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가온 아카데미의 교장실.
교장인 진병철은 책상에 앉아. 흐뭇한 표정으로 신유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학, 아니, 아니지! 그, 권왕님이……. 직접 키운 제자라지?”
가온은 실력이 곧 학생의 가치인 실력지상주의 아카데미. 진병철은 신유성이 권왕의 제자라는 사실에 노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럼 특성도 엄청나겠군! 권왕님도 S등급의 특성을 가지셨으니 말이야! 아카데미를 다니지 않는 동안 잘 갈고 닦았을 테고! 헛헛! 얼른 말해보게!”
교장인 진병철이 기대를 가지며 묻자.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금껏 특성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허, 헛! 그, 그게 무슨 말인가? 헌터라면 당연히 특성을…….”
진병철의 말은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그 상식은 신유성에게 통하지 않았다. 진병철은 자신의 빈 머리를 긁적이더니 다시 물었다.
“그래서 특성의 등급은 알겠지? 측정은 받았을 거 아니야?”
하지만 신유성은 또 다시 고개를 저었다.
“F급입니다.”
“뭐, 뭐라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진병철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이번에도 권왕에게 제대로 당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현역 때도 그렇게 날 괴롭히더니 이젠 이딴 불량품까지 맡겨?’
교장인 진병철은 아까 전까지 보여준 자상함은 온데간데없이 신유성을 노려보며 책상을 내려쳤다.
“아니 무슨! 권왕의 수제자가 F급 특성이란 말인가! 나랑 지금 장난하는 가?”
“하지만 스승님께선 늘 특성에 의지하지 않는 헌터가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신유성은 당황하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지만. 진병철은 듣기 싫다는 듯 훠이훠이 손을 저었다.
“누가 그딴 개소리를! 당장 네 스승인 권왕만 해도 S등급 특성을 가진 헌터였는데!”
길길이 날뛴 진병철은 신유성을 못 마땅하게 바라봤다.
“그냥 여기서 특성을 체크해줄 테니. 손이나 내밀어 봐.”
순순히 신유성이 손을 내밀자. 진병철은 기계에 달린 바늘로 신유성의 손끝을 콕 찔렀다.
뚝.
한 방울의 피가 바늘의 끝에 맺히고. 곧이어 기계의 스크린에 신유성의 특성이 표시됐다.
[등급:F]
[특성: 집중력 강화]
[효과: 부여한 마나만큼 집중력을 증가합니다.]
진병철은 충격적인 결과에 이마를 짚었다.
“유원학! 이놈이! 또 날 속여! F등급 특성을 자기 제자라고!”
곧이어 길길이 날뛰는 진병철.
신유성은 말없이 그런 진병철을 바라봤다.
‘과연 아카데미……. 역시, 난 헌터를 하기 모자란 건가?’
진병철의 분노는 괜히 신유성에게 튀었다. 정부의 할당량 때문에 F등급들을 억지로 뽑아둔 것도 억울한데. 그런 F등급의 숫자까지 늘어나는 게 진병철은 못 마땅했다.
‘날 속인 게 더 괘씸해! 이번에는 도움이 되려나 싶었더니! 이놈이 또 떨거지!’
진병철은 억지로 분노를 삭이더니. 신유성에게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카데미에 입학하려면. 내가 요구하는 조건을 통과해야 하는데. 자네가 할 수 있겠나?”
신유성은 그야말로 낙하산.
지금 신유성의 입학은 순전히 진병철의 손에 달려 있었다.
“네 얼마든지요.”
선택지가 없는 신유성 공손히 답하자. 진병철은 비릿하게 웃었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그냥 간단한 대련일세. 내가 정해주는 학생을 대련에서 이기면 입학을 허락하지. 어때? 하겠나?”
신유성의 특성은 F등급.
그런데도 교장인 진병철은 신유성을 D등급 특성을 가진 학생과 대련을 붙일 생각이었다. 특성이 곧 실력은 아니었지만 헌터에게 특성은 무시할 수 없는 지표였다.
“대련…….”
