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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43화 (243/347)

< 제77화. 괴도 X (1) >

제77화 괴도 X (1)

원라원과 원도문.

대체 무슨 관계일까.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자마자 이강진은 바로 답을 도출해 냈다.

'원라원이 원도문의 아들이었군.'

국회의원에게 관심이 많지만, 국회의원의 자식들까지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다.

물론 관심이 없어도 절로 알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를 들어서 국회의원의 아들, 딸이 사고를 저지를 경우, 누구누구 의원의 자식이 사고를 쳤다고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나온다. 그러 면 알고 싶지 않아도 절로 알게 된다.

그런 경우가 아니고선 웬만하면 자식들의 이름까지 외우는 경 우는 없었다.

이강진이 정치 쪽에 깊은 연관이 있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게다가.

'원도문은 자식 교육이 엄하기로 소문난 양반이었으니까. 자 식 문제로 대중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 지.'

그래서 원라원의 존재를 더더욱 몰랐다.

'나도 참 바보 같군. 이런 걸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나 이강진이 신도 아니고, 어찌 원라원의 가족 관계까지 단 번에 알아낼 수 있으랴.

이제라도 알아낸 게 다행이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귀중한 인 맥을 놓칠 뻔했다.

이강진은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에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슬슬 가 볼까!'

미래의 국회의원에게 얼굴 도장이라도 찍어 둘 심산이었다.

"라원 씨!"

원라원이 이강진의 부름에 뒤를 돌아봤다.

"강진 씨, 일찍 오셨군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 니다. 제가 멋대로 일찍 나온 거 니까요. 그보다 이분은 나, 어서 소개시켜 줘라!'

이강진은 그렇게 원라원에게 압박을 넣었다.

"제 아버지입니다."

"아버 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이강진이라고 합니다."

원도문은 이강진을 보고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티비에서 많이 봤습니다. 국민 영웅과 악수 나눌 기회도 가져 보고. 오늘은 운이 좋군요, 허허!"

순간 이강진은 무의식적으로 '저야말로 영광이죠.'라고 대답 할 뻔하다가 이내 입을 닫았다.

2014년에 원도문은 아직 국회의원이 되지 못했다.

내년 중순에 있을 선거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 명단에 자신 의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보이며 당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강진은 원도문이 정계 쪽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 라는 걸 전혀 모른다는 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영광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으랴.

'잘 참았다, 나야.'

이강진은 오랜만에 스스로를 칭찬했다.

마음 같으면 좀 더 오랫동안 원도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 지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럼 난 가 보마. 복귀 잘하고. 들어가면 전화해라."

"네, 아버지."

"강진 씨도 조심해서 복귀하시길."

이후에 일정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원도문은 다시 차에 올랐 다.

그전에 이강진이 원도문에게 훗날을 기약하는 말을 흘렸다.

"나중에 청주 들리실 일 있으면 바라 식당이라는 곳에 한번 들러 주세요 잘해 드리겠습니다!"

"허허, 그러도록 하죠."

먼저 자리를 떠난 원도문.

이강진은 멀어져 가는 원도문의 차를 보면서 아쉬움을 삭였다.

반면 원라원은 그런 이강진의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제 아버지하고 초면 아니신가요? 그런 것치고는 굉장히 많 이 아쉬워하는 거 같은데……."

"좋으신 분 같아서요. 저런 분을 보면 좀 더 오래 이야기를 나 누고 싶은 그런 기분이 막 들지 않나요?"

원라원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시선으로 이강진을 보면서 대답했다.

"아니요. 전혀요."

자식에겐 한없이 엄한 원도문이다. 그러니 아들 입장에선 이 강진의 말이 당연히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부대로 복귀하기 전에 원라원은 가스 조절기 사건 때 약속했 던 밥을 사기 위해 이강진을 어느 고깃집으로 안내했다.

"이곳이 저희 7849대대에선 나름 맛집으로 소문난 곳입니다."

