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39화 (339/347)

< 제113화. 새 출발의 어려움 (4) >

제113화. 새 출발의 어려움 (4)

“바라 코리아로······ 들어오라고?”

“네.”

민영석이 짬뽕 라면과 해물 라면을 만들어 줬을 때.

이강진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건 분명 성공한다.

와플은 누가 봐도 폭망할 게 보였지만, 라면은 달랐다.

비록 민영석은 군대에서 능력이 특출하게 뛰어났던 간부는 아니었지만, 라면 만드는 솜씨 하나는 보통이 아니었다.

요식 업계에 종사하면서 많은 음식들을 맛봐 왔던 이강진이었기에 이렇게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바라 코리아에서 임대료를 비롯해서 모든 비용을 전액 부담하도록 하겠습니다. 형님은 오셔서 라면만 만들어 주시면 돼요.”

“그러면 내가 너무 미안한데······.”

“회사 입장에서 당연히 해 드려야 하는 것들이니까,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그를 스카우트하고야 말겠다는 이강진의 열망이 아주 강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기 시작하는 민영석.

한숨을 푹 쉬더니, 손목시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지금 가 봤자 은행 문 닫았겠지?”

이강진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네, 그럴 거예요.”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은행보다 더 믿음직하고 좋은 곳을 찾았으니까.

* * *

이강진과 함께 술자리를 가지게 된 민영석은 처음에 술잔을 받고 나서 그대로 잔을 원샷했다.

두 잔, 석 잔, 그렇게 연거푸 잔을 들이켜는 민영석.

“형님, 아직 안주도 안 나왔어요. 벌써부터 그렇게 달리시면 어떻게 해요?”

“아, 그랬지. 미안. 오랜만에 술이 들어가니까 술술 들어가네, 하하하!”

아재 개그는 덤이었다.

넉 잔째 잔을 채워 준 이강진은 그가 왜 오랜만에 술을 마시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얼추 알 것 같았다.

“그동안 라면 요리 연습하느라 못 마셨던 거예요?”

“그렇지. 술 마실 시간에 차라리 요리 연습이라도 더 해 두는 편이 좋으니까.”

술은 그때 한번 마시고 끝이지만, 라면 요리 연습은 민영석의 앞으로의 인생이 걸려 있는 중요한 문제다.

결코 소흘히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는 계속해서 연습에 매진하고 또 매진했다.

적당히 취기가 올라왔다 싶을 때.

이강진은 그동안 묻지 못했던 질문을 슬쩍 꺼내 보기로 했다.

어찌 보면 예민한 질문일 수도 있었다.

“갑자기 왜 전역하시고 음식점을 차리기로 결정하신 겁니까?”

이강진의 지인들 중에선 민영석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본인이 말해 준 적이 없으니까.

궁금해하는 그를 보면서 민영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군대라는 곳에 회의감이 들어서.”

“회의감?”

“지독한 상관을 만났거든. 나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이었는데, 나보다 계급도 높고 짬도 많더라고. 너도 알지? 군대는 계급, 짬이 전부라는 거.”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탈이었다.

민영석은 다시 한번 술잔을 들었다.

소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은 뒤, 그는 씁쓸해 보이는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밑에 녀석들이 못 대든다는 거 알면서도 일부러 계속 엿 멕이는 거, 난 도저히 못 참겠더라. 아니, 계급 낮은 게 죄냐? 짬 낮은 게 죄냐고. 더 못 견디겠다 싶어서 ‘씨발, 나 못 하겠다.’ 하고 그냥 바로 전역하기로 했지.”

어딜 가든 모두가 다 착한 사람만 모여 있는 건 아니다.

당연한 말이다.

특히 군대는 더더욱 그렇다.

착하고, 성격 좋고 그런 사람들만 모여 있다면, 왜 사건 사고가 계속 발생하겠나.

사고가 발생하는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장기 붙어서 연금 타 먹을 때까지 군대에 계속 남아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내가 꼭 여기 있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더라고.”

민영석이 말했던 회의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병사뿐만 아니라 간부도 사람인지라 내리갈굼에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내리갈굼의 정도로 따지면 병사들보다 간부들이 더 심하다.

“미안하다, 강진아. 괜히 술맛 버리게 하는 이야기 꺼내서.”

“아니요. 오히려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해 줘서 고마워요. 사실 좀 걱정했었거든요.”

“걱정이라니. 어떤 거?”

“부소대장님이······ 아니, 형님이 군대에서 안 좋은 일을 당해서 불명예 전역을 당한 건 아닐까 해서요.”

이강진뿐만 아니라 민영석이 전역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1중대원들 모두가 다 그를 걱정했다.

민영석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걱정해 줘서 고맙다. 역시 너밖에 없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너 군 생활 할 때 좀 더 잘해 줄 걸 그랬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그래? 근데 너, 나보다 훨씬 더 잘살잖아. 내가 잘해 줄 게 없는 거 같은데?”

“바라 코리아로 들어오셔서 열심히 해 주시면 돼요. 그럼 저도 형님이 노력하신 만큼 열심히 가게 홍보하고 지원하겠습니다.”

이강진이 바라는 건 이것뿐이다.

고개를 끄덕인 민영석은 목소리에 힘을 담아 말했다.

“걱정하지 마. 하겠다고 한 이상, 열심히 할 테니까. 강진이 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잘 알죠.”

자랑스러운 1중대 1부소대장, 민영석이다.

