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08화 (308/347)

< 제98화. 마지막 훈련 (6) >

제98화. 마지막 훈련 (6)

밝은 표정으로 레토나에 오른 연대장.

그가 이곳을 떠나고 나서야 위기 상황이 해제되었다.

대대장과 함께 연대장을 배웅한 중대장은 곧장 CP 텐트 앞으 로 향했다. 그리고 1중대원들을 집합시켰다.

"주목."

"주목!"

병사들은 중대장의 말에 복명복창하면서 그에게 시선을 고정 시켰다.

"다들 간밤에 고생 많았다. 갑자기 연대장님이 상황 걸어서 정 신이 하나도 없었을 텐데, 이 정도면 충분히 선방했다. 대대장 님께서도 크게 만족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오전까지는 큰 훈련 없이 가급적이면 최대한 쉬는 시간 보장해 주겠다고 하셨 으니 일단 들어가서 바로 자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강진이하고 인강이."

지목을 받은 두 병사가 힘차게 관등성명을 외쳤다.

"대대장님께서 너희 둘한테 3박 4일 포상 휴가 하나씩 주라고 하셨다. 훈련 끝나고 포상 휴가증 줄 테니까 그리 알고 있어라."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고맙지. 여하튼 잘했다!"

중대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역시 믿고 보는 이강진이다.

병사들은 갑자기 왜 두 사람한테 포상 휴가가 떨어졌는지 모 르는 눈치였다.

1부소대장이 직접 나서서 병사들의 호기심을 풀어 줬다.

막걸리병에 얽힌 이강진의 센스를 듣고서 병사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와…… 이강진 병장님, 어떻게 그 자리에서 그런 행동이 바로 나옵니까?"

"존경합니다, 이강진 병장님!"

"역시 전설의 포상 휴가 사냥꾼! 아직 살아 있으십니다, 하하 하!"

"인깅아, 넌 이강진 병장님 전역하실 때까지 절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강진 병장님 덕분에 3박 4일 포상 휴가가 떨어진 거니 까."

기쁜 일이긴 하지만, 이강진은 웃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3박 4일 포상 휴가는 이강진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애들한테 양도하든가 해야겠네.'

전역하기 전에 마지막 선행을 베풀고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 아 보였다.

혹한기 훈련 4일 차 아침.

대대장이 병사들에게 미리 이야기한 대로, 오전 훈련은 짬처 리가 되었다.

오전 10시 반까지 휴식. 그동안 병사들은 부족했던 잠을 보충 했다.

그 이후부터는 간단한 경계 작전만 소화하고 바로 점심 식사 를 진행했다.

점심 메뉴는 전투식량이었다.

포장지에 붙어 있는 끈들을 쫙 당긴 뒤에 일렬로 나란히 나열 해 놓은 1분대원들.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오는 봉지들의 모습을 보면서 백우호 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강진아, 그러고 보니 우리, 전투식량 먹는 게 이번이 마지막 아니 냐?"

"현역 달고 먹는 전투식량은 마지막이지. 동원훈련에 가면 또 먹게 될걸."

"아, 뭐야. 마지막인 줄 알고 한창 감성 중만해지려고 했었는 데."

이걸 나중에 또 먹는다고 하니 헛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맛이 없진 않다. 오히려 맛있는 편이었다.

오죽하면 전역한 이후에도 그때 먹었던 전투식량의 맛이 그 리워서 일부러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이강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전투식량에 붙어 있는 국방색 무늬만 봐도 치가 떨린다.

마음 같아선 전역하자마자 불구덩이 속에 전투복, 전투화를 던져 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동원훈련을 못 받으니까.'

민방위라면 몰라도 동원훈련 때에는 전투복을 입고 가야 한

'동원훈련은 또 어떻게 받아야 하나.'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 왔다.

3일 동안 군복을 입고 훈련을 받아야 한다.

1 년에 한 번만 하면 된다.

2년에 가까운 군 생활도 버 텼는데, 고작 1 년이 3일, 그것도 딱 한 번 훈련받는 게 뭐가 힘들다고 그러는 걸까 하고 말하는 사람은 미필일 확률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예비역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1 년에 한 번이든 몇 번이든 군복을 입고 훈련을 받는다는 사 실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괴로운 일이다.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아직 먼 훗날의 일이다. 지금은 혹한기 훈련에 집중하는 게 좋아 보였다.

