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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35화 (235/347)

< 제74화. 병장 이강진 (3) >

제74화. 병장 이강진 (3)

청소 시간을 끝낸 뒤에 분과별 간담회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이강진은 달력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다음 주에 휴가 나갈 수 있다면 좋겠는데……'

갑자기 나갈 예정이어서 왠지 자리가 없을 거 같았다.

그래도 일단 시도나 해 보기로 했다.

"우호야."

"응? 나?"

"어, 잠깐 애들 데리고 분과별 간담회 진행하고 있어 보L 철이 하고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어, 그래. 알았어."

김철은 여전히 행정반에 있었다.

송한진이 겨우 맞춰 준 병장 전투복 상의를 펼쳐 보면서 그는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드디어 병장이구나!"

신병 교육대 당시에는 '내가 과연 무사히 전역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으로 가득했었는데, 버티고 버티다 보니 병장 까지 달게 되었다.

이제 전역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 다.

지난 군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려던 찰나였다.

"철아."

이강진이 그것을 멈추게 만들었다.

감상에 젖어 있던 김철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 이강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강진아. 무슨 일이야?"

"휴가 때문에."

"휴가? 또 나가게?"

"그렇게 됐다. 갑자기 나갈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좀 안 될 까?"

김철은 곧장 수첩을 꺼냈다.

"언제?"

"다음 주"

"다음 주는…… 힘들 거 같은데? 휴가 예정자들이 너무 많아."

"다다음 주는?"

"휴가자들은 많지 않은데, 당직 근무자들이 많이 나가는 주간 이라서 아마 너 빠지면 힘들 거 같아."

"다다다음 주는……. 아니, 됐다."

그때쯤이면 너무 늦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당장 휴가를 나가는 건 힘들어 보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다.

'다른 방법을 떠올려 봐야겠네.'

이강진 대신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해 줄 수 있는 인물이 필요 하다.

황민수도 알고, 자신의 어머니도 알고 있는 지인이 어디 없을 까?

'있네.'

한 남자의 이름이 뇌리를 스쳤다.

'호만이 형에게 부탁하면 되겠다.'

예비 신부까지 있으니, 연애에 대해서는 이강진보다 훨씬 더 잘 알 터.

이강진은 통신반장을 찾았다.

"통신반장님, 갑자기 집에 전화할 일이 생겼는데……. 잠깐 한 통화만 하고 와도 됩니까?"

"곧 저녁 점호 시작할 건데."

"5분이면 됩니다. 대신 제가 이번에도 괜찮은 정보 흘려 드리겠습니다."

주식에 관한 정보임을 단번에 알아차린 통신반장은 곧장 알 았다고 답했다.

이강진의 정보는 돈이 되는 정보다. 전화 한 통화만 하게 해 주면 투자금의 2~3배 되는 거액을 벌어들일 수 있는데, 이걸 왜 거절할까. 오히려 통신반장은 시간 넉넉히 줄 테니까 천천히 통 화하고 오라는 말까지 들려 줬다.

통신반장에게 허가를 받자마자 이강진은 곧장 전화박스로 향했다.

번호를 누른 뒤 얼마 안 가 오호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 여보세요.

"호만이 형, 나야."

-응? 강진이냐? 네가 이 시간에 어떻게 전화했냐? 지금 저녁 점호 시간 아니야?

"손 좀 썼지. 그보다 부탁할 게 있는데……."

이강진은 황민수에게 들었던 그간의 사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오호만에게 전달했다.

결론은 이거다.

"호만이 형이 사랑의 큐피트가 되어 줘."

수화기 너머로 오호만이 작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난 원래 큐피트 역할은 잘 못하는데……. 아무튼 알았어. 안 그 래도 스승님하고 아주머니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설마 이런 이유가 있었을 줄은 몰랐네. 일단 내가 해 볼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 볼게.

"고마워, 형."

가게를 위해서라도 일단 이 문제는 무조건 해결을 봐야 한다. 같이 일하는 사이인데, 서로 얼굴 마주치기 껄끄러우면 큰일이 지 않은가.

