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4화. 특별한 손님들 (1) >
제104화. 특별한 손님들 (1)
처음에 이강진은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러나 틀림없이 중대장이었다.
전투복 상의에 '윤형인'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계급도 대위다. 이강진이 아는 그 중대장이 맞다.
중대장은 이강진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지, 바라 식 당 직원과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진짜 자리 없어요? 여기 아니면 안 되는데……."
"죄송합니다. 예약이 꽉 차 있어서 어쩔 수가 없네요."
"이거 참……."
상당히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뒤늦게 이강진을 본 직원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언제 오셨어요?"
"대표님?"
그제야 고개를 뒤로 돌리는 중대장.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가, 강진이잖냐!"
"오랜만입니다, 중대장님."
그제야 중대장은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랬지, 그랬어. 네가 여기 대표였지. 내가 진짜 정신이 없긴 한가 보구나. 중요한 걸 깜빡하고 있었어!"
"무슨 일이신데 그러십니까?"
재회의 기쁨은 나중에.
지금은 중대장에게 닥친 일부터 먼저 해결해 주고 싶었다.
"새로 부임하신 사단장님하고 요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같이 왔는데, 사단장님이 이번에 새로 생긴 바라 식당에 꼭 가고 싶 다고 하셔서 내가 소대장 시켜서 예약해 두라고 했었거든. 여긴 예약 아니면 먹기 힘들다며?"
"예, 웨이팅이 많이 깁니다."
특히 저녁 시간대가 피크다.
여기까진 특별히 문제가 될 게 없었다.
하나 이후부터가 지금 이 사달의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소대장, 그 녀석이…… 예약하는 걸 깜빡했다고 하더 라."
"그랬었군요."
이제야 이강진은 중대장이 왜 이렇게 당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예약을 안 하면 당일 바라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건 거의 포 기해야 한다.
중대장의 안색이 점점 새파랗게 되어 가고 있었다. 얼굴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새로 부임한 부대에서 고생 많이 하고 있을 중대장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그래도 나 군 생활 할 때 같이 고생한 사람인데 못 본 척할 수는 없지.'
원래 이강진은 행보관을 제외하고 간부들을 그렇게까지 좋아 하진 않았다.
하나 그거는 이강진이 군인이었을 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계급장 떼고, 군복 벗고 만나면 나쁜 사람은 거의 없다.
다 직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을 뿐이지.
"지원 씨."
이강진은 방금 전까지 중대장에게 예약 없이는 힘들다고 했 던 직원을 불렀다.
"9번 룸 세팅해 주세요."
원래 그곳은 점심시간에는 개방하지 않는 공간이다. 그러나 대표가 와서 준비하라고 하는데, 누가 안 된다고 할까.
직원은 곧장 알겠다고 답했다.
이강진은 당황해하는 중대장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중대장님. 자리 만들어 두겠습니다. 몇 분 이나 오시나요?"
"그게…… 사단장님하고, 연대장님하고, 그리고…… 한일곱명 정도?"
"알겠습니다. 지원 씨! 일곱 명이래요."
"예, 알겠습니다! 5분 내로 준비하겠습니다!"
"네, 부탁 좀 할게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제야 중대장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그려졌다.
"고, 고맙다, 강진아! 정말로 고마워!"
죽다가 살아난 기분이었다.
사실 이강진에게는 큰일이 아니었다. 원래 개방 안 하던 룸을 이번에 특별히 한번 오픈하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하나 그 사소한 도움이 중대장에게는 크나큰 은혜가 되었다.
"사단장님은 언제 오시나요?"
"한 10분 후에 오실 거야."
"그럼 여유 있네요. 미리 뭐 드실지 정해 주시면 사단장님 오 시는 시간에 맞춰서 바로 요리 내도록 준비할게요."
"고, 고마워!"
중대장의 눈에는 이강진이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중대장이 말한 대로 딱 10분이 지난 시점에 군복을 입은 사람 들이 바라 식당을 찾았다.
도합 일곱 명.