"그렇군요. 기대되는데요?"

설레는 척하는 이강진.

원라원에게는 미안하게도 이강진은 이미 이 가게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꽤 많이 들렀다.

이 근처에만 4년을 왔다 갔다 한 이강진인데 고기 맛이 좋기 로 소문난 가게를 모를 리가 없지 않겠나.

그래도 원라원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이강진은 일부러 모르는 척 연기를 펼쳤다.

익어 가는 고기를 보면서 이강진은 나두석을 떠올렸다.

'부대에 들어가면 두석이한테 연락이라도 해 봐야겠네.'

나두석에게 이강진은 다음 휴가를 나오기 전까지 한 달이라 는 시간을 줬다. 청주로 내려오기 전에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싶어서였다.

물론 청주에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올 거라 나두석의 가족 들에겐 큰 부담이 없을 것이다.

고기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원라원이 입을 열었다.

"강진 씨, 그 고기 안 익은 건데요."

이강진의 젓가락에 들려 있는 고기를 가리켰다. 아직 익지도 않은 생고기를 먹겠답시고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던 것이다. 딴 생각을 하고 있어서 눈치를 채지 못했다.

"아무리 요즘 축산용 돼지, 소들이 예전보다 위생적으로 관 리되었다고 해도 그렇지, 굽지도 않은 생고기를 먹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그러게요. 미안합니다, 하하하."

괜히 무안해진 이강진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원라원은 쌈을 싸면서 그런 이강진에게 물었다.

"생각할 게 많나 보군요?"

"네, 전역 후에 할 일이 많다 보니 미리 준비 좀 해 두려고요. 그것 때문에 요즘 정신이 없네요. 그러고 보니 라원 씨는 언제 전역합니까?"

"내년 1월에 전역합니다."

"저하고 비슷하네요."

왠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아직 좀 남았으니까요. 그때까지 저도 강진 씨처럼 전역 후에 어떤 일을 할지 많이 고민해 봐야겠네요."

미래에 대한 고민은 국회의원이 될 자의 아들이나 이강진이 나 같았다.

이강진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전역하기 전에 전화번호라도 남겨 주세요. 연락하고 지내게 요. 괜찮죠?"

"저야 상관은 없습니다만…… 근데 만나서 따로 할 게 있나요?"

사실 이강진의 목적은 원라원이 아닌 그의 아버지다.

어떻게든 연줄을 만들어 두고 싶었기 때문에 연락처 교환을 요구한 것이다.

이강진의 미소에 장난기가 감돌았다.

"나중에 만나서 스파링이라도 정주행 할까요?"

그 말에 원라원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사양할게요."

스파링 독서 모임회(?)는 거절당했지만, 그래도 전화번호 교 환까지 거절당한 건 아니었다.

원라원의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수첩 안에 고이 보관해 둔 이강진.

비록 작은 쪽지에 불과하지만, 흣날 이 쪽지가 이강진에게 얼 마나 큰 득을 가져다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 휴가 한 번으로 인해 이강진의 인맥 풀이 확 늘어난 기 분이었다.

아니, 단순히 기분만 그런 게 아니었다.

실제로 그러했다.

'얻은 게 많아서 그런지 마음도 든든하네.'

평소 같으면 부대로 복귀한다는 생각 때문에 짜증만 가득 들 었을 텐데. 지금은 그게 그나마 많이 완화되었다.

물론 짜증 나는 건 여전했다.

위병소로 향한 이강진은 소지품 검사를 받은 후에 대대 연병 장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오늘은 굉장히 한가했다.

'내일 아침에 바로 종교 행사 준비해야겠네.-

그러고 보니 슬슬 군종병 후임도 정해 둬야 한다. 그러나 마땅한 인재가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정말로 분섭이한테 물려주게 생겼네.'

일단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행정반으로 향하는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이강진.

'이상한데?'

