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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96화 (296/347)

< 제95화. 스키장에서 생긴 일 (1) >

제95화. 스키장에서 생긴 일 (1)

어떻게든 오늘, 휴가를 나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이강진.

그는 A급 전투복을 입고, A급 전투화를 신고, 백팩을 맨 채로 위병소로 향했다.

그곳에선 병사들과 눈이 한창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이강진만 광이 번쩍이고 있었다.

이강진의 모습을 본 백우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설마 휴가 나가기로 했냐?"

이강진은 결의에 가득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나, 말리지 마라."

"독한 녀석. 다른 중대 아저씨들은 휴가 다 뒤로 미뤘다고 하 던데. 대체 이번 휴가에 무슨 약속이 잡혀 있길래 이 눈밭을 ?고 나가겠다는 거냐?"

"나중에 잘되 면 다 말해 줄게."

한지윤과의 관계는 아직 비밀로 하고 싶었다.

이강진은 병사들에게 고생하라는 말을 남기고서 눈밭을 향해 나아갔다.

푹, 푹!

눈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강진은 계속 해서 전진했다.

그런 이강진의 모습을 보면서 백우호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보다 네가 더 고생할 거 같은데."

大 A 大 행보관은 분명 부대 근처에만 눈이 쌓였다고 했었다.

즉, 부대만 벗어나면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걸어가면 되겠지 하고 마냥 생각했었다.

하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 했다.

'그냥 점심때까지 기다릴 걸 그랬나?'

출발이 많이 늦어지겠지만, 그래도 안전하게 휴가를 나가는 방법이기도 했다.

회귀하기 이전의 시간까지 통틀어서 단 한 번도 걸어서 시내 까지 휴가를 나갈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어쩌면 미련한 방법일지도 몰랐다.

하나 이강진은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아니, 이제 와서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앞으로 1시간만 더 걸어가면 된다.

완전군장을 메고 42km 행군도 했는데, 이 정도는 웃으면서 할 수 있다.

점점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눈이 줄어들었다.

시내가 눈에 보일 때쯤, 멀쩡한 도로가 나타났다.

'살 거 같네!'

다리에 묻은 눈들을 털어 냈다.

반짝반짝 광을 냈던 전투화는 눈 때문에 더렵혀지고 말았다.

마치 눈 때문에 상처 입은 이강진의 현재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시내까지 오게 되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오전 10시 35분.

그제야 완전히 시내에 들어설 수 있었다.

택시 승강장에서 담배를 입에 문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택 시 기사가 이강진을 보고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자네, 설마 1075대대에서 걸어온 건 아니겠지?"

이강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택시 기사가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역시 젊음이 최고구먼! 어떻게 거기서 여기까지 걸어올 생각을 다 했대? 눈 엄청 쌓였다고 들었는데."

안 되는 게 어디 있나. 하면 다 된다.

이것이 바로 군인 정신이다.

* * *

2시간이 넘게 자체 행군을 한 탓일까.

이강진은 집에 오자마자 바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그 상태 그대로 정신없이 잠에 취했다.

눈을 떴을 때, 이미 해는 저물어 있었다.

......

휴가 첫째 날의 반이 이렇게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방문을 열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행복이가 이강진을 향 해 맹렬하게 짖어 댔다.

처음에는 왜 그러나 했다.

그러다 머지않아 행복이가 이강진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이유 를 알아냈다.

"옷도 안 갈아입고 잤네."

아직도 군복을 입고 있었다.

이강진은 쓴웃음을 짓고선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사복으로 갈아입으니 행복이가 그제야 이강진을 알아보기 시 작했다.

"그래, 형이다, 요 귀여운 녀석."

행복이와 놀아 주는 것도 잠시.

이강진의 스마트폰이 진동을 했다.

한지윤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통화를 하기 전에 이강진은 헛기침을 하면서 목소리를 가다 듬었다.

"여보세요?"

-강진 씨, 괜찮아요? 아까부터 전화를 안 받으셔서 걱정했어 요.

부재중 목록을 보니, 한지윤에게 걸려온 전화만 하더라도 다 섯 통이었다.

뒤늦게 이강진은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지윤 씨. 오자마자 바로 뻗어서 전화를 못 받았 네요."

-저는 또…… 강진 씨한테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걱정됐어요. 분명 오늘 휴가 나오실 거라고 했었는데, 연락이 없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요. 그래도 아무 일 없다니 다행이에요.

이 얼마나 천사 같은 마음씨란 말인가.

한지윤이 이강진에게 전화를 해 온 이유는 내일 일정 때문이 었다.

-내일 제가 몇 시에 어디로 나가면 되나요?

"장소는 제가 문자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일찍 나오셔야 하는 데, 괜찮으신가요? 오전 8시쯤에는 출발해야 할 거 같습니다만 스키장 데이트는 당일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한다.

한지윤은 괜찮다고 답했다.

-새벽 촬영 때문에 일찍 일어나는 건 많이 단련되어 있어요.

그러니 너무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저보다 강진 씨가 더 걱정이 에요. 운전까지 하셔야 하는데…….

"저도 장거리 운전은 이미 단련되었습니다. 지윤 씨, 안전하 게 모셔다 드릴 자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다.

한지윤과 스키장을 가기 위해 눈밭을 헤치고 시내까지 걸어 갔던 이강진이다. 까짓것 장거리 운전이 뭐가 대수란 말인가.

두 사람은 내일을 기약하면서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시계를 확인한 이강진.

저녁 6시 반이었다.

"저녁 먹고 일찍 자 둘까?"

그래야 내일 새벽에 지각하지 않고 제시간에 출발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잠만 자게 생겼다.

* * *

이른 새벽.

