축하하네! 문제는 기숙사를 배정해줘야 하는데…….”
진병철은 헛기침을 하며 신유성의 눈치를 살폈다.
“문제라도 있나요?”
신유성은 녹차에 손도 가져다대지 않고 조용히 물었다. 진병철은 빈 머리를 긁적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반이랑 기숙사의 문제인데 말일세. 우리 아카데미는 실력이 아니라 특성의 등급으로 반을 나누고 있다네.”
진병철의 말이 맞았다.
S등급 특성은 S반.
A등급 특성은 A반.
그런데 신유성의 특성은 F등급. 즉 가온 아카데미에서 가장 최악이라고 불리는 F반에 속해야했다.
“교장인 내가 말하긴 그렇지만. F반은 수준이 자네에게 많이 낮을 걸세. 사실 마음 같아선 다 자르고 싶지만 정부의 할당량 때문에……. 아! 물론 자네는 제외라네 허허!”
진병철이 눈치를 보며 과할 정도로 주절거리자. 신유성은 괜찮다며 웃었다.
“괜찮습니다. F반으로 해주십시오.”
“아 괜찮겠나? 하하! 그럼 다음 문제는 기숙사인데 말이야…….”
문제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가온 아카데미는 학년 랭킹. 즉 성적에 따라 기숙사를 분배했다. 그래서 1위부터 10위. 11위부터 20위로 10위마다 쓰는 기숙사의 시설이 달랐다. 학년 랭킹이 높은 사람에게 좋은 기숙사가 주어지는 것이다.
물론 심각할 정도의 실력지상주의에 반대의견도 많았지만. 1위를 유지한 가온 아카데미의 성적이 모든 반대를 불식시켰다.
그건 교장인 진병철도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진병철은 다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는 최하위 기숙사를 배정 받았네.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아직 마땅한 시험 성적이 없어서 말이야. 도중에 입학하는 게 그리 많은 케이스도 아니고…….”
신유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괜찮습니다. 맹수들을 피해 나무 위에서 잔적도 많은 걸요.”
진병철은 신유성의 말을 유머로 받아들였는지 폭소를 터트렸다.
“크하하! 그래! 맞네! 나무보다는 우리 기숙사 침대가 낫지! 아 참고로 재질은 나무랑 같은 원목 일세!”
결국 지금의 대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실력에서 증명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 신유성이 궁금한 건 그런 부분이 아니었다.
“그…… 전에 싸웠던 학생은 학년랭킹이 어느 정도인가요?”
“주하진 말인가? 음…… 그래도 D반에선 강한 편이라고 보고를 받았으니. 한 210명 중…… 100위 정도가 아닐까 싶네.”
“그럼 1학년의 절반 이상이 그 학생보다 약한 건가요?”
신유성의 질문에 진병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련의 경우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신유성은 교장의 대답에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박살나며 혼란에 빠졌다.
‘아, 아니 분명 스승님은 가온 아카데미가 한국의 최고라고…….’
그런 학교의 학생들 절반이 오늘 이겼던 주하진보다 약하다니. 신유성은 스승의 말을 다시 곱씹었다.
[유성아! 세상에는 나보다 강한 헌터들이 널렸다!]
하지만 오늘 본 주하진은 권왕인 유원학이 나선다면. 하품으로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더 강한 헌터는 없나요?”
당황한 신유성이 다급하게 묻자. 진병철은 크하하 웃었다.
“왜 없겠는가! 주하진보다 강한 학생은 널리고 널렸지! 특히 학년 랭킹 7위부터는 세븐넘버라고 불리는데! 다른 학생들과 실력의 수준이 다르네! 우리 학교의 자랑이지!”
신유성은 그제야 편안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렇군요. 세븐 넘버…….”
“오! 관심이 있는 건가? 역시 권왕님의 제자! 야망이 있군!”
이전 대련으로 진병철이 신유성에게 가진 호감은 엄청났다.
‘……역시 권왕의 제자! 아직 섣부르긴 하지만. 잘만 키우면 대항전에 참가 시킬 수도 있겠어!’
만약 신유성이 대항전에서 우승이라도 해서 아티팩트를 얻어온다면. 실력지상주의인 가온 아카데미에서 그보다 큰 명예는 없었다.
진병철이 흑심을 가지고 흐뭇하게 웃자. 신유성은 아름답게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교장 선생님은 좋은 분이었어. 정말 다정해.’
‘이대로만 해라 이놈아! 후후!’
그야말로 동상이몽.
진병철은 사람 좋게 웃으며 신유성의 등을 두드렸다. 정말 신유성이 권왕급의 잠재력을 가졌다면 중국의 대표로 나올 ‘그 학생’을 꺾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중국에는 그 남자의 제자가 있다. 이미 시드권을 확보한 최상의 실력자……. 검신의 제자!’
한국에 권왕이 있다면 중국에는 검신이 있었다. 둘은 언제나 최강의 자리를 두고 경쟁을 하던 라이벌이었다.
‘……이젠 제자들이 그 승부를 이어가는 건가.’
진병철은 상상만으로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탁.
진병철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문을 가리켰다.
“자 그럼 이제 자네도 어엿한 가온 아카데미의 학생이니! 소개를 위해 안내역을 붙여주겠네!”
“안내역이라면…….”
안내역이라는 말에 신유성이 의아해하자. 진병철은 자상하게 웃으며 신유성을 문까지 인도해줬다.
“허허, 자자 따라오게. 지금쯤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걸세.”
“아, 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아무래도 학교의 시설을 설명하려면 기숙사와 반이 같은 학생이 좋을 거 같아서 말이야. 안내역은 F반에 최하위 기숙사인 학생으로 불렀네.”
F반. 그리고 최하위 기숙사.
그 말은 안내역을 맡은 사람이 학년랭킹 바닥을 찍고 있는 하위권 학생이라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진병철의 말처럼 교장실의 앞에는 한 남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학생은 신유성을 보자마자 스타라도 만난 듯 눈을 빛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오오! 안녕! 반가워! 저기 너만 좋으면 유성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헤헤, 아니 너무 친한 척하는 듯 보이려나?”
마치 강아지가 떠오르는 행동.
남학생은 환하게 웃으며 말을 덧 붙였다.
“그래도 너무 영광인 걸! 우리 F반에 대련장의 악마가 들어오다니!”
가만히 듣고 있던 신유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대련장의 악마? 그게 뭔데?”
“응? 그게 네 별명인데?”
웃고 있는 남학생의 대답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자. 신유성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