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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92화 (292/347)

< 제93화. 무모한 용기 (2) >

제93화. 무모한 용기 (2)

요즘 부쩍 군 생활에 자신감이 붙은 최영고.

이등병 때에는 항상 어깨가 축 처져 있던 그였으나, 지금은 어 깨에 절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저 넘치는 당당함과 자신감!

병사들은 달라진 최영고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부사관 지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인 거 같다, 영고야."

그의 동기 인 조구한 일 병은 부사관에 지원하겠다는 최영고의 말을 듣고 진심으로 중고했다.

또 다른 동기인 박령우 일병도 조구한과 같은 생각이었다.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 있냐? 그냥 얌전히 있다가 전역하면 되는데."

"전역해도 취업 걱정에 시달릴 바에야 차라리 여기서 평생직 장 가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이것이 최영고의 생각이었다.

간부들은 최영고의 부사관 지원을 적극적으로 응원했다.

하나 병사들은 달랐다.

특히 동기들이 어떻게든 최영고의 결정을 번복시키 려고 했다.

"이강진 병장님은 뭐라셔? 며칠 전에 휴가 복귀하셨잖아. 부사관 지원할 거라는 말, 이강진 병장님한테도 했었어?"

"어. 일단 지금 당장 지원하지 말고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생 각하고 나서 지원하라고 하셨어."

두 동기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이강진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가 말았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분명 '미친놈' 소리가목 언저리까지 올라왔을 것이다. 그것을 겨우 참아 낸 이강진이 대단해 보였다.

괜히 1중대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 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최영고는 이강진이 진심으로 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 이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강진 병장님도 내가 부사관 지원하는 걸 응원하시겠다는 뜻이겠지?"

"아니, 전혀."

동기들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최영고는 이런 쪽에선 눈치가 전혀 없었다.

하기야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면 부사관 지원 같은 건 생각 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렇다 치고."

최영고가 말머리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다음 타깃은 박령우였다.

"넌 여자 친구 문제, 어떻게 됐어?"

"하…… 모르겠다. 며칠째 연락도 안 되고. 진짜 미쳐 버릴 거 같아."

여자 친구 이야기가 나오자, 박령우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연 달아 새어 나왔다.

안 그래도 군 생활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여기에 여자 친 구 문제까지 겹치니 이중고가 따로 없었다.

"저번에 그것 때문인 거 같아."

"그게 뭔데?"

찔리는 거라도 있는 모양인지 박령우는 이전에 나눴던 여자 친구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조만간 300일이거든. 근데 300일 되는 날에 맞춰서 휴가 나 올 수 있냐고 나한테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확신은 못 하지만, 노력은 해 보겠다고 말은 했는데… …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화가 잔뜩 난 거 같아."

"그것 때문에?"

"내 여자 친구, 기념일 엄청 챙기는 스타일이거든. 저번에는 만난 지 222일 되었는데, 그거 까먹었다고 일주일 동안 내 연락을 안 받더라. 이번에는 무조건 챙겨 줘야 할 거 같은데…… 모르 겠다, 하. 어떻게 하면 좋냐."

이들이 보기에 해답은 매우 간단했다.

"그날에 맞춰서 휴가 나가면 되잖아?"

"설마 너, 휴가 없냐?"

박령우는 동기들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있어. 저 번에 중대장님한테서 받은 3박 4일짜리 포상휴가 하나하고 대민지원 나가서 받은 1 박 2일 포상휴가 하나. 이렇게 있 지."

두 개 합치 면 4박 5일 동안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다음 주에 휴가 출발자들 많다고 안 된 대. 그때 나가야 딱 300 일 되는 날에 여자 친구랑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휴가를 가지고 있어도 원하는 날짜에 사용할 수 없다.

이것 때문에 박령우는 고민이 많았다.

신병위로휴가도 아니고, 계급별 정기휴가도 아니다. 우선순위 가 낮다 보니 다른 휴가자들과 경쟁이 붙어도 밀릴 수밖에 없었 다.

최영고가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분대장님한테 한번 상담받아 보는 건 어때? 혹시 모르잖아, 네 사정 알게 되면 그날에 나가게 해 주실지도."

