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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36화 (236/347)

< 제75화. 라이벌과의 만남 (1) >

제75화. 라이 벌과의 만남 (1)

1075대대에도 낙엽 지는 가을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는 게 있었다.

바로 이강진의 윗선임들이다.

오늘은 3분대의 고지운 병장이 전역하는 날이다.

"부대~ 차렷! 고지운 병장님께 경례!"

"충! 성!"

후임들이 그에게 하는 마지막 경례가 끝났다. 고지운 병장은 여태껏 이강진이 보아 온 그 어떠한 전역자들보다도 눈물이 많 았다.

사열대에 서자마자 펑펑 울기 시작했다.

고지운은 자대로 전입을 왔을 때부터 폐급이라 불리 던 남자 였다. 이등병, 일병 때에는 선임들에게 갈굼이란 갈굼은 죄다 독 식했다.

그러나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상병이 꺾일 때쯤부터 고지운은 더 이상 폐급이라 불리지 않 았다. 자기가 맡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은 후임들에게 존경받는 선임이 되었다.

군대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고지운이라 그런지 유독 감격 에 차오른 모습을 보였다.

"내가 꼭 연락할게, 애들아! 그동안 못난 선임 때문에 정말 고생 많았다!"

"못난 선임은 무슨. 잘했어, 지운이 형.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나중에 먹을 거 들고 면회나 와. 형."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후임들도 그의 전역을 따스하게 반겨 줬다.

이강진과 고지운은 그렇게까지 크게 접점이 없었다. 그래서 별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그래도 착한 선임이었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10명 남았나.'

고지운이 전역함으로 인해 남은 선임들의 숫자가 딱 10명째 가 되었다.

이제 한 명만 더 보내면 두 자리가 깨진다.

그중에 한 명이 바로 서일주다.

서일주는 멀어져 가는 고지운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폐급이라 불리던 고지운도 전역을 하긴 하는구나."

"서일주 병장님도 이제 얼마 안 남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내 위에 이제 네 명밖에 안 남았으니까."

이렇게 보면 시간이 참 빠르다.

정신없이 삽질하고, 곡괭이질하고, 종질하고 그리고 걷고, 걷 고, 또 걷고.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차례가 불쑥 다가 오게 된다.

이것이 군대 매직이다.

"이놈의 지긋지긋한 군대, 빨리 나가든가 해야지. 강진아, 너 도 이곳에서 어서 탈출해라."

"서일주 병장님이 먼저 탈출하셔야 제 차례가 오는 거 아니겠 습니까."

"그렇긴 하지."

배웅도 끝났으니, 병사들은 오전 집합을 위해 사열대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작업 인력을 분배하기 시작하는 행보관.

"아, 잊을 뻔했군. 집합 끝나고 분대장들은 행보관실로 잠시 집합하도록 해라. 분대장 없으면 죄고 선임이 오도록."

"예, 알겠습니다."

오전에 분대장 소집은 드문 일이다.

혹시 또 무슨 일이 있나 싶은 불안감이 들었다.

* * *

분대장 수첩을 들고 행보관실으로 향한 이강진. 그는 김철과 같이 오른쪽 편에 섰다.

"어흠!"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행보관이 달력을 가리켰다.

"다음 주에 분대장 교육대가 있다고 한다. 혹시 차기 분대장 중에서 아직 분대장 교육대 수료 안 한 병사 있나?"

"1 분대, 아직입니다."

"행정분과도 아직 교육 못 받았습니다."

1분대와 행정분과 그리고 추가로 수송분과까지. 총 3개의 분 과가 손을 들었다.

"1 분대는 차기 분대장이 누구지?"

"기운상 상병입니다."

"운상이라고?"

순간 행보관의 어깨가 흠칫했다.

소장의 아드님에게 초록색 견장을 달게 해도 괜찮을까. 왠지 분대장 소집 때마다 역으로 행보관과 중대장이 기운상의 눈치 를 봐야 할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엄습했다.

