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3화. 새 출발의 어려움 (3) >
제113화. 새 출발의 어려움 (3)
주방에 들어간 민영석은 다시 한번 앞치마를 둘렀다.
그때 한지윤이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서 이강진에게 물었다.
“강진 씨, 라면은 정말 괜찮아요?”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와플 하나만 놓고 봤을 때에는 요리에 대한 기본적인 감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니까.
하나 평가 기준이 라면이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저 형님 라면은 정말 끝내줍니다. 저나 인혁이 형, 그리고 호만이 형도 인정했어요.”
“호만 씨가요? 정말이에요?”
“네.”
현재 바라 식당 서울 지점의 메인 주방장인 오호만이 인정했다고 하니 신뢰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벌써부터 스튜디오 안에 라면 냄새가 가득 찼다.
출연진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침을 꿀꺽 삼켰다.
라면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소울 푸드라 불리는 요리다. 민영석은 너무 흔한 거 아니냐는 말을 했지만, 오히려 흔하고 자주 먹는 음식이기에 메리트가 있는 법이다.
라면을 완성시킨 민영석은 곧장 쟁반을 들고 이들 앞에 나타났다.
“완성됐습니다.”
라면 위에 뭔가가 많이 올려져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대패 삼겹살.
“고기를 넣으셨네요?”
“어. 아니, 예.”
무의식적으로 계속 반말을 사용하던 민영석은 그제야 방송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말을 바꿨다.
“다른 고기들도 많을 텐데, 대패 삼겹살을 사용한 이유가 있나요?”
“삼겹살이나 오겹살을 사용해도 되긴 하는데, 개인적으로 대패 삼겹살이 라면과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요. 어디까지나 메인은 라면이 되어야 하는데, 두꺼운 삼겹살과 오겹살이 들어가면 오히려 건더기가 메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끓이면 돼지기름도 너무 많이 나오고요. 기름이 국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게 보기 좀 그렇더라고요.”
“그렇군요. 그럼 일단 맛을 보겠습니다.”
먼저 면을 맛본 이후.
국물도 한 숟가락 떠서 맛을 음미했다.
“일반 라면에 비해서 더 맵네요?”
“예, 고춧가루를 더 첨가했습니다. 라면이라기보다는 라면 면발이 들어간 짬뽕이라고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짬뽕이라. 그 말을 들으니까 확실히 느낌이 다르네요.”
라면에 조미료와 재료를 무엇을 넣느냐 그리고 어떻게 끓이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혹시 이거 말고 다른 라면도 끓일 수 있나요?”
“네, 아까 재료를 보니까 새우하고 굴이 있더라고요. 그거 이용하면 해물 라면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저희가 이거 맛보고 있는 동안 해물 라면도 부탁드릴게요.”
“하하, 맡겨만 주세요!”
민영석이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 틈을 이용해 이강진은 강한도와 한지윤에게 다시 한번 시식을 권했다.
“맛 한번 보세요.”
강한도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번에는······ 괜찮은 거죠?”
“네,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강진의 말대로였다.
아까 먹은 와플이 벌써 잊힐 정도로 천상의 맛을 자아냈다.
시중에 파는 라면을 이렇게까지 맛있게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후에 민영석이 추가로 가져온 해물 라면도 마찬가지였다.
“새우 머리가 들어 있네요?”
“네, 일부러 넣었습니다. 새우 머리에 살이 약간 붙어 나오게끔 자른 다음에 국물로 우려냈죠. 이렇게 하면 머리에 붙은 새우 살에 라면 국물이 좀 더 잘 스며들더라고요. 대신,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드세요. 머리 안에 국물이 가득 들어 있을 테니까요.”
다양한 재료에 민영석만의 기교가 첨부되니, 극상의 맛을 지닌 라면이 탄생했다.
두 라면 모두 시식을 마친 이강진은 민영석에게 확신을 담아 말했다.
