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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37화 (237/347)

제75화. 라이 벌과의 만남 (2)

7849대대 2중대 2분대 소속, 원라원 병장.

그는 어리바리한 후임들 때문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샘솟은 상 태였다.

"치장 물자 안 나르고 뭐 하냐! 너희들에 무슨 거북이냐? 어 느 세월에 다 나를 거야!"

"죄송합니다!"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원라원의 불호령에 후임병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의 입에서 진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 전역하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네, 진짜."

벌써부터 미래의 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훈련 시작된 지 아직 3시간도 안 지났는데 훈련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기분이었다.

"너희들은 훈련 끝나고 보자."

후임병들은 꿀꺽 침을 삼켰다.

이런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웃고 있는 사람이 있었 다.

원라원의 맞선임, 홍수훈 병장이었다.

"라원아, 애들, 대대 ATT 이번에 처음 뛰어 보는 거잖아. 모를 수도 있지, 뭐."

"홍수훈 병장님, 너무 오냐오냐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애 들이 지금 정신머리가 빠져 있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대대 ATT 훈련 잘 받는다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공무원 시험 보는데 가산점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간부들한테 욕 안 먹을 정도만 하면 돼."

설렁설렁 하자. 이것이 홍수훈의 의견이었다.

하나 원라원은 달랐다.

"전 어떤 일이든 한 번 맡은 이상, 무조건 완벽하게 해내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완벽이라, 좋지. 근데 너도 실패한 적 많이 있잖아."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말씀해 주시면, 나중에 고치도록 하겠 습니다."

"휴가 나갔을 때, 스파링 사 오라고 할 때마다 다른 부대 아저씨한테 항상 빼앗겼던 거, 기억 안 나? 그것도 실패 아니야?"

스파링 대전에서의 패배.

승부욕과 경쟁심으로 똘똘 뭉친 원라원에겐 자존심이 상당히 상할 만한 사건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같은 상대에게 여러 번 패배했던 일은 여태 껏 원라원의 인생에서 없었다.

상대에게 한 번 졌어도 나중에 악착같이 노력해서 다시 도전 한 다음에 승리를 쟁취해 왔었다.

두 번의 패배는 없다. 이것이 원라원의 신념이다.

그런 원라원이 유일하게 이기지 못했던 존재.

그가 바로 이강진이었다.

"아직 진 거 아닙니다."

원라원은 단언했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무조건 제가 이길 겁니다."

"그러다가 너 전역하면? 내년 1월에 전역하잖아?"

"전역했어도 그 사람 만나서 이길 때까지 계속 그 서점을 찾아갈 겁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집착이 너무 심해서 무서울 정도였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스파링 아저씨?"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홍수훈과 원라원의 관심을 끌었다.

홍수훈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오늘 우리 대신 근무 서 줄 아저씨인가 보네."

그러나 원라원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설마..

원라원에게 여러 차례 패배의 순간을 안겼던 남자.

이강진이 서 있었다.

자세히 원라원의 얼굴을 확인한 이강진은 자신의 추측이 맞 았음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이쪽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반가워요."

"아…… 예."

원라원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강진의 말을 받았다.

옆에서 홍수훈이 원라원을 보면서 물었다.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너무나 잘 알아서 문제였다.

"이 아저씨가……."

중간에 한숨을 푹 내쉰 원라원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아까 홍수훈 병장님이 말했던 그 아저씨입니다."

"혹시 그 스파링?"

"예."

하필이면 이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운명의 장난이 너무 짓궂다.

설마 이곳에서 그 스파링 아저씨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강진은 일부러 이걸 노리고 7849대대 파견을 스스로 지원 했던 게 아니다.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원라원과 만나서 무슨 이 야기를 하겠나. 고작해야 스파링을 두고 경쟁을 펼쳤던 이야기 밖에 할 게 없다.

이강진이 먼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반갑네요. 한동안 안 보여서 전역한 줄 알았습니다."

"전역하려면 좀 멀었습니다. 그보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설마 우리 부대에 있는 스파링마저 훔쳐 가려고 온 건 아니 겠죠?"

그 말을 듣자 이강진은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그럴 리 가요. 파견 나왔습니다."

아직도 스파링 대전 때 당했던 패배의 설욕이 가슴 한쪽에 남 아 있는 원라원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티를 내진 않으려고 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 해서 진 거지, 이강진이 원라원에게 뭔가 나쁜 짓을 한 건 아니 었으니 말이다.

좀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들은 아직 훈련 중 이다. 저 멀리서 소대장이 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만남의 기회를 강제로 끊어버 렸다.

"그만 가 보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이강진은 이들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원라원의 걸음은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이강진에게 하고 싶은…… 아니, 묻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휴가는 언제 나가십니까?"

"글쎄요. 이번 달 말 정도에 나갈 거 같은데요."

"그럼 30일에 복귀하는 쪽으로 날짜 잡으세요. 30일 오후 2시! 그때 다시 한번 승부를 가려 봅시다!"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제안이었다.

굳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왜일까.

'은근히 끌리네.'

다시 한번 원라원과 스파링을 두고 승부를 펼치고 싶었다.

그동안 이강진이 전승을 거뒀으니, 원라원에게 한 번 정도는 기회를 줄 수 있지 않겠나.

승자의 여유라는 게 이강진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그때 맞출 수 있도록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휴가 조율하다가 복귀날, 그때로 못 맞출 수도 있으 니까 2시 15분까지 저 안 보이면 못 나온 거라고 생각해 주세요."

원라원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의가 느껴지는 그의 표정에 이강진은 간신히 웃음을 참았'별거 아닌데도 참……."

원라원.

특이한 사람이다.

