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6화. 바라 코리아 (3) >
제76화. 바라 코리아 (3)
나두석과의 이야기를 잘 마무리 지은 후.
이강진은 추가적으로 한때 자신과 호흡을 맞췄던 사람들을 만 나기 위해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만 3일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모처럼 휴가 나왔는데 반절을 미팅으로 날려 버렸네.'
그래도 이강진이 원하는 목적은 다 달성했다.
나두석을 비롯해서 반드시 데리고 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거의 다 데리고 오는데 성공했다.
이제 황민수에게 가서 앞으로의 사업 계획을 설명하기만 하면 된다.
오랜만에 바라 식당을 들른 이강진은 오자마자 황민수를 찾 았다.
"민수 아저씨, 계세요?"
황민수 대신 다른 남자가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어? 강진아!"
오호만이 그에게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휴가 나왔다곤 들었는데, 도통 얼굴을 못 봐서 너 다시 복귀 한 줄 알았다, 야."
"그런 끔찍한 말은 하지 마. 나 아직 휴가 이틀이나 남았다고."
"이틀'밖에'겠지, 크큭!"
이것이 전역한 자의 여유다.
이강진도 훗날엔 오호만처럼 여유 부리는 입장이 되겠지만, 아직 멀었다.
"민수 아저씨는?"
"화장실 가셨어."
"민수 아저씨 얼굴 보기 힘드네."
첫 날에는 음식 재료 조달하러 가게를 비운 탓에 못 만났고, 오늘은 화장실에 가서 만나질 못하고 있었다.
"큰 거래?"
"아니, 작은 거."
"그럼 기다리 면 되겠네."
아직 손님 받을 시간이 아니었기에 식당 안은 비교적 한가했 다.
이강진은 의자 하나를 가져와 앉았다.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이강진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야만 했다.
황민수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강진이 왔구나."
"안녕하세요, 아저씨. 드디어 뵙게 되네요."
"그러게 말이다. 나 찾았다면서 그동안 어딜 돌아다녔던 거냐? 집에도 안 들어왔었다고 하던데?"
"서울에 잠시 올라가 있었어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아저씨한테 들려 드릴 이야기도 있고요. 호만이 형도 와서 같이 들 을래?"
"나도?"
갑자기 지목을 받게 된 오호만은 황민수를 쳐다봤다.
"사업 이야기 같은데....... 제가 들어도 괜찮나요?"
"상관없다. 보아 하니 강진이가 너한테도 뭔가를 시키려고 하 는 거 같으니까 와서 같이 들어 보자꾸나."
엑스트라였다가 하루아침에 조연급이 되어 버린 배우의 기분 이 이런 걸까.
오호만은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들은 2층으로 향했다.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자마자 이강진이 두꺼운 서류철들을 올 렸다.
안에 들어 있던 건 다수의 신상명세서들이었다.
"경영, 총무, 영업, 매장 관리 등등 각 파트를 책임지고 맡아 줄 사람들을 미리 골라 왔어요."
"네가 서울에서 3일 동안 돌아다녔던 게 이 사람들 때문이었 냐?"
"예, 다들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에요. 제가 보장할게요."
게다가 다 젊 었다.
경력은 볼품없지만, 나두석처럼 하나를 알려 주면 열 사람 몫 은 해낼 인재들이다. 이강진이 같이 일해 봤기 때문에 잘 안다.
"이들한테 맡기면 외적인 것들을 알아서 잘 해결해 줄 거예 요."
"흐음…… 그렇구먼."
인사 채용은 전적으로 이강진에게 맡기기로 했었다. 본인이 한 말이 있었기에 황민수는 크게 토를 달지 않았다.
대신 궁금한 게 있었다.
"분점은 문제는 어떻게 할 거냐?"
"일단 청주에 한 곳 그리고 서울에 한 곳. 이렇게 두 군데를 추 가로 오픈할 거예요. 초반부터 가게를 너무 이곳저곳에 중구난 방으로 오픈해 버리면 매장 관리도 안 될 테고, 무엇보다 음식의 맛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요.
