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6화. 미래를 위한 투자 방식 (1) >
원라원의 아버지, 원도문은 지방 출장을 나서 던 중에 어디서 많이 보던 청년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가까이서 확인하고 나서야 원도문은 자신의 눈썰미가 아직 괜 찮음을 알아차렸다.
아들의 친구인 이강진이었다.
이강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원도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출장 가시는 길이었나요?"
"뭐, 그런 셈이지. 아는 의원님을 모시고 여기저기 좀 돌아다 니고 있었네. 곽이현 의원님이라고, 혹시 알고 있나?"
"네, 알고 있습니다."
원도문이 소속되어 있는 당에서 나름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곽이현과 원도문 사이엔 대표적인 교집합이 있었다.
바로 두 사람이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것.
곽이현이 13회 졸업생으로 선배고, 원도문이 그의 한참 후배 격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선후배 관계라 하더라도 반드시 친해야 한 다는 법은 없다.
한배에 오르고 나서야 두 사람이 고등학교 선후배 관계였다 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정도로 최근까지 서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원도문은 이강진이 곽이현 의원을 알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 를 기특하게 여겼다.
"요즘은 정치에 관심 없는 젊은 사람들이 꽤 있던데, 자네는 아닌가 보군. 듣자 하니 주식도 좀 한다던데."
"예전부터 정치, 경제, 시사 이런 쪽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식을 잘하려면 정책의 변화, 세상 돌아가는 흐름 같 은 걸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지, 그렇고말고! 우리 아들도 자네 같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원라원은 이강진만큼 정치에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 버지가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어서 오히려 거기에 따른 반감 때 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기운상의 아버지가 투 스타인데도 불구하고 정작 그는 군대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자네는 집이 어디다고 했지?"
"청주입니다."
"청주?"
순간 원도문의 표정이 변했다.
"우리가 내일 들를 곳 중 하나군. 청주에 비정규직 관련 회담 이 있어서 그곳에 갈 예정이었는데, 설마 자네가 청주에 살고 있을 줄은 몰랐네. 그러고 보니 거기에 바라 식당 본점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강진의 촉이 이렇게 소리쳤다.
이것은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제가 운영하고 있는 요식 업체의 레이블 중 하나가 바라 식 당입니다."
"정말인가?"
화들짝 놀라는 원도문.
그는 이강진과 바라 식당이 연이 있을 거라곤 미처 예상치 못 한 듯했다.
이미 예능 방송을 통해 몇 번 공개가 되었다. 하지만 원도문 은 딱 보기에도 예능 프로그램들을 일부러 챙겨 볼 법한 이미지 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강진과 바라 식당과의 관계를 이제야 안 것 같았다.
"어흠! 그럼 내가 염치 불고하고 자네한테 부탁 좀 하나 해도 되나."
"예,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내일 업무 마친 후에 곽 의원님 모시고 점심 식사 를 할 곳을 찾고 있었네. 입맛이 워낙 까다로우신 분이어서 어딜 예약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바라 식당 정도면 딱인 거 같 군. 자네가 힘 좀 써 주겠나?"
현직 의원을 모시는 자리다.
이강진은 흔쾌히 수락했다.
"저만 믿으세요. 곽이현 의원님이 만족하고 가시게끔 제가 세 팅을 다 해 두겠습니다."
"고맙네. 이번 출장에 내가 공천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걸려 있어서 말이야. 아무쪼록 잘 좀 부탁합세. 만약 일이 뜻대로 풀 린다면, 자네한테 반드시 보답하겠네."
"알겠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선 투자를 해야 한다.
보다 큰 기회를 거머쥐기 위한 투자의 순간이 필요하다.
이 투자가 과연 성공할지, 실패할지.
그것은 내일, 이강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 * *
청주로 돌아오자마자 이강진은 곧장 황민수와 오호만을 찾았그들에게 휴게소에서 있었던 일을 전부 말해줬다. 황민수는 눈을 크게 끔뻑였다.
"그러니까…… 구, 국회의원님께서 우, 우리 가게에 오신다는 거냐?"
"예, 곽이현 의원이라고, 그쪽에선 거물급 의원이에요. 입맛이 좀 까다롭다는 게 신경 쓰이긴 하는데, 아저씨하고 호만이 형 정 도의 실력이라면 아무리 까탈스러운 입맛을 가진 손님이라도 분 명 만족시킬 수 있을 거예요."
이강진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들의 실력은 누구보다도 이강진이 보증한다. 그래서 원도 문의 부탁을 주저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일이 잘 풀리면, 수십 배의 보상으로 되돌아올 거예요."
"그, 그렇긴 하겠지. 귀한 분들이시니까……. 근데 갑자기 긴장 되네. 나, 이런 일 있으면 막 손 떨리고 그러는데."
백두원의 푸드기행 첫 촬영 때에도 황민수는 긴장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래도 늘 제 역할을 해 왔다.
게다가 이번에는 오호만이 있지 않은가.
황민수와 다르게 오호만은 실전에 강한 타입이다.
"걱정 마세요, 스승님! 저희 둘이면 할 수 있을 겁니다!"
의욕이 넘치는 오호만.
이강진은 오늘따라 그가 더할 나위 없이 믿음직스러워 보였이강진은 이른 아침, 그의 어머니와 함께 바라 식당으로 향했 다.
평소였더 라면 이강진은 바라 코리아 사무실로 출근하거나, 외 부 인사와 미팅을 하거나, 아니면 주식 단타를 하거나. 셋 중 하나를 할 시간이 었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기에 준비를 서둘렀다.
길을 가던 중에 이강진의 어머니가 재차 물었다.
"정말로 오늘 우리 가게에 국회의원이 오는 거 니?"