* * *

혹한기 4일 차는 사단장, 연대장의 급습 없이 무사히 넘어갔 다.

5일 차 아침.

아침 점호를 마치자마자 이강진은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훈련 마지막에 드디어 신호가 왔군!'

가급적이면 끝까지 참아 보려고 했으나, 인내심이 폭발하기 전에 항문이 먼저 폭발할 것 같았다.

그 전에 이강진은 빠르게 화장실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대기 줄은 길지 않았다.

앞에 두 명만 기다리면 된다.

둘 중 한 명인 김철이 이강진을 보자마자 쓴웃음을 지었다.

"너도 왔냐?"

"어, 죽을 거 같다."

"조금만 참아. 3사로, S사로 아저씨들, 곧 나올 거 같으니까."

김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가 지목했던 화장실 칸 문이 동시 에 열렸다.

3사로는 김철이, 5사로는 앞서 기다리던 타 중대 병사가 들어 갔다.

인내심의 끈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될 때.

1사로의 문이 열렸다.

천국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 듯한 기분이었다.

하나 안은 천국이 아니었다.

"이런 망할."

악쥐가 이강진의 코끝을 자극했다. 만약 후각이 예민한 연대장이 이곳에 왔다면, 아마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푸세식 화장실이었기 때문에 알아서 잘 조절(?)하면서 싸야 한다.

이제야 안도하는 이강진.

사단장이 군장 검사를 하려고 했을 때보다, 연대장이 술 냄새 를 맡았을 때보다 이번이 훨씬 더 위험했다.

"살 거 같네."

해탈의 경지에 오르게 된 이강진은 뒤처리를 마친 뒤에 화장 실 칸에서 나왔다.

이강진 말고도 화장실을 찾기 위해 온 병사들이 수두룩했다.

줄을 서 있는 병사들 중에서 백우호의 얼굴도 보였다.

"강진아 너, 휴지 있냐?"

"넌 설마 휴지고 안 가져왔냐?"

"네가 나오면 바로 받으려고 했지."

"어휴. 자, 여기 있다."

건네받은 휴지를 보자마자 백우호의 인상이 팍 일그러졌다.

"뭐야, 이거밖에 안 남았어?"

"어. 설마 네가 쓸 줄은 몰랐거든. 잘 아껴 쓰면 그거로도 충 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이 런 썅……!"

마침 볼일을 다 본 병사들이 편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화장실 칸에서 나왔다. 그들을 보자마자 백우호는 곧바로 걸음을 옮겼

"힘내라, 우호야."

이강진이 해 줄 수 있는 건 응원뿐이었다.

화장실 대란을 마친 이강진은 중대원들과 함께 사주경계 자 세를 취하면서 산을 두세 차례 오르락내리락했다.

이것으로 예정되어 있던 훈련이 모두 종료되었다.

CP 텐트 앞에 집합한 병사들. 행보관은 이들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 줬다.

"점심 먹고 바로 자라. 오침 취한 후에 16시에 기상해서 텐트 철거하고 완전군장 싼 다음에 17시 30분까지 본부중대가 있는 곳으로 전원 집합할 거다. 거기서 대대장님 말씀 듣고 바로 복 귀 행군 시작할 테니까, 그리 알아 두면 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밥 먹어라!"

야간 행군을 위해서 든든하게 배를 채워 둬야 한다.

마침 점심 메뉴도 그나마 먹을 만한 것들로 구성되어 나왔다.

'훈련받으면서 먹었던 짬밥 중에서 가장 낫네.'

상대적으로 맛있다는 뜻이지, 지금 먹는 이 짬이 이강진의 군 생활을 통틀어 가장 맛있는 짬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점심을 먹을 때, 1분대원들은 추진해 온 모든 것들을 이번 식 사 한 끼에 전부 쏟아붓기로 했다. 그래야 완전군장 무게가 조 금은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맛다시며, 참치며, 빅X이며. 아껴 온 먹거리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성태강이 남은 추진 품목들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번엔 왜 이리 많이 남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기운상도 궁금했다.