그렇다고 분대장 자격을 박탈시킬 순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쉰 행보관은 결국 기운상의 이름을 명단에 적었다.

"그래……. 소장님의 아들이니까 잘하겠지.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운 게 많이 있을 테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강진은 속으로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간부들의 카운터가 바로 기운상이다. 만약 간부 혹은 다른 분 과 분대장이 짬을 앞세워 1분대에게 뭔가 말도 안 되는 불이익을 주려고 한다면, 기운상이 나서서 커버를 치면 된다.

투 스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있는 기운상이라면 외압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 때문에 이강진은 일부러 기운 상을 차기 분대장으로 내세웠다.

전역한 뒤의 일까지 생각한 것이다.

"그래. 그럼 운상이 분대장 교육대로 보내고. 행정분과하고 수송분과까지 합하면 3명이군. 다음 주 월요일에 출발할 거니까 차기 분대장들한테 미리 알려 줘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파견 건이 하나 더 있다."

분대장 교육대 말고 다른 안건이 또 있었다.

"7849대대에서 이번에 대대 ATT 훈련을 받는다고 하더구나. 우리 부대가 거기 가서 근무 지원을 해 주기로 했다."

7849대대. 병사들도 잘 아는 곳이었다.

1075대대가 훈련이 있을 때마다 7849대대에서 병력을 지원 해줬다. 훈련을 받는 동안, 7849대대에서 파견을 나온 병사들 이 1075대대를 대신해서 위병소, 탄약고 등 외곽 근무지를 지켜 준다.

이번에는 역으로 1075대대가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파견 나갈 인력들을 선별해야 하는데……."

이것도 마냥 쉬운 일이 아니다. 대대 ATT가 끝날 때까지 주야 장천 근무만 서야 한다.

하루에 1시간 근무 서는 것도 굉장히 귀찮고 힘든데, 그것을 3교대로 계속 돌린다고 생각을 해 보라. 얼마나 끔찍할까.

분대장들은 행보관과 눈이 마주치는 걸 필사적으로 회피했다.

괜히 아이 콘택트를 했다가 7849대대로 끌려갈지도 모르기 때 문이었다.

이럴 때에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하나 남들이 피할 때,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가 1중대에는 꼭 있었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그 남자.

이강진이다.

"병장 이강진, 제가 지원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휴가도 못 나가는 마당에 파견이나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행보관은 잘됐다는 반응이었다.

"안 그래도 당직 근무 설 사람이 필요했는데, 네가 가 준다면야 고맙지. 알았다, 그럼 파견 명단에 네 이름 올려 두마."

"예. 감사합니다!"

대체 왜 감사하다고 말하는 걸까?

병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딱 한 명, 이강진처럼 먼저 자발적으로 나서는 이가 있었다.

"병장 김철! 저도 지원하겠습니다."

김철까지 지원하면, 당직 근무 2교대가 완성된다.

행보관은 곧바로 김철의 이름을 파견자 명단에 올렸다.

한편 병사들은 저 두 사람이 왜 스스로 힘든 길을 자처하려는지 당장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이유가 있을 터.

모두가 No라고 할 때, 혼자서 Yes라고 답했던 이강진의 지난 행보를 떠올렸다.

그 결과가 뭐였는지, 이제야 기억이 났다.

'포상 휴가!'

'그랬지, 그랬어!'

'이강진 병장님은 저런 식으로 포상 휴가들을 싹 쓸었지!'

그제야 병사들이 뒤늦게 손을 들었다.

"병장 최창길 꼭 가고 싶습니다!"

"상병 오영철! 행보관님, 제가 가겠습니다!"

"상병 하병진 파견 가는 게 제 소원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한편 갑자기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해 버린 병사들을 바라보 면서 이강진은 생각했다.

'이제 다들 눈치가 빨라졌네.' 앞으로 이런 기회 있으면 혼자서 조용히 이야기해야 할 듯싶 다.

* * *

파견 전까지 이강진은 투자 관련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 다.