"네. 중요한 일이 될지도 모르니까, 엄마도 최대한 친절하게 맞이해 주세요."
"알았다. 그보다 참……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구나. 이 엄마가 살면서 국회의원을 직접 다 보게 될 줄이야."
이강진은 회귀 이전에도 몇 차례 만났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큰 감회를 느끼진 못했다.
하나 이강진만 그럴 뿐, 다른 직원들은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 다.
혹시 일손이 부족할지도 몰라서 바라 코리아 본사에서 직원 들 몇몇을 일일 아르바이트로 투입시켰다.
아침부터 북적이기 시작하는 바라 식당.
곽이현 의원 일행이 오기로 한 시간은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다.
늦은 점심시간이 될 것이다.
차라리 그때 오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사람들의 눈을 피 할 수도 있고, 한창 복잡한 시간대에 오면 혼선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후 2시 10분쯤 되었을 무렵.
바라 식당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이강진과 함께 직원들이 곽이현 의원 일행을 친절한 미소로 맞이했다.
원도문이 먼저 곽이현 의원에게 이강진을 소개했다.
"의원님,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그 젊은 친구입니다."
"오! 자네가 이강진이로군! 티비로 보던 것보다 실물이 훨씬 더 잘생겼구먼, 허허허!"
이강진은 곽이현에게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안 그래도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 있었 습니다. 제가 자리로 안내해 드릴 테니, 저만 따라오시면 됩 니다."
아침부터 이 시간까지 고생했을 일행을 위해 이강진은 풀코 스로 이들을 대접하기로 했다.
이미 원도문한테서 곽이현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다 전 달받았다.
그 정보를 중점으로 메뉴들을 세팅했다.
곽이현 의원은 바라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라 할 수 있는 버섯 닭볶음탕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게 그 유명한 버섯 닭볶음탕이로군. 내 마누라가 예전에 청 주에 들렀을 때, 이곳에서 버섯 닭볶음탕을 먹고 온 적이 있었지. 하루 종일 그 이야기만 하더군. 자기가 먹었던 닭볶음탕 중 에서 최고로 맛있다고."
"하하, 그런 일이 있었군요."
"집에 와서 자기가 먹었던 거를 그대로 재현하겠다고 어찌나 난리를 피우던지……. 덕분에 일주일 내내 실패한 닭볶음탕만 먹 어야 했었지. 동준이 자네, 기억 안 나나? 내가 사무실에서 하루 도 빠지지 않고 일주일 동안 계속 야근했던 거."
원도문은 가볍게 손뼉을 한 차례 치고서 그의 말을 받아 줬
"아! 그게 그런 이유에서였군요!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하하하! 분명 업무는 다 끝났는데, 왜 계속 사무실에 남아 계시 나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그들은 몰라도 이강진에겐 별로 공감이 안 가는 이야기였다.
하지 만 곽이현이 얼마나 버섯 닭볶음탕을 기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황민수와 오호만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음식을 과연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국물과 닭고기, 그리고 버섯을 크게 한 입 베어 문 곽이현은 감탄을 연발했다.
"오……! 그렇군, 이 맛이었구만! 마누라가 왜 입에 침이 마르 도록 이 버섯 닭볶음탕 이야기만 했는지 알겠군!"
"입맛에 맞으신다니 다행입니다."
가식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임을 이강진은 쉽게 알 아차릴 수 있었다.
버섯 닭볶음탕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들 역시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작전은 성공이다.
곽이현 일행을 먼저 차로 보낸 원도문은 이강진에게 다가와 고마움을 표했다.
"자네 덕분에 살았네. 도와줘서 정말로 고마워!"
"아닙니다. 그리고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 절 불러 주세 요. 내년에 서울에도 바라 식당 지점을 오픈하기로 계획되어 있 거든요."
"오, 그런가? 나중에 내가 한번 찾아가면 되겠군. 그때까지 자 네도 무사히 군 생활 마치고 전역하길 바라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원도문을 보낸 이강진은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그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바라 식당 식구들.
황민수가 곧장 이강진에게 물었다.
"어땠어? 맛있대?"
이강진은 엄지를 추켜올렸다. 그것을 보자마자 바라 식당 식 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고생하셨어요, 아저씨. 호만이 형도."
오호만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강진이 몰랐던 이야기를 들려 줬다.
"아까 주방에서 스승님이 손을 엄청 떠셔 가지고 난리도 아니 었어. 결국 재료 손질은 내가 하긴 했는데, 그래도 잘 풀려서 다 행이네."
"나중에 서울 지점 오픈하면 한 번 더 찾아오신다고 하니까 그때도 잘 부탁해, 호만이 형."
"… …망할. 아직 끝난 거 아니었구만."
반면 황민수는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열심히 해라, 호만아."
"스승님, 남 일처럼 말하지 마세요. 나중에 선거 시즌 되면 그 쪽 인사들이 다시 이곳에 올 수도 있으니까요."
"아..
그렇다. 아직 '난 살았다!' 하는 기분이 되어선 안 된다.
후에 더 큰 거물급 정계 인사들이 올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하나 미래의 일을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강진은 모두를 다독였다.
"나중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죠. 오늘은 다들 고생하셨 으니까 가게 문 닫으면 끝나고 다 같이 회식이라도 할까요? 제 가 쏘겠습니다!"
"역시 대표님!"
"사랑해요, 이강진 대표님!"
"이강진! 이강진! 이강진!"
갑자기 직원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중요 인사들 대접한다고 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노력했는 데, 바라 코리아 대표로서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나.
고생한 만큼 보상을 줘야 한다.
그것이 이강진의 경영 철학이었다.
< 제96화. 미래를 위한 투자 방식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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