바라 식당 1호점이 이 곳이라고 치면, 청주에 오픈할 또 다른 분점을 2호점이라고 하 고, 서울에 오픈하는 건 3호점이라고 보시면 될 거예요. 여기서 부터가 중요한 이야기인데……."
이강진의 시선이 오호만에게 고정되었다.
"호만이 형에게 3호점을 맡기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내가……?"
오호만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냥 곁다리로 회의에 참가했는데, 졸지에 서울 지역 3호점을 책임지게 되었으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이강진은 황민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민수 아저씨하고 저번에 술 마실 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 눴어. 호만이 형의 실력이 갈수록 빠르게 늘고 있다고. 이제는 호만이 형한테 주방을 맡겨도 불안하지가 않다고 민수 아저씨 가 그랬거든."
"스승님께서……."
괜히 무안한 모양인지 황민수는 헛기침을 하면서 오호만의 시 선을 애써 피했다.
그 와중에 이강진은 말을 이어 나갔다.
"호만이 형은 원래 서울 사람이기도 했고. 그래서 서울로 가 도 적응하는 데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호만이 형에게 3호 점을 맡기려고 하는 거야. 그리고 지금 당장 분점을 차리는 것 도 아니 니까. 아무리 빨라도 내년 3월에서 4월 정도는 될 테니 까 그동안 민수 아저씨한테 배울 거 있으면 최대한 다 배워 둬. 민수 아저씨도 웬만한 건 다 인수인계해 주실 거야."
"나야 좋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황민수는 고개만 짧게 끄덕였다.
"2호점은 어차피 같은 청주에 세울 거니까 민수 아저씨가 왔다 갔다 하면서 봐 주세요. 주방만 봐 주시면 돼요. 나머지는 제 가 고용한 인력들이 다 관리해 줄 테 니까요."
"오냐, 알았다."
"그리고 민수 아저씨한테 묻고 싶은 거 하나, 동의를 구할 거 하나. 이렇게 남았는데. 어떤 거부터 말씀드릴까요?"
고민하던 황민수는 후자, 즉 '동의를 구할 거'부터 골랐다.
예전부터 이강진이 황민수에게 슬쩍 흘리던 야망이 있었다.
"저는 민수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크게 판을 키 우고 싶어요. 한식이라는 분야를 넘어서 카페, 디저트, 중식, 일 식, 양식까지 전부 다!"
훗날에는 외식 사업을 평정하고 난 뒤에 부동산, IT 등 다른 사업 분야에도 진출할 생각이다.
황민수와의 동업은 이강진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출발선이 되어 줄 것이다.
차후에 어떤 종류의 아이템들이 유행을 탈지, 이강진은 이것 들을 전부 알고 있었다.
주식을 통해서 이강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의 지식이 곧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지식들을 잘만 활용하면 어마어마한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외식 사업으로 안정적이고 꾸준한 수익을 거둬들이면서 동시 에 주식과 시프 코인으로 자금을 수십 배로 부풀린다.
돈이 돈을 부르는 시스템. 이강진이 원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마침내 드러난 이강진의 야망.
황민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씨익 웃었다.
"남자로 태어난 이상, 야망은 크게 가져야지! 좋다. 끝까지 가 보자!"
"고마워요, 아저씨."
더 이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성공이라는 목표를 거머쥔다.
이것이 이강진이 회귀를 택한 가장 큰 이유다.
황민수에게 동의를 구했으니.
이제 묻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차례다.
"민수 아저씨, 이거,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인데요."
"뭔데? 말해 봐라."
'굉장히'라는 표현을 사용하니, 황민수는 바짝 긴장했다.
"바라 식당 말고 앞으로 사용해야 할 기업명을 정해야 하는 데, 생각해 두신 거 있나요?"
원래 제목 짓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웹소설이나 웹툰 같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로 제목 아닌가. 제목으로 사람들의 시 선을 휘어잡아야 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일단 상호명이 좋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황민수의 고민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았다.
