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0화. 전역 (1) >
제100화. 전역 (1)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 이강진.
비록 한지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익명 상담소라는 예능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그곳에서 한지윤은 간접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만 있으면 된다고.
자신도, 상대방도.
물론 이강진이 오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강 진은 한지윤의 발언을 통해서 가능성을 보았다.
무슨 가능성?
'고백 성공의 가능성이지!'
그래서인지 이강진은 크리스마스가 지난 이후에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전역하고 나면, 당당하게 고백해야겠어.'
이제야 결심이 제대로 섰다.
문제가 있다면.
'언제 지윤 씨하고 또 같이 만나느냐, 이건데.'
나중에 같이 스키장에 다시 놀러 가기로 했으니, 그때 고백 작 전을 추진하면 될 것 같았다.
아니면.
'그때 말고 나중에 고백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들면, 그때 갑자기 하게 될지도 모르지.'
나두석이 했던 말처럼 타이밍이 찾아오면, 이성이 아닌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에 몸을 맡기는 것 또한 괜찮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건 전역 이후의 일들이다.
일단은 눈앞에 있는 일들부터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
'좋아, 오늘도 열심히 일해 보자!'
부대 복귀까지 남은 기간은 5일뿐.
이 S일이 지나면…….
이강진은 전역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
일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흘렀다.
12월 31 일. 올해 마지막 날임과 동시에 이강진이 부대로 복귀 하는 일자가 불쑥 찾아왔다.
이강진은 다시 전투복을 입었다.
15일 만에 입어 보는 전투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동원훈련 때까지 당분간 입을 일은 없겠지.'
전신 거울 앞에 선 이강진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진이라도 남겨 둘까?'
같은 군복을 입고 있더라도 예비군의 자신과 현역의 자신은 많이 다르다.
이강진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두고 싶었다.
찰칵!
군복을 입고 셀카라니, 절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전투화를 신고서 집을 나섰다. 익숙한 차 한 대가 이강진의 집 대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나두석이 그를 보면서 밝은 표정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형 님."
"그러게. 오늘은 유독 날씨가 따뜻한 거 같기도 하고. 햇빛도 쨍쨍하네."
"하늘도 형님의 전역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그러는 거 아닐까 요?"
"전역은 내일이야, 인마."
하루밖에 차이가 안 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직이다.
* * *
나두석 덕분에 이강진은 편하게 시외버스터미 널에 도착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스마트폰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제가 다시 형님 댁에 도로 가져다 놓을까요?"
"아니, 됐어. 부대로 가지고 들어갈 거야."
"그래도 되나요?"
"당연히 안 되지."
몰래 반입할 생각이다.
하루 정도는 괜찮다. 전역을 한 달, 혹은 두 달 이상 남겨 둔 선임들조차 몰래 스마트폰을 가지고 부대로 복귀했었으니 말이다.
그들에 비하면 이강진은 양반인 셈이다.
설령 간부들에게 들켜도 어차피 내일 전역하는 녀석이라고 대충 넘어가 줄 것이다.
지금까지 이강진이 간부들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깟 아 량 한 번 못 발휘할까.
군대에 대해선 잘 모르는 나두석이었기에 그는 이강진의 행동을 강하게 말리진 않았다.
"그럼 내일 제가 다시 이곳으로 모시러 올게요."
"됐어. 어차피 좀 늦어지게 될 거 같으니까, 내가 알아서 갈게.
그럼 내년에 보자."
"네, 형 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비록 내일모레에 나두석을 다시 보게 될 테지만, 그때는 올해 가 아닌 내년이 될 것이다.
한 해가 바뀌고 보게 되는 셈이 니, 이강진은 내년에 보자는 표 현을 사용했다.
'이렇게 말하니까 1 년 뒤에 보자고 말하는 거 같네.'
터미널에 들어선 이강진은 자신처럼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 귀하려는 병사들을 힐긋 쳐다봤다.
'저 사람은 신병위로휴가 나왔나 보군.'
