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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93화 (293/347)

< 제93화. 무모한 용기 (3) >

제93화. 무모한 용기 (3)

동기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가던 최영고. 때마침 복도에서 그를 찾던 기운상과 마주치게 되었다.

"영고야!"

"충성!"

반사적으로 거수경례를 했다.

그러다 기운상의 표정을 보고서 최영고는 이상함을 느꼈다.

"왜 그러십니까, 기운상 상병님? 혹시 저한테 볼일이 있으신 겁니까?"

"아니, 그냥

막상 최영고와 마주하니 뭐라 말해야 좋을지 생각이 많아졌 다.

부사관을 지원하든 말든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영역이다. 아무리 군대 선임, 후임 관계라도 기운상이 최영고의 미래까지 결정지을 권한은 없었다.

애초에 기운상은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에 간섭하는 걸 굉장 히 싫어했다. 그것 때문에 아버지와 갈라서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기운상의 행동은 마치 그의 아버지와 같아 보였다.

그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도……."

만약 최영고가 부사관에 지원해서 하사를 달고 이곳에 오게 된다면, 그때는 아까와 다르게 기운상이 최영고에게 거수경례 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별로 달가운 미래는 아니었다.

'돌아 버리겠네!'

최영고보다 기운상이 더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 되었다. 오히려 최영고가 그를 걱정했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 그건 아니고…… 어흠! 부사관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결국 지원하기로 한 거야?"

이번에는 최영고 쪽이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직 고민 중입니다."

의외였다.

기운상이 파견 나가기 전에 봤던 죄영고는 지금 당장이라도 부사관이 지원하겠다는 열정과 기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약해진 모습을 보이다니.

"무슨 일

있었어?"

최영고는 말을 아꼈다.

간부는 병사의 적이라는 말이 있다. 그건 자신도 잘 안다.

최영고는 병사들이 좋다.

하지만 만약 그가 부사관에 지원해서 간부가 된다면…….

박령우와조구한이 그랬던 것처럼 병사들이 그를 미워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것 때문에 덜컥 겁을 먹고 말았다.

이렇게 된 거, 최영고는 기운상에게 다시 한번 상담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때 였다.

행정반에서 갑자기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아, 최영고는 방송 듣는 즉시 행정반으로 오도록.

행보관의 목소리였다.

어쩔 수 없이 최영고는 상담 요청을 뒤로 미뤄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기운상 상병님.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래, 갔다 와서 이야기하자."

"예, 알겠습니다."

본의 아니게 시간을 벌게 된 기운상.

그는 그동안 최영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충성 일병 최영고,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행보관이 행정반 가운데에 있는 책상에 앉은 채 앞쪽 의자를 가리켰다.

"와서 앉아라."

"예!"

행보관이 왜 최영고를 불렀는지, 행정반에 있는 모두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이제 부사관 지원 마감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슬슬 신청서 작성해라."

행보관에게 부사관 신청서를 건네받았다.

기입할 항목이 꽤 많아도 작성 자체가 어렵진 않아 보였다.

문제는 정말로 지원을 할지, 말지 아직 결심이 안 섰다는 거였다.

행보관은 그런 최영고의 얼굴 표정에서 망설임을 읽어 냈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보구나."

"아, 아닙 니다!"

반사적으로 부정했으나, 행보관의 눈을 속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네 심정, 나도 다 이해한다. 망설이던 건 너뿐만이 아니었으 니까. 나도 부사관 지원할 때 정말로 이게 내 길인가 하고 몇 날 며칠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 그러다가 결국 지원하게 되었고, 여 기까지 왔지."

"행보관님은 병사 시절에도 군 생활 잘하셨을 거 같습니다."

"나? 아니, 전혀. 오히려 폐급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얼마나 군 생활을 못했기에 폐급이라고 불렸던 걸까.

그보다도 더 놀라온 건, 그 상황에서 부사관 지원을 결정했다 는거였다.