오호만은 취사병으로 일할 때, 이런 비슷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었다. 의견 차이 때문에 된통 싸우고 보니 나중에는 같이 일 할 때 대화도 못 나누겠고, 분위마저 어색해져 다른 취사병들한 테 폐를 끼쳤었다.

겪어 본 일이어서 그런지 오호만은 사태의 심각성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게 이강진 입장에선 천만다행이었다.

통화를 마친 후에 이강진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군대만 아니었더라면, 내가 직접 해결했을 텐데.'

아니면 차라리 저번에 나갔던 휴가를 이번에 나간다고 할 걸. 그랬더라면 민원 사건도 없었을 테고, 어머니와 황민수 사이의 일도 이강진이 직접 중재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여러모로 타이밍이 안 좋았어.'

미래의 일을 알고 있다고 해도 항상 황금 타이밍만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니다.

이강진도 인간이다. 늘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순 없다.

'좋은 소식이 와야 할 텐데.'

그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드디어 이강진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선 이강진은 옷걸이에 걸 려 있는 전투복 상의를 바라봤다.

사단 마크와 더불어 선명하게 박음질되어 있는 병장 계급장.

작대기 4개가 주는 감동이 이리도 클 줄은 몰랐다.

전투복을 입고서 연병장으로 향하는 이강진.

조은석이 이강진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강진 상병님…… 아니, 이강진 병장님!"

"호칭 조심해라. 순간 화낼 뻔했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병장 계급장 달려 있는 전투복은 착용 감이 어떻습니까?"

이강진은 씨익 웃었다.

"작대기가 4개로 불어나서 무거울 줄 알았는데, 오히 려 가볍 네."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전 언제쯤 그 전투복을 입어 볼지……."

"언젠간 입어 보겠지. 그전에 지구가 멸망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어."

멸망의 날이 온다고 해도 전역은 하는 게 좋다.

통신반장이 사열대로 나오기 전까지 이강진은 수십 번도 넘 게 전투복 상의에 붙어 있는 병장 계급장을 내려다봤다.

어제는 그의 어머니와황민수 일 때문에 걱정이 되었지만, 하 루가 지나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병장 이강진.

이 얼마나 듣기 좋은 울림이란 말인가.

'어서 지윤 씨한테 병장 진급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네.'

벌써부터 일요일이 기다려졌다.

병장으로 진급한 지 3일째가 되던 날.

그날 저녁 행정반에서 이강진을 찾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지?'

일단 가 보기로 했다.

"충성! 병장 이강진,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병장 이강진'이라는 관등성명을 외칠 때마다 이강진은 카타 르시스를 느꼈다.

금일 당직사관을 맡게 된 1부소대장이 내려져 있는 수화기를 가리켰다.

"전화 왔다. 받아 봐."

"예, 알겠습니다."

수화기를 들자 익숙한 목소리가 이강진을 반겼다.

-여보세요? 강진아, 나다.

오호만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호만이 형,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저번에 네가 나한테 부탁했던 그 건, 어떻게 되 었는지 알려 주려고 전화했지. 1부소대장님이 받으시더라? 오랜만에 통화 나누니까 좋긴 하더라.

고개를 돌려 부소대장을 힐긋 바라보는 이강진.

그러자 부소대장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통화 계속 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다시 통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떻게 됐는데? 우리 엄마가 민수 아저씨한테 뭐라고 대답 했던 거야?"

이게 가장 궁금했다.

좋아요 or 친한 관계로 지내요. 어차피 답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게 말이다…….

오호만의 목소리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안 좋은 예감이 느껴졌다.

"엄마가 싫다고 한 거야?"

그러면 굉장히 곤란한데.

앞으로 어떻게 이 난관을 해결해야 좋을지 머릿속이 복잡해 지 려고 할 때였다.

-아니, 좋다고 하셨어.

순간 이강진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뭐야? 그러면 왜 심각한 척했어."

