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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86화 (286/347)

< 제91화. 외진 (2) >

제91화. 외진 (2)

외진을 나가기까지 이강진에게 미션이 부여되었다.

최대한 아픈 척을 해라.

다쳤던 첫날에는 정말로 아팠다. 그래서 아픈 척이니 뭐니 그 런 걸 굳이 연기할 필요까진 없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발의 붓기가 점점 사라지더니, 이제 는 멀쩡히 걸을 수 있는 단계까지 회복되고 말았다.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어렵게 외진 날짜를 잡았는데, 이강진의 발 상태를 행보관이 알게 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외진이든 뭐든 바로 취소하고 노동의 현장으로 끌려갈 것이다.

일부러 붕대는 풀지 않았다. 그러나 붓기가 다 빠진 티는 났 다.

화요일 오전.

이강진은 외진을 나가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오전 집합에서 제외되었다.

외진 버스는 오전 10시에 이곳 1075대대에 도착한다. 그 전까 지 이강진은 생활관에서 쉬고 있기로 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아무도 없겠지?"

생활관을 나서자마자 이강진은 두 발 멀쩡하게 걸어 화장실 까지 갔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어 흐!"

행보관이 마침 화장실에서 작은 일을 해결하고 있었다.

순간 이강진은 발을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를 취했다.

"어휴, 다리야…… 충성!"

"아직도 다리 상태가 영 별로냐?"

"병장 이강진. 예, 그렇습니다!"

행보관은 이강진의 왼쪽 발을 주의 깊게 쳐다봤다.

하필이 면 슬리퍼를 신고 와서 그런지 왼쪽 발의 상태가 유독 더 잘 보였다.

"겉으로 봤을 때엔 붓기는 다 빠진 거 같은데."

"아, 아닙니다. 좀 남아 있습니다."

"흠, 그러냐."

행보관의 눈이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눈썰미가 좋은 편이다.

동시에 의심도 많았다.

말년 병장들 중 몇몇은 아주 작은 상처만으로도 마치 병원에 실려 가야 할 것처럼 크게 부풀려서 꾀병을 부리기도 했다.

이강진도 사실 다 나았는데 쉬고 싶어서 일부러 엄살을 부리는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이 강하게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바로 오늘이 외진이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부상으로 트집 잡기에는 뭣했다. 따지더라도 진료는 받아 보고 난 다음에 따지는 편이 좋아 보였다.

"외진 조심히 갔다 와라."

"예, 알겠습니다. 충성!"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다.

다른 간부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행보관은 속이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화장실을 벗어나는 순간까지도 이강진은 미심쩍은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어서 외진 나가고 싶다.'

휴가까지 앞으로 이틀 남았다.

오늘은 외진으로 버티고, 내일은 PX에 가서 몰래 짱박히든가 해서 대충 시간을 때우면 된다.

'고작 이틀인데도 빡세네.'

오늘만큼 국방부 시계가 빨리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경우도 없었다.

* * *

외진을 희망하는 1075대대원들이 위병소에 집합했다.

1중대는 이강진, 허인강, 그리고 수송분과 소속의 이웅헌. 이 렇게 셋이 전부였다.

허인강은 너무 열심히 노가다 작업을 하다가 도중에 삽 끝으 로 자신의 발등을 찍어 버리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전투화를 신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활동화나 슬리퍼 였더라면 큰 부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본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행보관이 억 지로 허인강을 외진으로 뺐다.

이웅헌은 차량을 정비하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바닥에 엉덩 방아를 크게 찧었다. 그때부터 꼬리뼈 부근에 계속 통증이 있었 는데, 그게 아직까지도 영 낫질 않는 거 같아서 외진을 받아 보 기로 했다.

세 사람 중에 가장 멀쩡한 사람은 이강진이었다.

하나 겉으로만 봤을 때에는 이강진의 부상 정도가 제일 심각해 보였다.

이강진 혼자만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무병이 외진 희망자들에게 손짓했다.

