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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34화 (234/347)

< 제74화. 병장 이강진 (2) >

제74화. 병장 이강진 (2)

다음 달 1일이 되기 직전.

개인정비 시간에 이강진은 오바르크병을 찾았다.

"한진아."

"일병 송한진!"

얼마 전에 전역한 오최독 병장을 대신해 새롭게 오바르크병 으로 임명된 송한진 일병. 이강진은 그에게 자신의 전투복 상의 와 병장 계급장일 내밀었다.

"오바르크 좀 쳐 줘라."

"이강진 상병님. 내일 병장 되시는 겁니까?"

"어, 진급 시험 통과했으니까. 오바르크 바로 되는 거지?"

"물론입니다. 주시면 바로 작업하겠습니다."

"여기. 잘 좀 쳐 줘. 박음질 상태 보고 괜찮다 싶으면 내가 PX 크게 쏘마."

송한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무리 오바르크병이 라 하더라도 쉬는 시간을 바치 면서까지 작업하는 건 싫다. 그렇다고 선임이 부탁해 오는 걸 거절할 수 없었기에 마지못해 하려던 찰나에 이강진이 이런 조건을 걸어 온 것이다.

갑자기 없던 의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정말입니까? 죄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 보겠습니다!"

"그래, 부탁 좀 하마."

"예!"

휴가 나갔을 때 미리 병장 계급장으로 오바르크를 쳐 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나 진급이 결정된 것도 아닌데 자신의 멋대 로 사재 오바르크를 치고 오면 간부들에게 쓴소리를 듣는다. 그 래서 이강진은 말일에 맞춰서 송한진을 찾아온 것이다.

이강진만 송한진에게 볼 일이 있던 건 아니었다.

"우리 한진이, 여기 있어?"

백우호도 송한진이 있는 생활관으로 찾아왔다.

"강진이 너, 언제 왔냐?"

"방금?"

"한진이한테 오바르크 맡기려고?"

"어."

"조금만 더 일찍을 걸 그랬네, 쳇."

간발의 차이였다.

그래도 백우호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이다음 온 진급자들은 백우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가장 마지막에 온 사람은 김철이었다.

송한진은 김철에게 미안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김철 상병님까지 오바르크 치려면 시간이 아슬아슬할 거 같습니다."

"뭐? 왜!"

"청소 시간이지 않습니까? 청소 끝나면 분과별 간담회 시간 이고, 분과별 간담회 끝나면 바로 저녁 점호 시작되다 보니 시 간이 없을 거 같습니다."

어쩌면 내일 저녁에 오바르크를 쳐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 순 없다.

동기인 이강진, 백우호는 벌써 오바르크 끝내고 자기 생활관 으로 돌아가서 후임들한테 '이거 봐라, 작대기 4개다!'라고 자랑 하고 있는데, 자신은 내일까지 상병 계급장을 달고 다녀야 한다 는 게 가당키나 한가.

어떻게든 오늘 내로 오바르크를 쳐야 한다!

"알았어. 그럼 내가 청소 시간, 최대한 미뤄 볼게. 몇 분 필요 한데? 10분? 그 정도면 돼?"

"10분이면 지금 당장 입을 상의 한 벌 정도는 작업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원래는 그보다 더 빠른 시간에 작업을 끝낼 수 있다. 하나 병 장 계급장을 어찌 대충 작업한단 말인가.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선 최소 10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김철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그 한 벌만 먼저 작업해 줘. 어차피 지금 당장 야 상 입을 일은 없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 * *

오늘 당직사관은 통신반장이다. 김철은 통신반장에게 말을 계 속 붙이면서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보기로 했다.

"통신반장님!"

"어, 철아. 왜?"

행정반에서 한창 스마트폰 게임에 집중하고 있던 통신반장이 그의 부름에 반응했다.

"엊그제 문서 작업 맡기신 거 있지 않습니까?"

"뭐였더라?"

"P96K 불량품 현황 보고 자료 말입니다."

"아, 그랬었지. 그게 왜?"

"그거에 관해서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잠깐 와 주시겠습 니까?"

