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5화. 어려운 결정 (4) >
제115화. 어려운 결정 (4)
e스포츠 협회가 주최하는 이벤트전.
그곳에 소예민을 주전으로 내보내겠다는 연락을 오종한으로부터 직접 듣게 된 이강진은 생각이 많아졌다.
“이벤트전이 언제인데?”
-이번 달 23일.
“장소하고 시간은?”
-수원에 있는 국제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11시부터 시작될 거야. 근데 너도 오게?
“시간 되면 한번 가 볼까 해서.”
사실 굳이 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강진은 문득 궁금했다.
프로 게이머로서의 소예민은 과연 어떨까.
그녀가 게임에 얼마나 많은 열정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대신에 내가 간다는 말은 선수들에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괜히 부담 주긴 싫으니까.”
구단주가 와서 직접 경기를 본다는 걸 알게 된다면, 선수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정규 리그 경기가 아닌 이벤트전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자신의 팀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괜히 부담감을 줘서 경기에 영향을 미치고 싶진 않았다.
오종한도 이강진의 이런 진심을 눈치챈 모양인지 곧장 알籠?? 답했다.
-입장표는 뺐? VIP석으로 끊어서 보내 줄게. 경기장으로 바로 오면 될 거야.
“고마워, 형.”
그렇게 합의를 본 후.
이강진은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 속에 넣은 뒤에 촬영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외식의 왕도 녹화 촬영이 있는 날이다.
이거 끝나면 이강진의 식도락 촬영을 위해 멀리 대구로 내려가야 한다.
‘그다음에는 예민이 데뷔 경기도 보러 가야 하고. 바쁘네, 바빠.’
정신없는 나날이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 같았다.
* * *
생애 첫 방송 경기에 서게 된 소예민.
이번 경기를 위해 소예민은 같이 출전하기로 한 멤버들과 함께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연습에 매진했다.
“누님! 궁 써서 이니시 걸어 줘요!”
“알았어!”
소예민은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누님’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1, 2군을 비롯해 프로 게이머 데뷔를 목표로 숙소 생활을 하고 있는 연습생들까지 전부 다 포함해도 소예민은 세 번째로 나이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누님’이라는 별명이 자연스럽게 붙게 되었다.
“궁 쓸게! 셋, 둘, 하나! 고!”
그녀의 신호에 따라 모든 팀원들이 스킬을 퍼붓기 시작했다.
한 번의 큰 싸움으로 경기 흐름을 가져온 바라 케일러스 팀.
이 기세 그대로 상대방의 본진 건물까지 전부 밀어 버렸다.
[Victory!]
승리 선언 문구를 보고 나서야 이들은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오늘 스크림은 이것으로 모두 끝났다.
이제 바로 내일.
이벤트전에서의 우승을 위해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된다.
오종한이 선수들을 집합시켰다.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만 하고, 일찍 자 둬. 어차피 지금 연습한다고 해 봤자 달라질 건 거의 없으니까. 내일까지 컨디션 조절에 힘쓰도록 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경기장 가야 하니까. 알았지?”
“네!”
“그리고 예민이는 너무 긴장하지 말고.”
선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소예민만 방송 경기 경험이 없다.
다른 선수들은 그래도 두세 번 정도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예민은 그것조차 전무하다.
자신의 게임 내용이 전파를 타고 많은 사람들 앞에 중계된다는 사실 때문에 긴장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걸 가장 경계해야 한다.
들어가서 쉬라는 오종한의 말과 함께 선수들은 제각각 흩어졌다.
그 전에 오종한은 소예민을 따로 불렀다.
“예민아.”
“네, 감독님.”
뭔가 따로 해 줄 말이 있는 걸까?
그녀의 표정이 긴장한 빛으로 물들었다.
“별건 아니고, 아까 말한 것처럼 오늘은 일찍 자라고. 저번처럼 새벽에 몰래 연습한다고 나오지 말고.”