* * *

막사로 들어온 이강진은 같이 파견 온 병사들처럼 생활관에 짐을 내려놓았다.

이강진이 머물 곳은 1생활관이었다.

김철의 바로 옆자리를 차지한 이강진은 생활관 주변을 빠르 게 둘러봤다.

'아따, 좋네.'

1075대대보다 신식이었다.

인테리어도 새롭게 한 모양인지 딱 보자마자 -깔끔하다, 깨끗 하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적어도 1075대대처럼 막사에서 쥐가 나오거나 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화장실에 들른 이강진은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온수도 잘 나오네.'

틀면 바로 나온다. 1075대대의 경우에는 보일러병이 온수를 틀어 주지 않는 이상 마음껏 온수 샤워도 못 하는데, 이곳은 달 랐다.

'종네. 차라리 1075대대 말고 이곳에 올 걸 그랬나.'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이강진에겐 역시 1075대대밖에 없었 다. 최근 민원 사건을 통해서 그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을 무렵.

김철도 화장실에 볼일이 있는 모양인지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 왔다.

"강진아, 아까 너하고 이야기 나눴던 그 아저씨, 아는 사이야?"

"원라원 씨?"

"어, 친해 보이길래. 혹시 신교대 동기인가? 그러면 나도 알 텐 데."

"동기는 아니야."

"그럼?"

김철이 봤을 때, 친구 관계도 아닌 것 같았다. 친구끼리 서로 존댓말은 안 할 테니까.

바지를 올린 이강진은 원라원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떠올 렸다.

"복귀날에 스파링 사 오라고 부대에서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 거든. 근데 서점에 갔는데 딱 한 권 남았더라. 그 마지막 권 집 으려고 했는데, 라원 씨도 나하고 같은 입장이 었는지 막 달려오 더라고. 그때 처음 만났어."

정말로 인상적인 첫 만남이었다.

이러니 잊으려야 잊을 수가 있으랴.

이야기를 듣던 김철은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그 아저씨, 너한테 막 복수심 불태우고 있는 거 아니 야? 혹시 그날의 설욕을 갚겠다고 다음에 휴가 맞춰서 만나자 고 한 건 아니겠지?"

"잘 아네."

"……엥? 진짜?"

그냥 웃자고 한 말이었는데. 정말로 그런 약속을 잡을 줄은 몰 랐다.

"아니……. 대체 왜?"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재미있어 보이니까."

이것도 전역 전에 하는 일종의 추억 쌓기일지도 모른다.

7849대대원들이 이동 준비를 서둘렀다.

이들을 태운 차량들이 위병소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텅 빈 7849대대.

이강진은 김철과 함께 앞으로 3박 4일 동안 2교대로 돌아가 면서 당직을 설 예정이다.

새벽 6시 그리고 오후 6시. 이렇게 12시간씩 번갈아 근무를 서기로 했다.

주간조, 야간조. 누가 어느 조를 맡느냐 결정할 차례다.

가장 선호되는 파트는 역시 주간 파트다. 낮에 일하고, 밤에 자고. 이게 가장 이상적이다.

이강진은 주간 파트를 노리고 있었다.

'철이도 그러겠지.'

둘이 같은 것을 노리고 있다면, 결정하기가 애매해진다.

이럴 때에는 공평하게 게임을 하면 된다.

마침 이강진의 주머 니 속에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들어 있었다.

"동전 던지기로 정할까?"

그러나 김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가 그냥 야간조 맡을게."

"나야 좋긴 한데…… 왜?"

너무 쉽게 주간 파트를 양보하니 맥이 빠질 정도였다.

김철이 스스로 야간조를 택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주간조 당직사관이 행보관님이잖아."

행보관과 같이 당직을 서느니, 차라리 야간 파트를 고르겠다. 이것이 김철의 의도였다.

이강진은 행보관이든 부소대장이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행보 관은 이강진이 주식 정보를 많이 가져다 준 덕분에 그에게 굉장 히 호의적이다. 부소대장도 이강진이 1분대를 문제없이 잘 이끌 어 주고 있어서 그를 높게 평가했다. 그래서 둘 중 누구와 같이 근무를 서도 괜찮은 입장이었다.

하지만 김철은 아니었다.

"며칠 전에 내가 병기계 업무 쪽에서 펑크를 낸 게 하나 있거 든. 그것 때문에 행보관님하고 얼굴 마주하기 좀 껄끄러워."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알았어. 내가 주간 파트 맡을게."

"미안해, 강진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이강진은 주간 파트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니 서로 윈 원인 셈이다.

결정된 이상 바로 근무 투입에 나서야 한다.

반대로 김철은 야간 근무에 대비해서 미리 잠을 청해 둬야 한

"그럼 푹 쉬고 있어."

"오냐. 고생해라, 강진아."

단독 군장과 방탄모를 챙긴 이강진은 행보관이 기다리고 있을 행정반으로 향했다.

행보관은 행정반으로 들어오는 이강진을 보고 물었다

"네가 주간조 맡기로 했냐?"

"병장 이강진. 예, 그렇습니다."

"흠, 그래. 일단 총기 현황판부터 확인해 봐라. 근무 교대자들 슬슬 새로 투입시켜야 하니까."

행보관으로부터 명령을 받자마자 이강진은 빠르게 총기 현황판을 확인했다.

그뿐만 아니라 불침번 근무자들이 해야 하는 근무자 깨우기, 온도 체크 업무 등도 전부 당직사병이 해야 한다.

'앞으로 3박 4일 동안 피곤하겠군.'

그래도 파견이 끝나고 나면, 행보관이 수고했다고 병사들에게 포상 휴가 하나씩 챙겨 줄 것이다.

그것을 위안으로 삼기로 했다.

< 제75화. 라이벌과의 만남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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