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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59화 (259/347)

제82화. 후임 군종병 (2)

기독교 군종병이 될 수 있다!

안 그래도 요즘 힘든 일만 계속 몰려오던 찰나에 이런 깜짝 소식을 듣게 되니 곽분섭은 기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군종병이 되면, 다연 씨를 주말마다 볼 수 있어!'

성가대 인원으로 활약 중인 최다연. 곽분섭이 최근 짝사랑하고 있는 여인이기도 하다.

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에 곽분섭은 푹 빠지고 말았다.

싱글벙글 미소를 짓는 곽분섭을 보면서 이강진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좋냐?"

"일병 곽분섭! 예, 그렇습니다!"

기독교 군종병은 다른 병사들보다 1시간가량 먼저 교회로 내 려가서 종교 행사 준비를 도와야 한다.

그 말인즉슨.

최다연을 1시간 더 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좋아하는 여인을 위해 기독교 군종병이 되는 걸 택한 곽분섭.

그를 볼 때마다 이강진은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나도 한때 지윤 씨를 보겠다고 군종병에 도전했던 적이 있으 니까.'

기독교 군종병 자리를 꿰차기 위해 열심히 작전을 세웠다. 그 결과 이강진은 군종병 오디션의 최종 합격자가 되었다. 그에 비해 곽분섭은 비교적 편하게 군종병을 취득했다.

'난 어렵게 얻은 건데, 남한테는 쉽게 주려니까 약간 배 아프 네.'

그렇다고 한 번 결정한 걸 번복할 순 없었다.

그냥 곽분섭이 운이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 *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전투화를 닦는 곽분섭.

때마침 3분대 소속인 서공찬이 곽분섭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분섭아, 오늘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이는데. 뭔 일 있었어?"

"일병 곽분섭! 예, 아주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안와가 도산 상대로 이겨서 그런 거냐?"

"엇! 안와가 이겼습니까?"

곽분섭처럼 서공찬도 프로 야구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한다.

짬이 안 되는 곽분섭과 다르게 서공찬은 3분대에서 최고 선 임이다 보니 다른 분대원들 눈치 볼 일 없이 마음껏 야구 경기 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곽분섭은 가끔 3분대 생활관으로 넘어가 서공찬과 같이 야구 경기를 보곤 했다.

오늘은 이강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경기를 보지 못했다.

"아까 봤는데, 서대영이가 오래간만에 승리 투수 됐더라."

"그걸 봤어야 했는데…… 하아."

1생활관에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곽분섭 말고는 아무도 없다.

곽분섭이 1생활에서 마음껏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왕고가 되는 것 말고는 없어 보였다.

대신 경기를 못 보더라도 서공찬이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되었 는지 항상 공유해줬다. 그 덕분에 곽분섭은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랠수 있었다.

서공찬이 있어서 다행이다.

반대로 서공찬 또한 곽분섭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부대엔 희한하게 야구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 너 하고 나 정도밖에 없지 않냐?"

"그런 거 같습니다."

"죄다 죽구, 게임 이야기뿐이고. 아무튼 남은 군 생활 심심하 게 보내다가 전역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네 덕분에 그런 걱정은 싹 사라졌다. 고마워."

"저야말로 항상 감사드립니다, 서공찬 병장님."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군 생활에 큰 위로가 된다.

"네가 우리 분대로 들어왔어야 했는데. 아쉽다, 아쉬워."

곽분섭이 3분대로 갔다면, 서공찬이 그를 애지중지했을 것이다.

그래도 곽분섭은 1분대가 좋았다.

비록 서공찬처럼 취미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1분대에는 좋은 선임들이 많았다.

이강진 이라든지, 백우호라든지.

성태강도 있고, 치트키 같은 존재인 기운상도 있다.

앞으로 기운상이 이강진의 뒤를 이어 분대장을 달게 된다면, 간부조차도 1분대를 터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 맞다."

전투화를 닦던 도중에 서공찬이 대뜸 이렇게 물었다.

"너, 지금 작업병안 차고 있지?"

"예, 그렇습니다. 근데……."

조만간 이강진에게 기독교 군종병을 물려받을 거라고 말하려 던 찰나였다.

