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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300화 (300/347)

< 제97화. 최종 관문 (1) >

제97화. 최종 관문 (1)

한지윤과 데이트를 하고, 원도문을 도와주고, 그리고 마지막 으로 김원홍이 만든 음료들을 시음하고 나니 눈 깜짝할 사이에 이강진의 휴가 복귀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던 휴가였다.

'어째 뒤로 가면 갈수록 더 바빠지는 거 같네.'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판이 커질수록 해야 할 일이 그만 큼 많아지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강진은 평소에 자신의 업무를 진행할 수 없다. 나두 석이 이강진의 대리인으로 이리저리 활약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강진이 있어야만 진행할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대표적으로 김원홍의 에일 밀크티 피드백이라든지.

밀린 업무들을 휴가 나와서 단기간에 해결을 봐야 했기에 남 들에 비해서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번 휴가에도 목표로 삼았던 업무들을 전부 다 처리 해 냈다.

이쯤 되니 이강진 본인이 뿌듯해질 정도였다.

'역시 젊음은 다르구나.'

20대의 체력 덕분이었다.

군 복무를 해야 하는 나이라는 것만 빼면 다 좋았다.

다시 군복을 갖춰 입은 이강진은 나두석이 운전하는 차에 올 랐다.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동안, 나두석은 이강진의 다음 휴가 일정을 물었다.

"이다음이 마지막 휴가 아닙니까?"

"그렇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년 휴가다!

하지만 말년 휴가를 나오기 전에 이강진은 최종 관문을 통과 해야 한다.

"혹한기 끝나고 나올 거야."

"혹한기가 구체적으로 뭔가요? 군대 갔다 온 친구나 형들한 테 대충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솔직히 어떤 훈련인지 감이 잘 안 오더라고요."

나두석은 면제였기에 군필자들의 설명을잘 이해하지 못했다. 군대의 좆같음은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이강진은 보조석에 몸을 깊게 묻으면서 짧게 축약해 말했다.

"그냥 개같이 추운 날씨에 땀나도록 뛰어다녀야 하는 훈련이 야."

유격, 혹한기.

이 두 개는 아무리 이강진이라도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게 만드는 훈련들이었다.

유격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었으니.

이제 혹한기라는 이름의 산만 넘으면 된다.

"혹한기는 언제 받으십니까?"

"글쎄. 2주도 안 남았을걸."

"그럼 그거 끝나고 바로 말년 휴가 나오시는 건가요?"

"어, 14박 15일."

이강진이 여태껏 나왔던 휴가 중에서 가장 긴 휴가로 손꼽힐 것이다.

말년 휴가를 위해 이강진은 그동안 포상 휴가 사냥꾼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미친 듯이 휴가를 따냈다.

이 모든 것이 이강진의 큰 그림이다.

이제 마지막 점을 찍음으로써 이강진이 구상하던 큰 그림이 완성될 것이다.

"직원들은 형님이 전역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전역하자마자 바로 사무실로 출근해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된 이강진.

하지만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군대에서 삽질하는 것보다야 차라리 사무실에 가서 일하는 게 헐씬 낫다고.

* * *

부대 인근의 시내에 도착한 이강진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분명 뉴스에선 날이 풀렸다고 했는데, 여긴 풀리기는커 녕 더 추워졌네."

심지어 곳곳에 아직도 녹지 않은 눈들이 보였다.

이강진이 휴가를 나가기 전에 내렸던 눈인 줄로만 알았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깨끗한데?'

막 오늘 아침에 내린 눈처럼 보였다.

택시 승강장으로 향한 이강진은 택시 기사에게 물었다.

"아저씨, 1075대대 가나요?"

"거기 지금 도로에 눈 쌓여서 못 가요."

"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택시 기사는 이강진의 반응을 보더니 혹시나 해서 물었다.

"휴가 복귀하는 거예요?"

"아, 네."

"이 런. 타이밍 안좋네요.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 1075대대로 가는 도로에 눈이 아직도 쌓여 있어서 제설 작업 끝나기 전까지 는 못 들어갈 거예요. 버스도 마찬가지고요. 도로 자체를 아예 통제했더라고요."