"이야기는 미리 했지. 근데 자기 권한으론 힘들 거 같다고, 부 소대장님하고 이야기해 보라고 하시 더라."

박령우가 소속되어 있는 분대는 2분대다. 현 2분대 분대장은 류기정 병장. 후임들에게 무신경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그런 선 임이었다.

박령우는 그저 최영고가 부러울 따름이었다.

"우리 분대도 이강진 병장님이나 기운상 상병님 같은 분이 분 대장으로 계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류기정 병장님이 부소대장님하고 상담해 보라고 하셨으니까 한번 해 봐. 2부소대장님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박령우가 여자 친구를 얼마나 소중하게 대하는지 동기들은 아 주 잘 알고 있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 탈영까지 각오할 정도 로 각별한 사이다.

박령우가 가장 힘든 시기에 여자 친구가 곁에 남아서 그를 지 탱하는 나무가 되어줬다. 그 덕분에 박령우는 극단적인 선택까 지 할 뻔했던 순간을 잘 넘길 수 있었다.

간부들도 이런 일화를 다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간부들이 알 아서 잘 해주리라.

최영고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파견을 마치고 돌아온 기운상이 이강진을 보자마자 바로 거 수경례 자세를 취했다.

"충성!"

"오랜만이다, 운상아. 파견 잘 갔다 왔어?"

"예, 별일은 없었는데, 그쪽 막사가 구막사여서 고생 좀 했습니다."

신막사에서 지내다가 구막사로 가면 영 적응이 안 된다. 이강진은 그 마음을 아주 잘 안다.

짐을 풀던 중에 기운상은 문득 어떤 것이 떠올랐다.

"혹시 영고가 이강진 병장님한테 상담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 았습니까?"

"어. 영고 녀석, 부사관 지원한다며?"

"예. 저는 처음에 영고가작업하다가 어디에 머리를부딪친 건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기운상은 도통 최영고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투스타의 아들로 태어난 기운상조차 군대에 대해서 좋은 인 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버지가 직업군인이어도 기운상은 그 뒤를 따를 생각이 전 혀 없었다.

1분대원들 모두가 다 같은 생각이었다.

최영고만 빼고.

"이강진 병장님은 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까?"

"일단 최대한 천천히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고 했지. 그 자리 에서 '미쳤냐? 하지 마.'라고 말할 순 없으니까. 너도 나하고 비 슷하게 말해줬다며?"

"본인이 하고 싶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그 랬습니다."

"잘했어."

선택하지 못한 후회는 평생 남는다. 안 좋은 결과가 예상되더 라도 한번 경험해 보는 게 후회로 남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른 다.

이것이 이강진이 내린 결론이었다.

"부사관 지원 모집 마감까지 앞으로 4일…… 슬슬 결정을 내리 겠구만."

그때, 이강진이 우스갯소리를 했다.

"영고가 하사 계급장 달고 여기로 발령받으면, 그럼 이제 네 가 영고 밑으로 들어가는 거 냐?"

그 말을 듣자마자 기운상의 얼굴이 굳어졌다.

후임이 간부로 오면 얼마나 껄끄러울까.

물론 부사관에 지원한다고 해도 바로 하사가 되는 건 아니다.

정식 코스를 밟아야 될 수 있다.

이강진은 최영고가 정식으로 발령을 받기 전에 전역할 테니 걱정이 없었다. 하나 기운상은 아슬아슬했다.

"지금이라도 영고한테 잘해라, 운상아. 나중에 영고가 1부소대장으로 오면 어쩌려고."

"발령받더라도 설마 이곳으로 오겠습니까?"

"또 모르지. 대한민국 땅, 생각보다 좁아. 그럴 일 절대로 없다 고 믿고 있다가 나중에 정말로 벌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있어라."

기운상의 표정이 더욱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섰다.

"왜 그래?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그게 아닙니다."

이강진의 말을 부정한 기운상은 이렇게 답했다.

"영고한테 가서 부사관 지원하는 거, 다시 한번 생각하라고 말해보려고 합니다."

정말로 이강진이 말한 미래가 펼쳐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덜 컥 겁을 먹고 만 것이다.

