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31화 (231/347)

제73화 군인이란 (4)

민원이 들어왔다.

이강진은 군 생활을 하면서 이 런 상황을 처음으로 겪어 봤다. 이건 회귀 이전에도 없었던 일이다.

"민원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설마 그 XX카페에서 저희한테 자리 양보해 달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하던 그 대학생들이 넣은 겁니까?"

통신반장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렇게 된 거 같더라."

어이가 없었다.

자리 양보 안 해줬다고 민원까지 받아야 하다니.

심지어 그들이 일방적으로 요구를 해 온 것이다. 이강진 일행 이 무단으로 테이블을 점거한 것도 아니고. 다섯 명 이상이라는 조건에 맞춰서 정당히 그곳에 앉은 것에 불과한데, 왜 이런 걸 로 민원이 들어왔는지 이강진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그것 때문에 중대장님이 대대장님한테 불려 가셨다. 우 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거참."

머리를 긁적이는 통신반장.

"그냥 양보해 주지 그랬어."

순간 이강진은 뒤통수를 크게 한 방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양보했어야했나?

솔직히 이강진은 양보해 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군인도 사람인데,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민간인에게 자 리를 양보해 줘야 하나?

하지만 이강진의 이런 신념이 민원이라는후폭풍을 만들어 냈 다. 그로 인해 중대장과 대대장이 곤혹을 치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자존심을 굽혔어야 했나.

이강진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때 행보관실 문이 열렸다. 동시에 행보관의 쩌렁쩌렁한 목 소리가 행정반을 가득 채웠다.

"주, 중사 권주명!"

통신반장은 잔뜩 얼어붙은 표정으로 행보관을 쳐다봤다.

행보관의 얼굴에 강한 분노가 어려 있었다.

"군인이 뉘 집 개냐? 우리는 사람 아니야? 군인을 하등 계급 보듯이 하는 놈들의 말에 뭐 하러 따르냐! 상관의 명령에만 복 종하면 되는 거지, 민간인들 명령까지 들어야 하냐? 양보라고? 양보는 개뿔!"

잔뜩 화가 난 행보관의 쓴소리에 통신반장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흘렸다.

"그리고 강진이."

"상병 이강진."

행보관은 오히려 이강진의 행동을 칭찬했다.

"잘했다. 그런 놈들한테 양보해 줄 필요 없어. 민원 들어온 거 는 나하고 중대장님이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까 어깨 펴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군복을 입은 이들.

그들의 목에 걸려 있는 건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이지, 노예 목 걸이가 아니다.

이강진의 행동을 오히려 칭찬하고 나선 행보관.

동시에 이강진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내 부대가 최고야!'

신병 교육대 시절 조교로 안 가고 1075대대를 골랐던 이강진의 선택은 정답이었다.

* * *

중대장은 마치 호랑이 앞에 선 초식동물처럼 잔뜩 움츠러든 상태였다.

민원이 들어왔다. 이건 굉장히 중대한 일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상세히 보고하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중대장은 이강진과 함께 당시 XX카페에 같이 있었던 병사들 의 증언을 바탕으로 대대장에게 보고를 했다.

조용히 중대장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하는 대대장.

보고를 하는 동안에도 중대장은 불안함과 초조함을 감줄 수 없었다.

분명 대대장이 그에게 쓴소리를 날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 보고가 다 끝난 뒤.

대대장은 중대장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대답을 들려줬

"나쁜 짓은 안 했군. 크게 문제될 건 없는 거 같은데. 중대장,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중대장의 대답은 뻔했다.

"저도 대대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군인 입장에선 어이가 없는 민원이었다.

"이강진, 그 친구가 대처를 아주 잘했군. 서로 언성을 높이기 보다는 차분하게 이러이러하니 양보해 줄 수 없다고 잘 설명했 어."

중대장도 대대장의 생각에 동의한다.

부대 내부적으로는 이강진의 손을 들어줬다.

하나 그렇다고 민원이 들어온 걸 무시할 순 없었다.

대대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내가 알아서 커버할 테니, 자네는 부대로 돌아가서 병사들한테 괜히 주눅 들 필요 없다고 잘 말해 주게."

"예,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충 일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중대장은 당시 대학생들과 시비가 붙었던 병사들을 따로 불 러 모았다.

조형욱은 말년 휴가 중이어서 불참했다. 그를 제외하고 이강 진을 포함한 4명이 중대장실로 집합했다.

병사들을 보면서 중대장은 대대장이 했던 말을 고스란히 들 려 줬다.

주눅 들 필요 없다. 너희가 잘못한 게 아니다.

중대장이 직접 대대장이 한 말들을 들려주니, 병사들의 표정은 한결 나아졌다.

민원이 들어온지 3일이 지났다.

이강진은 이대로 민원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줄 알았다.

하나 민원을 넣었던 대학생들은 생각보다 고집이 있었다.

그들은 이강진과 병사들에게 징계를 부여되길 원했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이들은 더 독한 방법을 꺼내 들기었다.

사이버 정보 지식방에 잠시 들린 김철.

그는 밀렸던 웹툰들을 보기 위해 인기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 다.

그 순간 김철은 검색어 순위창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뭐야? 왜 강진이 이름이 뜬금없이 올라와 있지?"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이강진의 이름으로 검색을 한 순간 김철 은 놀라 헛숨을 삼켰다.

"크, 큰일이야……!"

빠르게 행정반으로 뛰쳐나가는 김철.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중대장은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선 어이를 상실했다. 익명의 한 네티즌이 이런 글을 올린 것이다.