차를 충분히 예열시킨 이강진은 배터리가 방전되지 않아서 천 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대에 가 있는 동안 차를 아예 끌고 다닐 수가 없었다. 안 그 래도 요즘 날씨가 추워졌는데, 혹여나 차가 방전되어 있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러지 않아서 안심했다.

출발하기 전에 이강진의 어머니가 그를 불렀다.

"강진아, 이거 가져가서 먹으렴."

"이게 뭐예요?"

"이건 아침, 그리고 이건 점심. 지윤이가좋아할 만한 거 위주 로 쌌으니까 이거 보면 기뻐할 게다."

새벽 일찍 출발하느라 밥도 못 먹고 가는 아들이 신경 쓰인 모양인지 이강진의 어머니는 그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을 준비했다.

어머니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도시락을 보면서 이강진은 따 스한 온기를 느꼈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운전 조심하고."

"네, 엄마도 그만 들어가서 주무세요. 아침에 출근해야 하잖아요?"

"그래, 도착하면 꼭 전화해야 한다. 알았지?"

"네, 그럴게요."

아무리 어른이 되었어도 부모에게 자식은 그저 아이처럼 보 일 뿐이었다.

차를 끌고 서울 방향으로 향하는 톨게이트를 통과한 이강진. 도중에 나두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두석아."

-형님, 출발하셨나요?

"지금 고속도로 막 진입했어. 근데 이 시간에 웬 전화야?"

-형님 가시는 스키장에 제 친구가 직원으로 일하고 있어서요. 제가 사전에 밑밥 다 깔아 뒀으니, 형님은 지윤 씨 데리고 여유 롭게 데이트 즐기다 오시면 됩니다.

역시 나두석. 이런 것까지 다 신경을 써 줄 거라고는 미처 예상 못 했다.

스키장 직원이 배려를 해 준다면야, 땡큐다.

"알았다. 고마워, 두석아."

-형님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뭘. 대신 에 갔다 오시면 데이트 후기 좀 자세히 들려주세요. 뭣하면 오 늘 확 고백하시는 것도 좋을 거 같네요, 하하하!

"고백은 무슨."

이강진은 마음속으로 정해 둔 게 하나 있었다.

고백은 전역한 다음에 하기로 결심했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한지윤과 사귀게 되더라도 이강진이 군인 신분이면 원하는 만큼 연락을 자주 주고받을 수가 없다.

이강진은 그게 싫었다.

그래서 전역 후에, 적절한 타이밍이 생겼다 싶으면 그때 정식 으로 자신의 진심을 한지윤에게 드러내기로 했다.

'내가 지윤 씨한테 고백이라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도 이런데, 정말로 한지윤에게 고백을 할 수는 있을까?

'해야지, 무조건!'

안 되면 되게 한다는 군인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 * *

한지윤을 픽업한 후에 이강진은 스키장을 향해 빠르게 차를 몰아갔다.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이강진이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 결하기로 했다.

"어머!"

도시락 통에 담긴 내용물을 보자마자 한지윤은 놀라움을 금 치 못했다.

"이거, 어머님이 혼자서 다 준비해 주신 거예요?"

"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세상에…… 준비하려면 많이 힘드셨을 거 같은데. 다음에는 제 가 어머님 대접해 드리겠다고 꼭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반드시 전해 드릴게요."

도시락을 보면서 이강진은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시락 통에 담긴 건 자식 사랑 하나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지윤 씨를 향한 팬심도 들어 있는 거 같은데.'

줄발하기 전에 그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지윤의 입맛에 맞는 것들 위주로 준비했다고.

'내 추즉이 맞군.'

어머니의 팬심은 제대로 통했다.

그렇게 입안과 마음이 훈훈해지는 식사를 마친 두 사람.

잠시 뒤에 한 남자가 이들에게 다가왔다.

"혹시 이강진 씨 맞나요?"

"예, 그렇습니다만."

이강진이 남자와 대화를 하는 사이에 한지윤은 목도리를 위 로 살짝 끌어 올려 입가 부분을 가렸다. 혹여나 자신을 알아볼 까 봐서 그런 것이다.

"두석이한테 연락받은 정태성이라고 합니다. 옆에는 지윤 씨 죠?"

".…네."

얼굴을 가리려고 했던 그녀의 노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자신을 정태성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환한 미소로 이들을 안 심시 켰다.

"강진 씨하고 지윤 씨가 이곳에 왔다는 건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괜히 소문이라도 퍼지게 만들면, 제가 두석이한테 엄청 혼나거든요. 다른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곳 위주로 안내해 드릴 테니, 일단 저를 따라오세요."

전문가에게 맡기면 반은 간다.

이강진이 회귀 이전에 실패를 반복하면서 깨달은 교훈이었다.

게다가 나두석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말을 했었다. 적어도 이강진과 한지윤의 뒤통수를 칠 만한 일은 하지 않을 터.

정태성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장소와 길을 이들에게 알 려 줬다.

"이쪽 길을 통해 이동하면 줄 서는 일 없이 바로 매점을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매점에 후문이 있다는 걸 대부분 모르고 계시 더라고요."

매점은 중요한 문제다.

확실히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대충 안내가 끝난 뒤.

정태성은 두 사람을 위해서 바로 자리를 비켜 줬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아, 그리고 이건 제 명함입니다. 혹 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제게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두석이한테 여태껏 받은 도움을 생각하면, 이 정 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하!"

이강진은 나중에 그와 나두석이 어떤 관계인지 한번 들어 보 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

"슬슬 놀러 가 보죠!"

"네!"

재미있게 즐기는 일만 남았다.

< 제95화. 스키장에서 생긴 일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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