"무섭진 않으셨습니까?"

"무서웠지. 하지만 난 그보다 내 자신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 이 더 컸다. 그래서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지원했지. 까짓것 한번 했다가 못 버틸 거 같다 싶으면 그냥 전역하고 나와 서 다른 일 찾아보면 되니까."

상당히 쿨한 마음가짐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던 행보관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나 때에는 그래도 되는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너 도 나도 다 대학 나오고, 토익인지 뭐시긴지 하는 것도 봐야 하 고. 스펙이 상향 평준화 되다 보니까 20대의 1, 2년이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귀중한 시간이 되어 버렸어. 그래, 기왕 말 나온 김에, 너한테 이거 하나만큼은 말해 주마."

원래 행보관은 최영고의 부사관 지원을 군말 없이 받아 주려 고했다.

하지만 망설이기 시작한 최영고를 본 순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1중대 병사들은 행보관에게 있어서 아들 같은 존재들이다. 아들을 감언이설로 속여서 평생을 괴롭게 만들고픈 부모는 없을 것이다.

"군인은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없으면 굉장히 고달프고 힘 든 일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후회가 밀려올 게야. 군 생활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 제가 아니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문제야."

행보관이 하고자 하는 말은 이거였다.

"망설일 거 같으면, 애초에 시작하질 마라. 굳이 무리해서 시 작할 필요 없다. 그러면 너만 지칠 테니까. 안 해도 될 거 같은 일은 안 해도 돼."

죄영고는 말없이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공감 가는 말이었다.

억지로 시작할 필요 없다. 안 될 거 같은 일을 무리하게 하려 고 했다가 실패를 맛볼 바에야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그 말이 최영고의 마음속에 강하게 박혔다.

그때, 갑자기 중대장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일을 이딴 식으로 해서 어쩌자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중대장의 쓴소리에 소대장이 연신 잘못을 빌었다.

쓴웃음을 지은 행보관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 최영고에게 말 해줬다.

"중대장님이 며칠 전에 대대장님한테 탈탈 털리고 오셔서 그 런지 신경이 많이 날카롭더라. 병사들 '내리갈굼'보다 간부들 '내 리갈굼'이 원래 더 삑서세고 힘들거든."

"아하……."

"어떠냐. 이런 거, 견딜 자신 있냐?"

최영고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 없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행보관 또한 미소를 지었다.

* * *

오늘 이강진의 주간 근무 파트너는 최근 1분대에서 가장 화 제가 되고 있는 인물, 최영고였다.

최영고와 같이 근무를 서면 항상 나오는 이야깃거리가 있다.

"아까 행보관님이 방송으로 너 부르신 거 들었다. 부사관 지원 때문에 그런 거지?"

"예, 모집 기간이 이제 바로 코앞으로 다가와서 부르셨던 겁니다."

"그렇구만. 예정대로 지원할 거야?"

그때, 최영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원 안 하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180도 달라진 최영고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강진은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라는 반응이었다.

"운상이한테는 말했어?"

"행보관님하고 상담 끝나고 바로 근무 투입할 시간이어서 아직 말 못했습니다. 이번 근무 끝나고 말할 예정입니다."

이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선택했어. 간부가 되면 군 생활이 더 편해질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진짜 오해야. 오히려 간부가 더 고달파."

"예, 그걸 최근에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행보관님도 망설임이 계속 남을 거 같으면 그냥 지원을 안 하는 게 나을 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강진이 1중대에서 그나마 행보관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물론 말년 병장들에게는 천적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말년 병장이 되기 이전까지는 행보관의 도움을 많이 받 았던 게 사실이다.

"군인보다 더 좋고 편한 일이 많이 있는데,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지."

"그런 거 같습니다. 근데 저는 그렇다 치고…… 령우가 걱정입 니다."

"령우? 네 동기 박령우 말하는 거야?"

"예, 그렇습니다."

최영고는 박령우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강진에게 들려줬다.

박령우가 여자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1중대 병사들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다.

