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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55화 (255/347)

< 제81화. 탈영병 (1) >

제81화. 탈영병 (1)

난데없이 집합이 걸렸다.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사열대 앞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부소대장님이 집합 건 거야?"

"아니, 중대장님이 거신 거라고 하던데?"

"중대장님? 오늘 아프다고 쉰다고 하시지 않았나?"

"나도 그렇게 들었는데, 그게 아닌가 봐."

전해들은 게 하나도 없으니 추즉만 난무했다. 잠시 후.

중대장이 물수건으로 얼굴에 가득 흘러내린 땀을 닦아 내며 병사들 앞에 섰다.

당직인 백우호와 막 휴가에서 복귀한 이강진이 그 뒤를 따랐 다.

이강진은 곧장 1분대 대열에 합류했다.

후임들이 그를 보자마자 거수경례로 휴가 복귀를 반겼다. 그 러나 이강진은 손사래를 치면서 지금은 생략하라고 말했다.

휴가 복귀 인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전체 주목한다, 주목!"

"주목!"

머지않아 중대장의 입을 통해 심각한 일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옆 부대에서 탈영병이 발생했다. 이름은 권영직. 계급은 상 병으로, 중대 ATT 훈련을 받던 도중에 볼일을 보러 간다고 말하 고서 개인화기를 가지고 몰래 탈영했다고 한다."

병사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중대장을 바라봤다.

'아니, 상병이 탈영을 했다고?'

'대체 왜?'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상병쯤 되면 선임들 눈칫밥 먹는 일에서 슬슬 벗어나는 시기 다. 그 말인즉슨, 적어도 내무생활이 고달퍼지거나 하는 일은 거 의 없어진다는 뜻이다.

일, 이등병 들은 탈영병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건 미래의 일을 알고 있는 이강진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강진은 탈영 사건이 벌어질 거란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지.'

회귀 이후의 삶이 이강진이 아는 미래의 흐름 그대로 흘러가 는 건 아니었다.

이전에 없던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벌어졌던 일이 없던 것 취급되는 경우가 더러 발생했다.

그래서 이강진은 내심 탈영 사건이 없던 일로 바뀌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딴 건 없군.'

하늘이 참 야속하게 느껴졌다.

중대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우리 1075대대도 탈영병 수색 작전에 투입되기로 했다. 현 시간부로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 두고, 전원 단독 군장 갖추고 20 분 뒤에 사열대 앞으로 집합하도록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럼 해산!"

병사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강진도 마찬가지였다.

'휴가 복귀하자마자 이게 뭔 난리 냐!'

저번에는 속옷, 양말 도난 사건이 벌어지더니 이번에는 규모 가 더욱 커진 탈영병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강진의 군 생활은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 * *

병사들이 준비를 서두르는 동안, 간부들은 비상대책 회의에 돌입했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부대로 복귀한 행보관도 중대장처럼 정 신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탈영병이라니…… 거참."

행보관은 군 생활을 하면서 아주 가끔씩 탈영 사건을 겪었다. 자원입대도 아니고. 거의 끌려오다시피 한 젊은 청준들이 전 부 다 문제없이 군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중에는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이 더러 나온다. 그래서 관심 병사 제도가 생겼지만, 이 제도가 만능은 아니다. 행보관은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지금까지 나름 많은 탈영 사건을 봐 왔지만, 이번처럼 총기를 가지고 탈영한 경우는 처음 보는군요."

이 탈영 사건이 만약 1075대대에서 발생한 거라면…….

행보관을 포함해서 중대장 그리고 대대장까지 전부 다 군복을 벗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문제가 심각했다.

중대장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뉴스로 보도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한동안은 떠들 썩할 겁니다."

"골치 아프군요."

"더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기 전에 그 탈영병부터 잡아야 합 니다."

한 순간의 소동으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만약 탈영병이 총기로 위험한 생각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2부소대장이 침을 꼴깍 삼켰다.

"혹시 실탄도 같이 소지하고 있는 겁니까?"

"아니,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실탄은커 녕 공포탄도 없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방심은 절대로 금물이야. 병사들에게도 단단히 일러두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부소대장에 이어 통신반장이 추가 질문을 했다.

"그럼 저희가 맡을 지역은 어디입니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수색 지역이다.

"1075는 진봉산 일대를 맡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그 근처에 있을 확률은 낮을 거라고 하지만, 없진 않으니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 그곳도 수색 범위에 넣어 두는 편이 좋다.

1075대대뿐만 아니라 많은 부대들이 이번 수색 작전에 동참 하기로 했다.

이미 뉴스까지 다 나간 마당에 시간만 질질 끌어 봤자 무슨 소용이랴. 육군 이미지만 안 좋아질 뿐이다.

그래서 육군 본부는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을 최대한 동원하기 로 했다. 가능한 이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짓는 게 이들이 원하는 것이다.

"진봉산이라면……."

혼잣말을 흘리던 통신반장이 행보관 쪽을 응시했다.

"저번에 행보관님이 대민 지원 갔던 곳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군."

신형 마을.

진봉산 근처에 그곳이 있다.

* * *

두돈반 차량에 오른 이강진은 다시 한번 수색 장소를 확인했 다.

"신형 마을에 간다고?"

기운상이 차량 소리에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일부러 소리를 키웠다.

"예, 그렇습니다! 저번에 이강진 병장님이 대민 지원 갔던 곳 입니다!"