그라면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강진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 * *

계약서를 작성한 민영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강진의 바라 코리아 사무실을 잠시 같이 둘러보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라인혁과 딱 마주치게 되었다.

“어? 부소대장님이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도 이제부터 여기 식구 하기로 했거든.”

“예?”

속사정을 전혀 모르는 라인혁은 대체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라인혁에게 이강진이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바라 코리아가 민영석을 영입할 거라고.

그리고 그 계약서를 방금 작성했다는 이야기까지 모두 들려줬다.

그런데 이 사실을 말해 주는 대신, 조건이 있었다.

“인혁이 형, 방금 들은 건 당분간 비밀로 해 줘.”

“응? 왜? 좋은 일이잖아.”

“영석 형님 편 방송 나가고 3개월 정도 지난 후에 바라 코리아와 계약 맺었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시작하기도 전에 사전에 바라 코리아와 계약 맺었다는 게 밝혀지면, 바라 코리아에서 방송을 마케팅의 일환으로 이용하려는 거 아니냐 하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당분간만 모른 척해 달라고 한 거야.”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자들, 속칭 ‘불편러’들을 클레임을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라면야 뭐······ 알았어. 나도 비밀로 할게. 아무튼 부소대장님, 잘 오셨어요. 솔직히 어딜 가든 강진이만 한 대표감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바라 코리아, 좋은 회사니까 앞으로 저희도 잘해 봐요.”

“그래야지.”

나중에 시간 나면 셋이서 같이 술 한잔 하자는 약속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무실 구경 마치면 가게 인테리어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확인하러 가 보죠.”

“그래, 알았어.”

라면집 오픈 전까지 이들이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 * *

드디어 라면집 오픈 첫날.

방송이 아직 나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일대는 소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민영석과 그의 여자 친구, 이렇게 둘이서 모두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였다.

관찰 카메라로 강한도와 함께 가게 앞 상황을 지켜보던 이강진이 한지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윤 씨가 도와줘야 할 거 같군요.”

“네, 바로 준비할게요.”

한지윤이 곧장 현장으로 향했다.

그녀가 등장하자, 가게 앞에서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지윤에게 집중되었다.

“안녕하세요.”

한지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손님들 중에서도 특히 남자 손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죄송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손님 받기 시작할 거예요.”

양해를 구하는 한지윤.

손님들은 헤벌쭉 웃으면서 천천히 해도 괜찮다는 말을 들려줬다.

오전 11시.

드디어 영업이 시작되었다.

첫째 날부터 많은 손님들이 몰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영석은 침착하게 라면을 만들어 냈다.

손님들의 반응 또한 나쁘지 않았다.

“어머, 맛있네.”

“그러게. 면발 보니까 인스턴트 라면 맞는 거 같은데, 어떻게 맛을 낸 거지? 신기하네.”

반응은 괜찮았지만, 이강진은 끝까지 안심하지 않았다.

군대에서 행군이나 유격, 혹한기 훈련을 받을 때마다 매번 대대장이 했던 말이 있다.

훈련을 마치고 샤워를 한 뒤 병사들이 침상에 누워 잠에 드는 순간까지가 훈련이라고.

요식업도 마찬가지다.

가게 문을 닫고 퇴근할 때까지가 영업시간이다.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된다.

이강진은 가게 오픈 전에 이와 같은 사실을 민영석에게 수차례 강조했다.

이강진의 조언이 통한 걸까.

브레이크 타임이 도래할 때까지 민영석은 계속해서 요리를 만들고 가게 안의 상황을 살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 이강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단 말이야.’

뿌듯함이 밀려왔다.

* * *

민영석의 라면집 가게, ‘민씨네 라면’의 성공 신화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방송이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오픈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민씨네 라면’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고 한지윤이 계속 이들을 도와줄 수 없었기에 민영석은 결국 이강진과 상담해서 직원을 두 명 고용하기로 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하는 민씨네 라면.

방송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곳에 가서 라면을 먹어 본 사람들의 입소문까지 곁들여지니, 가게가 번창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오늘도 정신없이 라면을 만들고 있는 민영석.

촬영 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강진은 민영석의 민씨네 라면 가게를 찾았다.

그가 등장하자, 대기하고 있던 손님들이 환호를 보냈다.

“대표님, 실제로 보니까 잘생기셨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라면 드시러 오신 건가요? 기다린 지 얼마나 되셨어요?”

“한 30분은 된 거 같아요. 저희도 새벽에 올 걸 그랬어요.”

라면을 먹겠다고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매일매일 연출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민가에서 최대한 떨어진 곳에 가게를 잡을걸. 가게가 너무 인기가 많아져도 문제네.’

이강진은 뒤늦은 후회를 했다.

안 그래도 이강진은 이곳에 오기 전에 민씨네 라면 가게를 다른 곳으로 확장 이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오는 길이었다.

그것을 오늘 민영석에게 전달할 생각이다.

그래서 촬영일이 아닌 날에 이렇게 사적으로 가게를 찾아오게 되었다.

슬슬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이강진의 눈이 번뜩였다.

‘가만. 저분,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기다랗게 줄을 선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처음에는 이강진이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니, 이강진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이강진.

“행보관님!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이강진이 1075대대에서 군 생활을 보낼 때 신세를 자주 졌던 인물이기도 한 행보관.

그가 민영석의 라면 가게를 찾아온 것이다.

< 제113화. 새 출발의 어려움 (4) > 끝

ⓒ (36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