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6화. 미래를 위한 투자 방식 (2) >
제96화. 미래를 위한 투자 방식 (2)
곽이현 의원 일행을 돌려보낸 뒤, 이강진은 직원들과 함께 회 식 자리를 가졌다.
바라 식당에 근무하는 직원들에 더해서 바라 코리아 소속 직 원들까지 전부 데려와 회식을 가지니, 그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가게 하나를 통째로 빌려야 할 판국이었다.
회식은 황민수의 오랜 친구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진행되었다.
잔을 든 오호만이 이강진을 불렀다.
"우리 이 대표님이 와서 건배사 한마디 해 줘!
"제가요?"
"그럼 너지, 누구겠어?"
이강진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저보다는 민수 아저씨가 하는 게 더 좋지 않나요?"
"스승님이 너한테 건배사 시키자고 말씀하셔서 그런 거야."
황민수가 이강진보다 한발 빨랐다. 어쩔 수 없이 이강진은 자 리에서 일어나 잔을 들어야만 했다.
"어흠! 오늘 하루,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내년이 면 2호점, 3호점으로 파견 가실 분들도 계실 텐데, 청주 본점에 서 일했던 노하우와 스킬, 그리고 좋은 기억들을 항상 간직한 채 내년에도 열심히 각 지점을 운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바라 식당!'이라고 외치 면, 여러분들은 '파이 팅!' 하고 외쳐 주시 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바라 식당!"
"파이팅!"
짠!
술잔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기분 좋게 가게 이곳저곳에서 퍼 졌다.
이강진의 말대로 이들이 바라 식당 청주 본점에서 다 같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 초가 되면 각각 2호점, 3호점으로 발령받게 될 것이다. 오호만도 그중 한 명이었다.
"스승님!"
서울로 떠나야 한다는 아쉬운 마음 때문일까, 오호만은 계속 해서 황민수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남아 그를 찾았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받아 주세요!"
"허허, 그래! 나도 따라 주마."
"감사합니 다, 스승님!"
서로 이렇게 잔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도 앞으로는 거의 없을 터.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미련이 남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강진도 바라 코리아 직원들과 같이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 었다. 그 전까지 이강진은 어머니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 했다.
"엄마."
식당 아주머니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던 그의 어머니가 아들 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강진아, 왜 그러니?"
"궁금한 게 있어서요."
"뭔데, 말해 보렴."
이강진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서 물었다.
"민수 아저씨랑은 언제 합칠 예정이신가요?"
두 사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 만 그 이후의 소식을 들은 지가 오래되었다.
이강진이 원하는 건 하나.
"재혼하셔도 전 괜찮아요."
황민수 정도면 새로운 아버지로 들어도 괜찮다. 이강진은 줄 곧 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강진의 어머니가 재혼을 망설이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강진 때문이었다.
재혼을 하더라도 그녀는 아들의 동의를 받고서 하고 싶었다.
이강진도 그걸 최근에 눈치챘다. 그래서 그가 먼저 적극적으 로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민수 아저씨만 한 남자, 요즘 정말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리 고 아저씨가 저하고 어머니한테 해 준 게 얼마나 많은데요. 그 러니까 제 눈치 보실 필요 없이, 두 분이 서로 괜찮다 싶으면 살 림 합치셔도 돼요."
"강진아……."
"더 이상 제 행복을 우선시하지 마세요. 이제는 엄마의 행복을 1순위로 삼아 주세요. 엄마가 행복해지는 것이 제가 행복해 지는 길이에요."
한평생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온 엄마.
그녀는 이강진을 보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맙구나, 강진아. 내가 아들 하나는 정말 잘 둔 거 같아."
"이제는 남편을 잘 둘 차례예요."
"얘도 참……."
황민수가 그의 어머니 곁을 지켜 준다면, 이강진은 안심하고 서울로 떠날 수 있을 거 같았다.
2차를 원하는 사람들은 따로 모여서 근처에 있는 술집으로 향 하기로 했다.