제안을 들은 신유성이 생각에 빠졌다. 스승인 유원학이 말했던 헌터들을 떠올리면 신유성은 저절로 풀이 죽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선택지는 없었다. 자신이 동경했던 헌터가 되려면 신유성은 아카데미를 졸업해야했다.
결국 생각을 마친 신유성은 교장인 진병철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외쳤다.
“하겠습니다!”
* * *
[1학년-S반]
한국에서 최정상이라 불리는 가온 아카데미의 엘리트 반. 물론 반의 멤버가 실력 순으로 나누어진 건 아니었다. 가온 아카데미에선 오로지 특성의 등급에 따라 반이 정해진다.
물론 그렇게 강한 S등급 특성을 가진 엘리트 반에도 정점은 있었다.
1학년의 학년랭킹 1위.
그녀의 이름은 아델라 오르텐시아. 빛이 나는 단정한 은발에 마치 얼음 같은 인상의 소녀였다.
“……권왕의 제자?”
실력이 전부인 가온 아카데미에서 아델라는 모든 학생들의 정점에 있었다. 내놓으라하는 S반에서도 아델라의 위치는 독보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한마디를 뱉자. 옆에 있던 학생들은 과잉된 충성심을 보이며 우르르 대답을 했다.
“관심 있어? 아델라?”
“혹시 우리가 알아볼까?”
“그렇게 강하진 않을 걸? 상대를 D반에서 찾는다던데…….”
학생들의 쏟아지는 이야기에도 아델라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턱을 괸 채, 고고한 표정으로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권왕. 우리 할아버지를 이긴 유일한 헌터.’
아델라는 흥미가 돋았지만 이내 눈을 감았다. 그리곤 옛 생각에 잠겼다. 이탈리아에서 먼 한국까지 날아와 가온 아카데미에 입학한 건, 그녀 할아버지의 영향이었다.
- 아델라. 내가 본 최강의 헌터는 한국에 있었다. 너도 정점의 자리를 원한다면! 한국으로 가라!
그렇지만 천재 중의 천재인 아델라에겐 한국의 최고라는 가온 아카데미도 너무 시시한 무대였다. 학년 랭킹 1위인 그녀의 전적은 무패(無敗). 1학년 중에선 완전무결한 정점이었다.
‘할아버지가 말했던 권왕의 실력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이곳까진 알아서 올라오겠지.’
그래서 아델라는 관심이 없었다.
진짜 소문의 입학생이 권왕의 제자고, 그만한 실력을 가졌다면. 그때 실력을 시험 해보면 될 일이었다.
* * *
[1학년-D반]
권왕의 제자.
신유성이 입학한다는 소문은 낮은 등급의 반에선 더더욱 빨리 퍼지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의 학생은 들뜬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이기면 50SP를 준다고!?”
SP(School Point)는 학교의 상점 제도의 연장선이었다. 그런데 교장인 진병철은 신유성을 이긴 학생에게 50SP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모두가 탐을 낼만한 상품.
학생들의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다.
“와 시발……. 그럼 외출권이 몇 장이야?”
“10장? 와…… 내가 나가볼까?”
“이것들이 미쳤나. 권왕의 제자를 어떻게 이기게?”
“야 근데 못 들었냐? 입학하는 애 특성이 F등급이래.”
“뭐? F등급? 실력 나름이겠지만 그 정도면 완전 공짜 아냐?”
끼이익! 쾅!
학생들의 이야기에 한 학생이 발로 책상을 밀쳤다.
저벅저벅.
그리고는 이야기의 중심지인 교탁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권왕의 제자가 특성이 겨우 F등급이라고?”
“어, 어어 하진아……. 그, 그렇다던데.”
주하진.
그는 D반에서 제법 학년랭킹이 높은 편이었다. 랭킹이 낮은 학생들은 주하진을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어정쩡하게 웃었다. 주하진은 그게 마음에 드는지, 옆 학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한 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뭐야. 이상하잖아.”
“그, 그렇지?”
