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 아웃브레이크(Outbreak) 이후 평화로웠던 세상은 바뀌었다.
던전, 게이트, 탑, 몬스터 등 상상도 못한 적들이 인류를 위협했고, 많은 희생자들을 낳았다.
물론 그렇다고 인류가 끝이 난 건 절대 아니었다. 인류에겐 특별한 능력이 주어졌다.
“그게 바로 헌터에게 주어지는 축복. 특성이지! 하지만!”
침을 튀기며 말을 잇던 백발의 스승. 유원학은 눈에 불을 키며 주먹으로 땅을 내려쳤다.
쩍쩌저저적!
유원학의 주먹질에 진동과 함께 땅이 갈라졌다. 유원학은 5살에 불과한 신유성에게 씩- 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노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요새 헌터들은 글러 먹었어! 아주 특성만 믿고 까불다가 던전에서 뒤진단 말이지!”
꿀꺽.
신유성은 대답 대신 입을 꾹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원학은 그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헌터가 던전에서 비명횡사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권왕(拳王) 유원학의 질문에 5살의 신유성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곤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히, 힘?”
“크, 크하하하하!”
신유성의 대답에 유원학은 미친 듯이 웃었다. 그리곤 신유성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래 힘! 헌터에게 믿을 건 순수한 신체다! 자고로 헌터라면 압도적인 힘으로 한 주먹에 상대를 으깨버려야지! 그게 빌런이든 몬스터든 말이다!”
유원학은 신유성을 땅에 내려다놓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내가 널 고아원에서 데려온 이유다. 넌 최고의 신체를 타고 났거든.”
유원학의 말이 맞았다. 신유성은 그야말로 신이 내린 축복받은 체질을 타고 났다.
첫 번째는 구음절맥(九陰絶脈).
유원학은 신유성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네가 타고난 구음절맥은 몸에 마나가 넘쳐흐르고! 머리가 비상해지며! 천상의 외모를 가진다! 하지만 성인이 되기 전에 죽고 말지…….”
유원학의 말에 5살에 불과한 신유성은 놀란 얼굴로 입을 가렸다. 그리곤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물었다.
“저, 죽어요?”
“성격도 급하구나! 거기서 끝이 났다면 아마 그랬겠지! 하지만 넌 또 하나의 체질을 타고났다! 그게 바로 극양지체!”
유원학의 말대로 신유성은 구음절맥과 동시에 극양지체(極陽肢體)를 타고났다. 유원학은 신유성의 어깨를 붙잡고 웃었다.
“네 몸은 구음절맥을 치료할 양기가 넘쳐흐른다!”
지구에 한명 있을까 말까한 체질을 신유성은 무려 두 개나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덕분에 구음절맥의 넘쳐흐르는 마나와 뛰어난 두뇌. 눈부신 외모와 극양지체의 강인한 육체까지 동시에 가지고 말았다.
“이건 인류 역사상 다신 없을 재능이다! 그리고 오직 이 몸만이 네 재능을 꽃 피울 수 있지!”
유원학이 꽉 주먹을 쥐자. 신유성은 유원학의 다리를 꼬옥 안았다.
“꽃! 좋아요!”
“그래! 나와 같이 수련을 해 특성만 믿고 설치는 헌터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자꾸나! 넌 이곳 무신각(武神閣)에서 최강의 헌터로 태어날 것이다!”
백발의 노인인 유원학은 미친 듯이 웃었다. 그는 육십의 나이에도 도저히 믿기 힘든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신유성은 자신의 미래도 모른 채, 구음절맥의 미친 미모를 자랑하며 활짝 웃었다.
“헤, 최강의 헌터! 좋아요!”
* * *
7살.
멧돼지를 때려눕힌 신유성을 보며 유원학은 고개를 저었다.
“쯧쯧! 내 라이벌이었던 검신! 그놈은 2급 괴수를 7살에 처치했다! 너는 그렇게 사기적인 신체를 타고났는데 겨우 이것밖에 못하느냐?”
8살.
신유성이 맨손으로 통나무를 부쉈을 때 유원학은 또 고개를 저었다.
