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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66화 (266/347)

< 제84화. 두 명의 신병 (3) >

제84화. 두 명의 신병 (3)

정재원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운명의 수레 바퀴(Wheel of Fortune), 태양(The Sun) 그리고 전차(The Chariot).

"제가 지금까지 나름 많은 사람들의 금전 운을 봐 왔지 만, 이 강진 병장님처럼 이렇게 괜찮은 금전 운을 지닌 사람은 없었습니다."

"잘 나온 거야?"

"예, 엄청 잘 나왔습니다!"

"흠, 그래?"

처음에는 타로점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이강진이었으나, 잘 나왔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강진이 원하는 금전 운이 잘 나왔다고 하니, 더 만 족스러웠다.

"손을 대는 사업마다 모두 성공하실 운으로 나왔습니다. 이 정 도면 하늘이 돕는 수준이 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나 기분 좋으라고 하는 코리아니지?"

정재원은 이강진의 추측을 강하게 부정했다.

"절대로 아닙 니 다! 원하신다면 타로 카드 교범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교범에 해석 방법이 나와 있는데, 어떤 식으로 확인 하냐면……."

"아니, 됐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믿어야지, 뭐. 그럼 연애 운 은 어때?"

추가 주문이 들어왔다. 정재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카드 를 섞었다.

"아까처럼 세 장을 골라 주시 면 됩 니다."

"그럼 요거하고 이거, 그리고 저거."

선택에 거침이 없었다.

어차피 다 뒤집어져 있었기에 어느 것이 무슨 카드인지 이강 진이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점을 볼 때는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마 음 가는 대로 결정하면 된다.

어디까지나 운을 보기 위함이니까.

이번에는 연인(The Lovers), 별(The Star), 태양(The Sun). 이렇 게 세 장의 카드가 나왔다.

"태양, 이 카드는 아까도 나왔던 거네."

"예, 성공, 물질적 만족, 행복한 삶 등을 나타내는 카드입 니다."

"잘 나온 거야?"

"정위치, 역위치에 따라 의미도 달라집 니다. 일단 해석부터 하 겠습니다."

카드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정재원은 이내 고개를 아주 크게, 여러 차례 끄덕였다.

"아까 보신 금전 운급으로 잘 나왔습니다. 이강진 병장님, 이 쯤 되면 천운을 타고나신 거 같습니다."

점이 잘 맞는다고 소문이 난 정재원이 이렇게 말을 해 주니 덩달아 이강진의 기분도 좋아졌다.

'내가 원래 운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회귀 이전에는 오히려 악운에 가까웠다.

액땜이라도 한 걸까.

만약 그렇다면, 이게 다 회귀 트럭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강진처럼 엄청 잘 나온 건 아니었지만, 백우호도 나름 괜찮게 나왔다.

특히 래퍼로서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이 매우 만족스러웠 다.

결과는 대성(大盛)이었다.

래퍼로서 성공할 거라는 결론이 나오자 백우호는 크게 기뻐 했다.

직업 운. 백우호는 이것 말고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래퍼로 성공하면 자연스럽게 돈은 많이 벌잖아? 그 러면 금전 운이 좋다는 소리일 테고. 돈이 많으면 내가 하고 싶은 건 웬만하면 다 할 수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행복해지고. 건 강이 안 좋아도 몸에 좋은 보약이나 병원도 부담 없이 계속 다 닐 수 있으니까 건강 운도 좋은 셈 아니야?"

백우호는 직업 운 하나만 좋으면 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로써 타로점은 모두 끝났다. 슬슬 생활관으로 돌아갈 시간 이다.

그전에 이강진은 정재원에게 작은 보답을 하기로 했다.

"재원아, 너 혹시 대대장님 면담 시간에 타로점 볼 줄 안다고 말했어?"

"예, 했었습니다. 나중에 시간 되면 막사로 와서 타로점 봐 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서비스로 군 생활 꿀팁 하나 더 주마."

이강진은 정재원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대대장님, 요즘 진급에 한참 민감하실 때거든. 만약 네가 진 짜로 대대장님 타로점을 보게 된다면, 무슨 카드가 나오든 간에 무조건 진급하실 거라고 해라. 안 좋은 카드가 나와도 어떻게든 각색해서 좋은 카드가 나온 것처럼 포장해. 그러면 좋은 보상이 떨어질 거야."