평소 토요일 주말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행정반에도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이 분위기 낯설지 않다.

'설마 또 민원이라도 들어왔나?'

이번에는 별문제 없을 텐데.

오늘의 당직사관인 부소대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컴퓨터 앞에서 후임과 함께 문서 작업 업무와 씨름을 하고 있는 김철이 이강진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철아, 부대에 또 무슨 일 생겼어? 분위기가 너무 무거운데?"

하던 작업을 중단한 김철은 대답하기 전에 한숨부터 먼저 쉬 었다.

"문제라……. 바로 어제 터졌어."

"설마 또 민원 들어온 건 아니겠지?"

"아니, 그거보다는 좀 나은 거야. 그래도 문젯거리란 사실은 변함없지만."

눈치를 살피던 김철이 목소리를 낮줬다.

"우리 부대에…… 도둑이 있어."

휴가를 갔다 왔더니 별의별 일이 다 생겼다.

* * *

도둑이 있다.

이강진은 처음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세한 내막은 1생활관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강진 병장님, 저희 부대에 도둑이 있다는 거, 들었지 말입 니다?"

기운상이 먼저 다가와 말을 붙였다.

안 그래도 이강진은 김철에게 막 그 사실을 들었다.

"어, 대체 무슨 일이냐? 진짜로 도둑이라도 든 거야? 군대에 서 훔쳐 갈 게 뭐가 있다고."

기껏해야 봐야 소총 정도가 다다. 아니면 1급 기밀문서라든 지.

전자든 후자든 도난 사건이 정말로 발생했다면 이건 뉴스감 이다. 아마 조은석이 '특종이다!' 하고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하나 김철이 미리 말해줬듯이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니 었다.

"건조대에 널려 있던 양말하고 속옷 들이 싹 다 사라졌습니다."

"싹 다? 하나도 남김없이?"

"예, 그렇습니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한두 개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가끔 양심이 출타한 병사들이 보급품 없다고 몰래 훔쳐 가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있 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건조대에 널어놓은 모든 보급품들이 싸그리 다 사라 진 건 전례가 없던 일이다.

그것 때문에 부대가 뒤집어진 것이다.

"그 사건이 어제 벌어졌는데, 하필이면 행보관님이 당직 맡으 실 때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행보관님이 화가 잔뜩 나서서 외줄, 외박, 휴가 당분간 다 통제한다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난리 도 아니었습니다."

어제의 일이 떠오른 모양인지 기운상은 몸서리를 쳤다.

그 와중에 이강진은 '그때 내가 없어서 다행이네.' 하는 생각 이 절로 들었다.

기운상의 한숨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큰일입 니다. 분대장 교육대에서 받아 온 포상 휴가도 써야 하 는데, 하필이면 이럴 때에 휴가 제한이 걸려 버렸으니……."

이강진의 예상대로 기운상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분대장 교 육대에 가서 최우수 분대장의 영예를 안고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포상 휴가도 따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랴. 휴가를 쓸 수가 없는데.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곽분섭이 대화에 참가했다.

"행보관님이 언제쯤휴가 풀어주실 건지 예상이 안 됩니다. 저 도 조만간 휴가 쓰려고 했었는데……. 이강진 병장님은 이 휴가 제한이 언제 풀릴 거 같습니까?"

"언제긴 뻔하잖아."

행보관의 성격상, 답은 하나다.

"범인 잡아서 행보관님 앞에 바칠 때까지. 그거 아니면 휴가 제한 안 풀어주실 거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기운상과 곽분섭은 동시에 한숨을 내 쉬었다.

그나저나 이상했다.

'이건 회귀하기 전엔 없던 일인데.'

만약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면, 이강진이 나서서 범인을 잡았을 것이다.

범인이 누군지 기억해내기만 하면 되니까. 아주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달랐다.

'누구지?'

도대체 어떤 간 큰 녀석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인지 궁금했< 제77화. 괴도 X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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