이강진도 2차까지는 직원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원래 그는 1차에서 알아서 빠져 줄 생각이었다. 원래 회식이 라는 게 직원들끼리 있어야 마음 편하지 않겠나.
이강진이 아무리 젊다 하더라도 대표는 대표다. 그래서 눈치 껏 1차에서 빠져 주려고 했으나, 직원들이 오히려 이강진이 빠 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표님! 2차까지만 같이 가요!"
"그 이후에는 저희가 대표님 안 붙잡겠습니다!"
이런 식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강진은 2차까지만 이들과 어울리기로 했다. 장소를 옮기려고 하던 찰나였다.
이강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김원홍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인혁이 형. 나, 전화 좀 받고 들어갈게. 자리 맡아둬."
"설마 전화받는 척하고 몰래 빠져나가려는 건 아니지?"
"안 그러니까 안심해."
일행을 먼저 보낸 이강진은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원홍씨, 접니다."
-혹시 밖이세요? 제가 바쁘실 때 전화 건 건 아닌지…….
"아니요, 괜찮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바라 식당만큼 티날레 역시 바라 코리아를 지탱해 줄 중요한 요식 브랜드다.
그 주죽으로 성장할 김원홍의 전화는 아무리 바빠도 무조건 받아야 했다.
-에일 밀크티 때문에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내일 청주로 한번 찾아봬도 될까요? 오래간만에 대표님한테 피드백을 좀 받고 싶어서요.
"좋죠. 내일 일정은 비었으니까 원홍 씨께서 편하신 시간대에 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바라 식당과 티날레가 정상 궤도에 오를 때까지 이강진은 이 두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당분간 또 바쁘겠군.'
휴가를 나오기 전에 이미 각오했던 바였다.
오히려 바쁘면 더 좋다.
최대한 틀을 잡아 둬야 전역하고 나서도 일들을 차질이 없이 바로 진행할 수 있을 테니까.
2차에서 적당히 빠지려 했던 이강진은 결국 마지막 남은 직 원들과 함께 4차까지 달리게 되었다.
덕분에 이강진의 아침은 숙취와 함께였다.
"머리가 깨질 거 같네……."
이렇게 취할 때까지 마신 적은 정말 드물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1층으로 향했다.
이미 이강진의 어머니는 출근한 상태였다.
대신, 어머니의 정성을 담은 해장국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져 있었다.
이강진이 술을 마시고 저녁 늦게 들어오면, 그의 어머니는 늘 이렇게 아침에 해장국을 준비해 두곤 했다.
이강진은 쓴웃음을 흘리면서 해장국을 따로 폈다.
후르릅!
칼칼한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이것도 바라 식당 메뉴에 포함시키면 대박 치겠는데?"
이제는 뭘 해도 자연스럽게 사업 쪽으로 연관을 시키는 버릇 이 생겨 버렸다.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 이강진은 솔직히 알 수가 없었다.
아침 식사를 끝낸 뒤에 적당히 씻고 소파에 앉았다.
티비를 틀자, 한지윤이 주연으로 열연 중인 아침 드라마가 송 줄되고 있었다.
[……언니 그렇게 안 봤었는데, 무서운 사람이었네! 어떻게 동 생 남자 친구를 채갈 수 있어? 말해 봐! 대체 왜 그랬어!]
남자 친구를 빼앗긴 여성의 감정을 연기하는 한지윤.
확실히 예전에 비해 연기 실력이 확 는 티가 났다.
"이러니 방송국 PD들이 지윤 씨에게 계속 러브콜을 보내는 거 겠지."
혜성같이 등장해서 드라마,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여배 우, 한지윤은 여전히 연예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인지도에 따라 몸값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랐다.
이제는 가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반열에 올랐다고 해 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이강진은 재미있는 글을 봤다.
한지윤과 흣날 결혼할 남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 밑에 달린 답변 또한 유쾌했다.
아마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 남자일 거라고.