"정말 그래도 됩 니까?"

결국 조작 아닌가.

그러나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표현이 존재하듯, 때론 선의의 조작도 필요한 법이다.

"안 좋게 나온 걸 있는 그대로 말하면 부대 전체가 대대장님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어차피 대대장님, 타로 카드 볼 줄 모르시니까 그냥 열심히 똥꼬 빤다는 생각으로 좋은 말만 막 들려줘."

다른 누구도 아닌 이강진의 중고다.

일단 정재원은 이강진이 한 말을 가슴속 깊이 새겨 두기로 했다.

* * *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일.

이강진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가 때만 꺼내 입는 A급 전 투복으로 환복했다.

하도 휴가를 많이 나가서 그런 걸까. 이제는 더 이상 A급 전 투복이라고 부를 수가 없을 정도였다.

A급 전투화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휴가를 많이 나가다 보니 발생하게 된 부작용이었다.

하나 이강진은 이 런 부작용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휴가만 무사히 나갈 수 있으면 된다.

평상시대로라면 아침 점호를 바깥에서 진행해야 했지만, 오 늘은 달랐다.

-행정반에서 알려 드립니다. 금일 아침 점호는 비가 오는 관 계로 실내 점호로 대체하겠습니다.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평일에 비가 내리면 병사들 입장에선 오히려 땡큐다.

"오늘 작업은 없겠네."

"생활관에서 정신교육만 받고 끝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최고지."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강진은 이들과 전혀 다른 걱정을 하고 있었다.

"우산 있는 사람 없냐? 점호 끝나고 바로 나가야 하는데, 일 났네."

영내에서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고작해야 간부들뿐이다. 병사들은 쉰내 나는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다녀야 한다.

하나 휴가를 나가는 날까지 판초우의를 쓰고 갈 순 없었다.

백우호가 이강진에게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말했다.

그는 서일주의 관물대를 살폈다.

"찾았다. 강진아, 이거 받아라."

접이식 우산을 건네받았다.

서일주 병장이 말년 휴가를 나가려고 할 때, 전날 새벽까지 비 가 왔었다. 그래서 서일주는 아침에 쓰고 갈 우산을 미리 챙겨 뒀었다.

하나 휴가 출발 당시에는 구름이 완전히 개어 버린 탓에 우산을 놔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서일주가 챙겨 둔 우산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그거, 서일주 병장님 거니까 복귀할 때 꼭 들고 와."

"알았어. 그럼나 간다."

"오냐. 잘 갔다 와라."

백우호와 후임들의 배웅을 받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휴가를 나서는 이강진.

우산을 활짝 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재원이한테 날씨 운도 봐 달라고 할 걸 그 랬네."

이강진이 휴가를 나간 다음.

병사들은 비가 온다는 이유로 외부 활동 대신 생활관에서 정 신교육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 첫 당직 근무를 서게 된 기운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필 이럴 때 당직이라니……."

생활관에서 제대로 꿀 빨면서 일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 를 날리고 만 셈이었다.

같이 당직 근무를 서게 된 김철이 그런 기운상의 어깨를 토닥 여 줬다.

"운이 안 좋은 거라고 생각해."

"그러고 보니 요즘 제 운이 많이 안 좋아진 거 같습니다. 나중 에 재원이한테 한번 점이나 봐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다 좋은데, 그렇다고 재원이 너무 재촉하고 그러진 말고……. 아, 키 왔네."

대대 지휘통제실에서 온 키였다.

"통신 보안, 병장 김철입니다. 대, 대대장님이 지금 이곳으로 올라오신다는 말씀입니까? 아, 알겠습니다! 중대장님한테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조용히 넘어갈 거라 생각했던 평일 하루가 갑자기 파란만장 해졌다.

* * *

각 중대가 병사들에게 제대로 정신교육을 시키고 있는지 확 인하기 위해 대대장이 직접 부대를 방문했다.

겸사겸사해서 신병들이 문제없이 내무 생활에 잘 적응해하고 있는지도 확인하기로 했다.