그럼 이강진은 대체 어떻게 부대로 복귀해야 한단 말인가?

복귀 시간까지 1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일단 전화부터 해 봐야겠네.'

그쪽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전화박스로 간 이강진은 부대 번호를 빠르게 눌렀다.

-통신보안 1075대대 1중대 병장 백우호입니다.

"우호야, 나, 강진인데."

이강진은 아까 택시 기사한테 들었던 이야기를 백우호에게 들려 줬다.

"부대에 눈 많이 왔다며? 택시하고 버스, 다 끊겼는데 어떻게 부대로 복귀해야 하나 싶어서. 행보관님 있어?"

-행보관님? 잠시만…….

수화기 너머로 백우호와 행보관이 서로 뭔가 대화를 빠르게 주고받았다.

잠시 뒤에 백우호가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강진아, 행보관님이 그러시는데, 시내에 지금 통신반장님 계 시다고 하거든. 파견 갔다가 오후에 부대 들어오시 려고 했는데, 갑자기 눈이 와서 지금 너처럼 못 들어오고 시내에서 대기 중이 시래. 곧 제설차 투입되고 도로 작업 마무리된다고 하니까, 통 신반장님 차 타고 들어와.

도중에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백우호가 다른 제안을 했다.

-아니면 휴가 나갈 때처럼 걸어서 부대로 복귀하든가.

"미쳤냐? 되도 않는 소리 말고 통신반장님 전화번호 좀 알려 줘. 내가 전화해 보게."

-하하하! 잠깐만 기다려.

휴가 출발일에는 어떻게든 휴가를 나가야 한다는 열의 때문 에 눈밭 행군을 자처했지만, 부대 복귀일에는 그렇게까지 열정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부대 복귀는 늦으면 늦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백우호에게 받은 전화번호로 통신반장에게 곧장 연락을 취했- 여보세요?

"충성. 병장 이강진입니다."

-응? 네가 무슨 일이냐?

이강진은 통신반장에게 어떤 이유로 전화를 걸었는지 상세하 게 설명을 했다.

정황을 들은 통신반장은 알았다고 하면서 이강진과 만날 장 소를 정했다.

30분 후.

이강진은 어느 카페 앞에서 통신반장과 합류할 수 있었다.

"충성!"

"오늘 휴가 복귀자는 너 한 명이야?"

"예,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폭설 때문에 부대로 복귀하는 제한 시간이 늘게 되었다. 이건 좋다. 하지만 통신반장과 함께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이강진은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워, 그래도 부대에 일찍 들어가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리고 병사, 간부 관계를 떠나면, 나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통신반장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이나 미리 먹을까? 이 형이 살 테니까, 먹고 싶은 거 있 으면 말해 봐라."

"정말입니까? 그럼 저, 소고기 먹어도 됩니까?"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도 불구하고 통신반장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래, 까짓것 기분이다! 소고기 먹으러 가자."

"아닙니다, 통신반장님. 그냥 농담으로 해 본 말입니다."

"괜찮아, 괜찮아. 네 덕분에 주식으로 돈 좀 만졌는데, 소고기 한 번 못 사 준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나, 그렇게 정 없는 사람 아니다?"

안 그래도 통신반장은 기회가 될 때 이강진에게 거하게 한턱 쏘려고 했었다. 그런데 폭설 때문에 의도치 않게 쓸 수 있는 타 이밍이 생긴 것이다.

통신반장과함께 고깃집에 들어온 이강진은 메뉴판을 먼저 확 인했다.

맞은편에서 통신반장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주문하라는 말을 들려줬다.

부대에서 보던 통신반장과는 사뭇 다른 통 큰 모습에 이강진 은 어리둥절했다.

통신분과 분대원들에게 PX 한 번 쏘는 것도 인색하던 사람이 었는데.

그만큼 이강진이 준 주식 정보가 통신반장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달궈진 불판 위로 고기가 한 점 한 점 올라갈 때마다 들리는 지글지글 소리가 이강진의 침샘을 자극했다.