“아, 알고 계셨어요?”
“당연하지. 감독인데.”
아침, 혹은 이른 오후에 경기가 있는 날에는 선수들에게 일찌감치 취침에 들라고 독려하곤 하는 오종한.
그러나 소예민은 오종한의 이 말을 몇 번 어겼던 경험이 있었다.
소예민은 멋쩍은 미소를 흘렸다.
“알았어요. 오늘은 감독님 말씀대로 할게요.”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네, 감독님.”
인사를 마친 뒤에 방으로 향하는 소예민.
침대에 눕자마자 소예민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내일 경기에 대한 걱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고민.
이 모든 것은 내일 결정되리라.
* * *
이강진의 식도락 대구 편 촬영을 마치자마자 이강진은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늦은 밤, 직접 차를 끌고 집까지 오느라 이강진은 피곤한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진짜로 매니저를 한 명 고용해야 하나?”
계속 이렇게 방송 활동을 이어 갈 거라면, 이강진의 스케줄을 따로 관리하면서 로드 매니저 역할까지 해 줄 인물을 고용하는 편이 좋아 보였다.
그래야 이강진도 피로가 덜 쌓일 테고 말이다.
“나중에 고용하든가 해야겠어.”
일단은 화장실로 향했다.
오늘은 바라 케일러스의 이벤트전이 있는 날이다.
이강진이 눈여겨보고 있는 여인, 소예민의 첫 방송 데뷔 무대.
그것을 지켜보기 위해 이강진은 직접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것 때문에 일부러 촬영이 끝난 새벽에도 무리를 해서 서울까지 올라온 것이다.
‘두석이한테는 오늘 출근 못 한다고 미리 말을 해 뒀으니까 괜찮겠지.’
대충 씻고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시동을 건 후에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그러는 와중에 오종한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강진아, 출발했어?
“아니, 아직. 형네는? 벌써 도착한 거야?”
-우리는 일찍 와야지. 메이크업도 받아야 하고, 장비 체크도 해야 하고 할 게 많으니까. 아직 경기 시작하려면 멀었으니까 천천히 와.
“알았어.”
내심 늦으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그런 일은 없을 거 같아서 다행이었다.
“슬슬 출발해 볼까.”
소예민이 과연 어떤 길을 결정할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 * *
정규 리그 경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좌석을 메웠다.
만약 오종한이 미리 구해 준 표가 없었더라면, 이강진은 입구 컷을 당했을 지도 몰랐다.
‘매치 오브 레전드가 인기가 많긴 하구나.’
대회 상금 규모를 포함해서 동 시간 접속자 수, 라이브 경기 시청 인원수 등 모든 기록들을 매번 갱신하는 게 바로 매치 오브 레전드였다.
이강진도 어떤 게임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오종한처럼 미친 듯이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다.
바라 케일러스가 매치 오브 레전드 팀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조금씩 건드려 보는 정도? 그 이상으로 플레이해 보진 않았다.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은 이강진.
그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뒤 정확히 10분 후에 이벤트전이 시작되었다.
중계진 소개와 함께 어떤 식으로 이벤트전이 진행되는지 등을 설명해 줬다.
바라 케일러스의 첫 번째 상대는 덕스 타이거즈.
e스포츠 팀 내에서도 항상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명문 구단이다.
경기는 3전 2선승제, 토너머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이기면, 다음 경기가 바로 결승이다.
경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선수 소개가 이어졌다.
화면에 떠 있는 소예민의 닉네임과 모습에 이강진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소예민이······. 진짜 믿기지가 않네.’
아직도 그녀가 프로게이머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오프닝 경기가 시작되었다.
첫 경기는 바라 케일러스가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분이 지났을 때.
“바라 케일러스! 미드에서 선취점을 따냈습니다!”
“미드에서 솔킬이 나왔네요! 덕스 타이거즈를 상대로 솔킬이라니, 미드 플레이어, 대단한 선수군요!”