기념일에 맞춰서 휴가를 나가고 싶지만, 그런 여건이 전혀 안 되니…… 동기로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강진은 왜 최영고가 부사관 지원을 망설이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간부들한테 실망 많이 했구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예, 맞습니다."

회의감이라는 걸 느꼈다. 그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는 건 부정 할 수 없었다.

"2부소대장 성격이 지랄맞다는 건 너도 알잖아? 간부들 중에 선 행보관님같이 좋은 분들도 계시니까, 너무 크게 실망하진 마. 그렇다고 너한테 부사관 지원하라고 독려하는 거 아니다? 내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하하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영고의 웃음소리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령우가 걱정입니다. 그 녀석, 이러다가 정말로 탈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탈영은……. 아니다,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곳이 군대 니까, 나도 확신은 못 하겠네."

이강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안심하고 있어라."

"이강진 병장님이 어떻게……"

"넌 그냥 얌전히 보고만 있으면 돼."

말년은 조용히 보내려고 했던 이강진이었으나, 후임의 걱정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오래간만에 그가 나서기로 했다.

* * *

개인정비 시간.

조구한과 함께 휴게실로 향하던 최영고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기쁜 표정으로 통화를 주고받고 있는 박령우와 마주쳤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박령우는 최영고, 조구한에게 빠른 걸음 으로 다가왔다.

"나, 다음 주에 휴가 나가기로 했다!"

"엥? 진짜?"

"그래! 다음 주에 휴가 출발하는 사람 중 한 명이 휴가일을 바 꾸기로 해서 빈자리가 생겼대! 누군지는 못 들었는데…… 와, 아 무튼 대박이지 않냐?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하던데, 기가 막힌 다, 기가 막혀!"

과연 그 타이밍이 우연히 찾아온 걸까?

최영고가 보기엔 아니었다.

"령 우야."

"응?"

"나중에 이강진 병장님한테 PX라도 한번 쏴."

"내가? 왜?"

"어휴.

박령우와 다르게 조구한은 최영고가 하는 말을 듣고 바로 눈 치 챘다.

"보니까 이강진 병장님이 너 때문에 휴가 미루신 거 같구만."

"지, 진짜로? 아니, 왜? 난 이강진 병장님한테 따로 부탁한 적 없었는데?"

"영고가 말했나 보지."

조구한의 추측이 맞았다.

금일 주간 근무를 섰을 때, 최영고는 이강진에게 박령우에 관 련된 문제를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때 이강진이 했던 말이 아 직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해결해 주마.

그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동기들이 몰랐던 사실을 모두 털어놓은 최영고.

속사정을 알게 된 박령우는 마냥 기뻐할 수 없게 되었다.

때마침 이강진이 백우호와 같이 휴게실에서 막 나오던 찰나 였다.

"이강진 병장님!"

박령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저 때문에 휴가 미루셨다는 말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응? 나, 휴가 안 미뤘는데?"

"……잘 못 들었습니다?"

최영고와 동기들은 벙찐 얼굴을 했다.

그럼 대체 뭐란 말인가?

"미룬 게 아니라 앞당겼어. 그래서 나, 이틀 후에 휴가 나간다."

"그, 그렇습니까."

이강진은 오히 려 잘됐다 싶었다.

원래 이강진은 박령우가 나가기로 한 날짜, 즉 이번 금요일에 휴가를 나가고 싶어 했었다.

하나 그때 휴가 출발자가 많다고 퇴짜를 당해 버렸다.

박령우와 같은 신세였던 것이다.

두 사람이 날짜를 조정함으로 인해 서로 원하는 날짜에 나가게 된 셈이었으니, 이거야말로 윈윈(Win-win) 아닌가.

이강진으로부터 이러한 자초지좋을 모두 들은 최영고는 헛웃 음을 삼켰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사관에 지원해서 간부가 되는 것보다 이강진 같은 남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 제93화. 무모한 용기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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