“이놈아! 네 체질이면 통나무는 세 개씩 부쉈어야지!”
9살.
신유성이 단 일격에 2급 괴수 낫 사마귀의 몸을 터트려버렸을 때, 유원학은 또 고개를 저었다.
“쯧쯧! 이렇게 성장이 느려서 어떻게 헌터가 되겠느냐? 현역 헌터들은 물론이고! 이 정도 실력으론 아카데미에서도 어림도 없다!”
“그, 그렇게 강한가요?”
신유성은 순수한 표정으로 유원학을 바라봤다. 구음절맥 때문인지 신유성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미모가 더 꽃을 피웠다.
“아무렴! 보통 9살의 나이면 3급 괴수 정도는 아주 그냥 일격에 죽여 버리지!”
시간은 더욱 흘러 13살.
권왕. 유원학이 주먹을 날리자. 신유성은 팔을 교차해 막아냈다. 유원학은 힘을 최대한 제한해 사정을 봐줬지만. 신유성은 한참을 날아갔다.
꽈아앙!
벽에 부딪힌 신유성이 가볍게 땅에 착지를 한 후, 매서운 속도로 땅을 박찼다.
탓!
유원학의 뒤를 잡은 신유성은 정권을 지르기 위해 자세를 취했다.
쿠웅!
다리에는 자신의 무게를 싣고 흔들림을 지웠다. 발에서 시작된 힘은 다리를 향해 끌어올려졌고. 곧 이어 허리로 향했다.
후욱!
신유성은 허리를 돌리며 정권을 질렀다. 절대 팔만 움직인 얄팍한 주먹이 아니었다. 신유성의 정권에는 평범한 13살은 절대 깨우칠 수 없는 묘리가 담겨있었다.
콰아앙!
신유성의 주먹이 파장을 만들며 유원학에게 적중했다. 하지만 권왕 유원학은 그런 정권을 검지 하나로 막아냈다. 가히 유원학은 지구 최강의 헌터 중 한명이었다.
“이놈아! 느리다! 그 체질로 13살에 겨우 이정도 정권이라니! 내가 네 몸을 타고 났으면 방금 전 정권으로 날 벽에 꽂아버렸을 거다!”
신유성은 이제 슬슬 공포가 자라나고 있었다. 도대체 헌터들은 얼마나 강한 것일까. 이렇게 수련을 했는데도 따라잡을 수 없다니.
‘보통 괴물들이 아니겠지.’
당장 자신의 스승인 유원학만 봐도 그랬다. 유원학은 마음만 먹으면 신유성 정도는 한 손가락으로 제압을 할 수 있었다.
‘밖에 나가면 난…… 스승님 같은 괴물들이랑 싸워야 하는 거야…….’
겁을 먹은 신유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최강의 헌터까진 아니라도 신유성은 강한 헌터가 되고 싶었다.
자신을 믿어준 권왕에게 보답하고, 자신을 버린 신오가문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마침 신유성은 그걸 성공시킬 뛰어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신유성이 힘차게 외치자. 유원학은 호탕하게 웃었다.
“크허허! 그래! 더 열심히 해야지! 최강의 헌터가 되려면 말이야!”
유원학은 신유성을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뒤엎을 최강의 헌터로 만들 생각이었다.
* * *
그렇게 4년.
17살이 된 신유성은 폭포를 맞으며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콸콸콸!
자신의 몸으로 계속해서 쏟아지는 물세례를 정통으로 맞으며 신유성은 호흡에 집중했다. 숨을 들이 쉴 때는 공기 중에 퍼진 마나를 느꼈고, 숨을 내 쉴 때는 잡념을 뱉어냈다.
이제 신유성은 단순히 신체의 단련에 집중하지 않았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그렇게 긴 시간을 명상에 빠져있던 신유성이 입을 열었다.
구음절맥 덕분인지 신유성의 목소리는 청아하고도 낮게 울렸다. 거센 폭포 소리가 무색하게 정말이지 아름다운 음색이었다.
그러자 우렁찬 목소리가 계곡의 물소리를 단번에 묻어버렸다.
“쯧쯧! 네놈과도 오늘로 마지막이라니! 아쉽고도 아쉽구나!”