"순서대로 버스에 타시면 됩니다."

"예."

1075대대에 오기 전에 다른 부대에 들르고 온 모양인지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았다.

간부를 제외하고 어차피 다들 아저씨다.

이강진은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양수병원까지 가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최소 1시간 30분 이 상은 걸린다.

경유지 없이 바로 병원으로 가면 1시간도 안 걸린다. 하나 아 직 들러야 할 부대가 많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우호한테 MP3라도 빌려 올 걸 그랬나.' 벌써부터 하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 * *

이 부대 저 부대 들리는 동안, 이강진은 눈을 붙였다.

그리고 버스가 덜컹거리기 시작할 때, 그는 누가 깨우기 전에 알아서 잠에서 깼다.

과속방지턱이 많다는 건 다시 말해서 양수병원에 다 도착했 음을 뜻했다.

이강진의 예상대로 양수병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네.'

회귀하기 이전에 두 번 외진을 나갔었던 이강진.

그때 처음 접했던 양수치킨의 맛이 아직도 뇌리에서…… 아니, 혀에서 떠나질 않았다.

버스가 정차하고 문이 열렸다.

인솔 간부가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출발은 오후 4시에 할 거 니까 그 전까지 버스로 돌아와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여 기서부터는 병사들끼리 알아서 자율적으로 병원을 돌아다 녀야 한다.

이강진은 허인강, 이웅헌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세 사람 다 정형외과였기 때문에 따로 떨어질 필요가 없었다.

허인강과 이웅헌은 양수병원에 처음 오는 거였다.

이들은 생각보다 큰 병원의 외형에 압도당한 모양인지 위축 된 모습을 보였다.

"어디 가서 뭘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에는 이강진만 믿고 따르면 된다.

"웅헌 아."

"일병 이웅헌!"

"지금 몇 시냐?"

"11 시 35분입니다."

"그래? 그럼 우선 진료부터 빨리 받자."

정형외과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진료 과목이다. 타이밍이 안 좋으면 대기하는 것만으로도 1시간에서 2시간을 날려 먹게 될 때도 있다.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강진은 우선 진료를 먼저 볼 것을 제안했다.

1중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강진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적어도 반 이상은 간다고.

믿고 보는 이강진!

두 후임은 무조건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대기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번호표를 받은 이강진은 20분 후에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충성!"

군의관에게 거수경례를 먼저 선보이는 이강진. 그를 앞에 둔 군의관은 유심히 한참을 바라봤다.

"가만, 티비에 나왔던 그 이강진 맞아?"

"예, 그렇습니다."

군대 내에서, 특히 간부들 중에서 이강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병사의 신분으로 육군본부에 두 번이나 초청받았다.

간부들조차 이룰 수 없는 업적을 쌓은 이강진이 눈앞에 있으 니, 군의관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소문 많이 들었다. 여기 양수병원에서도 한창 네 이야기로 떠 들썩했었어."

"하하, 그렇습니까? 제가 뭐 한 게 있다고……."

"왜 없어? 내가 나름 유명인들 진료도 직접 봐 준 적도 있고 한데, 그때보다 더 떨리네. 여하튼 와서 앉아라."

어디가 불편해서 왔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왼발에 감겨 있는 붕대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

"어쩌다가 다쳤어?"

"축구 하다가 발이 접질렸습니다."

"이런, 조심해야지."

군대에서 하는 축구가 괜히 전투 축구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전부 이유가 있다.

생각보다 죽구, 족구, 농구 같은 운동을 하다가 양수병원 신 세를 지는 병사들이 많았다.

진료를 보던 군의관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붕대를 칭칭 감았던 것치고는 생각보다 멀쩡한데?"

"하루 자고 나니까 붓기가빠지기 시작하더 니, 이틀째 되던 날에는 걷는 데 지장이 없는 정도까지 회복되었습니다."

"그럼 왜 여기 왔냐?"