'나라를 구한 건 아니지만, 회귀 트럭에 치였던 남자이긴 하지.'
아직 한지윤과 사귀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와 나 쁘지 않게 계속 분위기를 이어 가고 있었다.
문득 이강진은 이런 후회가 들었다.
'그냥 스키장에서 고백할 걸 그랬나.'
고백은 계획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된다.
그렇게 말했던 나두석의 충고가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유부남 말 들을걸.'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지만, 그래도 어찌하랴, 이미 지나간 일 으그리고 기회는 한 번만 찾아오지 않는다. 기회란 녀석은 그렇게 냉정하지 않다. 적어도 몇 번은 손을 내밀 것이다.
그 손을 잡기만 하면 된다.
언제 잡을지는 이강진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나중에 지윤 씨한테 전화나 한번 해 봐야겠네.'
그 전에 먼저 선약자가 있었다.
'원홍 씨가 11시쯤에 터미널에 도착한다고 했었지?'
그때에 맞춰서 이강진은 그를 마중 나갈 생각이었다.
가서 이강진이 기억하는 에일 밀크티가 얼마나 완성되어 있을지 확인해 봐야 한다.
그가 기억하는 맛이 완전히 복원되었다 싶을 때, 그때가 티날 레의 시작이다.
김원홍을 태운 이강진은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오! 집이 깔끔하고 좋네요."
"제 어머니가 깔끔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요. 자, 안으로 들어오세요."
현관문을 열자, 작은 흰색 덩어리가 빠른 걸음으로 이강진에게 달려왔다.
반려동물, 행복이가혀를 내밀면서 앞발을 들어 올렸다. 안아 달라는 뜻이었다.
"그래, 알았어. 형이 안아 줄게."
행복이를 들어 올린 이강진. 김원홍은 행복이를 보면서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귀여운 아이네요. 이름이 뭔가요?"
"행복이 입니다."
"행복이라. 이름처럼 보면 행복감이 드는군요. 잘 지은 거 같 습니다."
복덩이가 따로 없다. 행복이 덕분에 이강진은 한결 가벼운 마 음으로 군 생활에 임할 수 있었다.
만약 행복이가 없었더라면, 이강진의 어머니는 혼자서 외로 운 생활을 버텨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강진은 행복이의 존재 자체가 너무 감사했다.
행복이를 다시 내려놓았다. 그사이, 김원홍은 가져온 보온병을 꺼내 들었다.
"에일 밀크티입니다. 준비를 좀 하고 싶은데, 잠깐 부엌 좀 써 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얼음이 필요하시다면 정수기를 이용하시면 됩 니다."
"알겠습니다."
준비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5분 정도였다.
잔까지 챙겨 왔는지 김원홍은 이강진 앞에 자신이 만든 에일 밀크티를 세팅했다.
"여기 있습니다."
"이 정도 양이면 라지 사이즈겠군요."
"하하하! 역시 이 대표님이시네요. 예, 정확합니다."
잔을 들고 가볍게 시음을 했다.
평범한 밀크티와 다르게 뒤에 따라오는 청량감이 에일 밀크 티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김원홍의 에일 밀크티는 이런 맛이 없었다.
하나 이강진이 계속 피드백을 준 덕분에 그가 과거에 마셨던 에일 밀크티와 거의 흡사한 맛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대만족이다.
이강진은 흡족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요. 훌륭합니다."
그제야 김원홍은 안도할 수 있었다.
내심 이강진에게 퇴짜를 맞으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다행 히도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하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 대표님이 맛을 봐 주셨으면 하는 음료가 몇 개 더 있습니다. 새로 개발한 것들인데…… 잠시만요."
음료 통을 하나하나씩 테이블 위에 세팅하는 김원홍.
어쩐지. 에일 밀크티 하나 가져온 것치고는 짐이 너무 많다 싶 었다.
수많은 음료 통들을 바라본 이강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점심 먹기도 전에 음료로 배 채우게 생겼네.'
< 제96화. 미래를 위한 투자 방식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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