-국민 영웅이라고 불리던 이강진한테 모욕과 조롱을 당했습니다.

제목부터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이강진한테 테이블 좀 양보해 달라고 했더니 화를 내면서 자 신들한테 막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누가 봐도 날조였다. 이강진은 실제로 욕을 사용한 적이 전혀 없었다. 고압적인 태도를 취한 적 또한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글에 진짜로 낚여 버린 사람들의 반응이 었다.

-qpwei : 이강진이? 그럴 줄은 몰랐네.

-딸기우유 : 완전 실망, 국민 영웅인 줄 알았더니 국민 욕쟁이 잖아?

-치즈맨 : 부대는 뭐함? 민원 넣었는데 아무런 조치도 안 해 주나?

벌써부터 이강진을 비난하고 헐뜯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이강진은 설마 이런 식으로 악플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이런 흐름은 좋지 않다. 선동과 날조가 커지면, 거짓이 진실을 묻어 버리고 새로운 진실로 세탁되는 경우가 있다. 이강진은 그런 경우를 숱하게 봐 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징계를 받을지도 모른다.

어찌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중대장.

"일단 대대장님하고 상의해 본 다음에 공식으로 입장문을 내 던가 해야겠군."

이강진이 그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괜히 저 때문에……."

"아니, 괜찮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네가 사과할 필요 없다. 대대장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그리고 1중대 모든 간부와 병사들도 한마음 한뜻이다. 군인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일을 못 본척할 순 없지."

이강진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중대장.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일이 점점 귀찮게 되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 이었다.

중대장뿐만 아니라 다른 간부들도 골치가 아팠다.

한때 1075대대가 대충 사이에서 크게 회자된 적이 있었다. 바로 버스 전복 사건 때였다. 그러나 그때는 좋은 의미로 회자가 되었고, 지금은 안 좋은 의미로 회자가 되고 있었다.

아마 국방부도 예의 주시하고 있을 터.

중대장의 입에선 계속 한숨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졸지에 사건의 중심이 되어 버린 이강진 역시 가시방석에 앉 은 기분이 들었다.

하나.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

상대방이 선동과 날조로 나온다면…….

이강진도 그에 맞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기로 했다. 행정반을 나온 이강진은 곧장 1생활관으로 복귀했다.

"은석이 있어?"

백우호가 부재중인 조은석의 행방을 이강진에게 알려 줬다.

"은석이라면 휴게실에 가 있을 텐데?"

"땡 큐."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는 이강진.

백우호의 말대로 조은석은 휴게실 옆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 우고 있었다.

"은석아."

"충성! 무슨 일이십니까?"

조은석은 황급히 담배를 껐다.

"다름이 아니고......."단도직입적으로 조은석을 찾아온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네가 날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언론 플레이에는 언론 플레이로 답하면 된다.

* * *

이강진의 계획은 이렇다.

조은석의 인맥을 통해 기자들을 대동한다. 그리고 이 기자들을 이용해서 이강진도 여론으로 받아친다.

날조 싸움이라고 하면 기자만한 프로가 없다.

대신 이강진은 그만큼 조은석에게 대가를 지불할 생각이었다.

"내가 쟁여 둔 포상 휴가가 하나 있는데, 네가 원한다면 그걸 양도할게."

그러나 조은석은 고개를 가로저 었다.

"휴가는 안 넘겨주셔도 됩니다."

"휴가만으로 부족해서 그런 거야?"

"아닙니다."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있었다.

"이강진 상병 님한테 평소에 도움 많이 받았는데, 이런 걸로 대가를 바라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당연히 이강진을 도와야 한다. 이것이 조은석의 생각이었다.

만약 이강진이 조은석을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조은석이 먼저 이강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것이다.

평소에 쌓아 온 좋은 선임 이미지가 이런 식으로 이강진에게 보답이 되어 돌아왔다.

"작전을 짜기 전에 먼저 이강진 상병님에게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완벽 한 작전을 짤 수 있습니다."

문제가 터지면 웬만하면 이강진이 나서서 해결을 하곤 했지 만, 이번만큼은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알았어. 있는 그대로 말해 줄게."

"그럼 일단…… 문제가 터질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상세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국방색으로 꾸며진 수첩과 펜을 꺼내는 조은석.

기자다운 면모가 조금씩 되살아났다.

빠른 수기로 이강진의 증언들을 수첩에 적어 내려갔다.

"좋습니다. 이 정도면 된 거 같습니다."

"그래?"

"예, 그때 가게에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 확실하지 말입니다?"

"어, 확실해."

자리가 꽉 찼을 정도였다.

조은석은 수첩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읊조렸다.

"이강진 상병님과 대학생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을 누군 가가 분명 영상으로 촬영했을 겁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워낙 보급이 잘되어 있다 보니 문제 터지면 꼭 그걸 영상이나 사진으 로 남기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있습니다. 그들을 찾는 게 급선 무일 거 같습니다."

증거를 확보한다.

조은석의 첫 번째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다.

수첩을 상의 주머니에 찔러 넣은 조은석은 한쪽 입가를 씨익 말아 올렸다.

"저쪽이 선동과 날조로 나온다면, 우리는 팩트로 두들겨 패면 됩니다."

반짝이는 조은석의 눈빛을 보면서 이강진은 생각했다.

조은석도 기자는 기자구나.

처음에는 그가 기자라고 해서 불안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 다도 든든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 제73화. 군인이란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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