첫 번째 타깃이었던 본부중대를 거쳐 두 번째 차례인 1중대 로 향했다.

미리 보고를 받은 중대장은 간부들과 함께 거수경례로 대대장을 맞이했다.

"충성!"

"충성, 병사들은 뭐 하고 있나?"

"분대장들 통제하에 각 생활관에서 정신교육 하고 있습니다!"

대대장은 간부들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는다.

귀찮은 발걸음을 하면서까지 중대로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겠나. 대대장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의도가 있어서다.

먼저 1생활관을 들린 대대장.

백우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힘찬 거수경례를 펼쳤다.

"충성!"

대대장은 병사들을 쭉 훑어보다가 이내 백우호에게 물었다.

"1 분대는 신병이 없나?"

"예, 그렇습니다!"

"중대장, 신병 있는 분대가 어디 어디지?"

1중대 중대장은 신병이 배치된 분과를 차례대로 언급했다.

이야기를 들은 대대장은 문득 신병들과의 개인 면담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1중대에 타로점을 잘 보는 신병이 한 명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누구인가?"

"행정분과 소속 정재원 이병입니다."

"그래? 온 김에 신병한테 타로점이나 봐 달라고 해야겠군."

갑자기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대대장 앞에서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 아직 신병에게 교 육을 못 시켰다. 그렇다고 시간을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었다.

"그, 금방 데려오겠습니다!"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 * *

대대장과의 단체 면담 때 타로점을 볼 줄 안다고 말했었던 정 재원은 지난 날 자신이 했던 발언을 후회했다.

설마 대대장 앞에서 정말로 타로점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놈의 입이 방정이야!'

정재원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대장은 태연하게 말했다.

"부담 가지지 말고 한 번 해 보1 원래 이런 건 재미로 보는 거 니까, 허허허."

"아, 알겠습니다! 그럼…… 대대장님께서 관심 있는 분야는 어 떤 겁니까?"

"요즘 내가 예 민한 시기 라서 말이야. 혹시 직 업 운도 볼 수 있 나?"

"무, 물론입니다!"

이강진이 한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에 따르면, 대대장은 지금 진급에 상당히 민감한 상태 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강진 병장님이 하신 말씀대로 해 보자!'

셔플 후에 세 장의 카드를 골랐다.

순차적으로 카드를 뒤집던 정재원은 반사적으로 헛숨을 삼켰 다.

'이건……!'

죽음(Death), 악마(The Devil) 그리고 광대(The Fool).

한 눈에 봐도 안 좋아 보이는 카드들뿐이었다.

실제로도 안 좋다.

카드를 확인하자마자 대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죄다 불길해 보이는 이미지들뿐이군."

"그렇지 않습니다, 대대장님!"

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열심히 포장해야 한다!

"이 죽음 카드는…… 부활과 재생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죽 었다가 다시 부활한 것처럼 믿기 힘든 기적이 벌어진다는 뜻입 니다!"

"그런가?"

"예! 그리고 악마 카드는…… 꼭 나쁜 의미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저희 국가대표팀 응원단 이름도 '붉은 악마' 아닙니까? 그만 큼 악마처럼 독기를 가지고 열심히 하면, 죽음 카드에서 나온 것 처럼 기적이 벌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를 정도였다.

아무튼 진급에 기적같이 성공할 거라는 식으로 듣기 좋게 최대한 포장했다.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짜 맞추고 짜 맞췄다.

마지막 남은 시련, 광대는 이렇게 포장하기로 했다.

"대대장님이 유머러스한분이라는 걸 나타냅니다. 즉, 주변 사람들을 항상 웃게 만드는 밝으신 분이라는 뜻으로 해석됩 니다!"

"나쁜 카드만 나온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좋은 것들이군."

"예, 그렇습니다!"

대대장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기분이 좋아진 모양인지 정재원에게 작은 포상을 내리기로 했다.

"점 보느라 고생했으니까 이 대대장이 1 박 2일 포상 휴가라도 줘야겠군.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군 생활은 별 거 없다.

상급자가 기분 좋으면 그만이다.

정재원은 자대 전입한 지 얼마 안 되는 기간에 이 진리를 몸 소 깨닫게 되었다.

< 제84화. 두 명의 신병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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