통신반장은 마지못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김철이 앉아 있는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당장 다음 주가 마감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김철에게 협 조를 해야만 했다. 일을 대신 해 주는 건 김철이지만, 마감을 제 대로 못 지키면 털리는 건 통신반장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저 번 주에 보고서를 늦게 올리는 바람에 행보관에게 된통 잔소리 를 들었는데, 이번에도 그럴 순 없었다.

있는 핑계, 없는 핑계를 만들어 가면서 시간을 벌기 시작하는 김철.

그의 노력 덕분일까.

병사들은 쉬는 와중에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던 기운상이 성태강에게 물었다.

"태강아, 아직 청소하라는 방송 안 나왔지?"

"예, 그렇습니다."

"왜 안 나오지? 슬슬 청소하라고 방송 나올 때 된 거 같은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섭아, 넌 알아?"

곽분섭이 '일병 곽분섭!'이라고 관등성명을 외친 뒤에 본인의 추즉을 들려줬다.

"아까 행정반에 잠깐 들렀다 왔는데, 통신반장님하고 김철 상 병님이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 때문에 청소 시간이 늦어지는 거 같습니다."

그때 이강진이 곽분섭의 말을 잘랐다.

"철이가 일부러 시간 버는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강진은 김철의 의도가 뭔지 진작 알고 있었다.

"오늘 오바르크 받고 싶어 하는 놈들이 엄청 많았거든. 철이 가 마지막이었으니까 시간이 아슬아슬할 걸? 그래서 어떻게든 오늘 오바르크 받으려고 저렇게 열심히 시간을 벌고 있겠지."

"그런 속사정이……."

그래도 김철 덕분에 개인 정비 시간이 늘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강진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전화나 한 통 하고 올게. 도중에 청소하라는 방송 나오면, 운 상이 네가 애들 데리고 청소 구역으로 가라."

"상병 기운상, 예, 알겠습니다."

기운상은 이강진보다 먼저 진급에 성공했다. 이제 그는 어엿 한 상병이다.

영원히 이등병일 것만 같았던 기운상이 어느새 상병이라니. 이강진은 시간이 흘렀음을 체감했다.

청소 시간이 늦어지는 김에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 어 보기로 한 이강진.

-여보세요. 강진이니?

"네, 저예요. 엄마."

자주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요즘 군대 내에서 인맥 관리한답시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연락을 돌리다 보니 정작 어머 니에게 는 연락을 잘 못 했었다.

"죄송해요. 자주 전화드렸어야 했는데."

-아니다. 네가 어디 도망간 것도 아니고. 군대에서 전화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렇게 한 번씩 전화해서 아들 목소리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안심되니까 그런 말 하지 마렴.

"고마워요. 요즘은 별일 없죠?"

-별일은…….

말끝을 흐리는 그의 어머니.

낌새가 이상했다.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어요?"

-응? 아, 아니. 그런 건 없어.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당혹감.

틀림없다.

'거짓말이네.'

어머니와 몇십 년을 같이 살았는데, 이런 거짓말 하나 눈치 못챌 리가 없다.

"엄마 무슨 일인데요? 저한테 말씀해 보세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야. 넌 몰라도 된단다. 그냥 너는 군 생 활만 열심히 하면 돼.

-엄마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아, 전화 온다. 이만 끊자꾸나.

"알았어요. 나중에 또 연락드릴게요."

-그래.

뒤끝이 영 찝찝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그에게 말을 해 줄 생각이 없었다.

'예전부터 그랬었지.'

문제가 생기면 이강진에게 상담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는 어머니.

그럴 때마다 이강진은 어머니가 너무 걱정됐다.

아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랬지만, 오히려 그 행동이 더 큰 걱정을 낳았다.

지금처럼 말이다.

원래 어머 니하고만 통화를 하고 돌아가려고 했었으나…….

'이렇게 된 이상, 한 통화 더 하고 가야겠네.'

황민수에게 전화를 걸어 보기로 했다.