“와플집 말고 라면집으로 가죠. 분명 성공할 겁니다!”
* * *
촬영이 끝날 때까지 이강진은 와플 대신 라면집 창업으로 계획을 바꿀 것을 계속 강조했다.
민영석의 대답은 이거였다.
생각해 보겠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하기 힘든 문제라는 건 이강진도 잘 안다. 그래서 그에게 잠시 시간을 주기로 했다.
기간은 다음 녹화 전날까지.
민영석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녹화의 방향성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촬영은 여기까지 할게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이용진 PD와 출연진 그리고 스태프들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남긴 이강진은 민영석과 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영석 형님, 너무 독창성, 개성에 얽매일 필요 없어요. 라면으로도 충분히 승부 볼 수 있으니까, 오늘 집으로 돌아가셔서 잘 생각해 보세요.”
“그래, 여하튼 오늘 고마웠다, 강진아.”
“아니에요. 제가 너무 말을 세게 해서 오히려 미안하죠.”
“그건 괜찮아. 너, 이전 방송들 보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도 엄청 강하게 말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저런 소리 듣겠구나 하고 각오하고 왔으니까 상관없어.”
“하하하······.”
좋게 받아들어야 할지, 아니면 점점 독설가로 인식되는 자신의 이미지를 걱정해야 좋을지.
판단하기가 애매했다.
* * *
오랜만에 오호만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게 된 이강진.
안 그래도 그는 오늘 있었던 일화를 그에게도 들려줬다.
이야기를 듣던 오호만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소대장님이 와플을? 엄청 뜬금없네. 차라리 라면집을 차리라고 하지. 부소대장님 라면 엄청 잘 끓이셨잖아.”
“안 그래도 나도 마지막에 그 말 하고 왔어.”
“그래? 잘했네.”
이강진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솔루션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형님이 내 말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말지 이게 좀 걱정이야.”
“끝까지 와플을 고집할까 봐?”
“어.”
이강진이 소주잔을 비우자마자 오호만은 곧장 그의 잔을 채웠다.
“만약 부소대장님이 와플로 계속 밀고 나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게?”
“그러면 메뉴를 바꾸게끔 해야지. 연근크림에 당근초코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야.”
“그래, 그건 꼭 말려라. 그러다가 부소대장님 가게, 폭삭 망하겠다.”
이강진처럼 직접 와플 맛을 본 건 아니었지만, 메뉴 이름만 들어도 망할 기미가 너무 확연하게 보였다.
과연 부소대장이 고집을 꺾을까?
오호만은 그게 궁금했다.
“네가 보기엔 어때?”
이강진이 기억하는 부소대장의 성향을 떠올린다면 아마도······.
“라면집으로 바꾸자고 할 거야.”
부소대장은 그렇게 뚝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이강진의 말을 비교적 잘 믿어 주는 편이었다.
이강진이 이렇게까지 말을 했으니, 큰 문제가 없는 이상, 그는 라면집으로 선회할 것이다.
“만약 부소대장님이 라면집 창업으로 계획을 바꾸겠다고 한다면······.”
“한다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술이나 마시자.”
“이 녀석, 사람 궁금하게 만드네. 뭔데, 말해 봐.”
“아직은 말하기 좀 그래.”
민영석처럼 이강진도 지금 단계에서 확실히 무언가를 정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오호만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 * *
일주일 동안 고민한 끝에 민영석이 내놓은 대답은 이거였다.
“라면집으로 바꾸겠습니다.”
그의 결정에 출연진은 크게 안도했다.
내심 와플 창업을 고집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최악의 사태(?)는 면한 거 같아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이제 막 첫 단추를 꿴 것에 불과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일단 메뉴부터 정해 보도록 하죠. 저번에 만들어 주셨던 짬뽕 라면하고 해물 라면은 개인적으로 메뉴에 꼭 넣었으면 좋겠네요.”
이강진이 여태껏 먹은 라면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맛있는 라면들이었다.