“어, 존나 이상해. 그 새끼가 사기꾼이거나, 권왕이 치매에 걸린 퇴물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안 그래?”
주하진은 옆 학생의 등을 팡팡- 소리가 나게 두드리며 책상에 붙어있던 공고문을 떼 내어버렸다.
“대련은 내가 참가한다. 혹시 불만 있으면 나랑 한판 붙고.”
학생들은 50SP가 탐나긴 했지만 주하진에게 맞설 용기는 없었다. 물론 D반에 주하진보다 랭킹이 높은 학생들도 존재는 했지만. 그들은 교외활동을 위해 파견을 간 상태였다.
결국 상황을 모두 정리한 주하진은 공고문을 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이 사기꾼을 어떻게 패주지?”
* * *
신유성은 가온 아카데미를 둘러보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여긴 정말 크군.”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바다 위에 세워진 인공섬의 크기는 도시에 필적했다. 가온 아카데미가 정부에게 얼마나 많은 지원을 받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헌터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오락이 되며, 돈이 됐다. 시민들도 기업들도 모두 강한 헌터를 원했다.
몬스터들의 부산물은 돈이 되고. 기업들은 헌터들의 좋은 이미지를 앞세워 자신들을 어필했다.
“……물론 스승님은 그런 헌터들을 가짜라고 싫어하셨지만.”
산책로를 걷던 신유성은 홀린 듯 숲으로 들어갔다. 가온 아카데미의 숲은 거대한 부지만큼 아름답고 넓었다. 신유성은 흡족해하며 자세를 잡았다. 스승을 만나고 12년 중 신유성은 단 하루도 수련을 쉰 적이 없었다.
마침 아카데미는 수업중이라 어떤 학생들도 돌아다니지 않았다. 적어도 신유성이 있는 숲은 고요했다.
‘몸을 풀기 딱 좋겠어.’
신유성이 눈을 감았다.
사실 자신은 몰랐지만 신유성은 은연중에 특성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신유성의 특성 [집중력 강화]는 F등급답게 별 볼일이 없었지만. 신유성처럼 무(武)를 수련한 헌터에겐 그 효과가 남달랐다.
신유성이 집중을 하자 온 감각이 새롭게 깨어났다. 숲을 지나는 바람의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고, 미세한 피부의 떨림과 자신의 숨결조차 생생하게 느껴졌다.
신유성은 특성 덕분에 세밀해진 감각으로 몸 전체의 마나를 손에 집중했다.
‘모았던 마나는 오롯이 한 점에 방출한다.’
눈을 감은 신유성이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투신류 폭룡암쇄장(暴龍巖碎掌)
탁.
신유성의 손바닥이 거목에 닿자. 파괴적인 마나는 나무에 거대한 구멍을 뚫었다.
기이이익! 쿠웅!
뿌리 근처가 뻥 뚫린 나무는 결국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 충격은 한 바탕 돌풍을 만들며 거대한 먼지바람을 휘날렸다.
“이 정도인가.”
신유성은 쓰러진 나무를 아무렇지 않게 바라봤다. 신유성의 스승이자 권왕이었던 유원학이라면 이 정도 나무는 한 손가락으로도 부숴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신유성에게 이 정도 수련은 상식이었다.
“시작부터 실전 대련이라니…….”
신유성은 한숨을 내쉬고 시선을 대련장 방향으로 돌렸다.
‘상대의 특성이 D등급이랬지?’
신유성은 교장이 말한 상대가 누군지는 몰라도. F등급 특성인 자신보다 훨씬 높은 D등급 특성의 보유자라는 걸보면 상대가 엄청난 강자라고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특성과 재능이 낮더라도. 결국 목표를 이루려면 정진할 수밖에 없어.’
신유성은 누구보다 포기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권왕의 밑에서 죽도록 수련을 하며 강인해진 정신 때문이었다.
“그럼 슬슬 가볼까.”
구음절맥.
극양지체.
지구상에 없던 재능과 최악의 특성이라는 F등급의 조합. 신유성은 거창한 몸 풀기를 마치고. 대련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