"있지."
"뭔가요?"
손으로 가게 간판을 가리키는 황민수.
"바라 코리아, 어떠냐?"
그러고 보니 이강진은 예전부터 쭉 궁금했었다.
"안 그래도 묻고 싶었던 건데. 식당 이름이 왜 '바라 식당'이에 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저씨한테 들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서요."
"아, 내가 말 안 했던가?"
회귀 이전에도 들은 바가 없었다.
마침내 공개되는 바라 식당의 숨은 뜻.
"'무엇, 무엇을 바라다.'라고 할 때 쓰는 '바라다.'라는 단어에 서 따온 거야. 그래서 바라 식당이지."
"그랬었군요."
커다란 의미가 숨어 있던 건 아니었다.
어찌 보면 소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뜻을 알고 나니까 '바라'라는 단어가 더 마음에 드네요."
이강진의 마음엔 쏙 들었다.
다음 달에 이강진이 휴가를 나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준비에 착수하기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2호점, 3호점을 어디다 세울지 다 봐 뒀으니, 이제 오픈준비만 서두르면 된다.
바라 코리아.
앞으로 이강진의 든든한 자금줄이 되어 줄 곳이다.
'주식 다음엔 사업이라……. 옛날 느낌 나네.'
그립기도 하고, 한편으론 걱정되기도 한다.
실패는 한 번으로 족하다. 두 번은 필요 없다. 이런 마음가짐 으로 철저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전신 거울 앞에 선 이강진은 자신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식도, 사업도 다 좋은데. 이놈의 군복은 언제쯤 벗으려나."
오늘이 바로 휴가 복귀일이다.
군복을 입자마자 행복이가 짖어 대기 시작했다. 계속 짖게 나 뒀다간 이웃집에 폐가 될 수 있기에 이강진은 일찌감치 집을 나 설 수밖에 없었다.
쫓겨나다시피 하면서 집을 나선 이강진은 큰길가로 나갔다.
그곳에 오호만이 서 있었다.
"강진아, 여기다."
버스 터미 널까지 오호만이 차로 바래다주기로 했다.
이강진은 오호만의 차에 올라타면서 말했다.
"형, 이거 중고야?"
"어, 왜?"
"돈도 많이 벌었다며. 기왕이면 새 걸로 하나 장만하지."
"괜찮아, 괜찮아. 첫 차다 보니까 새 차를 사기가 망설여져서 일부러 중고로 산 거야. 긁어도 부담 없고 좋잖아. 안 그래?"
"형이 그렇다면야 뭐……."
개인 취향이다. 이런 것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건 꼰대 소리 듣 기 딱 좋다.
오호만 덕분에 편하게 버스 터미널까지 오게 된 이강진.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긴 뒤,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서 전철로 환승하고 나면 부대 근처에 있는 시내까지 단번에 갈 수 있다.
원래는 복귀 시간에 얼추 맞춰서 이곳에 도착하곤 했지만, 오 늘은 약속이 있어서 일찍 와야만 했다.
"오후 1시 30분……. 아직 여유 있네."
30일 오후 2시에 원라원과 서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이강진이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2시까지 15분 정도 남았다.
'지윤 씨한테 전화라도 한 통화하고 올까?'
마침 근처에 공중 전화박스가 있었다.
안으로 막 들어갔을 때였다.
검은 세단 차량 한 대가 서점 앞에 멈춰 섰다.
군복을 입은 남자와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나란히 차에서 내렸다.
'라원 씨네. 옆에 있는 분은 라원 씨 아버지인가? 근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한 남자.
중후한 멋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자꾸 낮이 익다.
'가만, 혹시 저분
이제야 기억이 났다.
'원도문 의원이잖아!'
현재 제1야당 소속으로, 훗날 당 대표까지 올라서게 될 국회 의원, 원도문.
설마 이런 누추한 곳에서 귀한 분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 제76화. 바라 코리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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