빠른 속도로 생활관을 벗어나는 기운상.

막 생활관으로 복귀하려 던 백우호가 부리나케 달려가는 기운 상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강진아, 저 녀석 갑자기 왜 저러냐?"

이강진은 그저 웃기만 했다.

W *

2부소대장을 찾아간 박령우.

때마침 2부소대장이 당직사관이었기에 상담 요청하기가 용 이했다.

부소대장은 박령우를 데리고 행보관실로 향했다.

자리에 앉은 후에 수첩을 꺼내 들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사실은……."

박령우는 주춤했다.

왠지 모르게 오늘, 부소대장의 기분이 영 별로인 것처럼 보였 기 때문이었다.

타이밍이 안 좋았던 걸까.

일단 한 발자국 물러서기로 결심했다.

"아, 아닙니다.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령 우야."

부소대장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장난으로 날 보자고 한 건 아니지?"

"안 그래도 나, 아까중대장님한테 탈탈 털리고 왔다. 이런 와 중에 너까지 나 짜증 나게 만들지 마라. 나중이고 자시고 할 이 야기 있으면 지금 해."

"죄, 죄송합니다."

강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은 중압감이 박령우를 압박했다.

"실은…… 제가 여자 친구랑 300일이어서, 다음 주에 휴가를 나 가고 싶은데 휴가자들이 많아서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 게든 방법을 찾고 싶어서 이렇게 부소대장님께 상담을……."

부소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령우야, 지금 그게 말이 되냐? 여자 친구 300일 챙긴다고 휴가 좀 내보내 달라고 하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어."

부소대장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순간 박령우는 크게 움찔했다.

"죄송합니다……."

"너만 여자 친구 챙기고 싶은 줄 아냐? 네 선임은? 후임은? 동 기는? 생각 안 해 봤어? 군대는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곳이 야. 너 하나만 생각하면 안 되는 곳이라고. 알고 있지?"

"……예, 죄송합니다."

"알아들었으면 가라."

안 통할 줄 알고 있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재촉하면서 행보관실을 나 서는 박령우.

토라지는 게 일상인 여자 친구지만, 그래도 박령우에겐 누가 대체해 줄 수 없는 귀한 반쪽이다.

하나 부소대장은 이런 사정을 알아주지 않았다.

군대는 박령우에게 포기하기를 강요했다.

선택지가 없다.

박령우가 뭐라고 해도 결과는...... 아니, 군대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 테니까.

* * *

"이야기를 제대로 꺼내기도 전에 쫓겨났다고?"

박령우의 말을 들은 죄영고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박령우가 여자 친구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2부소대 장이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설령 안 된다고 해도 박령우를 그렇게까지 매몰차게 대할 필 요가 있을까?

최영고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와 반대로 조구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어투로 말했다.

"전에 있던 2부소대장이라면 몰라도, 새로 온 2부소대장은 성 격이 완전 개 같아서 병사를 위하고 챙겨 주니 뭐니 그딴 건 없을 거야. 차라리 통신반장님이 더 나을 정도라니까. 너희, 저번 주특기 훈련할 때, 기억 안 나? 장형석 상병이 발에 가시 박혀서 제대로 못 걷겠다고 해도 확인도 안 하고 엄살이라고 멋대로 단 정 지어 버렸잖아."

결국 장형석 상병은 끝까지 주특기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그 리고 발이 퉁퉁 붓고 나서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 2부소대장이 장형석에게 했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진작 말하지, 왜 말 안 했냐고.

간단하게 말해서…….

"책임 회피지, 그건."

자신의 판단 미스로 인해 벌어진 사고는 절대로 사고로 인정 하지 않으려고 한다.

'XXX일째 무사고' 법칙과 같다.

만약 인정해 버리면, 자신이 그만한 처벌을 받게 될 테니까.

"영고야."

조구한이 최영고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진심으로 말했다.

"네가 부사관 지원하겠다는 거, 어차피 네 결정이니까 더는 뭐 라고 안 할게. 하지만 난 네가 2부소대장처럼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최영고의 머릿속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

< 제93화. 무모한 용기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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