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1화. 동원훈련 (2) >
제111화. 동원훈련 (2)
연병장을 가로질러 막사로 향했다.
연병장 크기가 상당하다.
‘1075대대보다도 큰 거 같은데?’
이강진은 처음 오는 곳이다 보니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하나 막사는 연병장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크기만 작은 게 아니었다.
건물 외관을 보자마자 이강진은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느낌이 안 좋아.’
백우호도 이강진과 같은 기분이 든 모양인지 이런 말을 꺼냈다.
“강진아, 이거······ 신막사 아니지?”
딱 봐도 건물이 낡은 티가 난다.
너무 낡아서 페인트칠도 다 벗겨져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 거 같긴 한데.”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겉모습만 이렇지, 내부는 리모델링이 다 끝난 상태일지도 모른다.
하나 이 희망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일렬식 생활관.
구막사 중에서도 구막사라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여름인데 에어컨도 없다. 천장에 달린 선풍기가 ‘달달달’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고 있었다.
구막사 내부를 보자마자 백우호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흘렸다.
“이런 쉣······.”
예전의 백우호였더라면 바로 쌍욕을 날렸을 테지만, 차마 노골적인 욕설은 뱉을 수가 없었다. 지켜보는 눈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자고로 이미지 관리가 생명이다.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도 항상 언행에 주의를 해야만 했다.
그건 물론 이강진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 보니까 인혁이 형도 구막사 쓰고 왔다고 했었지?’
그 말이 이제야 떠올랐다.
생활관은 그렇다 치고.
화장실은 과연?
일단 짐을 내려놓은 다음에 곧장 화장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나마 화장실은 깨끗한 편이었지만, 양변기가 있는 화장실 칸과 없는 칸이 딱 반반씩 나뉘어 있었다.
당연히 양변기가 있는 칸이 인기가 많을 터.
‘아침에는 전쟁이겠군.’
벌써부터 앞날이 걱정이다.
* * *
생활관 마룻바닥에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강진과 예비역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빠른 손놀림을 선보이면서 몰래 가져온 스마트폰을 숨겼다.
두 명의 병사가 생활관을 방문했다.
“앞으로 2박 3일 동안 선배님들과 함께하게 된 병장 차석준입니다.”
“일병 양희언입니다.”
예비역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병사들을 바라봤다.
환영 인사 같은 건 없었다.
박수 칠 기운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차석준 병장은 예비역들의 이런 반응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가 담당해 왔던 선배들이 거의 다 비슷했기 때문이다.
“입소식이 10시에 시작될 테니, 그 전까지 완전군장 싸 주시기 바랍니다.”
“완전군장?”
“입소식인데 군장을 왜 싸라는 거야?”
예비역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차석준은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동원 훈련 받으러 온 것도 짜증 나는데, 완전군장 짊어지고 입소식 받으러 연병장으로 집합하라고 하면 곱게 ‘예, 알겠습니다!’ 하고 따를까?
천만에. 예비역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대장님의 명령이시니 잘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입소식이 한 번에 무사히 끝나면, 남은 시간은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도록 하겠습니다.”
휴식이라는 말에 예비역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교들이 사라진 뒤.
예비역들은 온갖 불평불만을 내비치면서 완전군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불만이 가득한 건 백우호도 마찬가지였다.
“입소식에 무슨 완전군장이래.”
신병교육대에 입소할 때에도 단독군장 차림으로 입소식을 진행했는데, 그 시절에도 안 했던 완전군장 입소식을 설마 동원 훈련에 와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건 이강진도 예상 못 한 흐름이다.
“인혁이 형하고 호만이 형이 우리보다 2주 먼저 여기에 와서 훈련받았었거든.”
“엥? 진짜?”
“어, 인혁이 형이 그러던데, 이번 동원 훈련 엄청 빡세게 굴릴 거라고 하더라. 나는 그냥 인혁이 형이 나한테 겁주려고 그런 줄 알았었는데.”