급하게 서공찬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서공찬 병장님! 행보관님께서 찾으십니다."

"나를? 왜?"

"PX병 때문인 거 같습니다."

"흠, 그래?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금방 갈게."

서공찬은 1중대 유일의 PX병이다.

원래 PX병은 본부중대에서만 뽑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3중대 에서 본부중대만 PX병을 독점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마 음의 편지가 나왔다. 그것을 보고 대대장은 다른 중대에도 PX병을 한 명씩 두게끔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1중대에도 PX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현재는 서공찬이 PX병을 맡고 있었다.

행보관이 찾는다는 말에 서공찬은 투덜거리 면서 전투화를 집어 들었다.

"이야기 도중에 먼저 일어나게 되어서 미안하다, 분섭아. 나 중에 따로 만나서 말하자."

"예, 알겠습니다."

어차피 중요한 말은 아니 니까.

곽분섭은 그렇게 생각하고 가볍게 넘겨 버리려고 했다.

하나…….

이 대화의 부재가 훗날 커다란 파장을 불러올 거라곤 아무도 예상 못 했다.

일요일 오전.

이강진은 오늘, 곽분섭과 함께 이른 시간에 교회로 내려가게 되었다.

곽분섭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워 보였다.

그 모습에 이강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좋냐?"

"교회 가는 게 요즘 제 군 생활의 낙입니다, 이강진 병장님."

"교회 가는 것이 낙이 아니라 다연 씨 보는 게 낙이겠지."

"하하하! 사실 그렇긴 합니다."

좋아하는 여자를 간접적으로나마 매주 볼 수 있다는 게 이리 도 기쁜 일이었다.

한때는 후배에게 차여서 관심 병사가 될 헨했던 곽분섭.

하나 지금은 누구보다도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다.

이강진은 문득 곽분섭과 최다연의 진도가 어디까지 갔는지 궁 금해 졌다.

"서로 대화는 많이 나누는 편이야?"

"통상적인 인사 정도가 다입니다."

"그럼 연락처 교환은?"

"시도도 안 해 봤습니다."

"진짜 딱 다연 씨 얼굴만 보러 가는 거구나."

생활관에서도 매번 다연 씨, 다연 씨 하길래 이강진은 어느 정 도 진도가 나간 줄 알았었다.

그러나 진도는커 녕, 아직 출발조차 못했다.

"말이라도 조금씩 붙여 보지 그래?"

"그러곤 있는데…… 솔직히 좀 무섭습니다."

"뭐가?"

"저, 군인이지 않습니까? 여자들이 군인을 좋아할 리가 만무 하고. 제가 말 붙이려고 하면 여자에 굶주린 녀석처럼 오해받을 까 봐 쉽게 접근을 못하겠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맞는 말도 아니었다.

"우리가 군인 된 게 무슨 죄 지은 것도 아니고. 군인이 뭐 어 때서? 여자한테 대쉬하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하지만……."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이 왜 나왔겠냐. 눈 딱 감 고 용기 한 번 내 봐. 혹시 모르잖아? 잘될지도."

첫 발을 내딛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기 때 문이다.

"내가 말 붙일 기회 줄 테니까 한 번 도전해 봐라."

후임을 위해 직접 나서기로 결심한 이강진.

군종병을 내려놓기 전에 곽분섭에게 큰 선물을 주고 싶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곽분섭은 이내 끄덕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강진 병장님!"

"나만 믿어라."

후임을 위해 손 좀 써보기로 했다.

* * *

교회로 내려간 이강진은 목사에게 곽분섭을 데려갔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오늘은 분섭이하고 같이 왔습니다."

"둘이서 같이 온 건 처음 보는구나."

대부분은 이강진이 왔지만, 그가 휴가를 나가 있을 때에는 곽 분섭이 대신 오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목사도 곽분섭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교회도 매주 빠짐없이 나오고. 목사의 머릿속엔 곽분섭이 아주 성실한 병사로 남아 있었다.

"실은 제가 이번 달까지만 군종병을 차기로 해서요. 다음 달 부터는 분섭이가 나와서 일할 겁니다."

"벌써 그런 시기인가……."

이강진이 떠난다는 것에서 오는 아쉬움과 상실감이 몰려왔다.

