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2화. 후임 군종병 (1) >
제82화. 후임 군종병 (1)
이강진의 활약 덕분에 탈영병 사건은 아무 인명 피해 없이 무사히 종결될 수 있었다.
사건이 해결되자마자 기사들이 사방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국민 영웅 이강진, 탈영병을 잡아내다!]
[해결사 이강진의 대활약!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다!]
시들시들해졌던 이강진의 유명세가 탈영병 사건으로 인해 다시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이강진은 또 한 번 육군 본부로 가게 되었다.
버스 전복 사건 이후 두 번째였다.
군 간부들은 이강진과 함께 나란히 사진을 찍으며 그의 활약을 칭찬했다.
기자들은 앞다투어 이강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다.
앞에선 웃고 있지만, 속으론 웃을 수가 없었다.
'버스 전복 사건 때하고는 다른 기분이네.'
이번 탈영병 사건은 군대 인사 관리의 허술함이 낳은 실책이다.
그러나 군대는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래서 이강진은 군대가 싫다.
칭찬을 받아도 오히려 정이 떨어지는 곳은 아마 군대가 유일 할 것이다.
육군 본부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친 이강진은 1부소대장과 함 께 레토나를 타고 다시 부대로 향했다.
새롭게 레토나 운전병을 맡게 된 이승헌은 이강진에게 부러 움을 드러냈다.
"육군 본부에 가서 상도 받으시고, 포상 휴가까지 챙기시다니."
"이강진 병장님은 제 롤 모델입니다!"
"이 런 걸로 롤 모델 삼지 마라. 하나도 안 기쁘다."
안에서는 존경받는 선임.
밖에서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영웅.
이강진은 군대 입장에서 이미지 마케팅으로 활용하기 참 좋은 인사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행보관은 이강진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부사관 지원해 볼 생각 없냐고.
이강진은 그 자리에서 학을 뗐다.
절대로 안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미 벌려 놓은 일이 산더미 인데, 그걸 다 포기하고 부사관에 지원하라고?
'그럴 바에야 죽음을 택하고 말지.'
재입대까지 한 마당에 부사관 지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지구가 멸망하는 한이 있어도 이강진은 절대로 하사 계급장 은 달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부대에 돌아온 후에 이강진은 대대장 그리고 중대장과의 개인 면담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두 사람도 행보관처럼 이번 기회에 부사관에 지원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말을 흘렸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강진은 필사적으로 이야기의 방 향을 다른 쪽으로 돌리느라 애를 먹 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생활관으로 돌아온 이강진은 그대로 매트 리스에 몸을 날렸다.
"……이러다가 나도 탈영할 거 같네."
이강진의 말을 들은 모양인지 백우호가 킥킥 웃었다.
"야, 탈영할 거면 어디에 숨어 있을 건지 미리 나한테 말하고 가라. 어차피 잡힐 거, 빨리 잡혀야 저번처럼 우리가 고생할 일 없을 거 아니냐."
이제 더 이상 수색 작전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이강진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도 이번 탈영 사건으로 인해 이강진은 얻은 게 하나 있었바로 4박 5일 포상 휴가권이었다.
하나 이강진은 이 4박 5일 포상 휴가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이강진이 예약을 걸어 둔 휴가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오랜만에 선행을 베풀기로 했다.
"서일주 병장님, 어디 계시는지 알아?"
"아까 보니까 공병 창고에 짱 박혀 계시던데."
"알았어, 땡큐."
백우호와 후임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뭔가를 챙긴 이강진.
나중에 밝혀지게 되면, 병사들은 아마 이강진의 결단에 크게 놀랄 것이다.
후르릅!
면발을 흡입하다시피 한 서일주는 마지막으로 국물까지 원샷 으로 비워 내면서 허기를 달랬다.
"꺼억! 어우, 맛있다. 역시 라면은 추울 때 먹어야지."
일과 시간에 라면을 먹었다는 사실이 행보관에게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얼차려다.
그러나 말년 병장에게 두려움 따윈 없었다.
어차피 안 들키 면 그만이 라는 생각으로 행보관의 감시 망을 요 리조리 피해 다니고 있었다.