계급으로 따지면 중대장이 가장 막내였다.
근처에서 장교들을 바라보던 이강진은 쓴웃음을 몰래 흘렸다.
'중대장님이 땀을 뻘뻘 흘렸던 이유가 있었네.'
아마 소대장이라는 사람은 이 모임이 끝난 다음, 중대장에게 탈탈 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1중대 소대장이었더라면 이런 실수는 안 했을 텐데.'
FM의 화신인 1중대 소대장은 예약이 잘되어 있나 확인 전화 까지 걸었을 사람이다.
'중대장님이 고생이 많네.'
부하가 일 처리를 잘못하면 상관이 고생한다.
그건 군대나 사회나 사람 사는 곳이라면 다 똑같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9번 룸으로 향하는 장교들.
사단장의 얼굴에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여기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어렵다고 들었는데, 예약은 윤 대위가 했나?"
"예, 제가 직접 했습니 다!"
저건 이강진이 시킨 대사였다.
만약 사단장이 누가 예약했냐고 묻거든, 방금 중대장이 말한 것처럼 본인이 직접 했다고 대답하라고 했다.
중대장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의도였다.
대답을 하면서 중대장은 슬쩍 이강진과 시선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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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엄지를 세우는 중대장.
이강진은 거기에 맞춰서 싱긋 웃었다.
그들이 사라진 뒤.
이강진은 직원 몇몇을 불렀다.
"방금 9번 방으로 들어간 군인분들 있잖아요. 그분들, 개인적 으로 저하고 친분 있는 분들이니까, 서비스 많이 주세요."
"아, 그렇군요."
"대표님 아시는 분이라면 무조건 잘해 드려야죠."
"저희만 믿으세요."
믿음직한 직원들의 모습에 이강진은 고마움을 표했다.
'어디…… 우리 중대장님, 기 좀 세워 줄까?'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서비스의 시작이다.
상석을 차지한 사단장이 자리에 앉자마자 9번 방 문이 다시 열렸다.
"주문하신 음식들 나왔습니다."
"벌써요?"
사단장은 놀란 눈으로 직원들이 들고 온 음식들을 바라봤다. 이곳에 오기 전에 중대장이 메뉴판을 찍은 사진을 보내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미리 말씀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었 다.
그 덕분에 오래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음식들이 세팅되었다. 사단장의 기분이 한층 업되었다.
"우리 윤 대위가 센스가 있어! 그래, 이런 맛이 있어야지. 얼 마 전에 마누라하고 같이 밥 먹으러 어느 식당에 간 적이 있는 데, 글쎄 주문을 하고 10분이 넘어도, 20분이 넘어도 음식이 안 나오더군. 그래서 참다못해 안 먹겠다고 하고 그냥 취소하고 나 와 버렸지."
장교들은 사단장의 일화에 최대한 크게 리액션을 펼쳤다.
당시의 일을 떠올리면서 혀를 차던 사단장은 이내 다시 중대장을 칭찬했다.
"윤 대위 덕분에 그런 걱정 없이 바로 먹을 수 있으니까 좋군, 잘했어."
"대위 윤형인! 감사합니다!"
맛 또한 일품이었다.
애초에 바라 식당은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맛이 없을 리가 없다.
이전 사단장도 오호만이 만든 버섯닭볶음탕에 흠뻑 빠진 적 이 있었다. 새로 부임한 사단장 역시 오호만이 만든 요리를 극 찬했다.
"내 입맛에 딱이군. 이러다가 나, 여기 단골 되겠는데?"
"하하하! 사단장님, 그러면 우리끼리 여기서 주기적으로 모임 가지는 건 어떻습니까? 오늘처럼 말입니다!"
"모임이라…… 나쁘지 않군. 진행시켜! 우리 윤 대위도 꼭 챙기 고."
"예, 알겠습니 다!"
졸지에 사단장보다도 더 주인공이 된 중대장.
이게 다 이강진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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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난 두 I.
사단장과 장교들이 가게 밖으로 향했다.