완전군장 입소식 때문에 불안함의 크기는 점점 커져만 갔다.
* * *
내리쬐는 땡볕.
그 아래에 완전군장을 어깨에 짊어진 예비역들.
오랜만에 쓴 방탄모가 이리도 무거웠던가. 이강진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사실 방탄모보다 K-2가 더 문제였다.
‘이놈의 총은 예나 지금이나 더럽게 무겁네.’
마음 같으면 지금 당장에라도 냅다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장교가 올라와서 마이크를 들고 이들에게 말했다.
“날씨 많이 더우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예행연습 딱 한 번만 하고 바로 입소식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한 번의 연습마저도 상당히 짜증이 났다.
속전속결로 예행연습을 마친 뒤.
곧바로 실전에 들어갔다.
“대대장님께서 입장하고 계십니다.”
장교 출신의 예비역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 성!”
대대장은 거수경례를 취한 후에 BGM에 맞춰서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시선을 훑었다.
이후 대대장의 훈시가 이어졌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지기 위해 먼 곳까지 달려와 주신 예비역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아울러······.”
말이 점점 길어진다.
투 머치 토커 속성을 지닌 대대장의 모습에 예비역들은 점점 짜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도 이 정도로 길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동원 훈련은 성과제가 적용되니, 최대한 열과 성을 다해 훈련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드디어 대장정의 끝이 보였다.
입소식의 모든 순서를 마친 뒤에 예비역들은 부리나케 막사로 뛰어올라 갔다.
생활관에 도착하자마자 이강진과 백우호는 완전군장을 냅다 막사에 던져 버렸다.
군복 상의도 벗어젖혔다.
“어휴. 덥다, 더워!”
“이럴 줄 알았으면 미니 선풍기라도 챙겨 올 걸 그랬네.”
사실 미니 선풍기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강진아, 그런데 여기 생활관에 콘센트, 저거밖에 없는 거지?”
“그렇지.”
출입구에 각각 하나씩밖에 없었다.
생활관에는 20명이 넘는 인원들이 있다. 저 전기 콘센트만으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전부 다 충전하려면 하세월이다.
다른 예비역들도 눈치를 보고 있었다.
차라리 지금 미리 충전해 둘까?
모두가 다 같이 공평하게 충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때마침 이강진이 그 해결책을 가지고 왔다.
“잠시만요.”
이강진이 예비역들의 시선을 자신 쪽으로 모았다.
“콘센트가 저기에 하나씩밖에 없는 거, 다들 아시죠? 그래서 제가 이걸 챙겨 왔습니다.”
미리 챙겨 온 필살의 아이템.
바로 ‘멀티탭’이었다.
“오오······!”
“센스 대박이시네요!”
예비역들은 이강진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대대장이 땡볕 아래에서 계속 좋은 말들을 예비역들에게 들려줬어도 이런 열띤 반응은 나오지 않았었다.
멀티탭 하나로 생활관의 영웅이 된 이강진.
백우호는 그런 이강진을 보면서 고개를 힘차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역시 너하고 같이 훈련받으면 편하다니까.”
현역 때에도, 예비역 훈련을 받을 때에도.
이강진과 함께라면 문제없다는 법칙은 여전히 유효했다.
* * *
점심시간이 되었다.
예비역들에게 식사 집합 따위는 없다. 설령 집합을 걸어도 거기에 얌전히 응하고 따를 예비역들이 아니다.
동원 부대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희언아.”
행정반에서 기지개를 펴던 차석준 병장이 양희언을 불렀다.
“일병 양희언.”
“가서 선배님들한테 밥 먹으러 가라고 전하고 와라.”
“알겠습니다. 차석준 병장님은 식사 먼저 하시겠습니까?”
“오늘 점심 뭔데?”
“콩나물국에 쌀밥, 배추김치, 김, 멸치조림, 우유 이상입니다.”