그건 이강진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단, 몰랐던 게 있었다.

'지난번에도 우리 부대가 탈영병 찾으러 신형 마을로 갔던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신형 마을은 아니었던 거 같다. '탈영 사건은 그대로 벌어졌는데, 수색 장소는 달라졌네.' 일관성이 없었다.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또다시 신형 마을로 향하는 병사들.

대민 지원을 나갔던 경험이 있는 병사들은 신형 마을의 입구 를 다시 보게 되자 감회가 새로웠다.

기쁜 일로 이곳을 찾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러 지 못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1중대원들은 황당한 장면을 보고 말았다. 신형 마을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헬멧을 쓴 채 놓기구를 들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대장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어르신들, 이건 대체……."

마을 이장이 누런 이를 드러내면서 외쳤다.

"아따, 간첩이 나타났다며!"

"주변에 간첩 녀석이 어슬렁거리고 있다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어! 그치, 이씨?"

참전 용사인 이만복도 결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이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무장 공비 놈들은 내가 다 때려눕힐쳐!"

"……어르신,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노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중대장과 행보관이 나섰다.

다시 건강해진 이만복을 볼 수 있어서 좋긴 했지만, 그렇다고 탈영병 수색 작전에 그를 데려갈 순 없었다.

"어르신, 저 기억하시죠?"

간부들이 마을 노인들을 설득하는 동안, 이강진이 이만복에게 먼저 접근했다.

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도와준 그 청년이잖어."

상당히 씩씩한 반응이었다.

이강진이 익명으로 그에게 기부금을 준 덕분에 이만복은 주 기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건강을 다시 되찾은 듯했다.

활기가 돌아온 건 좋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게 안 좋은 결과를 불러오게 되어 버렸다.

너무 기운이 넘치다 못해 무장 공비를 직접 잡으러 가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문제를 해결알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어르신, 저희는 무장 공비가 아니라 탈영병 잡으러 온 겁니다."

"……탈영병?"

"예, 근처 부대에서 어떤 병사 하나가 훈련 받다가 몰래 탈영 했다고 해서요. 무장 공비가 아닙니다."

"그, 그런감……?"

괜히 뻘쯤해졌다.

이만복은 잘못된 정보를 알려 준 마을 이장에게 버 럭 화를 냈

"내가 뭐라고 했어! 무장 공비 아닐 거라고 했잖여!"

"잉? 아니래?"

"탈영병이여, 탈영병! 에이, 시간만 낭비했네!"

갑자기 열의가 식은 모양인지 이만복은 다시 본인의 집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강진 덕분에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아직 탈영병 사건이 끝난 건 아니었다.

겨우 한숨 돌린 중대장은 병사들을 집결시켰다.

"지금부터 작전을 설명하겠다!"

* * *

점점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산속은 다른 곳에 비해 밤이 일찍 찾아온다.

어두운 산길을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걷기 시 작하는 한 병사.

"이쯤이면…… 안 들키겠지?"

사람이 다니는 길을 일부러 피해 다닌 병사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무 오래 걸었다. 행군할 때보다도 더 빡세게 걸은 듯한 기 분이었다.

옆에 개인화기를 내려놓은 뒤에 잠시 전투화 끈을 느슨하게 풀었다.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점심 이후 아무것도 먹 지 못한 병사는 수통에 담긴 물을 마시 며 억지로 허기를 달랬다.

남은 물의 양은 많지 않다.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수통을 보면서 병사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게 다…… 그놈들 때문이야."

* * *

오늘 이강진의 계획은 원래 이러했다.

휴가 나갔다가 복귀했으니, 저녁에 검필 받은 책들을 읽으면 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 행보관을 찾아가서 '슬슬 분대장 교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운이라도 띄워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탈영병 사건 하나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병사를 향해 이강진은 원망 섞인 목소 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탈영병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구나.-당시에 어디서 병사들에게 붙잡혔는지, 왜 탈영을 감행하게 되었는지. 이런 것들을 알고 있었더라면, 분명 많은 도움이 되 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강진이 아는 게 없었다.

'탈영의 목적이 뭘까?'

문득 이게 궁금해졌다.

혼자서 곰곰이 생각에 잠길 무렵.

1부소대장이 이강진을 불렀다.

"강진아, 곧 진봉산으로 올라갈 거니까 애들한테 손전등 미리 준비해 두라고 말해라. 건전지 없는 병사들은 와서 말하라고 해. 건전지 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은 분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들, 손전등에 불 들어 오지?"

"예, 그렇습니다!"

"잘 들어 옵니다."

그 와중에 서일주가 이강진을 딱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텐데. 네가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서일주 병장님이 더 고생이 많으시지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말년에 이게 워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뜬금 없이 탈영병이나 찾으라고 하다니……. 가만."

문득 어떤 생각이 서일주의 뇌리를 스쳤다.

"탈영병 잡으면, 포상 휴가 주는 거 아니냐?"

"안 그래도 대대장님께서 그런 말씀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진짜?"

"예, 중대장님한테 들은 거니까 확실할 겁니다."

갑자기 서일주의 눈에 이채가 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무조건 잡을 테다! 기다려라, 탈영병!"

위기를 기회로 삼는 건 좋은 자세다.

그러나.

'서일주 병장이 탈영병을 잡을 확률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강진이 보기엔 무의미한 희망이 될 거 같았다.

< 제81화. 탈영병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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