분명 손님들도 만족할 터.
민영석은 이강진의 조언대로 우선 그 두 라면들을 메뉴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여기에 일단 추가로 세 개 정도를 더 넣기로 했다.
민영석이 알고 있는 라면 하나에 이강진이 개별적으로 연구한 라면 레시피 두 개를 그에게 전수하기로 합의를 봤다.
“오늘 정한 것들을 못해도 다다음 달까지는 완전하게 마스터를 하시면 될 거 같아요. 그때 제가 다른 셰프들 데리고 올 테니 일단 시식회를 한번 가져 보죠.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으면 그때부터 가게 위치 선정하고 인테리어 꾸미고 홍보 하고, 그러면 될 거 같네요.”
“예! 대표님만 믿겠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민영석은 이강진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덕분에 이후의 일은 수월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
* * *
이강진은 오호만을 포함해서 그의 산하에서 일하는 유명 셰프들을 몇 명 데리고 촬영 장소로 향했다.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오호만이 먼저 민영석에게 인사를 건넸다.
“부소대장님! 오랜만입니다, 충성!”
“충성은 무슨. 너도 나도 이제 민간인인데. 거수경례하지 마라. 괜히 창피해지니까.”
“하하하! 알겠습니다. 아, 오늘 라면 시식,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래, 최대한 맛있게 만들어 주마.”
오늘을 위해 민영석은 하루 종일 라면을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드는 것을 반복했다.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민영석은 곧바로 요리 작업에 들어갔다.
이강진을 비롯해서 시식을 할 평가단은 총 다섯 명.
이들 앞에 민영석의 라면이 하나둘씩 세팅되었다.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 플레이팅까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맛은 어떨까?
“음······.”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라면의 맛이 이렇게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게 놀랍네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들이었다.
가볍게 합격 기준을 넘어서게 된 민영석.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지만, 결과가 좋게 나오니 이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그러나 아직 행복해지기에는 너무 일렀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민영석은 은행으로 향할 준비를 서둘렀다.
그 전에 이강진이 민영석을 찾았다.
“형님, 끝나고 약속 있어요? 엄청 급하게 준비하시네요.”
“은행 문 닫기 전에 가 봐야지.”
“은행은 왜요?”
“대출받아야 하니까.”
가게는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지지 않는다. 임대료를 마련해야 하고, 인테리어에 들어가는 공사비도 미리 확보해 둬야 한다.
“모아 둔 돈은 좀 있어요?”
“너도 알잖아. 군인이 돈이 어디 있겠어.”
사회에선 무엇을 하든 돈이 필요하다.
가게를 차릴 때에도 마찬가지다.
제작진이 창업 비용까지 100퍼센트 전액 다 지원해 주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제작진은 사연 신청자들이 무사히 창업할 수 있도록 도움만 줄 뿐, 보조금을 지원해 준다든지 하는 건 가급적이면 지양하고 있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다면, 제작진이 누구는 돈을 얼마만큼 줬는데 난 이 정도밖에 안 줬다면서 시청자들에게 내부 사정을 폭로해 버리는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보조금을 노리고 거짓 사연을 만들어 신청해 오는 사람들도 생겨날지 모른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다.
이강진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릴세라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면서 그에게 물었다.
“괜찮다면 저한테 얼마 있는지 말해 주실 수 있어요?”
“그건 어렵지 않은데······.”
손바닥 위에 숫자를 적는 민영석.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금액이었다.
“대출 많이 받으셔야겠네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강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전화 한 통화만 하고 올게요. 어디 가지 마시고 기다려 주세요. 금방 올 테니까요.”
스마트폰을 들고 어디론가 바삐 향했다.
1분도 안 돼서 통화를 마치고 온 이강진은 그에게 놀라운 제안을 들려줬다.
“형님, 혹시 바라 코리아로 들어오실 생각 없어요?”
< 제113화. 새 출발의 어려움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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