목사는 종교 행사를 주최하면서 그동안 많은 군종병들을 맞 이하고 떠나보냈었다.

그러나 이강진만큼 아쉬움이 크게 느껴지는 군종병은 없었다.

그만큼 이강진이 열심히 잘했다는 뜻이다.

"전역은 언제 하나?"

"내년 1월 1일입니다."

"의미 있는 날에 전역하는군. 군종병 관둬도 전역하기 전까진 교회에 계속 나와 주게."

"물론입니다, 목사님. 그리고……."

이강진은 곽분섭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저 있을 때 성가대 분들한테도 분섭이를 정식으로 소개하고 싶은데요. 괜찮을까요?"

"아직 종교 행사 시작하려면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그렇게 하 게."

?감사합니다, 목사님. 가자, 분섭아."

"예!"

오늘 목사와 함께 교회를 나온 성가대 인원은 총 다섯이었다. 그중에 곽분섭이 짝사랑하는 여인, 최다연의 모습도 보였다.

"다연 씨!"

이강진이 그녀를 불렀다.

"어머, 강진 씨. 분섭 씨도 같이 오셨네요?"

"예, 다음 달부터 저를 대신해서 분섭이가 새롭게 군종병 일을 하기로 결정되었거든요. 그래서 정식으로 소개시켜 드리려 고 왔어요."

"아하!"

팔꿈치로 곽분섭의 옆구리를 쿡 찌른 이강진.

"뭐 해, 자기소개 안 하고."

곽분섭이 경직된 자세로 외쳤다.

"추, 충성! 일병 과, 곽분섭!"

거수경례가 웬 말이란 말인가.

이강진이 얼어붙은 곽분섭을 대신해 최다연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다연 씨. 이 녀석이 말주변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거 니까 이해해 주세요."

"호호호, 괜찮아요. 오히려 씩씩해 보이셔서 좋은 걸요? 저, 이 렇게 박력 있으신 분 좋아해요."

얻어걸렸다.

최다연에게 곽분섭의 매력을 어필하는 데에 성공했다.

오늘, 되는 날이다!

곽분섭은 이 기세를 몰아 그녀에게 좀 더 말을 붙여 보기로 했다.

"어, 어디 사세요?"

"저요? 부대에서 좀 떨어져 있는 시내에 살고 있어요. 혹시 그곳 어딘지 아세요?"

"무, 물론 알죠! 제가 좋아하는 떡볶이 집이 그 시내에 있어서 휴가나 외출, 외박 나갈 때 매번 꼭 들리곤 합니다!"

"어느 곳인데요?"

"감옥 떡볶이라고 하는 곳인데…… 혹시 아세요?"

이름 한 번 특이한 곳이었다.

가게명을 듣자마자 최다연은 화들짝 놀랐다.

"어머머! 저, 거기 단골이에요! 사장님도 저 아실 걸요?"

"정말입니까?"

"네! 어떤 메뉴 좋아하세요? 저는 치즈 떡볶이요!"

"저도 치즈 떡볶이를 제일 좋아합니다! 그것만 사 먹어요."

서로 통하는 면이 많았다.

자기소개 자리가 어느 순간 소개팅 현장으로 변해 버렸다.

한편 이강진은 본의 아니게 중매쟁이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

'좋은 일 한 거 같아서 뿌듯하네.'

이렇게 좋은 선임 또 없다.

* * *

종교 행사가 끝난 뒤.

곽분섭은 이강진과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분섭아, 나, 밖에서 음료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다 먹으면 자판기 있는 쪽으로 나와라."

"예, 알겠습니다."

곽분섭 혼자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근무 교대를 마친 서공찬이 후임 근무자와 함께 병사 식당을 찾았다.

"어, 분섭아!"

"충성."

"혼자서 먹으러 온 거야?"

"아닙니다. 이강진 병장하고 같이 왔는데, 지금 밖에 있습니다."

"아, 그래? 마침 잘됐네. 저번에 하려던 이야기 마저 할까 하는데."

서공찬은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나 이번 달에 PX병 관두거든? 그래서 후임으로 너를 고를까 해서, 어때?"

"음…."

PX병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 제82화. 후임 군종병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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