이강진이 아는 사람들 중에서 어머니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바로 황민수다. 그라면 분명 어머니가 밝히지 못한 근심 거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여보세요.

"민수 아저씨, 저예요."

-강진이구나. 무슨 일이냐?

"실은 말이죠. 아까 엄마랑 통화했었거든요. 근데 목소리가 심 상치가 않았어요. 뭔가 고민거리가 있는 거 같은데, 저한테 도 통 말해 줄 생각이 없으신 거 같아요. 혹시 아저씨는 알고 계실 까 해서 전화드렸는데......."

사실대로 말을 했다.

황민수는 한동안 침묵을 이어 갔다.

-알고 있지, 알고 있는데……. 어휴,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기도 민망하구나.

"대체 무슨 일인데요?"

이쯤 되니 오기로라도 대답을 들어야겠다. 만약 이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채 청소하러 간다면, 오늘 저녁은 분명 잠을 못 잘 거다.

-사실은 말이다…….

하지만 오늘의 이강진은 운이 없었다.

-행정반에서 알려 드립니다. 지금부터 청소를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철의 시간 벌기가 끝난 모양인 듯했다.

병사들이 하나둘씩 막사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청소 시간엔 원래는 전화를 하면 안 된다.

그러나.

'병장(진)에겐 그딴 법칙은 필요 없지!'

결국 이강진은 짬으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당직사관한테만 안 들키면 된다.

한참을 망설이던 황민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미영 씨한테 술김에 좋아한다고 고백해 버렸다.

* * *

이강진은 그의 어머 니와 황민수가 서로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때는 숫기 없는 황민수의 태도에 답답함을 느 낄 때도 종종 있었다.

그 답답함이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오히려 너무 갑자기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따라잡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 어쩌다가요?"

-저번에 너 휴가 나왔을 때 나하고 같이 둘이서 술 마셨던 그 가게, 기억하지?

"네, 물론이죠."

-거기서 미영 씨하고 같이 술 마시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술맛이 괜찮더라고. 그래서 정신없이 막 먹다가 보니 어느 새 취해 있더라. 원래 취기가 올라오면 용기도 같이 올라오고 그 러지 않냐.

없던 용기도 생기게 만드는 마법의 약.

그것이 바로 술이다.

술기운을 빌려 황민수는 결국 고백까지 밀어붙이게 되었다.

"민수 아저씨, 다시 봤어요."

...뭘.

"아저씨도 할 때는 하는 남자구나 하고요."

-하…… 그러면 뭐하냐. 그것 때문에 미영 씨 얼굴을 못 보겠는 데.

원래 고백한 입장에선 다 그렇게 된다.

이쯤 되니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졌다.

"엄마는 뭐래요?"

-대답을 듣긴 들었는데…….

"들었는데?"

-그날 꽐라가 되어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더라. 필름 이 끊겨버렸어.

"……예?"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나.

"아니, 그러면 다시 물어보면 되잖아요. 맨 정신일 때."

-야, 인마. 고백도 술기운 빌려서 겨우 했는데, 미영 씨한테 가 서 '저기, 미영 씨. 어제 뭐라고 대답하셨나요?'라고 어떻게 묻겠 냐!

"그 고백은 언제 했는데요?"

-……저번 주.

"그럼 일주일째 이러고 있는 거예요?"

황당함을 넘어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고백을 했고 대답까지 들었는데, 그 대답이 뭔지를 모른다.

"엄마가 하는 행동을 보면 대충 대답이 뭔지 알 거잖아요?"

-몰라, 이 녀석아. 아무튼 확실한 건 고백한 날을 기점으로 나 하고 미영 씨 사이가 굉장히 어색해졌다는 거야. 혹시 거절당한 건가? 나 차인 거냐?

"그건 저도 모르죠."

-하긴.

갑자기 휴가를 나가야 하는 이유가 생겨 버렸다.

'가서 엄마한테 그때 민수 아저씨한테 뭐라고 대답했는지 들어 봐야겠네.'

왠지 남의 숙제인데 이강진이 어쩔 수 없이 대신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 제74화. 병장 이강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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