-야, 넌 티비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던 녀석이 '연출'이라는 걸 모르면 어떻게 하냐? 긴장감을 조성하는 거지. 그래야 재미있잖 아. 안 그래?

"아니, 전혀."

역시 이강진의 예상대로 그의 어머니는 황민수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두분, 연인이시겠네?"

-그렇긴 한데…… 스승님이 워낙 연애 쪽은 잼병이셔서 그런 지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가시 더라. 오히려 아주머 니가 더 적극적 이셔.

"엄마가 그쪽으로는 의외로 화끈한 면이 있으시니까. 아무튼 잘됐네. 이제야 한 시름 놓을 수 있겠어."

크나큰 걱정거리가 해결되었다.

아들의 행복만을 바라던 어머니가 이제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이강진은 크게 안심했다.

회귀한 이상 이강진은 혼자서 행복해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머니 또한 행복을 찾게 하고 싶었다.

일단 1단계는 성공적으로 클리어한 거 같으니.

이제 2단계 시동을 걸어야 할 차례다.

'민수 아저씨의 일이 잘 풀려야지.'

그래야 어머니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강진이 군대에 있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제 이강진의 차례다.

오호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뒤에 통화를 끊었다.

'나도 열심히 살아가야겠네.'

전역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군 생활이 끝날 뿐.

본격적으로 전역 이후의 삶을 어떻게 꾸려 가면 좋을지 계획을 세워 둬야 한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마음가짐을 품게 된 건 비단 이강진만이 아니었다.

1생활관으로 들어오자마자 이강진의 귀를 때리는 강렬한 플 로우.

"랩은 내 삶의 모두, 난 이 업계의 은둔고수, 내가 가진 것을 보여 줄게 전부!"

"멋지십니다, 백우호 병장님!"

"푸쳐 핸섭!"

"예아!"

갑자기 생활관에서 백우호의 미니 콘서트가 열렸다.

덩달아 이강진도 손을 들고 백우호의 랩에 호응을 해 줘야만 했다.

랩이 끝남과 동시에 성태강이 박수를 쳤다.

"실 력이 굉장하십니다.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백우호 병장님, 저희 KGE에서 랩 담당하는 멤버들보다도 더 잘하시는 거 같 습니다."

"에이, 그건 너무 오버다. 그 정도까진 아니라는 거, 나도 알 아."

백우호는 아마추어다. 그런데 어찌 프로와 비교할 수 있겠나.

게다가 KGE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널리 이름이 알 려진 보이 그룹이다. 만약 여기서 백우호가 '내가 랩 더 잘한 다!'라고 인정해 버리면, KGE 팬들이 죽창을 들고 백우호를 ? 아올 것이다.

백우호는 오래 살고 싶었다.

이들의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이강진이 그제야 입을 열 었다.

"뜬금없이 웬 랩이나?"

"뜬금없진 않지, 강진아. 나 래퍼야. 너도 알잖아?"

"알지. 내 말은 안하던 짓을 왜 갑자기 하느냐, 이거야."

군대에서 한동안 랩을 안 했던 백우호가 갑자기 이러니 의아 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백우호는 이강진이 뭘 묻고 싶어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 병장 됐잖아. 곧 전역할 텐데, 그전에 대비를 해 두고 싶어서. 아까 보니까 철이도 내년 3월에 웹툰 공모전 있다고 그거 입선하는 걸 목표로 작품 열심히 구상하고 있더라."

이강진뿐만 아니라 동기들도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나둘씩 갖 춰 나가려고 했다.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전역일이 다가올수록 뭔가를 해 둬야 한다는 압박감 또한 같이 다가온다.

이강진도 어머니와 황민수의 일을 통해서 그걸 뼈저리게 체 감했다.

고개를 두세 차례 끄덕인 이강진은 자신의 관물대 쪽으로 다 가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투자에 관한 길라잡이 100선'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딸려 나왔다.

"나도 공부나 해야겠다."

병장으로 진급했다고 마냥 기뻐만 할 순 없다.

이럴 때일수록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로 전역일을 준비 해야 한다.

< 제74화. 병장 이강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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