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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57화 (257/347)

< 제81화. 탈영병 (3) >

제81화. 탈영병 (3)

눈을 떴을 때, 탈영병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왔더라면 얼마 나 좋을까.

하나 상황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탈영병을 붙잡기는커녕,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곤 하지만, 지금은 적용되지 않는 말이 었다.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탈영병에 관한 소식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이건 이강진뿐만 아니라 그를 ?는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었해가 저물 무렵.

1조가 두 번째 수색 작전에 투입될 준비를 마쳤다.

20분 두L 미리 투입되었던 2조가 내려오면 바통을 이어받아 바로 1조가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전에 이강진은 마을 한쪽에서 벌어진 소란에 귀를 기울였

"참말로 김 씨가 안 먹었어?"

"아니, 이 여편네가 자꾸 생사람을 잡네! 안 먹었다니까! 내가 무슨 땅거지여?"

"그럼 그 도라지들이 다 어디 갔대?"

"그걸 내가 어찌 알어!"

밖에 널어놓은 도라지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간부들이나 다른 병사들은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벌어진 트 러블에 엮이지 않으려고 했다.

엮어 봤자 득이 없으니까.

안 그래도 수색 작전 때문에 피곤한데, 굳이 피곤한 일을 만 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강진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운이 나빴다.

"거기 총각! 일로 와 봐!"

"저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른 병사들은 모른 척 고개를 훽 돌렸다.

이강진도 그러고 싶었지만, 대놓고 지목을 당한 마당에 차마 그럴 순 없었다. 그랬다가는 마을 어르신들이 더 크게 화를 낼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부르셨어요?"

마지못해 현장으로 가게 된 이강진.

사건의 전말은 대강 이러했다.

집 마당에 도라지들을 말리기 위해 널어놓았는데, 그것이 전 부사라진 것이다.

"내가 돌아다니 면서 물어봤는데, 다들 자기는 안 했다고 하더 라고!"

보통은 그렇게 답할 것이다.

"산짐승이 내려와서 먹은 건 아닐까요?"

"아니라니까! 이건 사람이 한 짓이라고. 이거 봐 봐!"

졸지에 사건 현장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넓게 펼쳐진 빨간 갑바천.

그 위에 놓여 있어야 할 도라지들이 잔뿌리들만 남긴 채 사라 져 있었다.

만약 들짐승의 소행이었다면, 갑바천이 흐트러져 있거나 아니면 바닥에 털이 떨어져 있어야 했다.

하나 그런 흔적이 일제 보이지 않았다.

"이 거 보느 사람이 한 짓 맞제?"

"그렇게 보이네요."

이강진의 시선이 담벼락으로 향했다.

그 밑에 희미하게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이강진은 곧장 간부들을 찾았다.

"중대장남 행보관님!"

이강진은 그들을 찾으면서 동시에 이렇게 외쳤다.

"탈영병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 * *

말린 도라지를 도난 맞은 이 집 담벼락 아래에 작은 화단이 있었다.

그 화단에 사람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발자국을 유심히 바라보던 간부들은 침음을 흘렸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발자국 형태.

틀림없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전투화 자국이군."

중대장의 의견을 듣자마자 간부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1075대대 병사들 중에 담벼락을 넘어 민가 안으로 몰래 잠입 한 사람은 없었다.

만약 있다면 그 병사는 군기 교육대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1075대대 병사들이 아니라면 누구의 소행일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주변을 샅샅이 수색해! 어서!"

"예, 알겠습니다!"

간부들이 병사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이미 집 주인으로부터 허락은 받았다. 대신 집안 살림살이를 거덜 낼 정도로 막 들쑤시고 다니면 큰일이다.

나중에 민원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강진과 1분대원들도 수색 작전에 동참했다.

도중에 이강진은 이상한 곳을 목격했다.

"어르신, 저건 뭡니까?"

2평 남짓한 컨테이너 건죽물이 눈에 띄었다.

워 낙 낡아서 조금만 건드려도 우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기? 우리 집 창고지. 못 쓰는 가전제품 같은 거 모아 두는 곳인데……."

"최근에 저기에 들어가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없는디?"

문에 자물쇠도 안 걸려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은 이강진.

문을 여는 순간.

"다, 다가오지 마!"

낯선 남자가 이강진에게 경고했다.

몰골이 말이 아닌 한 남자가 부엌칼을 들고서 이강진을 위협 했다.

남자의 주기표를 본 이강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선명하게 적혀 있는 남자의 이름.

'권영직……. 그 탈영병 아저씨군.'

* * *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간부들은 분명 권영직이 산속으로 숨어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곳이 찾기 어려운 장소니까.

하나 권영직은 산속에 숨었을 거라는 발상을 완전히 뒤집었 다.

사실 의도적으로 민가에 숨은 게 아니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였다.

하루 종일 산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물 말고 아무것도 먹은 게 없었다. 그래서 권영직은 1075대대 병사들의 포위망을 피해 마을로 몰래 내려왔다.

먹을 것을 찾다가 바닥에 널려 있는 말린 도라지들을 발견했 다. 한두 개만 주워 먹고 도망치려고 했던 권영직. 그러나 배고 픔이 너무 심해 어쩔 수 없이 널어놓은 도라지를 다 먹고 말았다.

민가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마을 주민이 이강진을 데 리고 온 것이다.

도망치는 타이밍을 놓치게 된 권영직은 어쩔 수 없이 창고로 보이는 곳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이런 대치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중혈된 눈으로 부엌칼을 든 채 소리치는 권영직.

인질을 잡고 있는 건 아니지만,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기에 쉽 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큰 소리가 나자 간부와 병사들이 창고 쪽으로 모여들었다.