안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공병 창고의 문이 열렸다.
화들짝 놀라는 서일주.
"아, 씨. 뭐야, 너였냐?"
뒤늦게 방문자의 정체를 확인한 서일주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라면 드셨습니까?"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었다.
"어, 점심 메뉴가 너무 쓰레기여서. 그냥 라면으로 때웠지. 근 데 여긴 무슨 일이냐?"
"서일주 병장님한테 선물 드리려고 왔습니다."
"선물? 뭔데, 라면이야? 간짬뽕?"
"그것보다 헐씬 가치 있는 선물입니다."
이강진이 그에게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열어 보시면 압니다."
돈은 아닌 거 같고. 일단 이강진이 말한 대로 한 번 열어서 직 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안에 담긴 내용물은 바로…….
"포, 포상 휴가권?"
"예, 제가 이번에 탈영병 찾아내고 육군 본부에 가서 받은 4 박 5일 포상 휴가권입 니다."
"이걸 왜 나한테……. 혹시 자랑하려고 그러는 거 냐?"
"하하하! 저, 그렇게 악독한 사람 아닙니다."
이강진은 손가락으로 서일주의 야상 주머니를 가리켰다.
"거기다 넣어 두시면 됩니다."
"설마…… 나 주려는 거냐? 진짜?"
"예."
"아니, 왜?"
서일주가 이강진을 크게 챙겨 주거나 한 건 없었다. 그런데 갑 자기 찾아와서 포상 휴가를 양도하겠다고 하니 기쁨보단 의구 심이 더 크게 들었다.
"나한테 뭐 원하는 거 있어?"
"아닙니다. 그냥 서일주 병장님, 말년 휴가가 너무 빈약해 보여서 제가 몰래 챙겨 드리는 겁니다."
후임의 마음 씀씀이에 서일주는 감동을 느꼈다.
"고맙다, 강진아. 진짜로 고마워! 내가 후임 하나는 정말 잘 뒀 어!"
먼저 다가오더니 이강진을 와락 안았다.
사실 괜히 서일주에게 포상 휴가를 준 게 아니다.
나름의 속내가 있었다.
후임들에게서 서일주에 관해 이 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요즘 서일주의 말년 꼬장이 점점 심해지는 거 같다고.
아직까지는 그래도 받아 줄 만했지만, 이게 갈수록 심화되면 후임들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그래서 이강진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생활관에 최대한 서일주 병장의 모습이 안 보이도록 만들어 야지.'
이런 이유 때문에 그에게 포상 휴가를 넘긴 것이다.
어차피 이강진은 가지고 있어 봤자 쓰지도 못할 휴가다. 그냥 썩힐 바에야 차라리 분대원들 모두를 위해서 사용하는 게 좋지 않겠나.
'어서 전역해라, 서일주 병장. 그래야 1분대에 평화가 찾아오 지!'
자신을 빨리 보내고 싶어 하는 이강진의 속도 모른 채 서일주 는 착각의 늪에 빠져 버렸다.
대대장, 중대장 다음으로 행보관과의 개인 면담을 진행하기 위해 이강진은 행정반을 찾았다.
마침 행보관에게 할 이야기가 있었다.
"병장 이강진입니다."
"들어와라."
"예."
줄입 허가를 받은 후에 행보관실 문을 열었다.
"충성."
"와서 앉아라."
"예, 알겠습니다."
탈영병 사건을 해결한 덕분에 이강진은 간부들과 한 번씩 돌 아가면서 순차적으로 개인 면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행보관은 펜대를 굴리면서 이강진에게 물었다.
"또 스타가 된 걸 축하한다."
"죽하받을 일인지 어떤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강진이 연예인 지망생이었더라면, 혹은 무명의 연예인이라 면 축하받을 일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강진은 일반인이다. 아니, 군인이다.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그에겐 폐가 될 때가 있었다.
다음 휴가를 나갈 때에는 사람들이 분명 그를 또 알아볼 것이
"지윤이한테 조언이라도 한번 구해 보는 건 어떠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방법, 이런 거 말이다."