중대장은 나가기 전에 이강진을 찾았다.
"오늘 정말 고마웠다, 강진아."
"아닙니다. 제가 군인이었을 때 중대장님한테 신세 많이 졌었 는데, 이렇게라도 갚아야죠."
"신세는 무슨. 내가 오히려 네 덕을 많이 봤지."
이강진이 잘해 준 덕분에 중대장은 상관들에게 자주 칭찬을 받았었다.
"다음에 내가 꼭 보답하마. 꼭!"
"네,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이강진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놓을 생각을 않는 중대장.
밖에서 장교들이 중대장을 찾지 않았더라면, 그는 평생 이강 진의 손을 잡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가 사라진 뒤.
주방에서 나온 오호만은 뒤늦게 중대장의 뒷모습을 확인했다.
"가만. 저분, 우리 중대장님 아니야?"
"어, 맞아."
"왜 오셨대? 밥 먹으러? 그러면 나도 부르지, 오랜만에 인사 나 드리게."
"형이 갔었더라면, 분위기 이상하게 되었을걸."
오호만은 이강진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
주방에만 계속 있었기 때문에 중대장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누구와 같이 왔는지, 그는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있는 법이지.'
추가로 직원들을 더 충원하기 위해 이강진은 나두석과 함께 대표 사무실에서 자리를 잡은 채 면접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씩 면접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회사 대표 앞이라 그런지 1차 면접 때에는 잘했던 지원자들 중에서 몇몇은 과도한 긴장으로 떠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두석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방금 면접을 보고 나간 여성 지원자도 그런 경우였다.
"저분, 1차 면접은 엄청 잘 봤었거든요. 목소리도 힘차고. 아 이컨텍도 잘하고. 그런데 형님…… 아니, 대표님하고 면접 볼 때 에는 영 실수를 많이 하네요."
"내가 무섭게 생겨서 그런가?"
"그렇진 않아요."
대표라는 직함이 주는 압박감 때문일 것이다.
이강진은 방금 면접을 마쳤던 여성 지원자의 이력서를 살폈
"1 차 면접 때 잘 봤다고?"
"예, 제가 직접 봐서 아는데, 이분은 무조건 최종 면접도 합격 할 거라고 확신했었습니다. 일도 잘할 거 같고요. 경험도 많고. 어느 분야에 배치해도 제 역할은 충실하게 잘할 겁니다."
"그래? 그럼 합격시켜."
"……네?"
너무 쿨한 결정에 오히려 나두석이 당황했다.
"대표님은 어떻게 보셨는데요?"
"나는그럭저럭.근데 너처럼 1차 면접 때부터 저 지원자를 본 건 아니었으니까. 한 번 실수할 수도 있지."
"그래도 제 말만 듣고 그렇게 덥석 결정을 내리셔도 되나요?"
"난 네가 사람 보는 눈이 나쁘다고 생각 안 하거든."
안목이 있는 편이다.
이강진도 그렇지만, 나두석도 제법 사람을 볼 줄 안다.
회귀하기 전에도 그랬다.
두 사람은 두터운 신뢰로 이어져 있다. 믿고 아끼는 동생이기 에 이강진은 나두석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머쓱하게 웃던 나두석. 그가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뭐가 고마운데."
"절 믿어 주셔서요."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엄청난 용기와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이강진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이강진은 피식 웃었다.
"고마우면 나하고 지윤 씨 사이를 너무 깊게 캐물으려고 하지 말든가."
"하하하! 그게 불편하셨나요?"
"안 불편한 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아무튼 잘돼 가고 있으니 까 넌 신경 꺼. 이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연애는 두 사람만의 몫이다.
제3자가 끼어들어서 왈가왈부하면, 잘되던 연애도 잘 안 풀리 게 된다.
이강진이 그랬던 것처럼, 나두석도 그의 말을 적극적으로 반 영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할게요."
"제발 좀 그래 주라."
진심을 담아서 하는 말이었다.
< 제104화. 특별한 손님들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