중대장은 우선 그에게 대화를 시도해 보려고 했다.

"진정하게, 진정하고. 말로 풀어가자고. 이런다고 모든 게 해 결되는 건 아니잖나. 그렇지?"

"진정하면 뭐가 해결됩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말문이 막힌 중대장을 대신해 이번에는 병사들을 컨트롤하는 데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행보관이 직접 나섰다.

"일단 뭐가 문제인지, 왜 탈영을 했는지부터 말해 봐. 그래야 우리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겠니."

행보관치고는 상당히 나긋나긋하게 말한 거였다. 그러나 권 영직은 계속 침묵을 유지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이강진은 깨달았다.

'간부들을 믿지 않는 사람이군.'

어제 저녁부터 이강진은 권영직 탈영 사건에 관한 기억을 떠 올리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강진과 연관이 없던 사건이었기에 당시에 그냥 대수롭지 않 게 넘겨 버렸으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사람을 불신하는 이유.

탈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원인.

그것들이 이강진의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기억을 꺼냈다.

"기수 열외 당한 것 때문에 그런 겁니까?"

권영직의 표정이 변했다.

당황해하는 그의 반응을 본 순간 이강진은 확신했다.

그제야 기억의 조각이 하나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권영직은 원래 이강진과 같은 달에 입대한 병사다.

무사히 전역해서 다시 멀쩡하게 사회로 복귀하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그. 하지만 자대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무생활이 힘들 거란 말을 친한 형들한테 자주 들었지만,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심지어 몇몇 선임들은 권영직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괴롭혔다.

결국 괴롭힘에 버티다 못한 권영직은 마음의 편지를 이용해 서 선임들을 긁었다.

"괴로운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해서 말한 것뿐인데……."

권영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내가 병신 취급을 받아야 하냐고!"

선임들을 긁었다는 이유로 권영직은 동기들 사이에서 고립되 었다.

그의 후임들도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왕따. 군대로 치면 기수 열외가 시작된 것이다.

대놓고 권영직을 무시하는 후임들.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 동기들.

하나 그들보다 더 원망스러운 존재들이 있었다.

"씨발, 간부면 다야? 다냐고! 관심 병사에 올려놨으니, 우리는 할 만큼 다 했다. 유세 떠는 거나, 지금! 병사가 진짜로 필요로 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간부들이 그걸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을 리가 없다.

그나마 행보관이 병사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편이지만, 그런 행보관조차도 100퍼센트는 아니었다.

간부는 병사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병사들도 간부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없다. 서로가 같은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기수 열외를 당하기 시작한 권영직이 얼마나 힘든지 간부들 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선택한 건 결국 '방치'다.

관심 병사에 기수 열외. 그리고 간부들조차 아무도 신경을 안 쓰기 시작하다 보니 권영직은 군 생활에서 홀로 도태되기 시작 했다.

진급도 누락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맞후임보다도 계급이 낮았다.

그게 권영직의 자존감을 더욱 떨어뜨렸다.

권영직은 사회에 있을 때 오히려 남들을 이끌어가는 능동적 인사람이었다. 하지만 군대는 그에게 수동적으로 변하기를 강 요했다.

거기서 오는 괴리함. 그것에서 오는 스트레스.

이 많은 것들을 혼자서 감당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이강진이 먼저 외쳤다.

"어머님을 놔두고 먼저 떠날 생각입니까!"

예전에 봤던 기사가 떠올랐다.

탈영병 권영직에 관련된 기사였다. 그곳에 권영직의 가족사 가 짧게 언급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지 않습니까?"

"당신이 그걸 어떻게……."

그건 중요치 않다.

일단은 권영직이 나쁜 선택을 하기 전에 어떻게든 그를 막아 야 한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세요. 영직 씨마저 없으면, 어 머 니는 누가 보살핍니까?"

"설령 군 간부들과 부대 사람들이 영직 씨를 무시하고 방치했다고 해도, 영직 씨마저 어머니를 무시하고 방치해선 안 됩니다. 만약 영직 씨가 잘못된다면, 영직 씨의 어머니는 그 슬픔을 평 생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비록 사정은 다르지만, 어머니를 지키겠다는 일념은 이강진 이나 권영직이나 같았다.

가족이라는 두 글자가 권영직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팅!

그가 들고 있던 부엌칼이 아래로 떨어졌다.

"엄마……!"

권영직은 그대로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그의 모습에 아무도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 * *

이강진의 설득 덕분에 권영직은 무사히 헌병대로 인계되었다.

대대장과 중대장이 이강진을 찾았다.

"잘했다, 강진아! 아주 잘했어!"

"우리 강진이가 또 공을 세웠구나. 하하하! 역시 너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큰일을 해낸 건 맞다.

하지만 이강진은 대대장과 중대장처럼 함박웃음을 지을 수가 없었다.

아마 이들은 모를 것이다.

권영직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니, 애초에 알려고 하지도 않겠지.'

만약 권영직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군대는 어떻게든 책 임을 회피하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했을 것이다.

평소에는 국가의 노예. 문제가 생기면 남의 아들.

이강진은 그게 보기 싫어서 어떻게든 권영직을 설득했다.

권영직이 그를 무시했던 간부, 병사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완 벽한 복수는 하나뿐이다.

"영직 씨!"

헌병대로 끌려가기 전에 이강진은 권영직에게 힘껏 외쳤다.

"사회로 나가면 반드시 성공하세요! 남부럽지 않게, 보란 듯 이! 그때의 나완 다르다고 아주 대차게 성공해 버리세요! 그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입니다!"

힘없이 미소를 짓는 권영직.

이강진의 말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온전히 그의 몫이다.

< 제81화. 탈영병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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