주식뿐만 아니라 부동산에 관한 공부도 손을 뻗었다.

'알짜배기 땅들이 몇 군데 있긴 하지.'

마음 같으면 지금 당장 사들이고 싶지만, 금전적인 제약뿐만 아니라 군인이라는 것 때문에 시간적 제한도 있다 보니 부동산까지 쏟아부을 여력이 없었다.

'전역 전까지 주식으로 돈이나 최대한 많이 모아 둬야겠어.'

돈이 돈을 부르는 법.

이강진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미래의 지식으로 차즘차즘 돈을 쌓아 둘 생각이었다.

그리고 시프 코인으로 제대로 한 탕 하면 된다.

실패했던 사업에도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생각이다.

'모처럼 회귀했으니, 사장님 소리 들으면서 살아가는 것도 나 쁘지 않지.'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 갔다.

바쁘게 생각을 정리하던 찰나였다.

"이강진 병장님."

기운상이 그에게 다가왔다.

"저, 다음 주에 분대장 교육대 가지 않습니까?"

"어, 그렇지."

"혹시 팁 같은 거 없습니까? 저번에 이강진 병장님, 분대장 교 육대 가셔서 최우수 분대장으로 포상 휴가 따오신 거 보고 저도 한 번 도전해 볼까 합니다."

기왕 파견 나간 김에 포상까지 따오면 좋지 않은가.

소장의 아들이라고 해도 군인인 이상, 포상 휴가에 눈이 뒤집 어지는 건 당연했다.

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강진만 사용할 수 있는 팁이라는 게 문제다.

'탄약반장 덕분에 포상 휴가 타낸 거니까.'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인맥의 힘을 당해 낼 순 없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아니지. 생각해 보면 나보다 운상이가 인맥이 더 짱짱한 거 아닌가?'

투 스타라면 아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강진은 기운상을 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너는 네 존재 자체가 치트키 니까 팁 같은 건 필요 없을 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 보면 알 거야."

이번에도 이강진의 예언이 적중할 수 있을지.

그것은 빠른 시일 내에 밝혀질 것이다.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분대장 교육대로 파견할 인원 3명과 7849대대로 근무 지원을 나설 병사들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짐을 꾸렸다.

7849대대 ATT 훈련 기간은 총 3박 4일. 그때까지 머물 짐만 간단하게 챙기면 된다.

이강진은 자신의 군장을 두돈반 트럭에 실었다.

줄발하기 전에 비가 쏟아졌다. 그래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호 로를 친 다음에 출발을 해야 했다.

병사들과 함께 7849대대로 파견을 나가게 된 행보관이 뒤에 탄 1부소대장에게 외쳤다.

"출발해도 되냐!"

"예, 행보관님!"

"오케이. 꽉 붙잡아라!"

편도로 30분이 걸린다. 그동안 병사들은 거세게 내리는 폭우 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날씨에도 훈련을 하다니.

7849대대 대대장의 의지가 굉장했다.

비가 쏟아져서 그런 걸까.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었다.

그래도 다행히 7849대대에 도착하니 비가 귀신같이 그쳤다.

행보관이 먼저 내렸다.

"짐 가지고 막사로 가라. 1, 2생활관에서만 머물기로 했으니, 다른 곳은 일절 건드리지 말고. 알겠나."

"예, 알겠습니 다!"

남의 부대에 왔는데 분실 사고라도 터지면 곤란하다.

병사들은 행보관이 지시한 대로 1, 2생활관 이외의 공간은 눈 길도 주지 않았다.

짐을 가지고 타 부대 막사로 올라가는 병사들.

주변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7849대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 아저씨, 위장 잘했네.......어라?'

이강진의 시선이 한 병사에게 고정되었다.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은 얼굴이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외치고 말았다.

"스파링 아저씨?"

어디서 봤나 했더니.

서점에서 매번 스파링을 두고 경쟁을 벌였던 그 병사였다.

< 제75화. 라이벌과의 만남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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