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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74화 (274/347)

< 제87화. 그녀를 만나는 자세 (2) >

제87화. 그녀를 만나는 자세 (2)

단수 사건이 문제점만 야기하는 건 아니었다.

토요일 오전 아침.

비가 오지 않는 이상 아침 점호에서 무조건 구보를 시키기로 유명한 소대장이 오늘, 뜻밖의 발언을 꺼냈다.

"금일 아침 구보는 생략한다."

병사들은 귀를 의심했다.

설마 소대장의 입에서 아침 구보를 생략한다는 말이 나올 줄 몰랐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이 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날씨는 너무 좋았다. 아침 구보 뛰기 딱 좋은 날씨라 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소대장은 아침 구보를 자체적으로 짬시키 기로 했다.

물론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대대장님께서 단수 문제 해결되기 전까지 괜히 너희들 땀 흘 리게 만들지 말라고 하시더라. 그것 때문에 아침 구보 생략하는 거니까 그리 알아라. 다시 물 정상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그 때는 못 뛰었던 것만큼 배로 뛰게끔 시킬 거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소대장이 아무리 겁을 줘도 병사들의 입꼬리는 아래로 내려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땀 흘리게 만들지 말라는 이유에서 아침 구보가 짬 처리된 건 좋지만…….

물이 나오기 전까진 죽구나 족구, 농구 같은 것도 자율적으로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침 오늘 PX 내기를 걸고 11 대 11 죽구 경기를 추진하려고 했었던 백우호는 생활관으로 복귀하자마자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 멤버 기가 막히게 짰었는데. 아깝네."

같은 팀 멤버로 이강진과 성태강도 들어가 있었다. 1중대 최 고의 스트라이커를 두 명이나 영입했는데,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경기가 무산되어 버렸다.

아쉬운 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이강진이 그런 백우호를 위로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오겠지. 다음 주 주말도 있잖아?"

"그때는 네가 휴가 나가고 없을 텐데?"

"아, 그랬지."

김철과 함께 다음 주에 휴가를 나갈 예정이었다. 화요일에 나 가기로 했기에 다음 주 주말에는 부대에 없을 것이다.

휴가를 자주 나가느라 바쁜 이강진. 그런 그를 보면서 백우호 는 부러움에 가득 담긴 시선을 건넸다.

"좋겠다. 나도 너처럼 휴가 좀 빵빵 나갔으면 소원이 없겠다."

"이발병으로 얻은 포상 휴가 있잖아? 그거 써."

"안 돼. 말년 휴가에 붙여서 나갈 거야."

그때가 오기만을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나 필요한 거 있는데. 휴가 나갔다가 복귀할 때 강진이, 네가 대신 사 주면 안 되냐?"

"뭔데?"

"잠깐만. 수첩에다가 적어 줄게. 펜이 어디 있더라……."

한두 개가 아닌 모양인지 백우호는 수첩과 펜을 찾아 헤맸다.

그사이 당직병이 1생활관을 찾았다.

"이강진 병장님, 전화 왔습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군데?"

"어떤 남자 분이었던 거 같은데…… 와서 직접 받아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봐."

자대에 전입했을 때 초기에는 이강진의 어머니만 부대로 전 화를 걸어오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사람들이 이강진을 찾았다.

이번에는 또 누구일까.

'지윤 씨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당직병이 이미 '남자'라고 못을 박아 뒀기에 그 가능 성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수화기를 들어 올린 이강진.

"병장 이강진입니다."

-형님, 접니다.

이강진의 심복, 나두석이었다.

회사에 관해서 급한 일이 있을 경우, 나두석은 지금처럼 부대 로 전화를 걸어서 이강진을 찾곤 했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인 줄 알았다.

"무슨 일인데? 또 문제 생겼어?"

-문제 터져서 전화 드린 건 아니에요.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나두석이 전화를 걸어온 목적은 따로 있었다.

-제가 지금 서울에 올라와 있거든요. 내일 다시 청주로 내려 갈 예정인데, 올라온 김에 형님 얼굴 한 번 뵙고 갈까 해서 전화 드려 봤습니다.

"면회 오게?"

-예. 형님 고생하시는데, 제가 맛있는 거 사 들고 가겠습니다.

이강진은 작게 웃었다.

"됐어, 인마. 어차피 다음 주 화요일날 휴가 나가는데, 굳이 내 얼굴 보러 올 필요 없어."

-아, 다음 주에 나오십니까?

"어, 그러니까 휴가 나가면 그때 보자."

서울에서 1075대대까지 오는 데만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강진은 굳이 나두석에게 그런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다음 주에 보자는 말과 함께 수화기를 내려놓은 이강진은 달 력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단수 되었을 때 휴가 나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벌써부터 몸이며 머리며 안 가려운 곳이 없었다.

청결도 문제지만, 화장실이 역시 가장 큰 걱정거리다.

이강진은 아직까지 잘 참아 내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방심할 순 없다.

언제 곽분섭처럼 갑자기 신호가 올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까.

곧 있으면 아침 식사 집합을 하러 갈 시간이다.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온 이강진은 후임들에게 물었다.

"오늘 아침 메뉴 뭔지 아는 사람."

"이병 허인강!"

므I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강진은 그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역시 SSS급 신병다웠다.

"뭔데? 말해 봐."

"금일 아침 식사 메뉴는…… 군데리아입니다!"

병사들의 표정이 단숨에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먹기만 하면 왠지 모르게 화장실을 찾게 된다는 전설의 식단!

'하필이면………'

화장실 가는 걸 피해야 할 곤란한 시기에 찾아온 손님, 군데 리아.