자꾸만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내일 전역하는 입장에서 첫 휴가를 나온 이등병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묘하게 승리자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 * *
오늘 1075대대 1중대로 휴가 복귀를 하는 병사들은 이강진의 동기인 김철과 백우호뿐이었다.
이강진은 먼저 도착한 김철과 따로 어디론가 향했다.
군인들이 자주 찾는 장소 중 한 곳.
바로 '용사의 집'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서글서글한 인상을 지닌 가게 주인이 이강진과 김철을 반갑 게 맞이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
"저희, 오바로크 좀 치려고 하는데요."
"오바로크?"
"네, 개구리 마크 달려고요."
말만 개구리 마크지, 사실은 전역 계급장을 뜻하는 거였다.
전역 계급장을 구성하고 있는 개나리, 지구, 리본에서 한 글자를 각각 따와서 '개구리'라고 지칭한다. 그래서 병사들이 전역 계급장을 '개구리 마크'라고 표현한다.
가게 주인이 작게 웃었다.
"허허, 조만간 전역하나 보구만!"
"내일 전역합니다."
"어디 보자. 내일 전역한다니까 내가 신경 잘 써서 오바로크 해 줘야겠네. 잠깐만 거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두 사람은 전투복 상의를 벗어서 가게 주인에게 넘겼다.
꿈에도 그리 던 전역장, 개구리 마크를 달게 되니 감회가 새로 웠다.
'역시 개구리 마크는 싸재로 달아야 제맛이지!'
아무리 부대 내에 있는 오바로크병의 실력이 뛰어나다 하더 라도 싸재를 넘어설 수는 없다.
기다리는 동안, 김철은 이강진에게 백우호에 관련된 걸 물었다.
"우호는 어떻게 할 거래? 걔도 와서 오바로크 쳐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녀석은 말년 휴가 나오자마자 받았어. 연락해 보니까 우 리하고 헤어진 다음에 바로 용사의 집에 가서 개구리 마크 오바 로크 치고 집 갔다고 하더라."
이강진도 말년 휴가 출발일에 오바로크를 미리 받아 놓았으 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때는 너무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백우호 같은 생각을 하질 못했었다.
그래도 크게 차이는 없다. 어차피 부대 들어가기 전에 개구리 마크 달게 되는 건 똑같으니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주인이 두 사람을 불렀다.
"한번 입어 보게."
전투복을 다시 갖춰 입은 이들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유독 개구리 마크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캬! 좋다, 좋아!"
김철은 대만족이었다.
물론 이강진도 만족했다. 작대기보다는 훨씬 화려하고 보기 좋았다.
돈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온 이들. 용사의 집 안쪽에서 주인이 큰 목소리로 '전역 축하혀!'라고 한 말이 들려왔다.
이들은 마지 막까지 가게 주인에게 고개를 숙이 며 고마움을 표 현했다.
이제 백우호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향할 차례다.
백우호는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약속 장소에 와 있었다.
"왜 이리 늦었어. 얼어 죽는 줄 알았네."
"미안. 오바로크 치느라 늦었어."
"그러니까 나처럼 말년 휴가 나오자마자 바로 쳤어야지. 바로 택시 타고 갈 거냐? 아니면 뭐 먹고 갈까?"
아직 복귀까지 여유가 있었다.
2시간가량 남았다.
평소 같았더라면 조금이라도 부대로 복귀하는 걸 늦추고 싶어서 시내에서 최대한 뭔가를 하다가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 춰서 갔을지도 모른다.
하나 이 번 휴가 복귀는 좀 달랐다.
이강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일 어차피 우리 다 전역하잖아. 그냥 택시 타고 일찍 부대 로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애들 얼굴 더 보자. 작별 인사 할 시간 은 여유롭게 가지는 편이 좋을 테니까."
"하긴, 강진이 네 말도 맞다."
가서 마지막으로 부대도 한번 쭉 둘러보고.
이들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이른 복귀를 택하기로 했다.
택시를 잡고 부대로 바로 향하는 말년 3인방.