점심 메뉴를 듣자마자 차석준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메뉴가 아주 환상적이네. 너무 환상적이어서 먹으러 갈 엄두가 안 나. 그냥 난 간X뽕이나 먹어야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 먼저 밥 먹고 오겠습니다.”
“그래, 고생해라. 아, 그렇지 참.”
중요한 걸 잊을 뻔했다.
부랴부랴 지갑을 챙기는 차석준.
“식당 내려가는 길에 PX에 들러서 봉지라면 몇 개 사 와라. 이걸로 네 것도 사고. 심부름값이다.”
“감사합니다. 근데 미리 가서 사 올 필요가 있습니까?”
“너, 이번에 동원 훈련 조교 처음 맡아 보는 거지?”
이제 막 이등병 신세를 벗어나서 일병이 된 양희언.
그는 차석준 병장의 물음에 곧장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어쩐지. 그럼 잘 기억해 둬라. 선배님들은 짬밥 거의 안 먹으려고 할 거다. 대부분은 PX를 이용하겠지. 그래서 우리 먹을 것도 미리 사 오라고 한 거야. 선배님들이 PX 다 털어 버리기 전에. 오케이?”
“일병 양희언. 예, 알겠습니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다.
게다가 점심 메뉴도 엉망이지 않은가. 오늘의 점심 메뉴가 뭔지 예비역들이 알게 되는 순간, 그들의 발걸음은 식당이 아닌 PX로 향할 것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차석준의 충고.
앞으로 1년은 더 이 생활을 해야 하는 양희언 일병은 이 충고를 가슴속 깊이 새겨 두기로 했다.
* * *
차석준의 예상대로 대다수의 예비역들은 PX로 발길을 돌렸다.
이강진과 백우호가 PX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긴 줄이 완성되어 있었다.
“우리 차례까지 오긴 오려나?”
“이 정도 줄은 생각보다 금방 줄어드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이강진은 본인들의 차례까지 대략 10분을 예상했다.
10분이면 기다릴 만하다.
잠시 수다를 떨다 보니 금세 이들의 차례가 왔다.
PX에 들어선 순간.
백우호의 입에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이야! PX, 진짜 오랜만에 오네!”
비록 1075대대 PX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흡사했다.
“은석이 형, 아직도 PX병 달고 있으려나?”
“글쎄. 후임한테 물려줬을지도 모르지.”
이강진은 요즘 1075대대에 연락을 잘 안 해서 그런지 최근 소식까진 알지 못했다.
PX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가격이 싸다는 점이다.
게다가 PX에서만 먹을 수 있는 제품들이 있다.
“우와! 이 초코파르페, 엄청 오랜만이네! 우리 현역 때 PX 가면 이거 거의 맨날 사 먹었잖아.”
옛 추억을 떠올리는 백우호.
바구니 안에 먹을 것들을 잔뜩 담기 시작했다.
“나중에 생활관에서 먹을 것들도 사 두자.”
“좋지.”
원래 취식물을 막사에 짱박아 두면 안 된다. 구막사라 그런지 취식물을 넣어 두면 쥐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 예비역들은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의 식탐과 주린 배만 신경 쓸 뿐 막사의 환경, 청결은 후순위의 문제다.
이강진도 오래간만에 먹고 싶은 것들을 다 챙겼다.
혹시 몰라 참치와 맛X시도 사 두기로 했다. 지금처럼 점심 메뉴가 최악일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바구니에 한가득 먹거리들을 가져와 계산대에 올려 뒀다.
“다 합쳐서 2만 5천 원입니다.”
“그것밖에 안 나왔어?”
이것이 PX의 위력이다.
계산은 백우호가 하기로 했다.
봉지에 먹거리들을 잔뜩 담은 후.
그것들을 가지고 구막사로 향했다.
비록 양손에 쥔 봉지들은 무거웠으나.
막사로 향하는 이들의 걸음은 상당히 가벼워 보였다.
< 제111화. 동원훈련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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