원치 않은 군데리아의 방문에 병사들은 곤혹을 치러야만 했메뉴가 군데리아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강진과 백우호는 아침 식사를 패스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토요일 당직사관을 맡게 된 간부가 하필이면 행보관 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식당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괜히 아침밥 안 먹겠다고 생활관에 몰래 짱 박혀 있다가 행보 관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배식을 마치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1분대원들.

서로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누가 먼저 손을 뻗을 것인지.

누가 먼저 물렁한 햄버거용 빵을 집어 들지.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백우호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아니, 물도 안 나오는 마당에 군데리아가 웬 말이래."

"물이 없으니까 오히려 군데리아 같이 제조하기 쉬운 메뉴가 나오는 거겠지."

대대 식당도 단수 현상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이들은 외 부에서 받아온 물로 어찌어찌 요리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딸기잼을 묻힌 패티를 크게 베어 문 백우호가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관사는 물 잘 나온다고 했지?"

"어, 대대 중에서 거기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일 거야."

"간부들은 좋겠네. 마음 편히 군데리아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배가 아프면 관사 내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

하나 병사들은 입장이 많이 달랐다.

소심하게 식사를 진행하는 병사들. 화장실 안 가게 해 달라고 빌면서 밥을 먹어야 하는 이 신세가 웃기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했다.

어려웠던 식사 시간을 끝낸 뒤에 이강진은 분대원들과 함께 막사로 돌아왔다.

생활관으로 들어서자마자 몇몇 병사들이 벌써부터 휴지를 찾 기 시작했다.

"이 망할 놈의 군데리아……."

"……설마 먹자마자 바로 신호가 올 줄은 몰랐습니다."

곽분섭과 죄영고가 당첨되었다.

특히 곽분섭은 이번에만 벌써 두 번째 야외 화장실행이었다. 그래도 한 번 갔다 온 사람이라 그런지 곽분섭은 최영고에 비 해 그나마 나아 보였다.

"가자, 영고야."

"예. 근데 곽분섭 일병님, 야외 화장실 사로 냄새가 대체 얼마 나 지독한 겁니까?"

"차라리 화생방 훈련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보면 돼."

"그 정도입니까?"

"말도 못할 정도지."

직접 체험해 보는 게 가장 빠르다.

사라지는 두 사람을 보면서 백우호는 몸서리를 쳤다.

"난 야외 화장실 안 갈 거야. 절대로!"

그게 사람의 뜻대로 된다면 참 좋을 것이다.

이강진은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과식은 피한다. 라면 같 은 것들도 최대한 자제하기로 했다.

어떻게 식습관을 조절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그리는 사이.

또다시 당직병이 이강진을 찾았다.

"이강진 병장님."

"왜? 또 나한테 전화라도 왔어?"

"오, 어떻게 아셨습니까? 정답입니다."

그냥 찍어 본 건데 우연히 들어맞았다.

또 나두석이 전화한 걸까.

아까 못 다한 말이 있어서 다시 전화를 걸어왔을지도 모른다.

하나 이번엔 달랐다.

"어느 여성분인 거 같습니다."

"어머니한테서 온 건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목소리가 상당히 젊었습니다."

젊은 여성.

그러면 후보는 딱 한 명밖에 없다.

'지윤 씨구나.'

직접 수화기를 들었을 때, 이강진은 자신의 추즉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여보세요, 강진 씨?

"네, 지윤씨. 접니다."

그녀와 이렇게 통화를 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다행이에요. 전화 걸면서 내심 휴가 나가신 건 아닐까 하고 불안했었거든요.

요즘 이강진이 휴가를 워낙 자주 나간 탓에 한지윤은 이런 걱 정이 자주 들었다.

-당분간은 휴가 안 나가시는 건가요?

"아니요. 다음 주 화요일에 나갈 예정입니다."

-어머, 그럼 주말에 부대에 계시겠네요?

기뻐하는 한지윤의 목소리에 이강진은 이유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그 불안감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었다.

-내일 종교 행사에 나가기로 했거든요. 괜찮으시다면 내일 교회에서 볼 수 있을까요?

"내, 내일요?"

지금 이강진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이틀 동안 샤워도 제대로 못했고. 머리도 못 감은 상태였다.

세탁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입던 속옷과 옷가지를 계속 착 용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으로 한지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만나선 안 된다!

이강진이 처하게 된 상황을 알 리가 없는 한지윤. 그녀의 관심사는 내일 이강진과 교회에서 만날 수 있는지 없는지, 오로지 이것뿐이었다.

고민의 늪에 빠지게 된 이강진.

'어쩌지?'

내일이면 3일째 못 씻게 되는 셈이다. 그 몰골로, 그 상태로 한지윤을 만나러 갔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물론 심성이 착한 한지윤은 이강진한테서 냄새가 난다 하더 라도 모른 척하면서 말없이 그냥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오히 려 그게 이강진을 더욱 난감하게 만든다.

'교회에 못 나간다고 할까?'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래, 거절하자.'

하필이면 종교 행사 시간이 외곽 근무를 서야 하는 시간이라 서 못 갈 거 같다고 대충 둘러대면 된다.

한지윤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양심에 찔리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어흠! 지윤 씨. 제가 그때는……."

-강진 씨 전역하기 전에 부대에서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가 될 거 같아서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제가 시간을 쪼개서 내일 교회로 가기로 했어요. 강진 씨도 나오실 수 있나요?

여기서 어떻게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있으랴.

결국 이강진은 쓰디쓴 눈물을 삼키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예, 무슨 일이 있어도 가겠습니다!"

결국 지르고 말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이강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든 깔끔한 모습으로 내일 한지윤 앞에 서야 한다.

'생각하자, 이강진!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 든 생각해 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 제87화. 그녀를 만나는 자세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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