그동안 이강진은 스마트폰을 꺼내 종이백 밑바닥에 숨겼다. 옆에 앉아 있던 김철이 이강진에게 부탁했다.
"강진아, 내 것도 좀……"
"너도 가져왔어?"
"응. 어차피 내일 전역하니까. 애들하고 사진이나 찍을 겸 해 서 몰래 가져왔지."
김철뿐만이 아니었다. 백우호도 자신의 스마트폰을 몰래 챙 겨 가지고 왔다.
위병소에서 시행되는 소지품 검사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
부대 앞에 도착한 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이 들키지 않게끔 확인하고 또 확인을 했다.
"슬슬 가자."
"오케이."
위병소 안으로 향했다.
본부중대에 소속되어 있는 하사가 조장실 안으로 들어선 말 년 3인방의 전신을 쭉 훑었다.
"반입 금지된 소지품은 안 가져왔겠지?"
"예, 그렇습니다!"
군대에 와서 부쩍 거짓말이 많이 늘었다. 이제는 눈썹 하나 까 딱이지 않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단계까지 오르게 되었다.
하사는 손으로 말년 3인방의 건빵 주머니, 상의 주머니 등을 대충 더듬었다.
종이백 안은 귀찮다고 확인도 안 했다.
"올라가 봐라."
"감사합니다. 충성!"
"그래, 충성."
예전에 본부중대에서 반입 금지 물품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때 1075대대 전체가 뒤집어졌다.
대대장이 직접 부대를 돌아다니 면서 병사들 소지품 검사를 실 시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나 요즘은 다시 해이해지는 분위기였다. 방금 소지품 검사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군대의 허술함이다.
그 허술함 덕분에 이강진과 동기들은 무난하게 스마트폰을 챙 기고 1중대로 향할 수 있었다.
이강진이 김철에게 확인 차원에서 물었다.
"오늘 당직사관, 누구였더라?"
"행보관님."
"그래? 그러면 스마트폰 미리 꺼내도 되겠네. 행보관님은 직 접 소지품 검사 안 하시는 분이 니까."
당직사관이 소대장만 아니면 된다.
소대장은 중위로 진급한 이후에도 휴가 복귀하는 병사들의 소지품 검사를 직접 시행하곤 했다.
이강진은 동기들과 함께 행정반에 들어서기 전에 몇몇 병사 들과 마주쳤다.
"충성!"
"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우리 없는 동안 일 터진 건 없었지?"
"예. 평상시 그대로였습니다."
장기간 자리를 비웠음에도 다행히도 큰 문제는 없었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어차피 내일 전역하는데, 무슨 상관이랴.
행정반에 들어선 말년 3인방은 행보관 앞에 일렬로 나란히 줄을 섰다.
이번에도 보고자 역할은 이강진의 것이었다.
"충성 병장 이강진 외 2명, 휴가 복귀했습니다!"
"일찍 왔군."
"예, 애들하고 작별 인사 할 시간을 오래 가지고 싶어서 일부러 이른 시간에 복귀했습니다."
"안 그래도 너희 분대원들이 식당에서 너희들 전역 기념 파티 해도 되냐고 물어보더라. 허락은 해줬으니까 저 녁 너무 많이 먹 지 마라."
"네! 감사합니다!"
특별히 문제가 없다면, 보통은 이런 식으로 식당에 내려가서 전역자 파티를 추진하는 것을 허락해 주곤 한다.
김철은 행정분과 생활관으로, 그리고 이강진과 백우호는 그 티웠던 1생활관으로 향했다.
생활관 문을 활짝 여는 두 사람.
"형들 왔다!"
"퍼뜩 경례 안 하고 뭐 하냐!"
그들을 보자마자 분대원들이 곧장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서로 맞추기라도 하듯 일제히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충성!"
"충성."
그들의 거수경례를 받아 주는 이강진의 마음은 벌써부터 뒤 숭숭했다.
전역한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동시에 정들었던 분대원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마냥 좋은 일이 아니었다.
복잡한 이 기분.
이것 또한 전역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다.
< 제100화. 전역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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