유원학은 여전히 근육질의 몸을 자랑했다. 아니 오히려 겉으로는 더 젊어진 듯 보였다.
“저도 아쉽습니다. ……아직 스승님의 가르침이 절실한데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니.”
신유성이 눈을 떴다.
17살의 신유성은 예전의 앳된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완전히 성숙해져 있었다. 특히 보기 좋은 적당한 근육과 깎아서 만든 듯 완벽한 이목구비가 더욱 그랬다. 유원학은 아직도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게 말이구나! 검은 마녀와 검신! 그리고 내가 17살이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후우, 아직도 네 경지를 다듬기엔 시간이 모자라건만!”
“부끄럽습니다.”
신유성이 살짝 웃었다.
신유성은 스승의 가르침이 좋았다. 무신각에 들어온 12년을 거의 유원학과 지냈다. 그런 무신각과 유원학을 떠나야한다니 신유성은 믿기지 않았다. 유원학은 신유성을 보며 다시 당부했다.
“그러니 방심하지 말거라! 헌터의 세계는 냉혹하다!”
유원학은 신유성이 수련을 하는 동안 입이 닳도록 헌터들의 강함을 강조했다. 검은 마녀가 가지고 있던 사기적인 특성. 인간을 초월한 검신의 육감. 권왕이라 불린 유원학의 신체. 그 외에도 전설이라 불린 많은 헌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유성은 풀이 죽었다.
“아직도 겁이 납니다. 제가 그런 헌터들을 상대로 아카데미나 졸업을 할 수 있을지…….”
“입학까지는 내가 말을 해두겠지만. 졸업은 순전히 너의 능력이다!”
엄포를 놓은 유원학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덧 붙였다.
“혹여나 퇴학이라도 당한다면! 그땐 헌터는 생각조차 하지 말거라. 이 기회를 놓치면 넌 일반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유원학의 말처럼 전문 교육을 받아. 아카데미를 졸업해 자격을 부여받지 않으면 특성이 있어도 헌터는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물론 헌터가 되려면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부터 조기교육을 받아야했다. 그런 수순을 전부 무시할 수 있었던 건 신유성의 스승인 유원학의 권력이었다.
한 때 시대를 호령한 최강의 헌터 중 하나. 권왕(拳王) 유원학.
그는 한국 최고라 불리는 가온 아카데미의 교장을 협박했다.
“아카데미에는 내가 전부 말해두었다. ……뭐, 거기서도 조건을 붙였지만. 네가 알아서 통과 하여라.”
유원학이 시큰둥한 말투로 귀를 파며 말하자. 신유성은 천천히 일어나 옷을 걸쳤다.
“12년만의 출타입니까?”
“그렇다.”
유원학의 대답에 신유성은 물에 젖은 장발을 묶었다. 그다음으로는 손에 붕대를 감았다. 신유성은 12년을 지냈던 무신각과 무신산을 말없이 바라봤다.
신유성은 특성이나 스킬 대신 오롯이 신체만을 단련한 헌터였다. 일반적인 헌터라면 상상조차 못 할 수련을 정신력과 체질의 힘으로 묵묵히 감내했다.
그 시간이 약 12년.
사실 유원학은 어제 권왕의 이름을 걸고 기자회견에서 선언했다.
- 그토록 당신들이 기다렸던 내 제자를 공개할 것이오!
유명 헌터들은 연예인 못지않게 인기를 끄는 세상. 은둔해있던 전설의 폭탄선언에 세간은 이미 떠들썩해져 있었다. 신유성은 그 사실도 모른 채, 조용히 인사를 올렸다.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스승님.”
그 말을 끝으로 신유성은 무신산을 나섰다. 사실 신유성은 누구보다 특이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극양지체와 구음절맥을 동시에 타고났고. 자신이 가진 특성의 이름조차 모른 채 지금까지 오롯이 신체만을 단련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신산에서 자란 신유성에게 바깥의 세상은 완전한 미지였다.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특별한 천연기념물. 그런데도 신유성은 걱정을 가득 안고 있었다.
‘……과연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얼마나 강할까?’
확실한 건, 지금까지 없던 헌터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