좋은 아이디어다.
이걸 빌미로 한지윤과 만날 약속을 잡으면 될 거 같다.
생각지도 못한 소득에 이강진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뭐 특이 사항은 없지?"
"두 개 있습니다."
"두 개나?"
"예."
없을 줄 알았는데 두 개나 있다고 하니까 행보관은 내심 놀랐
"말해 봐라."
"제가 이번에 받은 포상 휴가 있지 않습니까? 그거, 서일주 병장에게 양도할까 합니다."
"네가 안 쓰고?"
"서일주 병장이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한 거 같아서 제가 따로 챙겨 주고 싶습니다."
원래는 휴가가 많아서 이강진이 못 쓰니 서일주 병장에게 짬 처리를 한거였다.
세상에서 아마 가장 값진 짬 처리가 아닐까 싶다.
이미 백우호에게 휴가를 양도한 경험도 있었기에 행보관은 그 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첫 번째는 그거고, 두 번째는 뭐냐?"
"분대장 교체식에 관한 겁니다."
"분대장 교체를 벌써 하겠다고?"
행보관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원래 유능한 병사가 분대장을 차고 있으면, 간부 입장에선 최 대한 오랫동안 그 병사가 분대장을 차길 바랄 수밖에 없다.
이게 당연하다.
"시기가 너무 빠른 거 같은데."
이강진이 그동안 너무 군 생활을 잘했다. 그 부작용이 발생하고 말았다.
"일단 이건 나중에 생각해 보도록 하자꾸나."
"예, 알겠습니다."
잠시 보류. 이것이 행보관의 결정이었다.
이강진이 하고 싶은 말은 다 끝났다.
이것으로 개인 면담이 종료될 줄 알았으나.
"기왕 이야기가 나온 거, 하나 더 하자."
"무엇입니까?"
이번에는 행보관 즉에서 소재를 던졌다.
"교체 이야기가 나와서 떠오른 건데, 군종병은 언제 교체할 거 냐? 슬슬 후임을 정해 두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지난번에도 기독교 군종병이 정해지지 않아서 한 차례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심지어 군종병 오디션까지 진행했다.
이강진은 오디션까지 갈 만큼 일을 크게 키울 생각이 없었다.
"사실 후보로 정해 둔 병사가 한 명 있긴 합니다.-' 시작 자체는 불순한 동기로 가득했지만, 보여 준 과정은 성실 했던 남자.
"분섭이한테 맡겨 볼까 합니다."
"곽분섭?"
"예, 그렇습니다."
이강진이 휴가로 자주 자리를 비울 때, 곽분섭이 빈자리를 몇 번 채워 준 적이 있었다.
일을 잘한다고 목사에게 칭찬도 받았다.
이강진이 자체적으로 설정한 기준인 '목사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를 어느새 통과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강진은 곽분섭에게 군종병을 물려줄까 하고 생각했다.
"분섭이 정도면 무난하지. 그래, 알았다. 일단 그렇게 알고 있으 마."
군종병을 넘기기로 했으니, 이제 분대장만 남았다.
'견장은 언제 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강진은 여전히 '분대장'이라는 이름의 새장에 갇힌 새 신세 였다.
행보관과의 개인 면담을 마친 뒤.
이강진은 곽분섭을 따로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강진 병장님?"
"다름이 아니고. 아까 내가 행보관님하고 개인 면담하고 왔다 는 거, 알고 있지?"
"에, 알고 있습니다."
"행보관님한테 말씀드렸다. 군종병을 너한테 물려주겠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곽분섭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이십니까?"
"어, 행보관님도 너라면 잘 해낼 거라고 하시더라. 큰 문제가 없는 이상, 웬만하면 너한테 군종병 넘어갈 거다."
이번 달까지만 이강진이 군종병을 차기로 했다. 다음 달부터 는 곽분섭 이 새로운 기독교 군종병이다.
"감사합니다, 이강진 병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성가대 아가씨 만나는 건 좋지만, 네 본분을 절 대 잊지 말고."
"예!"
곽분섭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 제82화. 후임 군종병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