"외진 예약해 둔 것도 아깝고 해서 그냥 왔습니다, 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이강진.

군의관은 그런 이강진을 보면서 그의 허벅지를 살짝 꼬집었다.

"이 녀석, 망고 빨려고 왔구만."

딱 보면 안다.

이강진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크게 다친 게 아니라서 다행이네. 거기 행보관님, 병사들 다치는 거에 굉장히 민감한 분이시니까."

"저희 행보관님을 아십니까?"

군의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다고 답했다.

대한민국 땅이 좁다는 말은 있지만, 설마 여기서 이런 인연의 끈과 만나게 될 거라곤 이강진도 예상 못 했다.

"알지. 예전에 연이 좀 있어서 가끔 연락 주고받고 했었으니 까. 거기 근무하는 중대장도 알고. 그보다 넌 모르는 모양인가 보구나. 그쪽 행보관님이 예전에 데리고 있던 병사 한 명이 크 게 다친 적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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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3년 전 일이니까 누가 이야기해 주지 않는 이상은 모 르겠구나."

이강진은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회귀 이전에 들은 바가 없었다.

"혹시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말이야 해 줄 수 있는데…… 네가 모르는 거 보니까 병력들도 모르는 거 같은데, 행보관님한테는 상처가 되는 이야기일 수 있으니까 너 혼자만 알고 있어라. 알았지?"

"예, 명심하겠습니다."

이강진은 입이 가벼운 남자가 아니다.

지킬 건 지킨다. 그 부분에 대해선 믿어도 된다.

한숨을 푹 내쉰 군의관은 지난 기억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양수병원에 배치되기 전,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지. 부대에서 사고가 났다고 하는 거야. 보니까 병사 하나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실려 왔더라고. 나조차 보고 식겁할 정도였어. 그때 너희 행보관님을 처음 봤지."

"어쩌다가 그렇게 심한 부상을 입은 겁니까?"

"야간 행군 도중에 발을 잘못 디뎌서 낭떠러지 밑으로 굴러떨어졌다는 거야. 몸에 나뭇가지도 박혀 있고, 이마는 다 찢어져 있고…… 하여튼 난리도 아니었지. 다행히도 병사의 생명에 지장 은 없었지만, 그 일이 행보관님에게 크게 트라우마가 된 거 같 더라."

자신이 데리고 있는 병사가 피투성이가 되었는데 트라우마가 안 될 리가 있겠나.

당시 행보관의 심정이 어땠을지, 이강진은 물론 100퍼센트 공감하진 못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갔다.

"아직도 생각나네. 행보관님이 우리들한테 뭐든 다 할 테니까 제발 한열이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모습이."

당시 병사 이름이 장한열이었다고 한다.

이강진은 당연히 모르는 이름이었다.

애초에 행보관에게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몰랐으니까.

"그날 이후로 너희 행보관님은 병사가 조금이라도 다쳤다 싶 으면 무조건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하시더라. 지금은 좀 나아지 신 거 같은데, 예전에는 엄청 심했어. 행정병 하나가 아스테이 지를 칼로 자르다가손이 베였거든. 그거 보고 자기하고 같이 병 원 가자고 호들갑 떠는 걸 당시 중대장님이 말리느라 고생 많이 했다고 한탄했었지."

인생이라는 존재는 항상 사람에게 행복한 순간, 행복한 기억, 행복한 추억만을 주진 않는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프고 괴로운 순간도 함께 준다.

그럴 때마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이름의 약으로 아픈 상처를 버텨 낸다.

그 상처가 아물 때쯤.

인간은 성장한다.

행보관 또한 그래 왔을 터.

그는 군대에 복무하면서 이강진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 의 많은 사건, 사고들을 접해 왔을 것이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서 지금은 1075대대 1중대 행보관이 되었 다.

군의관의 말을 듣고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말년 병장의 적으로만 여겨지던 행보관이 오늘따라 달리 느껴졌다.

< 제91화. 외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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