집게로 몸소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이강진에게 내미는 통신반장.

"자, 이거 먹어 봐라. 꿀맛일 거다."

"아닙니다. 통신반장님 드셔도 됩니다. 제가 먹을 건 제가 챙 기겠습니다."

"어서! 형이 주는 거니까 그냥 먹어."

아까부터 자꾸 형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이쯤 되면 통신반장의 배려가 오히려 부담스러운 나머지 불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평소에 안 그러던 사람이 이러니까 더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강진은 슬쩍 그를 떠보기로 했다.

"통신반장님, 혹시 저한테 부탁하고 싶은 거라도 있습니까?"

"응? 왜?"

"갑자기 너무 저한테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통신반장이 갑자기 크게 헛기침을 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이강진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있긴 있다.

그게 뭔지 어디 한번 천천히 들어 보기로 했다.

"너, 전역하고 나서도 주식은 계속할 거지? 듣자 하니까 사업 때문에 바쁘다고 하던데."

"예, 근데 사업은 사업이고, 주식은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할 생각입니다."

투자에 대한 감을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강진은 다방면으로 돈을 최대한 많이 긁어모을 생 각이었다.

그래야 시프 코인 때 초대박을 터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을 계속하겠다는 이강진의 말을 들은 순간, 통신반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면 전역해도 형이랑 자주 연락하고 그러자. 좋은 정보 있 으면 나한테도 슬쩍 흘려 주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고. 대신, 내 가 오늘처럼 맛있는 거 사줄게."

주식 정보를 계속해서 얻는 것.

이게 통신반장의 목적이었다.

이강진의 예상대로였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라고 항상 좋은 정보만 가지는 건 아닙니다. 투자는 늘 위험을 동반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렇고말고. 나도 다 감안할 테니까 정보만 줘. 부탁 하마."

"하하, 네, 노력해 보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강진은 이미 마음속으로 이렇게 정했 다.

통신반장 전화번호는 자기 폰에 등록도 안 할 거라고.

* * *

오후 6시 반쯤이 되어서야 부대에서 연락이 왔다.

제설 작업이 다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차 타고 복귀하라고.

처음에 이강진은 복귀가 늦어지 면 늦어질수록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울리지도 않는 알랑방귀를 뀌는 통신반장과 계속 붙 어 있을 바에야, 차라리 그냥 부대로 들어가서 생활관에서 편히 쉬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딱 그때쯤에 행보관한테서 복귀하라고 연락이 온 것이다.

'타이 밍 참 예술이네.'

이강진은 통신반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부대로 향했다. 도로 곳곳에서 병사들이 고생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아침부터 장난 아니었겠네.'

위병소를 통과한 뒤에 바로 1중대로 직행했다.

행정반에 들어서자, 폭설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이틀 연속 당직 사관 자리를 지키고 있던 행보관이 피곤한 표정으로 이강진을 맞이했다.

"휴가는 잘 다녀왔냐?"

"병장 이강진. 예,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가서 옷 갈아입어라."

"예!"

그사이에 행보관은 통신반장에게 당직사관 완장을 인수인계 하면서 특이 사항들을 들려줬다.

행정반을 벗어난 이강진은 생활관에 뻗어 있는 분대원들에게 말했다.

"니들이 고생이 많다."

"추, 충성!"

"이강진 병장님 오셨습니까!"

아무리 피곤해도 휴가 나갔다가 복귀한 선임한테 거수경례를 하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이강진은 이들의 축 처진 어깨를 한 번씩 토닥여 줬다.

이 중에서 특히 기운상이 가장 피곤해 보였다.

"몇 시부터 제설 작업 시작한 거야?"

"기상하자마자 바로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여긴 새벽부터 눈 왔나 보네."

"예, 그렇습니다. 여긴 무슨 저주라도 받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눈이 와서 미칠 지경입니다."

만약 기운상의 말대로 정말 저주가 내렸다면, 그 저주의 이름 은 분명 '군대 날씨'일 것이다.

< 제97화. 최종 관문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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