이강진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3일 차 저녁때 먹었던 막걸리하고 안주 때문에 그런 거지. 그 날 저녁에 우리, 추진해 온 거 아무도 안 먹었잖아?"

"아하."

이제야 궁금증이 풀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 3박 4일 포상 휴가를 따게 될 거 라곤 이 강 진도 예상 못 했지만 말이다.

점심으로 배를 채운 뒤에 병사들은 곧장 오침을 취했다.

혹한기 훈련 5일 차여서 그런 걸까,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눕자마자 잠이 솔솔 왔다.

이강진이 눈을 떴을 때에는 주변에 한창 소란스러운 소리가 가득할 시점이었다.

텐트 안으로 머리를 들이민 곽분섭이 아직 단잠에 빠져 있던 이강진과 백우호를 깨웠다.

"이강진 병장님, 백우호 병장님, 행보관님께서 슬슬 텐트 철 거하라고 하십니다."

"……그래? 알았어. 금방 나갈게. 우호야, 일어나라."

손으로 툭툭 건드리면서 그를 깨웠다.

그제야 백우호도 눈을 떴다.

텐트를 철거한 다음에 행군 때 짊어지고 갈 군장을 준비했다. 이강진과 백우호는 이번에도 고민 없이 가라군장을 택했다. 설마 사단장이 두 번 연속 올까.

설령 온다고 해도또 1 분대원들에게 완전군장 검사를 시킬 가 능성은 희박했다.

가라군장을 짊어진 이강진은 1중대원들과 함께 본부중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2중대, 3중대원들도 전부 모였다.

해가 저물기 시작할 무렵.

대대장이 노을을 등지며 병사들 앞에 섰다.

"혹한기 훈련 마지막 과정이다. 매번 말하지만, 모든 병사들 이 침상에 누워서 잠이 들 때까지가 훈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 도록 해라. 알겠나!"

"예!"

다 끝났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한순간의 방심이 커다란 사건 사고를 야기한다. 마지막까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 무사히 훈련을 마칠 수 있다.

본부중대부터 복귀 행군길에 올랐다.

이다음, 1중대가 뒤를 따랐다.

"가자!"

"1 중대, 힘내자! 아자아자아자!"

"파이팅!"

간부들의 선창과 함께 병사들도 각자 구호를 외쳤다.

이강진은 저물어 가는 태양으로 인해 붉게 물든 하늘을 올려 다봤다.

동시에 깨달았다.

'이번이 마지막 행군이구나.'

이 행군만 끝나면, 앞으로 이강진의 인생에 행군 따원 없다.

'좋아, 가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오랜만에 의욕이 감돌았다.

* * *

행군이 시작된 지 2시간째.

이때쯤이 면 평소에는 아직 할 만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하나 혹한기 복귀 행군은 달랐다.

군장을 내려놓자마자 여기저기서 병사들의 탄식이 흘러나왔

"뭐지? 왜 이렇게 힘들어!"

"아직 2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체감상 한 7시간은 걸은 거 같네."

그렇게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이들은 평상시의 컨디션으로 행군에 임한 게 아니다.

5일간 혹한기 훈련을 받고 난 다음에 곧장 행군에 들어선 것 이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완전군장과 함께 병사들의 어깨를 짓 눌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배로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참고 견뎌야 한다.

못하겠다고 하고서 '배 째!'라는 태도를 보여 봤자 얻는 게 아 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강진아."

백우호가 음흉한 미소로 이강진을 불렀다. 왜 저런 표정을 짓 는지, 이강진은 단번에 눈치챘다.

"또 물 달라고?"

"헤헤, 잘 아네."

혹한기 훈련 1일 차 때에도 백우호는 이강진에게 물을 얻어 마신 적이 있다.

백우호의 뻔뻔한 태도에 실소가 절로 새어 나왔다.

"편의점에 가면 돈 받고 물 파는 거, 알지? 이번에는 공짜로 안 준다."

"알았어, 인마. 가면 PX 쏠게."

결국 PX 이용권 1회를 얻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

군말 없이 수통을 내미는 이강진.

그때, 그의 손등 위로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강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곱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 제98화. 마지막 훈련 (6)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