소예민의 칭찬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소예민의 실력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등장하자마자 루키 소리를 듣기 시작하는 소예민.
그러나 이강진은 반대로 초조함을 느꼈다.
‘이러면 곤란한데.’
기뻐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 기묘한 상황이 그저 웃길 따름이었다.
* * *
경기 스코어 2 대 0으로 예상보다 비교적 가볍게 덕스 타이거즈를 누르게 된 바라 케일러스.
두 경기 다 소예민이 하드 캐리를 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마지막 결승만 남았다.
여기서 이기면 이벤트전 최종 승자가 된다.
상대는 최근 가장 좋은 성적을 보여 주고 있는 팀, PS 드래곤.
얼마 전에 있었던 정규 리그 경기에서 바라 케일러스에게 1패를 안겨 줬던 팀이기도 했다.
이번이 어찌 보면 설욕전이기도 하다.
경기 부스로 들어온 오종한 감독은 선수들을 격려하기 시작했다.
“다들 쫄지 말고! 너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줘! 알았지?”
“예!”
“그리고 예민아, 아까 보여 줬던 것처럼 하드 캐리, 부탁하마.”
“네, 감독님.”
마우스, 키보드 세팅을 마친 소예민은 길게 호흡을 내쉬었다.
할 수 있다.
첫 번째 경기에서 강한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빠르게 손을 푼 뒤, 게임 대기실로 입장했다.
드디어 시작된 결승전 첫 번째 경기.
결승전도 마찬가지로 3전 2선승제로 펼쳐졌다.
첫 번째 세트에선 탑에서 차이가 너무 나 버렸다.
소예민이 로밍을 다니면서 어찌어찌 케어를 해 주려고 했지만, 그러는 사이에 자신의 레벨 업이 상대편 미드보다 더뎌지고 말았다.
레벨 싸움에서 밀리게 된 소예민. 게다가 상대편 정글까지 가세해서 주기적으로 계속 공격이 들어왔다.
아무리 실력 있는 프로 게이머라 하더라도 2 대 1 싸움을 버티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선취점을 내주게 된 바라 케일러스.
0 대 1로 뒤처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라 케일러스 팀은 멘탈을 붙잡고 2세트에 임했다.
이번에는 심기일전해 침착하게 경기를 이끌어 나가는 이들.
소예민이 팀원들에게 외쳤다.
“상대편 정글, 아래쪽으로 내려갔어! 나도 지금 내려가고 있으니까 역으로 킬각 한번 보자!”
“네, 누님!”
위에서 그리고 아래에서, 상대팀을 쌈 싸 먹는 전략을 구사하는 바라 케일러스 팀.
이 승리 한 번이 2세트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결과는 1 대 1.
마지막 세트를 앞둔 상태에서 소예민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파르르 떨리는 손.
내리쬐는 조명.
열띤 응원전을 펼치는 사람들.
이것이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방송 무대였다.
‘이 무대에 서기 위해 프로 게이머가 된 것일지도.’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프로 게이머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연습해 온 시간들을 떠올리며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소예민은 다시 한번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았다.
* * *
2 대 1.
바라 케일러스의 승리로 이벤트전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잘했다, 얘들아!”
코치들이 선수들을 안으면서 기쁨을 표했다.
오종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특히 소예민을 많이 칭찬했다.
“고생했어, 예민아. 마지막 세트는 네가 캐리해 준 덕분에 살았어.”
“아니에요. 다른 팀원들이 다 같이 잘해 줘서 이길 수 있었던 거예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매치 오브 레전드는 개인전이 아닌 팀전이다. 혼자 잘한다고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모두가 다 주인공이다.
“어때? 프로 게이머, 계속할 수 있을 거 같아?”
직접적으로 묻는 오종한.
소예민은 빙그레 웃었다.
그녀가 내놓은 대답은 바로······.
< 제115화. 어려운 결정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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